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근육 키우기
늦은 오후 적은 양의 강수가 예보된 삼월 넷째 금요일이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경우라면 도서관으로 나가 머문 날이 있는데 낮에는 비가 오지 않아 야외 활동에 지장이 없어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삼월이 하순에 이르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쉼 없이 뚜벅뚜벅 걸었는지라 반나절 정도 다리에 휴식이 필요할 듯해 강수와 무관하게 도서관으로 나갈까 싶었다.
그동안 도서관 이용은 교육단지 창원도서관과 용지호수의 작은 어울림도서관을 주로 다녔다. 근년에 현대식으로 신축된 창원도서관은 장서량이 풍부하고 열람실 여건이 좋다. 용지호수 공원 잔디밭 작은 도서관은 집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아 가끔 찾는다. 그런데 올봄부터 근교 대산파출소 관내 초등학교 주변으로 배치한 치안 보조 봉사활동에 참여하느라 틈을 낸 기회가 적었다.
오전에 평소 들리던 도서관으로 나갈 여유가 있지만, 거기는 주말에 찾아도 되는지라 대산면 마을도서관으로 나갈 생각이다. 집에서 거리가 멀어도 오후 일정과 연계시키려 이른 시각부터 근교로 나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새벽에 삶아둔 무청 시래기 껍질을 벗겨두고 아침밥을 해결하고 어둠이 가시지 않아도 현관을 나섰다. 소답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온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소형 버스엔 창원역 기점부터 타고 온 승객으로 좌석이 거의 채워져도 내가 앉을 자리는 남아 있어 앉아 갈 수 있었다. 그 바로 다음 정류소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 이르자 부녀 셋이 더 탔는데 둘은 서서 갔다. 아침 일찍 근교로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부녀들이나 동남아 청년들은 들녘 비닐하우스로 일을 나가는 경우다. 농사일에 품을 파는 신성한 그들의 노동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이가 늙은 축에 끼지 않으면서 앞선 정류장에서 먼저 승차했기에 자리를 차지했다. 하루 내내 비닐하우스 풋고추를 따는 등 고단한 일을 하는 이들은 서서 가게 되어 앉아 가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앉은 자리를 양보해줌도 모양새가 어색해 그냥 가기로 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가 용잠삼거리와 주남삼거리를 거친 동판저수지가 드러난 가월마월에서 내렸다.
공공 마을도서관은 9시 문을 여는지라 업무가 시작되려면 두세 시간 여유가 있는 7시가 조금 지난 이른 아침이었다. 동판저수지 가장자리 갯버들은 가지에 움이 트는 연초록 기운이 번지는 때였다. 근래 찻집이 들어선 가월마을 앞에서 연초록 갯버들을 바라보면서 주남저수지로 가서 둑길을 따라 걸었다. 주남저수지 들머리 숲을 이룬 갯버들에서도 연초록이 물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큰고니를 비롯한 겨울 철새들이 모두 떠난 광활한 수면은 잔잔했다. 먹성이 좋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휘어진 목을 빼서 헤엄쳐 다녔다. 갯버들과 야윈 물억새가 드러난 주변에는 텃새로 머물러 사는 흰뺨검둥오리와 물닭들이 놀았다. 길고 긴 둑길에 이른 아침 산책 나온 이는 드물어 고작 두 사람을 스쳐 보냈다. 길섶에서 보라색 제비꽃과 유채와 같은 개쑥갓이 피운 노란 꽃을 봤다.
탐조 전망대를 지난 주남지 배수문에서 시작된 주천강 따라 둑길을 걸어 판신마을로 갔다. 그간 몇 차례 둘러본 주남 돌다리다. 판신마을에서 주남마을로 건너는 냇바닥 돌다리에 이르러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돌다리를 건너 주남마을에서 신등과 장등을 거쳐 대산면 소재지로 갔다. 마을도서관 문이 열기 전이라 인근 카페의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시간을 보내다가 열람실로 들었다.
세 번째 찾은 마을도서관이라 사서와는 안면을 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오전에 성인 문해교육 한글 교실과 겹쳐도 도서 열람은 가능했다. 젊은 여성 강사가 세 할머니를 자상하게 지도했다. 나는 장유승 외 5인이 집필한 ‘하루 한시’를 펼쳐 읽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전하는 명구 한시를 풀어 놓은 서책이었다. 귀양지 정객이나 신분 차별을 겪은 서얼이나 기생의 한시도 만났다. 24.03.22
첫댓글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사진을 인제 참 잘 찍으시는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