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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바로 휠체어도 접근 가능한 해안 산책로 |
장애인용 지문인식 하이패스 보다 차라리 가제트 팔 집게가 훨씬 인권적이다
어렵사리 편하게 묵을 수 있는 숙소를 구하고 신나게 자동차에서 시동을 걸어도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다시 한 번 초긴장 할 수밖에 없다. 이번 휴가지인 충남 부여를 다녀오는 것에만 해도 요금 정산소총 5곳을 거쳐야 하는데 필자는 장애인 감면이 되는 지문인식용 하이패스를 차에 달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이 정산하는 곳을 거쳐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필자가 왼손잡이인지라 요금 정산을 위해 일일이 내릴 일이 없다는 정도다. 앞도 보이지 않는 화물차 뒤에서 불안하게 요금을 하고 있자니 차라니 감면받지 말고 그냥 비장애인 차량처럼 그냥 아무데서나 싸게 달 수 있는 하이패스를 달고 감면받지 않은 요금을 내고 싶은 마음으로 울컥했다. 장애인용 하이패스를 굳이 달지 않은 이유가 비용도 비싸지만 내 차에서 내가 장애인임을 스스로 지문인식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본인의 차량에서 지문인식은 장애인임을 확인해야 할 요금징수 당국의 책임 전가이기도 하거니와 잠재적으로 장애인을 사칭할 수 있다는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으로, 말 그대로 반인권적이며 장애인 차별이며 내 자신에 대한 모욕이기에 거부했다. 어느 누가 소득보존을 위해 불특정 개인에게 자신의 의료보험 카드를 내보이겠는가? 더구나 웬만하면 핸드폰도 끄고 떠나는 휴가 여행에서. 마음 같아서는 정말 도시 간 이동을 위해서 목발을 짚고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싶을 뿐이다. 그마저도 힘들다면 다음 여름휴가를 위해 인터넷에서 파는 ‘가제트 팔’이나 사두어야겠다.
이렇게 울컥울컥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출출하여 휴게소에 차를 멈추면 잘 정비된 파란 바닥에 지붕까지 있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반갑기 그지없고 거기서 바투 위치하여 깨끗한 장애인 화장실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감동은 거기까지다. 홀로 목발을 짚고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면 고속도로의 로망인 고속도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여러 음식을 포기해야 한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를 제외하고 고속도로에서 음식을 먹으려면 양손이 목발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동반자나 활동보조가 없으면 고속도로에서 누리는 즐거움도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 그나마 차들이 그득그득 많아 화장실에서 가까운 곳에 주차라도 못하면 차안에서 생리현상을 처리해야 하는 참으로 억울한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도 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살아온 40년 가까운 인생, 이런 스트레스도 가뿐이 넘기는 여유와 노하우로 마침내 휴가지에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며 존재감 없는 관광객이 되어보려 하지만 이것 역시 녹록치 않다.
필자가 간 제주도나 경주나 부여에서의 장애인들은 너무나도 최신 유행에서 뒤쳐지고, 호기심과 관광을 위해 그곳을 간 느끼한 아저씨가 아니라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 관광객을 반성하게 만드는 대견한 장애인이 되고 만다. 계단 많은 경주 불국사나 부여의 낙화암을 목발로 가고 있으면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꼭 한마디씩 하시고 심지어 박수까지 던지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내심 저도 구경하고 싶어 갈뿐이고, 잘 다닐 뿐이고!!라고 속으로 짜증낼 뿐이다. 관광지에서, 물놀이 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놀란 듯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시선이야 정말 신기해서 정말 궁금해서 그렇다 치자. 관광지의 장애인들도 관광하고 싶을 뿐이고, 휴가지의 장애인들도 오로지 조용히 쉬고 싶을 뿐이라는 걸 왜 몰라주는 것일까? 정말로 목발로 장애를 극복하고 싶으면 암벽 등반을 하든가, 지리산 종주를 하든가 할 것이 아닌가?
비장애인들도 제주 올레길을 걸을때면 돌아올 때는 다리가 너무 아파 택시를 탈지언정 묵묵히 걷지 아니한가? 그들은 비장애인을 극복한다고, 올레길을 잘 걸었다고 타인들에게 박수를 받지 않는다.
▲ 호주의 어느 산에 조성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등산로 |
▲ 제주도 산굼부리에 조성된 휠체어 이용 가능한 접근로 |
피곤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박물관과 오래된 유적지, 그러나 전동휠체어는 없다
경주나 부여에 있는 박물관들은 비교적 기본적인 편의시설 등을 잘 갖춘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일 뿐이고 전시관이나 박물관으로서 그 정체성을 자랑하고 싶다면 정말로 필요한 것은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는 전동 휠체어나 전동 스쿠터다. 물론 국립 박물관들은 수동 휠체어들도 기본으로 마련되어 있지만 이 수동 휠체어는 관람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밀어주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동 휠체어의 모터와 조종간은 필자와 같은 뇌병변장애인에게는 자기 결정권의 해방구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한국의 어느 박물관도 전동 휠체어를 구비한 곳은 없다. 사적 박물관인 삼성박물관 리움만이 전동 휠체어 두 대를 운용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작년부터 관리 부실로 멈추었다. 제주도의 화산 지형인 산굼부리나 비자나무로 이루어진 비자림은 수동휠체어를 대여해주고 있고 길도 턱이 없어 접근은 가능하지만 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거나 요철이 심해 휠체어가 쉽게 훼손되고 홀로 수동 휠체어를 운전하거나 동반자에게 도와달라고 하기에도 공식적인 활동보조인이 아닌 이상 민망하다. 그 동반자가 사랑하는 애인이나 부모님이라면 멋진 애인이나 효자 아들 노릇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경주의 첨성대도 중간 중간 극지방의 크레바스처럼 구멍들이 많아 수동 휠체어는 멀리서 감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2006년에 지은 부여의 정림사지 박물관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불상과 풍부한 음성정보로 다양한 장애인을 지원한 것처럼 보였으나 정작 박물관과 국보인 5층석탑까지 갈 수 있는 수동 휠체어를 제공하고 있지 못해서 같이 간 파트너에게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떤 어르신 연예인처럼 먼발치 벤치에 앉아 “날 두고 다녀오너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장애인 본인이 집에서 이용하는 전동휠체어를 가져가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개인이 자신의 자가용에 싣고 휴가를 보내려면 상용이 끝난 장애인 콜택시 차종을 공매를 통해 구매하거나 국산차에 유일하게 전동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기중기가 달려있는 단 하나의 차를 살 수밖에 없다. 여행사 직원이나 여행작가, 사진작가가 아닌 이상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게도 단순히 경험과 오락만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이 아닌 자신을 찾고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할 수 있는 휴가, 그것도 최신 유행에 따른 다른 직장인들이 도전하고 누리는 그런 여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귀하여 다시 일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단순 격려와 배려차원에서의 여행은 장애인 당사자의 심리적 박탈감만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노동자에게 빵 뿐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듯이 장애인에게도 자신의 자존을 확인하고 이를 재충전할 수 있는 진정 평등한 휴가가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장애가 심해서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와 환경, 쉼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