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상법(麻衣相法)
▲, 마의도사(마의도자,마의태자)
오대~송(宋)나라 초기, 관상학(觀相學)은 인간의 외양(특히 얼굴)을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 등을 파악하는 학문이다. 관상(觀想)의 원어 테오리아에는 관조(觀照), 관찰, 사자(使者) 파견, 제례(祭禮)와 구경이라는 뜻이 있다. 무엇인가를 '보는 것'으로서, 신이나 신상(神像)을 보는 종교적인 것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의 미의 관조로 바뀌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사물의 원리·원인을 본다, 안다는 것, 이론적 지식이 된다. 이것은 제작이나 행위와는 달라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상위(上位)에 속한다. 관상생활(학자의 연구생활 같은 것)은 신의 자기사유(自己思惟)와 흡사하여 행복이며 최고선이라고 한다. 관상은 본래 중국에서 발생하였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진(晋)나라의 고포자경(姑布子卿)이 공자(孔子)의 상을 보고 장차 대성인(大聖人)이 될 것을 예언하였으며,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위(魏)나라 사람 당거(唐擧)도 상술(相術)로 이름이 높았으나 상법(相法)을 후세에 남긴 것은 없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남인도에서 달마(達磨)가 중국으로 들어와 선불교를 일으키는 동시에 '달마상법'을 후세에 전하였다. 그 후 송(宋)나라 초기에 마의도사(麻衣道士)가 '마의상법'을 남겼는데, 관상학의 체계가 이때에 비로소 확립되었다. '달마상법'과 '마의상법'은 관상학의 쌍벽을 이룬다. 관상학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이며, 고려시대에는 혜징(오대)(惠澄)이 상술로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도 끊임없이 유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 마의상법(麻衣相法)
마의도사(麻衣道士)의 상법(相法)과 심상(心相), 중국 당唐나라 후기의 인물로 화산(華山)에 은거한 마의선사(麻衣禪師)는 후세에 이름을 알리지 않고 항상 삼베옷을 즐겨 입었으므로 마의선사라 불리웠고 그의 제자 진단(陳단, ?~989)에게, 달마조사(達磨祖師)가 남긴 상학(相學)을 모두 전하였다. 마의상서(麻衣相書)는 오늘날까지 관상학의 주요 고전(古典)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의도사(麻衣道士)는 천문, 지리, 주역, 기문, 둔갑, 명리 등에 통달하였다. 그가 50살이 넘어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늦게 본 자식인지라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웠다. 어느 날 아이들을 문득 보니 열 살이 훌쩍 넘은 소년이 되었기에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아이들의 장래를 감정해 보기로 하였는데 큰 아들은 재상이 되고 작은 아들은 거지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운명감정의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첫째야, 너는 이 다음에 나라의 재상이 될 팔자이니 열심히 공부를 하여라. 둘째야, 너는 거지팔자를 타고 났으니 그냥 놀고 잘 먹기나 하여라! 이 애비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너희도 사주팔자대로 사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거지팔자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은 둘째 아들은 ‘거지팔자라면 집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노잣돈 몇 푼을 받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갔다. 가졌던 돈이 다 떨어졌고, 아버지의 말처럼 거지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얻어먹을 곳을 찾다가 큰 부잣집 하나를 발견하였다. “밥 좀 주세요” 하고 구걸을 하여,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비웠지만, 다음 끼니가 걱정이었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에 돌아보았더니 들에 나가 일하던 머슴들이었고 잠자리,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다. 머슴이 되기로 작정하고 주인에게 간청을 하여 그날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였다. 2년쯤 지났을 때 주인이 곳간지기로 발탁을 하였고 그는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다. 이에 감동을 한 주인이 무남독녀인 자기 딸과 혼인을 시키려고 하였고 그래서 둘째 아들은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려고 옛집을 다시 찾아갔다. 그동안 둘째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몰라서 애태우던 마의도사(麻衣道士)는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둘째 아들을 보고 매우 깜짝 놀랐다. 둘째의 얼굴이 재상감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거지팔자를 타고난 둘째 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나중에 재상까지 하게 되었다. 재상이 될 팔자라고 했던 큰 아들은 늘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며 결국 나중에는 거지가 되었고 후에 거지가 된 큰 아들의 얼굴을 보니까 거지가 될 상으로 이미 변해 있었다. 마의도사(麻衣道士)는 후세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겼다. 사주불여신상(四柱不如身相)하고, 신상불여심상(身相不如心相)이다(사주(四柱)는 신상(身相) 보다 못하고, 신상(身相)은 심상(心相)보다 못하다). 결국, 심상(心相)이 가장 으뜸이라는 교훈이다. 이는 마음먹기 여하에, 노력 여하에 사람운명이 달렸다는 교훈이다.
--관상학(觀相學)은 보리달마의 달마상법(達磨相法)에서 마의선사(麻衣禪師)로 마의선사(麻衣禪師)에서 오대말~송나라초 진단(희이선생, 화산도사)으로, 진단에서 송나라초 마의도사(麻衣道士)의 마의상법(麻衣相法)으로 전해졌나 보다.
첫댓글 현대의 관상학은 오히려 서양에서 더 많이 연구하는 것 같더군요.
양지의 학문으로 곧 나올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솔리타리였었는데 참 반갑습니다.
댓글도 잘보고 있습니다. 건필해주십시요.
저는 댓글도 못달고 계속 읽기만 하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