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이후 사과·배·단감 등 주요 과일의 가격 하락세가 심상찮다. 출하를 해도 생산원가는 고사하고 작업비조차 건질 수 없다는 농가들의 하소연이 늘어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과일 출하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명절 이후 가격 하락이 비단 올해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는 게 농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산지와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과일의 출하동향과 거래가격 등을 긴급 점검한다.
“우리 지역에선 추석 직전인 9월4일경부터 적지 않은 배 농가들이 출하를 중단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시장에 내봐야 가격이 생산비에도 못 미치니까 농가들이 출하를 못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 배 가격 급락과 관련해 전남 나주농협의 신철현 지도과장은 현재 상당수 농가들이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신 과장은 그러면서 “어차피 지금 수확하는 배는 추석에 맞춰 약품처리를 한 것이어서, 늦어도 11월까지는 모두 출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과 같은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 올해는 적자를 보는 농가들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추석 이후 과일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산지출하조직과 농가들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는 기상조건이 양호해 과일 농사가 모처럼 풍년을 이룬 반면, 경기침체와 이른 추석 등의 영향으로 소비는 기대치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특히 창고마다 재고 과일이 가득 쌓여 있는 상황에서 과일 값마저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어, 농가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의 배 농가 이영원씨(40)는 “예년엔 전체 생산량의 50~60%를 추석때 팔았는데, 올해는 30%밖에 물량을 못 빼냈다”며 “지금부터 나머지 70%를 팔아야 하는데, 시세가 워낙 바닥인데다 잘 팔리지도 않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농협에서도 추석을 대비해 배 공동선별 작업에 의욕적으로 나섰다가 판매량이 예상치를 밑돌자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과 주산지 역시 소비 부진에 따른 재고 누적과 이로 인한 가격 하락에 신음하고 있다. 특히 사과는 올해 추석이 일러 <홍로> 품종만이 대목 기간에 유통됐는데, 지금은 추석에 팔고 남은 <홍로>는 물론 <양광> <히로사끼> <시나노스위트> 등 후지 조숙계통의 이른바 ‘잡사과’들까지 한꺼번에 출하되고 있어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권오영 충남 예산능금농협 조합장은 “통상적으로 사과는 지역별·품종별로 출하시기가 엇갈리는데, 올해는 추석 이후 매기가 없는 시점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들 사과는 저장을 했다가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농가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사과는 10월 중순경부터 최고 주력 품종인 <후지>가 수확될 예정인 가운데, 현재의 가격 약세가 <후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역시 커지고 있다. 실제 예년 같으면 추석을 전후해 산지수집상들이 <후지>사과를 사려고 농가를 찾아오는 일이 잦았지만, 올해는 산지수집상들조차 발걸음이 거의 없다는 게 재배농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전북 장수군의 사과농가 조익근씨(60)는 “올 추석을 앞두고 산지수집상들이 <홍로>사과를 한 그루당 10만원에 사갔는데, 사과 가격이 떨어져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인지 <후지>를 사겠다고 나서는 산지수집상들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추석에 조생종인 <서촌조생> 위주로 출하가 이뤄진 단감 주산지들 역시 재고 누적과 가격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단감의 경우 특품이 10㎏들이 한 상자에 3만5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을 뿐, 대다수 중하품은 거래 자체가 안 이뤄질 정도로 소비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태추> <송본조생> <상서>에 이어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유>단감까지 줄줄이 출하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길판근 경남단감원예농협 지도상무는 “단감은 추석 때 못 판 <서촌조생>이 30%가량 남은 상황에서, 주력인 <부유> 역시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산지에 물량은 넘쳐나는데 추석 이후 소비는 살아날 기미가 안 보여, 농가들이 심적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밤은 올 생산량이 평년대비 26%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조생종 햇밤 판매가 원활하지 않고 지난해산 재고 물량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격 출하시기를 맞아 산지의 밤 수매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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