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식] 려현역
도라산역에서 7.8km 떨어지고 평양에서 7.2km 떨어진 역으로 북위 38도선 바로 위쪽에 자리잡아, 6.25 전쟁 전에는 남북한 간의 접촉 창구 및 우편물을 교환하는 장소로써의 역할을 했다. 1946년 1월 미-소 공동위원회 합의로 그 해 3월 15일 개성역에서 첫 우편물 교환이 있었다. 그러나 2차부터는 개성우편국으로 바뀌었고, 북측 인원들이 남측 지역 물이 들 것을 꺼린 소련군정의 의도 때문에 1947년 1월 11일(21차)부터는 북측 지역인 이 역에서 우편물 교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우편물 교환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역에서는 감시 때문에 자유로운 편지의 의사표시에 제약을 받았다. 아무튼 이 우편교환은 1948년 4월부터는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되어, 1950년 6월 22일(165차) 6.25 전쟁 사흘 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중 북쪽으로 192만 통, 남쪽으로 96만 통의 우편물이 보내졌다. 중요한 사건은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날 북괴는 이곳에서 통일을 위해 주요인물을 맞교환하자고 했다. 북괴는 공산주의자 이주하 감삼룡을 요구했고 남한에서는 조만식 장로를 요청했다. 당시 영락교회에서는 조만식 선생이 오는 것을 놓고 기뻐 잔치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날 주일 새벽에 북한은 남침을 했고 남한을 쑥대밭을 만들어 버렸다. 삼천리 반도의 83%가 공산화 되고 겨우 남은 17%의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다시 나라를 살린 것은 인간의 힘으론 결코 불가능하다. 사실 공자 맹자의 나라가 공산화 된것도 불가사의 하지만 자유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은 주님의 은혜요 기적이 아니고선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중의 기적이다. 주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