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일의 거짓말 6회>입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인트로에서 유필립과 가경이 등을 지고 서있습니다. "우리의 대의는 이해하지 못해도 소란을, 그 사람의 목표를 이해해 줄 수 없겠습니까? 당신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리면 누구라도 소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습니까? 부탁합니다(필립)" 총을 들고 가경을 불러 세운 필립은 다시 한번 금서회라는 이름을 부릅니다.
-
"그날(계암리) 금석중도 동지를 밀고하지 않겠다고 버텼는데, 사토 신이치가 그의 딸을 죽였습니다. 소란의 눈앞에서(필립)" "비키세요 소란, 배신자는 처단합니다(필립)" "저 애는 우리를 배신할 생각이 없어요. 저 애는 사토를 죽이려고 우리가 보낸 밀정이란 말이에요(소란)" 결국 가경은 돌아왔습니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히데오는 신이치와 마주합니다. 신이치는 후쿠다에게 뺨을 맞고 티를 내지 않은 태웅을 칭찬합니다. 후로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며 당부합니다.
-
이어 신이치는 금서희의 입단속을 시켰느냐고 물으며 그 아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유필립에게 전달될 수 있으니 너를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만들랍니다. 단 "그 아이는 너를 믿어야 하지만 너는 그를 믿어선 안 된다(신이치)" 다음날 아침 가경은 소란에게 정무총감 암살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묻습니다. 소란이 한 달 정도라고 말하자 가경은 밀정 일은 딱 한 달만이라고 몫 박습니다. 그 후에는 미국을 보내 줄 거냐고 묻는 가경에게 소란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
"히데오는 너를 믿어야 하지만 너는 그를 믿어선 안 된다"며 신이치가 아들 히데오에게 말 한 것과 똑같이 말합니다. 총독부에 출근한 가경은 태웅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의 책상을 뒤집니다. 그러다가 Pneumatic tube system (기송관 시스템)이란 서류를 발견합니다. 이후 화장실에 다녀오던 가경은 출입 금지 구역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안에서는 태웅이 기송관 설치 공사를 맡은 외국인 공사 로랑과 신이치 사이에서 통역을 하는 게 아닌가.
-
공사 담당 로랑은 작업 속도가 느리다며 불만을 토로하자 뜻밖에 태용이 통역을 정반대로 합니다. "조선인 인부들의 노동 시간이 과다해 돌아가며 병이 나고 있습니다. 완공 일정을 맞추려 무리하면 결국 손해니 노동 시간을 조절해 적절한 휴식을 보장했으면 한다고 하십니다(히데오가 신이치에게)" 대회를 듣던 가경은 태웅의 통역에 의아해했고 로랑이 떠난 뒤 신이치는 통역을 제대로 한 게 맞냐고 묻습니다.
-
그러면서 조선인들을 봐주지 말고 인부들의 노동 시간을 1시간 더 연장하라고 지시합니다. 개자식. 사무실에 돌아온 태웅은 가경을 보자 전날 종로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금서희 씨! 어제 많이 힘들었죠? 다시는 그런 자리에 불려 갈 일 없을 겁니다(태웅)" "저 다시 가도 괜찮아요. 다음에 또 통역 기회가 있다면 잘할 수 있어요(가경)" 그때 왜경이 들어옵니다. 후쿠다가 가경과 태용을 호출한 것입니다.
-
"총독부와 외사과에서 더 이상 심문 통역을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닙니까?(태웅)" 후쿠다는 금석중이 금서희만 찾는다며 정무총감도 신문을 허락했다고 대답합니다. 결국 심문이 시작되었고 가경은 후쿠다의 말을 통역합니다. "이누쿠소 쿠라에!(개똥이나 처먹어라!)(금 석중)" "사토 히데오 통역관은 국어(일어) 영어 조선말까지 다 하시니까 제가 좀 더 통역을 신중하게 해야겠네요(가경)" 가경은 후쿠다에게 조선어로 직접 설득해 보겠다며 대화를 시작했고 금석중은 가경의 저의를 눈치챕니다.
-
가경은 자신의 이름도 마님이 지어 주셨다며 나는 마님 편이라고 말합니다. 소란(아내)의 생사가 궁금했던 석중은 전날 동숭동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어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저도 어디서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기면 우리 마님 걱정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도 저를 배웅해 주시는 마님을 보면서 지금처럼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했거든요(가경)" 그제야 소란의 무사함을 확인한 석중은 안도합니다. 바로 그때 옆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
나병순이 결국 금석중의 이름을 불었다는 비보입니다. 이 역시 아내를 불러들여 다리를 부러 뜨리자 결국 남편이 입을 연 케이스입니다. 이 과정에서 금석중이 수원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계암리라는 지명을 들은 후쿠다는 화들짝 놀라며 가경과 태웅에게 그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금서희 씨! 마님이 그리 잘해주는데 카스텔라 하나 사 가지 그래요(석중)" 가경은 태웅에게 금석중이 어찌 되느냐고 물었고 최하 10년 형을 받거나 사형이 언도될 거라고 대답합니다.
-
같은 시각, 후쿠다에게 보고를 받은 신이치는 서둘러 종로 경찰서로 향합니다. "나와의 독대를 오랫동안 기다렸을 텐데 이제 만족하나? 다시 보니 얼굴이 기억나는 것도 같군(신이치)" '이시키와 노부이키 학살자! 내 가족 내 친구들 우리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불태운 학살자!(석중)" "노 노, 나는 학살자가 아니야 나는 임무 수행을 했을 뿐이라고(신이치)" "탕! 탕!" 두 사람은 나병순의 죽음을 직감합니다. "부부가 같은 시간에 죽을 만큼 금술이 좋은 모양이야(신이치)"
-
'걱정하지 마! 나는 널 죽이지 않아 너의 사인은 병사다!(신이치)" 총성이 들리자 서희(가경)가 달려나갑니다. 말리던 태웅도 고문실로 들어갔습니다. 금석중 방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신이치의 등짝이 어째 불길합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림없이 맞아떨어졌고 석중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즉사했습니다. 가경은 혼비백산하여 부들부들 떨었고 태웅이 인력거로 가경을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후쿠다는 금서희가 금석중의 주검을 봤다고 신이치에게 보고합니다.
-
"그런데 말이야 금 씨가 희귀 성인지 알고 있나?" 뭐야, 금석중과 금서희 이름을 알게 됐으니 이제 소란을 의심하게 되는 걸까? 신이치는 수원 경찰서에 연락해서 13년 전에 작성된 금석중의 신사 명세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합니다. 연락을 받은 수원시에서는 금석중의 가족사진과 자료를 총독부로 보냅니다. 필립과 함께 숙소에 도착한 가경은 빗속에서 한참 동안 저택을 바라다봅니다.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히데오가 있습니다.
-
가경이 웁니다. "금서희 씨! 괜찮아요?(태웅)" '아니요 안 괜찮아요(가경)" 히데오가 그녀를 꼭 껴안아 줍니다. 왜 히데오가 우는 걸까요? 연민일까, 사랑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배신인가, 저항인가? 그리고 적의 편에 서 있는 인간에게도 양심과 사랑은 가능한가?
2.
거짓말의 시대, 진실은 누구의 편인가? 6회는 거짓말과 진실, 신뢰와 배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신이치는 히데오에게 가경의 신뢰를 얻되 결코 믿지 말라고 명령한다. 소란 역시 가경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적과 동지가 동일한 언어로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역설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권력의 논리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한나 아렌트에게 전체주의의 위험은 인간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는 도구로 만드는 데 있다.
-
신이치가 학살을 임무 수행이었다고 변명하는 순간, 책임은 사라지고 명령만 남는다. 그러나 명령에 따른 행위라고 해서 도덕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악은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지 않는 인간을 통해 일상화된다. 반면 히데오는 통역을 왜곡하여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려 한다. 언어를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는 권력 안에서 그는 언어를 저항의 수단으로 바꾼다. 이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권력의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적 투쟁이다.
-
그러나 그의 작은 저항이 식민지 지배에 가담한 자신의 위치까지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경은 말한다. "안 괜찮아요." 이 짧은 고백은 거짓말로 유지되던 관계에 진실이 침입하는 사건이다. 히데오는 그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레비나스의 철학으로 읽으면 타인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요구한다. 그 눈물이 연민인지 사랑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히데오가 처음으로 타인을 감시와 이용의 대상이 아닌 고통받는 인간으로 마주했다는 가능성이다.
-
공주야! 사랑은 신뢰에서 시작되지만, 신뢰가 반드시 사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거짓말로 서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에는 사랑조차 배신의 위험을 품는다. 결국 이 드라마가 묻는 것은 누가 누구를 믿느냐가 아니라, 인간은 자신이 속한 권력과 대의를 거슬러서라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번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신이치와 소란이 동일한 불신의 명령을 내린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작품의 철학적 긴장이 있다.
-
다만 두 사람의 목적과 책임까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식민 지배자의 불신과 저항하는 사람의 불신은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히데오의 눈물을 너무 일찍 사랑으로 해석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눈물은 양심의 각성일 수 있지만, 아직 책임을 실천했다는 증거는 아니니까. 앞으로 히데오가 아버지의 권력과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6회의 핵심은 결국 "거짓말은 진실을 숨길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선택까지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2026.10.2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