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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과 연합으로 북한산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 구천폭포 → 대동문 → 덕장봉/천제단 → 동장대 → 북한산 대피소 → 태고사 → 용학사 → 중성문 → 법용산 → 등운각 → 무량사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의 6.7km 상춘 코스를 천제단 시산제 포함 5시간 동안 즐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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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인 북한산국립공원은 1983년 우리나라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76.922㎢로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는 도봉산 지역, 남쪽으로는 북한산 지역으로 나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화강암 지반이 침식되고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곳곳에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이루고 있다. 또한, 2,000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위치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역사 문화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3월 삼 주 차 토요일 등산방 정기 산행은 87과 연합으로 북한산 천제단에서 갑진년 시산제를 지내기로 했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해마다 3월에 진행했던 전례를 따른 걸로, 달라진 게 있다면, 87과 연합으로 지내는 거다. 장소는 북한산 종주 코스에 있는 덕장봉 천제단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는 저기서 시산제를 지내야지 생각만 하다가, 막상 시산제를 지낼 때가 되면 망각해 이번 시산제 일정에 아예 장소를 명기해 제대로 된 장소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다만, 당일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고, 대게 산악회가 3월에 시산제를 지내는 추세라, 서울 지역 산악회가 천제단으로 몰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해서, 여차하면 동장대로 옮겨서 지내는 플랜 B도 계획 중이다.
85나, 87이나,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산행 참여자가 줄고 있어, 이번 시산제를 부흥의 기회로 삼기 위해, 제물이나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물가가 폭등하고 사회가 불안한데, 참여자의 주머니를 털어 준비해야 하는 제물은 오히려 참여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어차피 산행에서 점심 준비하는 거, 각자 조금씩 더 준비하기로 했다. 차례나 제사도 간소화하는 마당에 현대화된 산신에 맞춘 시산제가 좋은 거다. 그리고 평소 산행 전이나, 후 꼬빡꼬빡 산신각이나, 산신당을 방문해 무사 산행을 빌거나, 감사 인사를 하는 만큼 산신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2월 14일에는 1차 북한산 암자 순례까지 했고[산행기], 조만간 2차 순례를 할 예정이다.
기상청 산악날씨 북한산 토요일 예보에 의하면, 기온은 영상 10℃~16℃, 바람은 1m/s~2m/s, 다소 더운 날씨다. 미세먼지에 관한 정보는 산행 당일 아침이나 되어야 확인이 가능하나, 최근 경향을 봤을 때, 미세 먼지로 조망이 좋을 거 같지는 않다. 어차피 조망이 목적이 아니라 시산제가 목적인 산행이라, 큰 아쉬움은 없다. 점심이야 다른 친구가 준비할 거니 됐고, 대조시장에 들려, 홍어무침, 정확히는 가오리무침을 평소보다 많이 사 갈 예정이다. 처음 계획은 북한산성 입구로 하산해, 그곳 상가에서 하산주를 마실 예정이었으나, 당일 시청 부근에서 세월호 집회가 있다는 소식이라, 산행 후 집회 참석이 결정되면, 빠른 하산을 위해 반대편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하산주는 집회가 끝나고, 시청 부근에서 마실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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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까지 수유역 4번 출구로 가려면, 불광역에서 8시 44분 열차를 타고, 충무로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고로 다른 산행과 달리 새벽부터 서두를 이유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알람을 맞췄다. 물론 집에서 떠나야 하는 시간도. 그리고 알람이 울리기 전 평소와 다름없이 기상해 볼일을 보며, 밤새 변한 게 있는지 살펴봤다. 날씨는 변동이 없고, 어제까지 없던 미세먼지에 관해서는 초미세먼지가 나쁘다는 정보다. 고로 조망은 꽝이다. 그리고 참석자는 85가 11명, 87이 6명으로 총 17명이다. 물론 모여봐야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있다. 이후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8시 20분경 집을 나서 불광역으로 향했다.
길목의 대조시장에서 홍어무침을 사, 배낭에 넣고, 불광역으로 가 예정대로 8시 44분 빠른 환승을 위해 8번 칸 열차를 탔다. 그리고 충무로역에 내려서 보니, 분명 빠른 환승은 8-4번 문이었는데, 올라가는 계단은 8-1번 쪽에 있어, 앱 정보에 오류가 있다며, 투덜거리며 위로 올라갔는데, 앱 정보는 이상이 없었다. 올라간 곳은 반대편으로 가는 승차장이다. 수유 방향으로 가는 열차 도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뛰어서 계단을 내려와, 3호선 반대편 승차장 쪽에 있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는 중 열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부터 계단을 열심히 뛰어올라, 간신히 열차를 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텔레그램 등산방에 내 위치를 알려줬다.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친구라면, 이 열차를 타고 있을 확률이 높아서다.
열차 내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수유역 도착 직전 누군가 아는 체를 해 처다 보니, 정숙이다. 그럼, 이 차에는 우리 둘만 탔다는 얘긴가? 다른 친구들은 앞 차로 도착했나, 어쨌든 다들 시간에 맞춰 오기를 바라며, 4번 출구로 나가자, 들머리인 통일교육원으로 가는 01번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대기 중이라 서둘러 차에 탔다. 그리고 내부를 둘러보니, 기식과 영한이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창우와 동선이 탔다. 고로 이차에 여섯이 타고 들머리인 버스 종점에 9시 51분경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87은 경숙, 수흔, 기현, 철수 등 넷이, 85는 동숙, 재석, 흥수 등 셋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희제는 조금 늦을 거라며 먼저 출발하라고 연락이 왔고, 영빈은 연락 두절이라, 어제 과음하고 일어나지 못한 거라는 게 우리 모두 공통된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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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에 도착하면 바로 출발하는 게 처음 계획이나, 그래도 친목 동호회가 너무 따지는 것도 좋지 않아, 일단 다음 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고 출발하기로 했다. 해서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이미 도착한 친구, 후배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종점 주변을 둘러보니, 길이 두 개다. 하나는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고, 다른 하나는 왼쪽 위로 올라가고 있다. 그냥 보기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혀, 이정표 옆 지도를 확인해다 그런데, 그 지도가 둘레길 안내도로 등산 안내도가 아니나, 대동문으로 가려면 아카데미하우스 방향의 윗길로 가야 한다는 건 알 수 있다. 가야 할 방향을 점검한 후, 버스에서 내릴 때 기동한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도 확인했다. 136m, 생각보다 높다, 북한산 들머리 중 고도 순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산행 최고 높이의 봉우리는 천제단이 있는 덕장봉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니, 586m의 높이로 덕장봉이라, 고도차는 450m다. 북한산 기준, 고도차가 큰 건 아니나, 다른 수도권 산과 비교하면 꽤 난다.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도착해, 87의 남경이가 내렸다. 와야 할 사람은 다 왔다. 해서, 대동문을 향해 출발하려다가, 좀 전에 둘레길 안내도로 확인한 대동문 가는 길을 깜빡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약간의 논쟁을 한 후 흥수와 다른 친구의 주장대로 윗길로 올라갔다. 최근에 단기 기억상실이 심하다. 아카데미하우스가 있는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다. 아카데미하우스가 리모델링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다니 세월이 무상하다. 어쨌든 그걸 보고 비슷한 얘기를 나누며 올라가, 10시 6분 아카데미공원지킴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초소를 중심으로 길이 나뉘는데, 왼쪽은 차단봉이 내려와 있고, 그 차단봉에 낙석 발생으로 통제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어, 시산제를 지내는 날, 굳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 오른쪽의 뻥 뚫린 길로 가려는 데, 기식의 차단봉이 막고 있는 길이 대동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에, 차단봉을 넘어갔다. 결과적인 얘기나, 당시에는 몰랐으나, 애초 산행 계획도 초소 기준 차단봉이 막고 있는 길로 갈 예정이었다. 다행히 초소에 요원이 없어, 제지를 당하지는 않았는데, 한가하게 떠들며, 지나는 일행을 독려해 차단봉에서 멀어졌다. 오른쪽이 능선 길이라면, 우리가 선택한 길은 계곡을 따라 난 길이다. 이 또한 나중에 안 사실로, 구천폭포가 있는 구천계곡이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오른쪽으로 과거 카페 건물이 있어, 그 카페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올라갔다.
그리고 10시 21분경 나무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다행히 문은 열려있으나, 비록 잠겨 있다고 해도, 낮은 목책을 넘으면 그만이나, 그래도 담치기보다야 당당히 문을 통과하는 게 좋다. 거기에 도착하자, 일행이 사진을 산행 시작할 때 단체 사진을 안 찍었다고 뭐라고 해, 거기서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이후 다들 문을 통과해 올라가는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그 지점이 갈림길이다. 그리고 계곡을 건너는 게 맞아 보이나, 이미 다들 올라갔다. 그래도 북한산 우이동 방향은 나보다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 믿고 따라 올라가는데, 계곡 건너 암릉에 설치된 갑판 계단이 보여, 저건 뭔지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별 의심 없이 계속 가던 길로 올라가자, 계곡 건너에 약수가 보여, 그곳으로 가 물맛을 봤다.
시원한 물맛에 감탄하며 등산로로 돌아와 계곡 건너를 다시 주의 깊게 살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곡 건너 능선이 길이라,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했다. 분명 지금 우리는 등산로로 가고 있는데, 지도에는 없는 길이고, 예상대로 계곡 건너에 구천폭포가 있고, 그곳에 길이 있다. 해서 앞서가는 친구를 불렀으나, 그사이 많이 올라갔는지, 반응이 없어, 흥수에게 전화해 돌아오라고 했다. 내 전화를 받고 흥수도 지도로 갈림길에서 200m가량 올라왔다는 확인하고, 걸음을 돌려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던 영한을 만나, 상황을 얘기하자, 어차피 길은 하나로 통하니, 웬만하면 그냥 가던 길로 가잔다. 뭐 그 말도 틀린 게 아니라, 망설이고 있는데, 아래에서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노년의 산꾼이 올라오자, 일행 몇이 산꾼에게 길을 물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대동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앞장서서 올라간다. 의견이 나뉘기는 했지만, 동네 산꾼의 말을 믿고 그의 뒤를 따라가, 좀 전에 물맛을 봤던, 약수터를 5분 만에 다시 지났다.
그리고 10시 38분 두 번째 약수터의 물맛을 보고, 계곡을 건너자, 목책으로 둘러싼 작은 체육공원이다. 말인즉 더는 공식적인 길은 없다. 물론 목책은 기존의 등산로를 막고 있을 뿐이지만. 그 노년의 산꾼도 놀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4년 만에 올라왔더니, 많이 변했다고 변명하고, 뒤로 돌아 내려간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다시 내려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공식 탐방로는 아니지만, 목책 너머로 분명 등산로가 있어, 그걸 넘었다. 그리고 약간은 미끄럽기도 한 급경사 등산로로, 10시 45분경 미지의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 위 등산로는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데, 어떤 지도에도 언급이 없고, 다만 비법정 탐방로가 표시되는 앱에는 점선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북한산 어느 능선이나 그렇듯이 중간중간 등산로에서 벗어난 바위 전망대가 있어, 그리로 기어올라가 가니, 주 능선 오른쪽으로 대동문이 보인다. 저 문이 오른쪽에 있으면 안 된다. 그건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 계속 대동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 조급해할 것도 없는 게 영한이 말 대로, 어차피 길은 하나로, 즉 성벽으로 향하니, 좀 늦어질 뿐 대동문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건 변함이 없다. 해서, 일행의 페이스에 맞추기 위해 여기저기 전망대에 올라가, 미세먼지 속 서울 시내와 일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11시 10분경 무명의 봉우리를 넘어,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로 아래로 내려가자, 저 앞으로 목책과 산꾼이 보인다. 우리 일행은 아니고, 왼쪽에서 올라온 거 같은데, 저기에 길이 있었나? 그리고 그 위 능선에서, 사람이 보이지는 않으나, 오가는 등산객의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린다. 저 위 능선은 공식 탐방로라는 얘기라, 유심히 주변을 살펴봤다. ‘칼바위능선’이다. 고로 우리가 대동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왼쪽의 칼바위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며 목책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그 산꾼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래에서 만났던 그 노인장이다. 그는 계곡으로 다시 돌아가 그 옆으로 난 길을 위로 온 거다.
왼쪽 위의 칼바위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 방향에는 길이 없다. 직지하는 길도 목책으로 끊겼다. 정확히는 목책 이전에 바위가 가로막고 있다. 해서 바위 주변을 잘 살펴보니, 좌우로 우회한 인적이 있다. 주변에 보이는 유일한 인적이다. 고로 그 바위 좌우로 산꾼이 올라갔다는 얘기라. 목책과 금줄을 넘어 그나마 쉬워 보이는 오른쪽으로 바위를 우회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꽤 벌어져, 누군가는 후미를 인도해야 할 상황이라,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 반대편으로 위로 올라가 후미가 오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후미가 도착한 순간, 길을 자세히 알려주고, 올라오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 바위에서 내려왔다.
이후 다시 선두를 쫓아 위로 가자, 너덜지대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주변에 인적, 다른 말로는 쓰레기는 여기저기 보이는데, 정작 길은 안 보인다. 급경사에 낙엽이 쌓여 있고, 온통 관목이라 길을 뚫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50여 미터 위가 칼바위능선이다. 그런데, 다들 생각보다 잘 뚫고 올라간다. 앞뒤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위로 가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걸 발견했다. 과거의 이정표다. 폭우 때 휩쓸려 내려오다가 너덜에 걸린 거 같은데, 흰 페인트로 쓴 글만 보면 글을 새기다, 오류가 발생해 버린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각의 이정표 한 면의 '?산수' 또는 '?산서', '능선 0.85km'라는 정확히 알아보기 힘든 글은 '산성 능선 0.85km'의 오기가 아닐까? 그 면과 각을 이룬 다른 면의 '빨래골매소 3.0m'는 '빨래골 매표소 3.0km'의 오기로 보인다.
그럼, 주변의 쓰레기 또한 여기를 올라가던 산꾼이 아니라, 칼바위능선을 오가던 등산객이 아래로 집어 던진 거다. 그것도 꽤 오래전에! 그럼, 인적은 있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 게 이해가 된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11시 42분경 선두가 칼바위능선으로 올라섰고, 45분경 나도 올라섰다. 그리고 11시 50분경 남경과 재석이 능선에 올라서는 거로,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물론 영한이 남았으나, 이 정도 코스는 그 친구에는 별것도 아니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무사히 도착한 걸 확인하고 잠깐 쉬면서, 물을 마시거나 간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렇게 우리가 칼바위능선에 오르기 위해 길을 개척하는 동안, 우리보다 30여 분 늦게 출발한 희제는 벌써 대동문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역시, 좀 돌더라도 정규 등산로가 확실히 더 빠르다. 그걸 몇 년 전에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재미를 위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는 지름길을 택하는 게 일상이다.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휴식하던 장소에서 출발해 칼바위 능선을 따라 성벽을 향해 갔다. 와중에 우회로가 있음에도 그걸 버리고 칼바위 직전 바위에 올라서자, 조망이 탁 트인다. 물론 미세먼지 덕에 먼 거리는 희미하게 보이나, 삼각산과 염초, 노적의 다섯 암봉을 구분할 정도의 조망은 된다. 그 뒤의 도봉산은 구분 자체가 힘들지만. 미세먼지 속 희미하게 여기저기 솟아 있는 아파트 군락은 영화 속 암울한 미래도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와중에 바위로 올라오지 않고, 우회로로 칼바위로 향한 일행 몇이 그 정상에 올라선 모습이 보여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 역시 삼각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바위에서 내려와 칼바위를 넘어, 12시 17분 성벽이 가로막고 있는 북한산, 주 능선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천제단까지는 금방이다.
성벽을 따라 천제단이 있는 덕장봉으로 향하는데, 12시 25분경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동장대다. 그리고 고개를 돌자, 늦게 출발했지만,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희제다. 다를 반갑게 희제와 인사를 나누고, 계속 성벽을 따라 올라가, 12시 29분경 덕장봉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이 12시경 도착이 목표였으니, 비록 길을 잘못 들어 빙 돌았음에도 30분 정도밖에 늦지 않았다는 것에 약간 놀랐다. 출발을 서두른 것도 있지만, 산악회 구성원답게 다들 산행에는 한가락씩 하는 친구들이라 그렇다. 사실 다른 산악회가 먼저 도착해 행산 중이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우리보다 약간 앞선 등산객 한 명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해서 다른 팀이 도착하기 전 서둘러, 산신도를 걸고, 가져온 제물을 최대한 예절에 맞게 제단에 배치했다.
이후 각 대표가 먼저 제를 올린 후 모두 함께 산신에게 올 한 해도 무사 산행을 기원했다. 그리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자, 대동문에 도착했다는 영한의 연락이 와 천제단의 위치를 알려줬다. 역시 노련한 산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도착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이라, 먼저, 현장에 있는 친구들만 단체 사진을 찍고, 음복하려는 순간, 그 친구가 도착해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이 이번 시산제에 참여한 모두가 담긴 단체 사진이다. 이후 가져온 제물을 나눠 먹었다. 역시 예상대로 배를 채우고도 넘치는 양이라, 배가 터질 정도다. 해서 배를 꺼트리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성벽 위로 보이는 삼각산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성벽으로 접근했다. 그러다, 우연히 산신도가 설치된,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성벽의 지붕처럼 생긴 곳을 보자, 제대로 제를 지낸 흔적이 있다. 산악회의 시산제? 무당의 굿판?
천제단에서 1시간 20분가량 시산제를 지낸 후, 우리의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1시 55분경 덕장봉을 떠나 하산을 시작했다. 처음 계획은 성벽을 따라 동장대가 있는 시단봉을 거쳐, 북한산 대피소에서 북한산성 입구 방향으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집회 소식에 방향을 바꿔 대동문을 거쳐, 우이동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2시 정각 다시 대동문에 도착해, 애초 등산 때 통과하기로 했던 문을 지나자, 여기저기서 인증을 남기자는 요구가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세 번째 단체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보니, 참여 인원 전부가 같이 있는 두 번째 사진이다.
인증을 남겼으니, 더는 할 게 없어, 유유자적하지만 페이스에 맞춰 우이동으로 향해, 2시 8분 아카데미공원 갈림길에서 진달래 능선 방향으로 좌회전하고, 2시 13분 백련공원 갈림길에서 소귀천 방향으로 또 좌회전했다. 이제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곡을 따라 우이동까지 내려가면 된다. 그렇게 내려가다, 2시 40분경 이번 산행 세 번째 약수인 용담수에 도착해 물맛을 봤다. 네 번째 약수인 용천수는 음용수 부적격 판정을 받아 통과했다. 소귀천 옆으로 난 등산로로 내려가는 데, 계곡의 맑은 물을 보고, 씻고 가자는 민원이 빗발쳐, 딱 5분만 씻기로 하고, 다들 계곡으로 들어가, 오지 산행으로 지친 발을 피로를 풀었다. 이후 다시 길을 재촉해, 과거 정주영 작품이라는 고급 요정, 지금은 한옥카페 겸 결혼식장으로 바뀐 건물을 지나, 그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3시 18분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거로 사실상 산행은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우이동 버스정류장이나, 역까지 가서 각자 갈 길을 가면 된다. 그런데, 과거 분명 이 길, 소귀천으로 내려왔을 텐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속 내려가자, 왼쪽으로 눈에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열린 적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철책 문이다. 과거 합궁바위와 우주선 바위, 코끼리바위를 찾기 위해 헤매다가 저 철책을 몇 번 넘었다. 물론 그 바위를 찾은 후에도 어쩔 수 없이 저 철문을 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넘은 게 2018년 9월이다[산행기].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가자, 오른쪽으로 당시 자주 갔던 ‘산두부집’이 보여, 다양한 이유로 시청으로 가지 못하는 일행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거기서 두 팀으로 나눠 넷은 시청으로, 나머지는 하산주를 마시기로 하고 헤어져, 오른쪽으로 수도권 아니, 국내 최대 안내산악회 본거지를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우이역으로 향해, 3시 52분경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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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52분 북한산우이역으로 들어가 경전철을 타고 시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음복(飮福)이라고 해봐야, 막걸리 몇 잔에 불과한데, 다들 피곤한 표정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잠이 든 친구도 있다. 비록 거리상으로는 8km 내외의 산행이었으나, 미지의 능선 특히, 과거의 희미한 인적만 있는 계곡으로 올라간 300여 미터에 모든 체력을 쏟아부어 다들 지친 듯하다. 하긴 나도 몰려오는 졸음을 뿌리치느라 노력을 많이 했다. 결과적인 얘기나,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지리산 종주한 것과 비슷한 몸 상태라, 어제 산행이 그렇게 힘들었나, 다시 곱씹어 봤을 정도다. 신설동 역에 도착해 자는 친구를 깨워, 1호선으로 갈아타고, 4시 40분경 시청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서 영빈을 만나, 5시 26분경 과거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시절 단골집인 광화문집으로 향해 29분에 도착했다. 벌써 20여 년 전인데, 이 집은 변한 게 없다.
영빈 포함 다섯이 2층으로 올라가, 김치찌개 3인분과 돼지고기볶음 2인분을 주문했는데, 막상 나온 건 반대다. 분위기를 보니, 김치찌개는 아예 2인분으로 대량 제조를 해 놓은 듯하다. 제육볶음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다른 짜글이 형태라, 고로 김치찌개와 큰 차이가 없어, 주는 대로 먹었다. 물론 첫 잔은 소맥, 이후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누구는 빨갱이 누구는 순한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막판에 김치찌개 2인분을 더 주문해 술을 마셨다. 식탁 옆으로 김치찌개가 준비된 냄비가 늘어서 있어, 그중 하나를 갖다 놓고 끓이는 시스템이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건 좋았다. 와중에 우이동 주저앉은 친구 중, 재석과 수흔이 오겠다고 연락해, 얼마를 마셨는지 모르게 빨갱이를 마시고, 1차를 끝낸 후, 집이 먼 동선과 창우가 떠나고, 남은 셋은 2차로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감자탕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금 있으니, 수흔과 재석이 따로 도착했다. 분명 우이동에 같이 주저앉았는데, 따로 온 것도 의외다. 어쨌든, 다시 다섯이 감자탕을 안주로 빨갱이를 마시는데, 더는 술이 안 들어가, 배낭을 둘러메고, 도망 나와 집으로 갔다. 다행히 너무 피곤해서 술이 받지 않았는지, 열차에서 곯아떨어지지는 않아, 9시 33분경 정상적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어 씻고, 마누라가 준비한 배춧국으로 해장했다. 이후 보람찬 시산제의 하루를 마감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등산은 길을 잘 못 들어, 하산은 시청역으로 향하기 위해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 미지의 능선 → 칼바위 능선 → 대동문 → 덕장봉/천제단 → 동장대 → 용담수 → 용천수 → 소귀천공원지킴터 → 우이분소 → 북한산우이역’의 8.8km(트랭글) 코스를 5시간 48분 동안 즐겼다. 이동 4시간 2분, 휴식 1시간 46분!
구천계곡에서 길을 잘못 선택하는 덕분에 잘 안다고 생각했던, 북한산에서 미지의 능선을 즐겼다. 오랜 과거의 인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마지막 300여 미터의 급경사 계곡은 북한산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오지 산행이었다. 집과 가까운 서쪽 방향의 능선이나 계곡은 샅샅이 훑었는데, 반대편에는 아직 가 보지 못한 능선과 계곡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산행으로 깨달았다.
길을 잘못 들어, 힘들게 칼바위능선에 올라서는 등 여러 가지 지체 요소가 있었음에도 생각보다, 많이 늦지 않은 12시 30분경 천제단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참여자 모두가 한가락씩 하는 산꾼이라는 방증이다.
초미세먼지가 주변 경치 감상을 방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삼각산과 염초봉, 노적봉의 두 암봉을 합친 북한산 다섯 암봉을 제대로 감상하고, 거기다 기대 이상의 시산제 분위기에 다들 만족한 분위기다.
※ 애초 시산제는 사진만 올리고 산행기를 쓸 계획은 없었으나, 미지의 능선을 발견한 과정과 위치를 기록으로 남겨둬야 할 필요가 있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