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체험마을로 탈바꿈 된 지금, 마을주민들 스스로가 마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됐어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평군 양서면 양수1리 마을은 지난 72년초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 7개의 골짜기 사이로 작은 분지를 이루던 마을이자 곡용진이라는 나루터였다.
8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인 이 마을은 23농가가 농촌체험에 참여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 옛날 용이 살았다는 용늪이 곡용진 마을의 시야를 흠뻑 차지한 그곳에 정경섭 그린토피아 대표(60)의 농장과 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정 대표가 국내 굴지의 회사 임원생활을 접고 지난 97년 제2의 고향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양수리 곡용진 마을.
평범한 농촌마을에 불과했던 이 마을은 정 대표의 또다른 인생의 숨결이 묻어나면서 연 1만5천명이 넘는 도시민들이 찾는 대박마을로 탈바꿈됐다.
올해는 벌써 정 대표가 자신의 인생을 이곳의 흙과 전원에 묻은지 10년째 되는 해다.
◇전원생활의 그린토피아는 내 천국
“만약 천국이 있다면, 바로 내 사랑하는 가족과 살고있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는 정 대표는 직장도, 전공도, 집도, 생활도 모두 바뀌어 버린 새로운 인생에 감사의 마음을 든든히 지니고 있었다.
정 대표의 귀농생활은 과거 직장때 보다도 더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하고 싶은 소중한 일들이기에 천국을 확신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정 대표는 우선 친환경선도 농가이자 환경농업 시범농가, 키토산과수재배 시범농가, 저농약 표시신고 농가 등 꼬리표도 어느새 많이 달았다.
배, 포도, 앵두, 복숭아 등 과수는 물론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않는 과수 초생재배 농가로서 도시민들의 각종 농촌체험 공간을 마련하는 농사꾼이며 펜션 사업가이기도 하다.
10년전 귀농생활을 결정한 직후 모든 것이 달라진 정 대표는 낯선 외로움과 괴로움도 많았다.
정 대표의 이력은 화려하다.
연세대 화공과를 졸업한 정 대표는 미국 유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 굴지의 정유회사에서 6년간 근무했고 현대건설과 GS칼텍스에서 기술담당 상무와 연구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 희망과 사랑이 있었고 흙에서 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답고 수려해서 마치 그림같은 양수리는 정 대표에게 근심 걱정없이 자연과 벗삼아 땀흘려 일하고 건강하게 사는 유혹의 풍경이었다.
평소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곤 했던 정 대표는 오래전부터 간혹 찾곤 했던 양수리가 아무 연고는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새로운 고향으로 다가온 것이다.
◇전원생활은 제2의 인생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양수리 주민들과 정서적으로 동화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정 대표는 처음엔 주민들의 배타성이라고 생각도 했지만, 상수원 규제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의식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그들의 정서속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양수리에 집을 짓고 정착과 함께 5천평의 배과수원을 시작했다.
앵두, 복숭아 등 과수도 병행했다.
그리고 무엇을 제대로 해볼까를 늘 궁리했다.
이 마을엔 앵두의 종자가 크고 알이 굵은 왕앵두가 많았고 배 과수원이 5만여평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시간만 나면 각종 농촌체험 관련 강의를 찾아다니며 듣고 배웠다.
하루 서너시간 정도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정도로 정보와 아이템을 찾고 또 찾았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한 끝에 2002년 봄 ‘배꽃축제’ 를 기획, 행사를 치러 300명의 도시민을 불러 들였고 같은해 6월엔 앵두축제를 개최했다.
4월 중순경 만발하는 하얀색 배꽃은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장관이었고 앵두축제때 몰린 400여명의 도시민들은 앵두따는 재미에 웃음도 꽃피웠다.
◇양수1리 마을의 가치 재발견
마을 주민들은 당시 상품 개념으로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마을의 평범한 일상이 도시민들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체험관광이 된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정 대표는 회상한다.
“우리 동네에 뭐 볼게 있느냐는 주민들의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자극이 됐던 것 같네요. 말하자면 자신들이 사는 마을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거죠”
정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고 처음 개최한 축제에서 흥행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 마을 주민들은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양평 대표 체험마을로 성장
먼저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마을을 찾는 체험 관광객을 위해 주민들은 식사를 준비했고 인심은 덤으로 선사했다.
체험객은 날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주민과 마을 부녀회는 이들을 맞는 역할을 분담해야 했다.
식사와 주차안내, 행사진행, 체험도우미 등이 마을 주민들에 의해 하나하나 갖춰지기 시작하면서 양수1리의 체험마을은 펜션과 민박의 필요성이 대두된 셈이다.
“처음 당시에는 맑은 공기와 자연속에서 과실 따먹기, 편안마음으로 가족단위 등으로 만발한 꽃을 보는 것, 풀밭에서 점심먹기 등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우리의 자산이었지만, 이들에게 행복의 느낌을 준다는 사실에 마을은 경영마인드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정 대표의 이러한 노력은 2002년 농림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같은해 농협의 팜스테이 마을로 지정됐고 군 지정 생태건강마을(2003년), 친환경농업선도마을(2003년), 반딧불이 마을(2003년), 농림부의 디지털사랑방 선정마을(2004년) 등의 결과로 나타났다.
2004년도에는 농림부와 농협 주관의 마을가꾸기 경진대회 입상마을로도 지정됐고 이에 따른 상금 3천만원은 체험장 겸 식당을 짓는데 쓰이기도 했다.
마을이 체험마을로 각광을 받기 직전 정 대표는 ‘그린투어’ 체험마을을 늘 생각했었다.
그린투어 추진위원장을 스스로가 맡고 친환경농업의 고장인 양평의 이미지에 걸맞는 도·농 교류에 의한 상생의 새로운 방향을 일찌기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몰려오기 시작하는 도시민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주민들도 마을이 나아가야 할 목표에 동참했고 군과 정부부처 등 각종 지원을 따내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됐다.
정 대표는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하던 교수와 연구원 등에게 컨설팅을 의뢰하고 각종 농촌체험 관광 연수나 강의를 주민들과 함께 쫓아다녔다.
따라서 녹색농촌체험마을, 생태건강마을 등 농림부나 군의 지원사업이 이뤄질 때마다 추진위원장의 몫은 모두 정 대표였다.
이렇듯 관청에 의한 자금지원이 마을에 유입되면서 공중화장실, 원두막, 회의실, 샤워장, 어린이놀이터 등 기반시설이 확충됐다.
정 대표도 처음 이곳에 정착할 때 지었던 집 2·3층을 펜션으로 개조한 뒤 자신은 지하실로 옮겼다.
펜션 및 민박에 대한 요청이 쇄도하자 정 대표는 이들이 머물 숙소를 먼저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다.
2002년말부터 밀어닥치기 시작한 체험객들에게 비어있는 2층을 내주기 시작한 정 대표가 잦아지는 민박 요청을 감당하기 위한 방책으로 자신의 생활터를 지하로 옮겼으나 이것이 바로 이곳에 펜션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 대표는 “주변 농가들에게 민박을 알선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팜스테이가 정착됐고 민박이 소득원으로 괜찮다는 사실에 주목한 주민들에 의해 집수리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며 “결국 농산물판매와 연계되면서 우리 마을의 또다른 소득원으로 자리잡게 됐다” 고 말했다.
인근 10여가구의 주민들은 사랑채와 별채, 마굿간을 부수고 민박이 가능한 집으로 탈바꿈됐고 현재는 펜션 4개소, 민박 6개소가 운영되며 3가구가 민박 전환을 추진중이다.
◇마을공동체와 개별농가 전략은 구별돼야...
정 대표는 마을에 자본과 체험객들이 늘면서 “마을공동체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개별적 민박 등 특성 전략을 살려야 하는 과제도 뒤따랐다” 고 말한다.
이는 마을 공동체 성격으로 추진하는 사업과 개별 농가의 소득원은 서로 분리, 보장돼야 하다는 견해다.
정보가 선행되거나 앞서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자신의 소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개별 농가들의 동기부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농림부나 경기도, 양평군이 공동사업을 전제로 지원하는 농촌 프로그램은 다소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생각은 좋을 수 있지만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소득분배와 이해관계의 괴리가 발생함으로써 개인 위주도, 공동체 사업도 아닌 주민간의 갈등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마을을 홍보하고 축제를 개최하는 등의 업무는 마을공동체가, 개별 농가들의 전략은 반드시 자가소득을 원칙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기도 하다.
◇양수1리의 정부지원사업
- 2002년 녹색농촌체험마을 지정(농림부)
- 2002년 팜스테이마을 지정(농협)
- 2003년 생태건강마을 지정(양평군)
- 2003년 친환경농업선도마을 지정(양평군)
- 2003년 반딧불이마을 지정(양평군)
- 2004년 디지털사랑방 선정마을(농림부)
- 2004년 마을가꾸기 경진대회 입상마을(농림부, 농협)
◇교육 및 포상
- 서울대공대 최고산업전략과정 1기 수료(1989년)
- 전국농업기술자협회 귀농창업대학 및 하기 농민대학 수료(1998)
- 서울대 최고농업경영자과정 8기 수료(2000년, 과수부문 우등상 수상)
- 도농녹색교류 심포지엄 사례발표(2001년 10월, 세종회관)
- 전국농업기술자협회 그린투어 최고지도자과정 수료(2002년, 지도자 자격증)
- 농업연수원 주관 벤처농업경영인반 1기 수료(2003년)
- 아시아 그린투어리즘 네트워크 토론회 발표(2003년 10월, 경복대)
- 농림부장관상(2003년)
- 경기도의회 농림수산분과위원장 공로표창장(2003년)
- 농촌마을가꾸기 경진대회 장려상(2004년)
- 테마식물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2005년)
- 농촌사랑 마을지도자과정 3기 수료 및 농촌사랑 홍보메신저(2006)
◇정경섭 대표 인터뷰
“농촌체험 경영은 서비스 정신과 마케팅이 관건입니다”
정경섭 그린토피아 대표는 “체험마을이 쉽게 성공하는 듯 보여도 외부 전문가와의 인적 네트워크와 자구노력, 상품개발, 경험, 공동체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위기관리 능력 등이 쌓여 리턴이 되는 현상” 이라고 전제한 뒤 “철저한 서비스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 고 단언한다.
정 대표가 그동안 수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면서 어떤 사이트, 어떤 키워드로 홍보할 것인가를 부단히 연구한 까닭은 결국 손님을 끌 수 있는 마을의 매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을 주민들은 각자 홈페이지도 구축하기 시작했고 개별적 홍보전략에 의한 자체적인 영업마인드가 빛을 발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을공동체적 역할분담으로 연계되는 방향으로 기능됐다고 판단한다.
정 대표는 “이것이 바로 그린투어의 핵심으로 초기 방향설정이 매우 중요했다” 며 “작은 정보가 홀씨되어 날아와 결국 결실을 맺고 있다” 고 설명하고 있다.
농촌체험마을 운영도 결국 정보력을 통한 영업이며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정 대표는 하루 서너시간씩 인터넷과 씨름하면서 각종 관련 사이트에 질의하고 소감을 올리곤 했다.
또 포털 등에 집중 홍보하고 마을 홈페이지 등을 관리한 성과가 하나둘 결과물로 나타난 것은 마을 주민들을 설득, 선도하는 필수이기도 했다.
처음 3~4년, 소득은 없고 투자만 있었다.
그러나 정 대표는 현재 직장 퇴직때 연봉보다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엔 돈벌이가 목적은 아니었으나 자꾸 돈과 연결 돼 왔다는 설명이다.
“한편으론 양평에 정착한 외지인이 마을과 융합되고 자극을 줘 결국 같이 발전하는 마인드가 돼야 하는 것이 양평엔 매우 중요하다” 는 생각이 든다는 정 대표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포도 과수원을 경영하는 이석규씨(56)의 포도농장 체험을 예로 들었다.
“‘포도체험 관광’ 을 포털 등에 홍보하자 주말이면 수도권에서 수백명씩 몰렸고 마을은 음식을 만드느라 바빴다.
물론 포도의 판매매출이 상종가를 쳤고 마을 농산물도 덩달아 활기를 띠면서 개별 농가로서도 한달 반만에 수천만원의 소득을 올린 케이스였다”
정 대표는 오히려 “자신이 개별 농가로서 성공해야 주민들도 잘 살수 있다” 고 서슴없이 말한다.
자신만이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늘 마을을 위해서 그래왔듯이 자신이 벌여놓은 체험 프로그램의 성공이 곧 마을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또하나의 포부를 갖고 있다.
10평 정도의 조그만 주택을 갖추고 텃밭 50여평이 할애되는 체류형 주말농장이다
“양평 전체가 수도권의 휴양지이자 쉼터, 체험마을로 각광을 받기 위해서는 교육과 체험, 옛날의 향수, 가족의 행복이 어우러지는 숙박코스의 주말농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는 것이 그의 남은 계획이자 각오다.
/조한민기자 |
첫댓글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