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정으로 나가
삼월이 하순에 드는 셋째 목요일이다. 그동안 교외로 나가 봄기운이 번지는 들녘 풍광과 풀꽃을 완상하고 있다. 때로는 머위나 방가지똥과 같은 야생초를 캐서 지기와 나눔을 하기도 한다. 근교 들녘을 산책 기점으로 삼으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동정동으로 나가 차편을 한 번 더 갈아탔다. 1번이나 2번 마을버스 외에 본포로 가는 30번이나 김해까지 가는 140번 버스를 타기도 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려고 이른 아침 집 앞에서 215번 버스로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한림정으로 가려고 순천을 출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지난주까지는 원동 순매원과 영포 일대 매화를 구경하려는 상춘객이 타고 갈 열차였는데 이제 축제가 끝나 혼잡하지 않았다. 비음산으로 뚫은 진례터널을 통과해 진영역에서 잠시 멈췄다가 미끄러져 간 한림정이다.
차창 밖으로 겨울 철새들이 떠난 화포천 습지 갯버들은 연초록이 물들었다. 이즈음 새잎이 돋는 갯버들은 언제 봐도 싱그러움이 더했다. 지난겨울 화포천을 찾아 어디쯤에서 냉이를 캐면서 멀리서 찾아온 쇠기러기와 고니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바 있었다. 날개가 유난히 커도 먹잇감을 스스로 구하지 못해 환경 지킴이들이 던져준 도축장 부산물을 먹던 독수리도 본향으로 떠났다.
하루 두세 차례 정차하는 한림정역은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으로 운영하는데 내린 승객은 나 혼자였고 타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역사를 빠져나가 북녘을 펼쳐진 들판을 향해 갔다. 북면에서 강변 따라 대산을 거쳐 김해 생림으로 뚫는 60번 국도 공사는 상당히 진척되었다. 경전선 철길과 화포천 습지로는 높다란 주탑에 걸쳐진 상판을 쇠줄로 당기는 사장교 공법이었다.
시전마을에서 한림배수장으로 나가 강둑을 따라 걸어도 되겠으나 시간 단축을 위해 들판 지름길을 택했다. 어디선가 흘러온 물길이 넓은 농경지를 거쳐 화포천 하류로 빠져드는 일직선 농수로가 나왔다. 공유수면에 해당할 물길 언저리는 부지런한 농부가 콩이나 들깨를 심기도 한 휴경지였다. 묵혀진 언덕 검불에 움을 틔워 자라는 머위 순이 몇 가닥 보여 배낭의 칼을 꺼내 캐 모았다.
큰동뫼 찻길 가에는 몇 년째 쌓아둔 토목공사 흙더미 자라던 머위 순은 칡넝쿨이 덮쳐 고사했는지 찾을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 시호마을에서 시전마을 안길로 들어 시산 언덕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기를 찾아갔다. 공기업에서 은퇴한 지기는 부산 자택과 술뫼 농막을 오가면서 노후를 보내는 분이다. 농막 생활을 유튜브 영상으로 올려 구독자가 늘고 텃밭의 작물도 잘 가꾸었다.
지기를 만나 거실 창밖의 강변 풍광을 바라보며 결명자차를 들면서 안부를 나누었다. 지기는 내가 생활 속 남기는 글을 메일로 전하면 꼬박꼬박 읽는 독자라 내 근황도 훤했다. 올봄부터 평일 오후 대산 들녘 초등학교에서 아동안전지킴이를 함도 알고 있었다. 나는 올봄 지방지에서 원고 청탁이 있어 사양하지 못하고 매주 한 편씩 내가 쓴 글이 사진과 함께 지면에 실린다고 전했다.
지기와 헤어져 삽짝 밖으로 나오다가 농막 언덕 지피식물로 심어둔 원추리가 뾰족한 움을 틔워 가득 자랐다. 원추리는 도심 공원에는 화초로도 가꾸는데 산중에서도 이른 봄에 싹이 터 자라기도 했다. 봄날 산행에서 원추리를 뜯어 나물로 먹은 바 있는데 지인도 나물로 삼는다고 했다. 나는 배낭의 칼을 꺼내 보드라운 원추리 잎을 잘라 봉지에 채워 지인과 작별하고 둑길을 걸었다.
동호인이 운집해 여가를 즐기는 술뫼 생태공원 파크골프장은 잔디 보호 기간 휴장이라 발길이 끊겨 적막했다. 가동을 지나면서 건너편을 바라보자 밀양 명례에서 오산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둑이었다. 삼랑진 뒷기미에서 밀양강은 샛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합류했다. 주남저수지에서 진영을 거쳐온 주천강이 흘러온 유등 배수장을 지난 유청 한식뷔페에서 점심을 때우고 마을버스를 탔다. 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