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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11월 19일 추수감사절 설교)
데살로니가 전서 5:12-28(신약 333)
2023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했습니다. 금 년 여름은 유난히 무더운 날이 많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추위가 와서 마치 초겨울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들은 가을걷이를 하고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고 보이지 않게 확산되는 것 같고, 독감도 확산이 되는 상황인 것 같고 경기가 침체 된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는 말을 하는 상황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추수감사절이 아닌 현대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을 때도 행복한 풍요로움 속에서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극한 시련의 상황에서 첫 번째 수확을 거두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추수감사절은 칠칠절과 수장절 두 가지로 나오는데 칠칠절은 유대인들의 주식은 밀과 보리를 거두어서 드리는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맥추 감사절의 절기이고 수장절은 가을걷이를 하고 나서 드리는 감사의 절기인데 수장절은 초막절과 함께 지냈습니다.
초막절은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산 것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고, 수장절은 가을걷이를 하고 창고에 넣어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장절을 지킬 때에는 광야의 세월을 회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유대인의 절기로 본다면 수장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수장절은 광야 40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영적 광야의 세월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 광야에서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듯 우리가 겪는 영적 광야의 시간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마침내 우리의 영적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면서 드리는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너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즉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1. 너희끼리 화목하라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가 공동체로서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으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그 피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성도가 모인 교회는 예수님의 은혜로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기를 힘쓰고 서로 화목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습니다. 출생지역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이 많은 우리들이 주님 안에서 화목함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화목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12-13절을 보면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바울은 먼저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라고 말했는데 이 사람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아마도 교회의 장로님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장로님은 영적인 지도자로서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많은 교회들이 장로님들이 지도자로 수고하셨음을 알 수 있고 요한 사도는 자신을 장로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안에서 영적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너희가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역사 즉 교회의 지도자들의 수고로 인해서 교회가 안정되고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며 화목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여기서 귀히 여기라는 말의 의미는 헬라어 ‘헤게이스다이’인데 이 단어는 ‘존경하다.’, ‘존중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귀히 여기며’는 세 번 강조된 형태로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최대한 존경하고 순종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그들의 직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즉 그들의 봉사와 수고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들을 귀히 여겨야 하고, 또한 성도들이 서로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귀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나 어린아이나 연세 드신 성도나 초신자가 오랜 신앙의 경륜이 있는 분이나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 귀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너희끼리 서로 화목하라고 말한 바울 사도는 서로 귀히 여기라고 말하고 계속해서 격려하고 붙들어 주라고 권면했습니다. 14절을 보면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게으른 자들을 나무라고 소심한 자들을 격려하며 허약한 자들이 있거든 돌보아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로 대하십시오.” 라고 번역했습니다.
게으른 자를 나무라고 소심한 자를 격려하고 연약한 사람은 돌보아주라 것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고, 믿음생활 잘 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고 위로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서로를 돌보는 돌봄 공동체입니다. 또한 교회는 서로를 위로하는 위로 공동체이고,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교회 와서 서로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지내다 예배드리러 왔는데 듣는 말이 힘이 되고 격려되고 위로가 되면 세상에서 힘들었던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위로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격려를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서로 보듬어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감싸주고 덮어 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곳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그런 교회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서로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항상 선을 따르라고 권면했습니다. 15절을 보면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공동번역으로 보면 “여러분 중에는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고, 언제나 서로 남에게 선을 행하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구약시대에는 동해보복법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해를 입히면 똑같이 해를 입게 한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고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은 보복을 이야기하지만 신약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더더욱 서로를 사랑하고 항상 선으로 대해야 합니다. 교회밖의 사람들에게도 교회는 항상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교회와 성도가 할 일입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에게도, 욕하는 사람들에게도 선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 항상 해야 할 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첫 번째로는 너희끼리 화목하고 하셨다면 두 번째로는 우리가 성도로서 항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잊지 않고 항상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16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판토테 카이레테)는 말은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기뻐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러나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기뻐할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상황이 아니고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과 환난의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뻐할 상황이 있어야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인간의 감정을 통해서 나타날 수 없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도 같은 의미의 말을 했습니다. 빌 4:4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즉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아디알레이프토스 프로슈케스데)는 말은 24시간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를 갖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하고 수많은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은 너무 적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데 기도란 하나님께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과 이야기 하는 자세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또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범사’의 헬라어 ‘엔 판티’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살아가면서 모든 상황이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감사할 일보다 화나고 짜증나고 불평과 불만이 나올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큰지만 우리가 감사할 일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감사에 인색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광야의 이스라엘을 보면 우리는 왜 저 사람들은 늘 불평과 원망을 하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이 많지만 당장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인데 돌아보면 정말 감사할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되나요? 추수 감사절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지? 하는 생각이 더 큰가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빌 4:6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뻐하면서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3. 좋은 것을 취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계속해서 좋은 것을 취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취하라는 말에는 너에게 있는 좋은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의미와 함께 더 좋은 것을 구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취하라고 말하면서
은사를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9-20절을 보면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에서 소멸하지 말라는 말의 헬라어의 의미는 불을 끄지말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은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불로 묘사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되는데 이런 역사를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불과 같이 역사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우리의 의지로 멈추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기록했는데 같은 말씀을 기록하면서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기록했고 누가는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취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을 받는 것이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은 성경을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언은 은사를 말씀하는 것으로 성령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인 예언의 은사를 믿습니다. 오늘날도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는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인정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입니다. 21-22절을 보면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좋은 것을 취한다는 것은 악은 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반대 개념은 나쁜 것이지만 영적으로 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을 취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악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는데 어떤 모양이란 말은 모든 종류라는 의미로 모든 종류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고 좋은 것과 악한 것이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악을 버려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15절에서도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예언을 멸시하지 않고,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흠 없게 보전해 주십니다.
23-24절을 보면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갈 때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영과 혼과 몸을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평강이 우리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두려운 일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우리에게 하늘의 평강이 임할 때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전되는 것입니다.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면 혼과 영과 몸이 상처를 받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이기고 성령안에서 영혼과 몸이 온전히 보전되어 주님의 날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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