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KBS 역사스페셜에서 16세기초 일본의 은광 개발에 대한 내용을 방영했었습니다.
내용은 조선의 은세공 전문가 2명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수은 아말감법"을 이용해서 일본의 은광을 채취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엄청난 양의 은이 생산되는데
그 결과의 하나가 바로 포루투갈 상인에 의한 조총의 일본전래에 대한 것이고,
이것은 임진왜란으로 이어지며, 동아시아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는 대사건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역사스페셜의 내용이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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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아말감법"은 한반도의 경우는 삼국시대 때부터 이미 사용되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수은 아말감법"의 발견은 현재의 세계사에서는 대단한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16세기의 관점에서는 세계사의 방향을 바꾼 발견 중의 하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초 하이테크 야금술이었습니다.
당시는 신대륙의 발견으로 전유럽이 들썩이던 시기였는데
유럽인들은 신대륙의 금과 은을 비롯한 모든 귀금속을 탐욕스럽게 유럽으로 옮겨갑니다.
신대륙의 금과 은이 씨가 마를 무렵 신대륙에서 은광이 몇 군데 발견이 되는데,
이 은광들은 광석의 함유량이 너무 많아서 당시 유럽의 채광술로는 채광이 불가능했습니다.
광석의 함유량이 너무 많은 이 은광들을 채광하려면
광석들을 잘게 잘게 쪼개서 광석 속의 소량의 은을 사금 수준으로 바꿀 수가 있어야 했는데,
유럽의 과학기술력은 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수은 아말감법"은 위의 과정이 없어도, 광석 함유량이 많은 은도 쉽게 채광할 수 있게 해주는 하이테크 기술이었고,
1557년에 포루투갈이 브라질 은광에서 "수은 아말감법"으로 은을 채광합니다.
포루투갈이 "수은 아말감법"을 발견해낸 경위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1. 조선의 "수은 아말감법"으로 일본이 은광을 개발(아마도 1530년경입니다.)
2. 1543년에 포루투갈 상인 3명에 의해 철포가 일본에 전해짐.
3. .....................................................
4. 1557년 포루투갈이 "수은 아말감법"으로 브라질 은광개발
3번의 내용은 각자가 상상플러스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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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인도항로와 신대륙 항로를 개척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린 이유는 동일합니다.
바로 향료를 얻기위한 것이었는데, 항로를 개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였습니다.
향료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이 있어야 되는데,
당시의 유럽에서는 구매력이 있는 수출품목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인도나 중국이 면직물, 비단, 차, 향료, 도자기 등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럽이 구매력을 갖춘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면직물을 싸게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입니다.
이때의 영국이 면직물을 인도에 팔고 아편을 사서,
중국에 팔아치우면서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유럽은 향료를 사고싶어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어야 정상이었지만,
신대륙에서 금과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향료를 살 수 있게됩니다.
그러다가 신대륙의 금과 은이 씨가 말라버리게 되던 시기에
"수은 아말감법"으로 신대륙에서 직접 은광을 개발할 수 있게됩니다.
유럽은 아시아에서 물품대금 지불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개척한 항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해군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좀 더 효율적인 항로개척을 위한 각종 과학과 조선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아시아의 만만해 보이는 항구도시 혹은 작은 나라들을 한 두 개씩 점령하면서
무역네크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아시아의 무역네크워크는 처음에 포루투갈이 먼저 만들게 되지만
영국과 네덜란드에 모두 빼앗기게 되고,
곧 영국도 네덜란드에 의해서 동남아시아에서 축출당하게 됩니다.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인도무역에 주력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신화가 시작됩니다.
위의 내용이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금과 은을 독점하게 된 유럽이
점차 세계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되는 기반을 닦게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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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무역권을 제패하게 된 네덜란드는
일본의 은에 주목하게 되고 지팡그로 찾아가게 됩니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교류는 이후 일본에서 "난학"이란 학문으로 대두하게 됩니다.
그럼 조선의 "수은 아말감법"으로 생산된 일본의 은생산량은 어느정도였을까?
현재 일본 학자들은 16세기 당시 일본의 연간 "은생산량"을
그 시기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연간 "은생산량"의 절반 정도로 추정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금과 은을 독점한 유럽이 세계사를 주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만한 양이었다면
그 절반 정도의 은을 생산한 일본은 대체 무엇을 했을까요?
바로 동아시아의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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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일본이 약소국은 아니였지만,
16세기경 이전부터 조선보다 훨씬 강국이었다는 것은
어떤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첫댓글 단천 은광 관련된 기술이라면 납과 은의 비중과 용해도 차이를 이용한 연은법이지.. 아말감법이 아닙니다 'ㅅ') 물론 연은법도 훌륭한 기술개발의 예지만 조선은 광물 매장량의 절대치도 적었고, 또한 조선전기에 광산을 굴리려면 농민들의 '노역'을 동원해야 되었기 때문에 이게 좀 민폐였지요.
게시물 성격상, 동양사 게시판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수은 아말감법은 1550년 이전에 이미 오스트리아에서도 쓰였는데요.
근데 애초에 광산은 어케 발견하늠요?
지질조사로요 'ㅅ')
헐키 전근대사회에도 그짓을 했음?
지질조사라는 것도 고대로 부터 쌓인 노하우죠 'ㅅ');; 간단하게 광물이 땅위에서 굴러다니는 노천광 부터 시작해서, 수목의 식생이나, 토질의 색과 맛(으음 짜릿한 맛이 나는군... 맥반석이 있을지도..), 침출수 분석(푸르딩딩한 침출수라 구리 같은게 뭍혀있을듯.... 갈색이라니 철인가?), 광물들 간의 유사성(납광석이 나오면 아연광석이 십중팔구 따라나오고 재수좋으면 은광석도 우왕굿, 주석광석이라고? 그럼 거기 잘 파면 구리도 나옴), 지층구조의 분석(화강암지대니 금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등등등 경험적인 면에선 풍부했어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