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봉~구룡령 구간 2009~2013년 비교 조사
침엽수 73.22㎢에서 66.09㎢로 급격히 줄어
덕유산 아고산대 상록침엽수림도 10.1% 감소
전체 식물의 38,3%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
외래·귀화식물 침투도 지속적으로 늘어나
도로 등 270여 곳 훼손돼 '상처 투성이'
강원도 인제군 조침령에서 바라본 가을풍경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강원도 인제군 향로봉에서 남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701㎞를 내리뻗은 백두대간(白頭大幹). 그리고 백두대간과 연결된 2000여㎞의 산줄기인 9개 정맥(正脈).
백두대간이 고속도로라면 또 다른 산줄기인 정맥은 국도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등줄기이자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이 백두대간과 정맥이 기후변화와 개발에 따른 훼손으로 신음하고 있다.
1997년 녹색연합과 함께 국내 최초 백두대간 생태보고서인 '백두대간 환경 대탐사'를 연재한 중앙일보는 기획 20년을 맞아 한반도 산줄기인 백두대간과 정맥 생태계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 한국임학회, 한국환경생태학회, 녹색연합,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등이 조사한 내용을 총정리해 추석 연휴 기간 네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글 싣는 순서> ➀
백두대간 (향로봉~지리산 천왕봉 701㎞)
➁정맥(상) -한북·한남·낙동·낙남정맥
➂정맥(하) -한남금북·금북·금남·금남호남·호남정맥
➃백두대간과 정맥,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에서 바라본 설악산 [사진 녹색연합]
설악산 정상부근 분비나무군락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온난화에 위협받는 백두대간 침엽수 지난해 백두대간 설악산 권역(강원도 인제 향로봉~구룡령 117㎞ 구간)의 산림 상태를 분석하던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임학회 연구팀은 깜짝 놀랐다. 백두대간 산림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서 2009년 73.22㎢를 차지했던 소나무 등 침엽수림이 불과 4년 사이에 66.09㎢로 9.7%나 줄었다.
반면 신갈나무 등 활엽수림은 2643.34㎢에서 292.96㎢로 10.8%가 늘어났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던 혼효림 일부도 활엽수림으로 바뀐 것이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침엽수림의 급격한 감소는 기후변화로 인한 연평균 기온 증가와 연평균 강수량의 증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덕유산구상군락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한국환경생태학회도 2015년 산림청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침엽수 위기를 경고했다.
구상나무를 비롯한 덕유산 아(亞)고산대 상록 침엽수립은 2002년 43.2㏊에서 2011년 38.8㏊로 10.1% 감소했고, 지리산 구간 내 아고산대 상록침엽수림 역시 2003년 2054.5㏊에서 2011년 1985.4㏊로 3.4% 감소했다.
연구팀은 "백두대간 아고산대 상록침엽수림의 쇠퇴는 지구온난화 탓이지만 덕유산에서 더 급격히 감소한 것은 스키장 개발 과정에서 이식한 나무들이 고사한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저항령 구간 마루금 상의 소나무 거목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강원대 산림과학부 박완근 교수는 "지구온난화 탓에 백두대간의 침엽수림이 면적도 줄고, 북쪽으로 밀려나는 것도 뚜렷이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산림 수종의 변화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폭우가 잦아지면서 산사태도 빈발하면서 백두대간 산줄기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등 보호구역의 산사태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연합은 '2017 기후변화 산사태 현장실태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이후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부권역에 36번의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20일 밝혔다. 보고서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하천 마을과 농경지를 중심으로 수해가 나타났으나, 이후 기상이변에 의한 집중호우가 빈번히 발생해 수해의 양상이 산사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왼쪽부터 설악산, 지리산, 방태산, 왕피천, 점봉산의 산사태 흔적. [녹색연합 제공=연합뉴스]
녹색연합이 지난 8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리산의 경우 2014년 2곳을 포함해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역에서만 36개의 산사태 발생지점이 확인됐다.
설악산에서는 2006년 7월 태풍으로 인해 산사태가 집중적으로 발생, 현재 250여 개 지점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에서 천불동 계곡 방향으로 발생한 산사태는 2006년 처음 발생한 이후 면적이 점점 넓어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 주변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강원도 진부령에서 미시령구간 [사진 녹색연합]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금대봉 주변의 겨울 경치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외래종 위협받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 백두대간은 원래 백두산 장군봉에서 시작해 지리산 천왕봉까지 마루금(주 능선)의 길이만 1400㎞에 이르는 한반도 등줄기이다.
강원도 삼척시 덕항산 구간의 개병풍군락(환경부 멸종위기식물 2급)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남한 구간만 701㎞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핵심 생태 축이면서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백두대간은 2003년 제정된 백두대간 보호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마루금을 중심으로 한 백두대간 보호구역은 두 차례 확장되면서 현재 27만5000㏊에 이르고 있다.
보호구역 면적은 전체 국토면적의 2.7%에 불과하지만 이곳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에서 확인된 관속식물(고등식물) 4881개 분류군의 38.3%인 1867개 분류군이 백두대간에서 관찰되고 있다.
희귀식물의 18.7%인 107종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 포유류 39종과 조류 115종, 양서·파충류 27종이 깃들여 살고 있다.
백두대간에는 거목(巨木)도 많이 발견된다.
2010년 산림청 녹색 사업단 조사에 따르면 백두대간에는 가슴높이 둘레가 200㎝ 이상인 나무는 28종 800여 그루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한국 산지 보전협회 조사에 따르면 강원도 구룡령~단목령 구간의 피나무는 가슴 높이 둘레가 608.8㎝에 이른다.
태백산 마루금 주변 한계령풀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하지만 이런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백두대간에까지 외래종이 침입하면서 토종 생태계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개망초·달맞이꽃·가죽나무 등 외래식물·귀화식물이 백두대간에서만 모두 69종이 확인됐다.
설악산 권역만 놓고 보더라도 2006년 21종에서 2011년에는 30종으로 크게 늘었다.
이와 함께 과거 1970년대 이후 정부 지원으로 집중적으로 심었던 일본잎갈나무(낙엽송) 문제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강원도 태백의 만항재~태백산 구간의 백두대간 700㏊ 산림 중 25%가 이 일본잎갈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백두대간 추풍령 인근 큰재 구간 마루금에 위치한 일본잎갈나무(낙엽송) 조림지 모습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 조현제 소장]
이 때문에 광범위한 간벌로 숲의 다양성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소장은 "백두대간은 빙하기 때 내려왔던 식물들이 살아남은 고산지역"이라며 "저지대보다 상대적으로 덜 훼손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인 만큼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로로 끊기고 고랭지 채소밭으로 파헤쳐 져 강원도 태백시 하사미동 능선에 조성돼 있는 고랭지 채소밭 [사진 한국산림생태연구소조현제 소장]
강원도 평창군 고루포기산의 고랭지 채소밭 [사진 녹색연합]
백두대간을 훼손하는 시설은 모두 270곳이 넘는다.
대표적인 것이 도로다. 백두대간을 직접 관통하는 도로는 모두 65개로 2010년 63개에서 터널 두 개가 늘었다.
도로를 제외하고도 고랭지 채소밭 120곳, 목장 10곳, 광산 14곳, 채석장 9곳, 군사시설 7곳 등이 백두대간 보호지역 내에 위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고랭지 채소밭의 경우 백두대간보호지역 내에서만 120㏊에 이른다.
환경부와 산림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도로로 끊어진 백두대간을 연결하기 위해 생태통로를 연결하고 있다.
지리산 정령치와 전북 장수군의 육십령, 경북 문경시의 벌재, 충북 괴산군의 이화령 등 생태통로는 완공됐고, 일부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리산 정령치에 설치된 생태이동통로 강찬수 기자
하지만 생태이동 통로는 생태계 연결이나 야생동물 보호보다는 등산객 편의 위주로 건설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충북 괴산과 문경을 연결하는 이화령의 경우 4대 강 사업 때 만든 국토 종주 자전거 길이 지나면서 사람들 발길도 이어지고 있고, 바로 옆에는 커다란 휴게소까지 자리 잡고 있다.
녹색연합 배제선 자연생태팀장은 “주차장과 휴게소가 바로 옆에 있는데 빛이나 소음을 차단할 차단벽이 없어 동물들이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양대 신준환 초빙교수는 "백두대간은 마루금이 아닌 영역으로 봐야 한다"며 "마루금 위주의 현재 복원은 '행사용'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두대간 훼손 사진들>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희귀식물> 장백제비꽃 (설악산)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소장]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 백두대간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400㎞의 산줄기를 말한다.
여기에는 백두대간 자체뿐만 아니라 1정간(正幹), 13 정맥(正脈)까지 포함된다.
하나뿐인 정간은 함경북도 지역을 가로지르는 장백정간(長白正幹)을 말한다.
정맥 9개는 백두대간에서 갈려져 나온 산줄기로 북한에 있는 청북·청남·해서·임진북예성남 등 4개, 남한에는 한남·금북·금남·금남호남·호남·한남금북·낙동·낙남 등 8개, 남북한에 걸쳐 있는 한북정맥 1개를 말한다.
정맥의 이름에는 대부분 강 이름이 들어있다. 청(淸)은 청천강, 임진은 임진강, 예성은 예성강, 한(漢)은 한강, 금(錦)은 금강, 낙(洛)은 낙동강을 말한다. 청북정맥은 청천강 북쪽, 한북정맥은 한강 북쪽, 한남금북정맥은 한강 남쪽 금강 북쪽, 낙동은 낙동강 동쪽, 낙남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산줄기를 의미한다.
또 해서(海西)와 호남(湖南)은 각각 황해도와 전라도를 뜻한다.
백두대간 개념은 멀리 신라 말 선승(禪僧)들이 처음 내놓았고, 고려 시대를 지나면서 성숙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정통성을 강조하고 신라·백제의 유민(流民)을 포섭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왕건의 조상은 백두산에서 기원했고, 지리산 산신들이 태조 왕건을 인정했다는 설화가 등장했다.
이렇게 해서 『제왕운기』 , 『고려사』, 『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산줄기 개념은 등장한다.
백두대간이란 용어 자체는 이익의 『성호사설』, 이중환의 『택리지』 등 조선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서 체계화됐다.
백두대간은 산맥과는 다른 개념이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산줄기는 강과 하천의 유역을 나누는 분수계(分水界)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산맥은 때로 하천을 가로질러 이어지기도 하는 개념이다.
백두대간은 기후와 자연 생태, 지리를 파악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산줄기와 유역에 따라 산림의 경관, 생태계가 달라지고, 생활방식도 달라진다.
백두대간 동쪽이냐, 서쪽이냐에 따라 연평균 기온이 다르고, 연평균 강수량도 차이가 난다.
백두대간은 민족정기의 상징으로, 토속신앙과 불교 문화가 어우려져 한반도 고유의 문화를 형성토록 했다는 것이다.
동양대 신준환 초빙교수(전 국립수목원장)는 "등산객이 중심이 돼 백두대간을 강조하다보니 마루금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 조상들이 생각한 백두대간은 산계(山系)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백두대간은 선이 아니라 커다란 산계, 즉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두대간 환경 대탐사 기획기사가 실린 1997년 10월 13일 중앙일보 지면
[출처: 중앙일보 강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