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한동희 | 날짜 : 09-11-26 23:18 조회 : 1911 |
| | | <뉘른베르크(NURNBERG)> 저녁식사 후, 칼스루에를 떠나 박윤정(71세)씨의 독일인 남자친구 ‘볼프강’(Woifgang)(69세)이 운전하는 승용차로 2시간가량 달려 ‘뉘른베르크’(바이에론주 제2의도시)의 ‘볼프강’ 집에 도착하다. 프랑켄 지방에 위치한 늬른베르크는 구 시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제2차 대전 때 큰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은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어 중세의 모습이 짙게 남아있어 관광객이 많다. 히틀러가 이 도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은 가장 유명하며 장난감의 도시로 유명하다.
뉘른베르크는 중세에는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로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나 128개의 탑자리로 그 규모를 알 수 있고, 황금시대는 작스나 뒤러 시대였다. 또한 학문과 예술이 발달한 도시로, 중세의 연가(戀歌)의 전통을 계승한 직인의 노래가 키워져 그것을 작곡, 작시, 영상화하여 직인가가 성행했던 곳이다. 세계 최초의 지구의나 회중시계도 그 당시의 늬른베르크에서 만들어졌다. 세계2차대전 전범 재판이 열렸던 도시로, 바그너의 가극 ‘늬른베르크의 명가수’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볼프강이 사는 동네 이름은 ‘훼이크베르크’라는 곳으로 시내의 외곽지대에 있다. 동네가 조용하고 유럽풍 건물들이 예쁘게 줄지어 있다. 일행은 2박3일간을 독일인 집에 유숙하며 뉘른베르크를 돌아볼 예정이다. 볼프강이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 자기 집을 통째로 우리에게 내어준 것이다. 박윤정씨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세미나 장소에 까지 동행하고, 우리에게 침식을 제공하고 뉘른베르크 관광 안내를 맡아 수고해줄 모양이다.
박윤정씨는 유학와서 독일에 정착했지만 재독 간호사들과 친밀히 지내고 있다. 재독한인여성합창단에 입단하여 노래를 부르고,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후 자진하여 자기가 사는 ‘늬른베르크’로 우리 일행을 초대한 것이다. 박윤정씨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볼프강은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신학박사다. 박윤정씨는 독일인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고, 볼프강 역시 부인과 헤어져 홀로 살며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박윤정씨와 친구 겸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고 음악회가 잦은 문화의 도시에서 예술을 감상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노후가 보기 좋았다.
독일의 주생활이 한국과 극히 대조적이라는 점에 관심이 간다. 국토면적과 인구밀도에 따른 주택정책으로 한국보다 개인집의 면적이 크고, 뾰족한 다락방이 있으며, 창가에 인형이나 꽃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도록 밖을 향해 놓는다든가 하는 사전 정보로, 독일 가정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간다.
독일 가정이 가장 돈을 들이는 것은 주(住)라고 할 정도로 주택, 특히 인테리어-가구, 조리품, 집기류에 신경을 쓴다더니, 볼프강의 취미도 가구 만드는 일로, 주방은 그가 만든 고가구와 현대식 가구로 깔끔히 단장되어 있다. 특히 동으로 만든 주방기구(후리이팬, 주전자, 냄비등)를 벽걸이 형식으로 콜렉션 해 놓은 것은 동양적 분위기로 인상적이다. 그림수집에도 취미가 있어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대조, 비교 연구한다고...
박윤정씨의 통역으로 볼프강과 종교에 대해, 미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언어 불통으로 안타까워 하는 볼프강. 그는 친절하고 유연하며 많은 지식을 갖춘 멋있는 독일 신사이다. (11.1)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Residenz)> 가랑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뷔르츠부르크 거리를 걷는다. 중세가 끝나고 기사계급이 몰락함과 동시에 기사계급에서 서민계급으로, 문화가 성(城)에서 도시로 옮겨갔지만, 아직도 뷔르츠부르크의 여기저기에서 중세의 냄새가 묻어난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레지덴츠’ 궁전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그대로 모방한 건축물이어서 '베르사이유 카피'라고도 부른다. 주교(공작, 백작)들이 정치를 하며 행정을 보던 곳인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지하실은 방대한 포도주 저장고라고 한다. 독일은 국교가 카톨릭으로 중세에는 주교의 위세가 왕권 못지않게 강했다고 한다. 유럽은 왕권과 종교전쟁이 끊이지를 않았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독일의 명 건축가 발타자를 노이만이 설계한 바로크풍 최고의 걸작으로, 베네치아의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지오바니 바티스타 디에폴로’의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 많다고 한다. 춤추는 신들과 4대륙을 상징하는 여성들을 내용으로한 '프레스코화'가 아름답다. 희랍신화를 상징한 조각품과 황제 칼피어테 4세 부인의 벽화도 있다. 침실의 떠블 침대는 나포레옹이 부인 마리루이세와 잠을 잔 것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왕실 예배당은 로코코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내부가 궁전 못지않게 화려하다. 해마다 이곳에서 모차르트 음악회가 열린다. 그 당시 주교와 황제들의 생활이 화려하고 스케일이 크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물관 뒤편의 정원은 꼭 한 번 가볼만 하다. 수 천평이 넘는 너른 정원은 사람의 손길로 정성껏 다듬어 놓은 파란잔디와 반쯤 접은 우산 모양의 나무들로 깔끔하고 우아하게 단장해 놓았다. 이 아름다운 정원도 레지덴츠 궁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원 초입의 낙엽지는 가로수 길과 주황색으로 무리지어 도열해 있는 나무들은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우수와 찬란함이 한데 어우러진 산책길에서 찍은 한 컷의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어깨를 감싸 안고 앞서 걷는 볼프강과 박윤정씨의 모습이 한 쌍의 비둘기처럼 다정해 뵌다.
<노이무스타 성당> 이곳에서 제일 큰 성당 ‘노이무스타’의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선다. 돔형식의 건물로, 1000명 정도 들어가 예배를 볼 수 있는 예배처가 마련돼 있다. 내부의 웅장함에 압도 당해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발길을 옮긴다. 내부에는 성인들의 상(象)이 새겨진 조각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곳도 중세 건물로 독일의 조각가 ‘리맨슈나이다’의 조각품들이 성당의 기둥에 새겨져 눈길을 끈다.
성당 뒤에는 유명한 주교들이 묻힌 공동묘지가 있다. 성당 안의 분위기는 건물의 위세와 종교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이 든다. 같은 거리에 노동자 성당도 있고, 날마다 정오에 맞춰 시계의 인형이 움직이는 성모 교회도 있다. 중세 건물이 아닌 현대식 성당과 교회도 있다. 현대식 성당 안에 주교의 돌무덤과 제단이 있는 게 특징 이었다. 마치 성벽에 둘러싸이듯, 사람과 도시가 성당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중세기의 사람들이나 현세의 사람들이나 기도처를 찾아 마음속의 갈등과 소망, 사랑과 용서를 구하며, 인간의 의지로 해결 못할 일들을 신의 계시로 위안을 삼는다.
성당이 모여 있는 중앙광장에는 높이 19m의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분수는 멈춰 있다. 사람들은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쇠창살에 박힌 황금바퀴를 세 번 돌리며 소원을 빌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나도 매달려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황금바퀴를 한 번 밖에 돌리지 못했다. 쇠창살을 밟고 고추서도 황금바퀴에 손이 닫기가 어려웠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원을 이루기 위해 발돋음하는 나약한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을까. 이 도시의 인구는 15만명, 성당은 15개, 대학은 1개가 있다.
<마리앤 페스통 성당> ‘마리앤 페스통’ 성당은 900년전 이 언덕위에 세워졌다. 언덕에서는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성벽에 둘러싸인 건물의 길이와 높이가 만만치 않다. 성당 꼭대기에는 전망대(둥근 원형 건물)가 있어서 마인강을 지나는 배들을 관망 할 수가 있다. 보물이나 곡물 등 값진 물건을 싣고 지나가는 배들을 마인강과 연결된 성당의 지하통로로 유인하여 강탈했다고 하니 그 당시 주교들의 횡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카톨릭에서는 하나님과의 교류는 사제를 통해서만 할 수 있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어서 사제의 권한이 절대적 이었다. 15세기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로 인하여 구텐베르크 성경을 인쇄해 보급하게 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게 되었고, 새로운 해석과 비판이 일어난다. 이것이 당시 교회의 부패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유럽의 왕과 주교들이 살던 성(城)과 박물관, 성당, 시청이나 은행 등, 이 모든 건물들이 돌로 건축되어 동양의 건축 문화는 나무이고 서양은 돌의 문화라는 것이 실감난다. 독일의 건축 미술은 주로 11~12세기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한 ‘로마네스크’양식인데 주로 교회 건축에 사용되었고, 반원기둥의 아치나 삼랑식 이중 내전으로 중후한 인상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새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여전히 실비가 오락가락한다. 고성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는 중세의 건물들로 위엄을 내비치고, 발아래 흐르는 작은 폭의 다리 사이로 ‘페그니치강’은 흐르고 있다.
잠시 볼프강의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 초대를 받은 박윤정씨 집으로 간다. 볼프강의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박윤정씨가 홀로 사는 아담한 이층집에 들어서니, 어느 사이 칼스루에에서 기차를 타고 뒤따라 온 박명금씨도 합세해 저녁상을 차린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스테이크와 나물, 두부 된장국이다. 어제 밤부터 세끼를 꼬박 독일식으로 때운 나는 스테이크가 곁들인 한식 메뉴에 빠져 포식을 한다. (11.2)
<레트겐 거리> 전 날보다 이르게 시내 관광에 나선다. 오늘 오후에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사는 이점순씨 집으로 가기로 되어있어 마음이 조급하다.
박윤정씨는 방사선의 선구자 ‘레트겐’ 연구실의 기념관 앞에 일행을 내려놓고 얼른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기념관은 자동차가 다니고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큰길가에 있어서 오래 지체할 수가 없다. - 이 거리를 레트겐의 거리라고 한다.- 기념관 벽에 레트겐에 관한 간단한 비문이 새겨져 있어서 카메라 셔터를 들이대고 한방 찰칵.
레트겐은 이미 1895년에 X선을 발견하여 의학계의 진료와 진단에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과학분야와 산업분야에서 중요한 분석도구가 된 X선 발견의 공로로 190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방사선 연구에 골몰했던 연구실 앞에 그의 거리를 만들어 후세에까지 레트겐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하는 현장을 보며 독일인의 역사적 정신을 느낀다.
<뒤러의 집> 다시 차에 올라 14세기의 목판화가 ‘알프레히트 뒤러(1471-1528)의 집’으로 향한다. 그의 집은 ‘카이저부르크성’ 바로 앞에 위치해 있으며, 흰색 벽의 아름다운 목조주택이다. 그는 금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자신도 직인의 길을 가지만 그림에 대한 정열을 버리지 못하고 화가로 변신하여 독일이 낳은 최대의 화가 중 한사람이 된다. 그의 그림은 당시 시민들의 생활상을 주로 그렸으며, 그의 작품은 독일 지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잠시 ‘베네치아’에 유학다녀 온 것 이외에는 죽을 때까지 늬른베르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그의 그림 복제품의 일부와 천연색소 등, 주방과 거실, 그의 제자들과 그림을 그리던 작업실이 소개되어 르네상스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뒤러의 집에서 나와 점심은 간단한 독일식으로 한다. 손가락만한 구운 소시지와 양배추 채썬 것을 소금에 절여서 발효시킨 ‘자우워크라우트’을 주문했다. 소시지 맛은 독일이 제일이고, 늬른부르크의 소시지 맛도 일품이라니 한 번 맛봐야겠다. 헌데 소시지 맛은 별로고, 양배추 발효시킨 것도 그저 그렇다. 음료로 콜라를 시켜 마시고, 옆 사람이 시킨 검은 독일 맥주를 한 모금 맛본다.
박윤정씨와 독일인 남자 친구 볼프강의 안내를 받으며 보낸 이틀간의 늬른베르크 관광을 끝내고, ‘아우크스부르크’행 기차를 타기위해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공중 화장실을 갔는데 한국 돈으로 1000원 가량을 받는다. 유럽에서는 화장실이 유료라는 것을 알았고, 비교적 화장실 출입이 잦은 나는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의 공동 화장실은 무료이고, 독일 화장실 못지않게 깨끗하다는 것에 자부심이 든다.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 독일 아줌마에게 두 사람 값으로 세 사람이 들어가자고 깎아 보지만 거절한다. 독일 사람들이 잘사는 이유는 근검, 절약, 검소라는데 그 중에 해당되는 항목은 없는 것 같고, 원리원칙대로 산다더니 화장실 사용료도 원리원칙대로 다 받는 독일 뚱보 아줌마. 화장실은 깨긋하고 바닥에 휴지가 떨어져 있지 않다.음식 값도 무척 비싸다.
이제 이곳에서 일행 중 업무 차 먼저 귀국해야하는 J선생과는 헤어져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낯선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고, 그동안 정든 사람들과 결별한다는 것도 아쉽다. 우리 두 사람(나와 이선우)은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창밖을 내다본다. 창 밖에서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박윤정씨가 애교어린 이별의 몸짓을 쉬지 않고 보내온다. 작별의 키스를 손바닥에 얹어 불어 보내주고, 방방거리며 두 손을 흔들기도 한다. 근엄하게만 보이던 박윤정씨 어디에 저런 애교의 샘이 있었는지, 사랑을 하면 엔돌핀이 돌아 명랑해 지는가보다.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얼굴표정도 달라지는 법이다. 박윤정씨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국남자 볼프강에게 한없는 감사를 보낸다. 인자한 볼프강도, 말 수 적은 J선생도 진정 서운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한다. 그들을 뒤로하고 기차는 플렛홈을 빠져나간다. (11.3) |
| 임병식 | 09-11-27 06:53 | | 독일 다녀온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찍어오신 배경사진들이 많으면 문학지에 연재를 해도 좋을듯 합니다. 외국여행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저로서는 흥미롭습니다. | |
| | 한동희 | 09-11-27 08:13 | | 임병식 회장님, 언제나 회원들의 동태를 먼저 살펴주시니 그 성의가 대단하십니다. 사진은 많이 찍어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문학성보다 기록에 가깝습니다. 유럽은 성당과 고성, 박물관과 미술관이 너무많아 전문적인 지식이나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유익하겠지만, 저같이 문외한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하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쓸까 고심하게 됩니다. | |
| | 임병식 | 09-11-27 09:55 | | 따로 연재를 염두에 두신 곳이 없으시면, 제가 관여하는 수필계에 연재를 해드리는 문제도 검토 해 불 수 있습니다만. 어떤 생각이신지 모르겠군요. | |
| | 한동희 | 09-11-27 10:53 | |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재가 문제가 아니라 , 아직 작품이 제 성에 차지않아 망서리고 있습니다. | |
| | 임재문 | 09-11-27 07:42 | | 해외여행수필을 그렇게 소상하게 해주시니 여행을 가지 않고도 해외여행하는 마음을 느낍니다. 어느땐가는 함께 할 수 있는 때가 올것이라 기대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한동희 | 09-11-27 08:17 | | 임재문 선생님, 여행은 꿈만 꾸다가는 늙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은 비교적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녔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실천에 옮기세요. | |
| | 이진화 | 09-11-28 01:52 | | 한동희 선생님, 여러 곳에 들러 많은 것을 보셨네요. 메모하기 바쁘셨겠습니다. 박윤정님과 독일인 남자친구가 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 |
| | 한동희 | 09-11-28 09:57 | | 다시 가 볼 수없는 곳이라 열심히 쫒아다니며 메모하고, 자료 찾아보고 했습니다. 목욕을 하면서도 입안에서는 '작스' '뒤러'라는 이름이 맴돌아 마치 그들의 영혼이 내 몸안에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 |
| | 정진철 | 09-11-28 08:51 | |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어 감사합니다~ 즐겁고 유익한 여행이었군요 아무쪼록 여유가 있으실때 많이 다니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며칠후 베트남을 경유하여 앙코르왓트를 갈예정인데 이번에는 좀 오래 오래 머물다가 독일 기자처럼 앙코르왓트도 20여번 보고 또 보고 하려는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 | |
| | 한동희 | 09-11-28 10:00 | | 선생님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여행을 많이 한 편이었는데, 대충대충 보고 지나친 적이 많았지요. 앙코르왓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니 많은 정보를 얻게될 것입니다. 즐거운 여행되세요. | |
| | 최복희 | 09-11-28 12:26 | | 일반인들이 쉽게 여행 할 수 없는 곳이라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심미안으로 보고 느낀 글이라서 지루하지 않구요. 세세한 면까지 알려주셔서 정말 함께 뒤따라 다닌 듯 합니다. 그 장면이 그리지기도 하고요. 수고하셨습니다. | |
| | 한동희 | 09-11-28 18:08 | | 지루하지 않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유럽은 성과 박물관 미슬관이 많고 성당이 많아 좀 고루한 면도 있지만,유구한 문화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
| | 박영보 | 09-11-30 02:31 | | 라인강의 상류라 할 수 있고 뉘른베르크를 지나 도나우강과 연결되는푸랑크푸르트의 마인강가를 거닐던 기억이 새로와집니다. 유럽의 겉 모습은 미국과 같은 풍요로움은 보이지는 않지만 안정된 모습에 정서가 깃든, 특히 저녁나절의 아름다움은 찌들린 하루동안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노상 까페의 촛불 또한 마음을 가라 앉혀 주지요. 생맥주나 애플 와인 한잔을 곁들이는 멋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 |
| | 한동희 | 09-11-30 11:15 | | 박영보 선생님, 마인 강가를 거닐어 보셨군요. 저는 승용차로 마인강가를 지나 '로렐라이 언덕'을 향해 라인강가를 달렸습니다. 날씨가 추워 노상 까페에 앉어보지 못한게 아쉽더군요. 사진에서 보니 유럽은 노상 까페가 낭만적이어서 저도 꼭 그런 분위기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꼭 그리할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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