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미나리 전을 부쳐
삼월 넷째 토요일은 예년보다 다소 일찍 개막된 군항제 첫날이다. 올해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고 강수량이 넉넉해 나무나 풀에서 피는 꽃이 빠른 편이다. 매화는 진작 저물었고 산수유꽃이나 생강꽃도 절정을 지났다. 도심 공원과 주택 정원의 목련도 만개해 꽃잎이 지고 있다. 벚꽃도 양지는 개화가 시작되는데 며칠 전 꽃샘추위로 잠시 주춤해도 이삼일 사이 꽃구름이 일어날 테다.
나는 사람들이 운집하는 곳은 거리 두기를 하는지라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벚꽃이 피는 즈음이면 근교 산기슭을 찾아가 야생화를 탐방하고 찬거리를 삼을 수 있는 야생초를 뜯어옴이 일과다. 군항제가 끝나고 천주산에서는 진달래 축제가 열리면 전국에서 상춘객이 몰려와도, 그 역시 내 관심사는 될 수 없다. 인적 드문 한갓진 임도를 걷거나 산자락을 누볐다.
토요일 아침은 연중 한두 차례 정리하는 머리를 깎으러 동네 이발관을 찾았다. 나는 타고나길 머리숱이 적음으로 조상 덕을 보고 있다. 이발하느라 남에게 목을 내맡기는 시간을 자주 내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터인가 머리카락이 세어져도 머리숱이 적은지라 염색은 아예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러고 보니 이발에 드는 지출이 적고 염색은 하지 않으니 번거롭지 않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
아침 일찍 단골 이발관을 찾아 머리숱을 정리하고 귀로에 농협 마트에서 생필품을 마련하는 시장을 봐 날랐다. 일전 세탁소로 보따리에 싸서 보낸 겨울 옷가지들을 되찾아 놓는 일까지 내가 할 몫이었다. 이후 평소보다 다소 늦은 아침나절 산행 차림으로 빈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동정동으로 나가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굴현고개를 넘어간 신도시 감계로 향했다.
감계 입구 회전교차로를 거쳐 신설 학교를 지난 정류소에서 내렸다. 아파트단지와 인접한 조롱산으로 가는 등산로 들머리로 갔다. 등산 안내도가 세워진 울타리 경계에는 하얗게 핀 조팝꽃이 흐드러졌다. 아파트단지를 돌아 단감 과수원 언덕으로 오르니 방사시켜 키우는 암탉이 알을 낳는지 꼬꼬댁거렸다. 경사가 가파른 등산로에는 산행을 마친 긴 머리 처자가 성큼성큼 내려왔다.
조롱산 남향 기슭에는 회잎나무가 자라는데 그 나무에서 잎이 돋는지 궁금해 찾아가는 길이다. 돌너덜로는 칡넝쿨이 덮쳐와 생태계가 달라져 회잎나무는 기를 못 펴고 고사 될 지경이라 잎이 순조롭게 돋지 않았다. 해마다 이른 봄 다른 산나물에 앞서 회잎나무 잎을 따 봄 향기를 맡는데 올봄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유년기 추억으로 남은 회잎나무 이파리는 ‘홀잎나물’이라 불렀다.
홀잎나물 채집은 뜻을 이루지 못해도 초본 뱀딸기가 피운 노란 꽃을 봤다. 여름날 길섶 빨간 열매를 맺던 뱀딸기는 봄에 노란 꽃을 피웠다. 잘록한 고갯마루를 넘어간 북향 비탈은 오리나무가 꽃을 피우고 잎이 돋아났다. 낙엽 활엽수 숲을 빠져나가 소나무가 자라는 솔갈비 틈새 자생 춘란이 피운 꽃을 만나 반가웠다. 그 곁에 아까 본 뱀딸기 꽃보다 더 노란 양지꽃 송이들을 봤다.
골짜기를 빠져나간 저수지 둑은 개나리꽃이 화사했다. 창원 여성의 집을 거쳐 감나무골에서 화천리를 지났다. 집을 나설 때 목표한 홀잎을 따지 못한 대체재로 돌미나리가 떠올랐다. 외감 동구 바깥 묵혀둔 논배미 수로로 가니 마산에서 왔다는 할머니 두 분이 돌미나리를 걷어 검불을 가리고 있었다. 나도 배낭을 벗어두고 파릇하게 자란 돌미나리를 끊어 검불을 가려 물에 헹궜다.
배낭을 추슬러 휴경지를 벗어나 버스 정류소로 가니 쑥과 돌미나리를 캔 배낭을 지고 보따리를 손에 든 세 여인을 만났다. 그들도 마산에서 왔다는데 같은 버스를 타고 굴현고개를 넘었다. 귀로에 두 지기에게 문자를 보내 아파트단지 건너편 상가에서 뵙자고 했다. 곡차를 끊기 전 다녔던 주점 아낙에게 돌미나리가 든 봉지를 안겼다. 전으로 부쳐 나와 지기들과 봄내를 함께 맡았다. 2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