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후 연동교회와 상동교회 그리고 전국 교회 교인들이 매일 오후 3시에 드린 <위국기도> 전문
마치 버마재비가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후 재편되는 세계의 기류 앞에서, 전운을 드리우는 한반도의 흐름 앞에서 오열을 터뜨리며 기도하는 나 자신이 마치 수레바퀴 앞에 서있는 버마재비처럼 느껴진다. 무능하고 무력하여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자의 슬픔으로 평화를 위해 운다.
억장이 무너지게도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국내외의 정치경제 흐름이 어떤 면에서는 해방 직후와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전쟁 직전과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70년대 같기도 하다.
역사가 진보하고 우리의 지식과 의식 또한 발전하며 성숙한다고 믿었는데 결코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과 권력의 분산, 경제발전으로 인한 삶의 수준과 국제적인 위상은 분명히 달라졌으나 옹졸하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정신세계는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더 퇴행하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온갖 권모술수와 가짜 뉴스가 진짜처럼 우리를 겹겹이 들러 싸고 있다. 모두가 국민과 국가, 인류와 다음 세대라는 큰 그림은 보지 않고 현재의 자신과 자신의 집단, 자신의 신념과 사상만이 옳고 선하며 시대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적인 발상이라 할지라도 자기와 다른 것을 무조건 악과 불의로 규정하는 정신세계는 그 자체에 독선과 폭력이 내재하고 있으므로 끊임없이 피 터지는 투쟁을 유발하게 되어 있다. 폭력은 반드시 원한을 낳고 원한은 반드시 새로운 폭력을 낳는다.
폭력과 원한이 악순환하는 것을 우리는 조선의 역사에서 뿐 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가슴 아프게 절절하게 체험하였다.
반복되는 역사의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을 것인가?
동북아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누가 막을 것인가?
세계를 양분하는 신냉전 기류의 형성을 누가 막을 것인가?
세계를 전운으로 휘감는 신 체재와 내재되 있는 폭력성을 누가 막을 것인가?
민족과 국가라는 카르텔에 속한 세계 지식인과 전문가들, 정치인들에게는 답이 없다!
물론 종교인들, 사상가들에게도 답이 없다.
사람들은 기득권 유지와 파워 게임에 불리할 때 잃지 않으려고 움직인다.
전후좌우 어디를 돌아보아도 각종 카르텔의 위세만 깃발을 날린다.
일개인으로서 막히고 닫히는 시대의 흐름 앞에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평화를 지향하지 않는 인류세 역사의 퇴행과 탐욕의 무질서와 혼돈(混沌)에 고뇌하며 허무감, 무력감에 빠진다.
기득권 앞에 쉽게 무너지고 마는 인간의 지성과 사랑에 대하여 할 말이 없다.
카오스와 아노미의 일상화!
지식과 지혜가 없고 분별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라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전쟁과 폭력을 막아주시라고 아뢴다.
우리 모두가 카인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원해주시라고 기도한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입술의 모든 말에 진리와 지혜를 주시라고 간구한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한반도에 하나님의 가호와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길 간청한다.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영, 사랑의 영, 신뢰의 영, 용서의 영, 화해의 영, 인내의 영, 겸허의 영을 보내주시라고 부르짖는다.
한국을 향하신 계획과 뜻을 이루시어 세계를 위한 평화의 도구로 써주시라고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조상들이 바친 기도를 생각하였다.
지금보다 더 힘든 시대, 절대 절망 속에서 울부짖은 조상들의 기도이다. 그들의 시대적 상황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의지할 것 없는 마음을 하나님께 아뢴 그 심정, 절절한 마음, 슬픔과 아픔과 하소연 할 곳이 없는 억울함을 깊이 공감한다.
아래는 1905년 을사늑약 3개월 전에 연동교회 교인들이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 기도문이다. 을사늑약 이후 상동교회에서 개최된 구국기도회 참석자들이 함께 사용한 기도문이기도 하다.
아래는 나라가 망한 이유에 대한 설명과 <위국기도> 전문이다. 원래 국한문 혼용체로 써진 기도문을 현대어로 고쳤다.
언 듯 보면 기도문에 사용한 말들이 너무 평범하고 침착하며 차분해서 비통한 느낌이 없다. 그러나 때가 때인 만큼 화산처럼 뜨겁고 억울하고 분하고 비통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던 현실을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첫 번 구국기도회에 모인 천여 명의 청년들이 기도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는 <대한매일신보>의 보도가 당시 청년들의 표현할 수 없는 기도를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지금 우리 대한(대한제국)이 고난 중에 있는 형편을 우리 동포가 다 아는 바이어니와 야소(예수)를 믿는 형제자매 중에도 혹은 자기가 잘못하여 이 지경에 이른 줄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니 이는 생각이 부족한 바요.
혹은 말하기를 우리의 영원한 나라가 하늘에 있는 즉 육신의 나라는 별로 상관 없다하니 이 또한 생각이 모자란 바요.
혹은 말하기를 이런 고난을 당하여 어찌 가만히 앉아 있겠는가 하며 혈기를 참지 못하여 급히 나아가자 하는 이 또한 생각이 모자란 것이니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즉 이 고난이 온 원인(허물)이 어디에 있다 하리요 다른 것에 있지 않고 다 하나님을 믿고 구하지 않은 데 있으니 대저 우리나라 사람이 귀신 우상을 승배하고 악독한 일만 행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기름진 땅과 광산과 일용만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바르게 쓰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 앞에 복을 구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이제 믿는 우리는 구약 시대 선지자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의 기도로 이스라엘과 유대 나라가 구원을 얻은 것 같이 대한이 구원 얻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합시다. 기도시간은 매일 신시(오후 3시와 4시)로 기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대한제국)이 죄악으로 어려운(나라가 망한) 지경에 빠졌으매
하나님 외에는 빌 곳이 없어서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시간에 기도합니다.
한국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이 자기 나라를 위하여 간구하였을 때 응답하심 같이 한국을 구원하시어
전국 인민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모두 천국 백성이 되어
나라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보호로
지구상에서 확실한 독립국이 되게 해주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도착한 이튿날 11월 10일(금요일) 저녁 상동교회 청년회는 구국기도회와 시국토론회를 개최하였는데 무려 천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 기도회 장면을 취재한 <대한매일신보>는 “그저께 밤에 상동청년회에서는 회원 천여 명이 모여 나라에 재앙이 임한 것에 대하여 분개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였는데 노름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어떤 작자들이기에 이런 시국에서도 나라 근심은 멀리하고 편안히 앉아 골패와 화투만 하고 있으니 사람의 형체를 가진 것이 부끄럽지 아니한가.”라고 썼다.
청년들은 국가적 위기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와 시대를 바르게 보지 못하고 노름방에 드나드는 향락과 퇴폐에 빠져있는 지도층의 반역사적 행위에 비분강개하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하나님 앞에 뜨겁게 울부짖었다.
청년들은 매주 금요일 상동교회에서 구국기도회로 모일 뿐 아니라 매일 한 차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위국기도>문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상동교회 청년들이 시작한 구국기도회는 매주일 지속되었고 감리교뿐 아니라 장로교와 침례교 등 다른 교파 청년과 교인들까지 참여하는 ‘초교파 연합기도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청년들은 기도의 힘을 모아서 ‘을사늑약’ 무효를 주장하는 ‘도끼상소’를 매일 5인이 1조가 되어 고종이 거주하는 경운궁(덕수궁) 대안문(대한문) 앞에서 벌이기에 이르렀다.
청년들의 기도대로 40년 지나서 대한은 독립된 나라가 되었다.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도도 머지않아 응답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지금 바치는 우리의 작은 기도가 다윗의 물맷돌이 되어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골리앗들의 오만과 독선, 세계 제패의 욕망을 이기고야 말리라 믿는다.
2023.4.11.화요일
우담초라하니
참고문헌
이덕주 저 ⌜상동청년 전덕기⌟, 공옥,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