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을 단일 수종으로 가장 넓게 덮고 있는 나무가 무얼까? 단풍나무? 진달래? 낙엽송? 아까시나무? 아니다. 소나무다. 조선소나무다.
소나무는 솔가지에 솔잎이 파랗게 붙은 나무를 말한다. 솔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남녘 어디를 가도 소나무를 볼 수 있고, 중부지방 어디고 소나무 투성이다. 사람들이 사시사철 푸름에 찬사를 아끼지 않은 나무가 소나무다. 민족의 기상이 서린 나무다. 외국 갔다 온 사람들 말 들어보면 소나무가 그렇게 보고 싶더란다.
겨울 산에 가면 소나무가 낙엽활엽수의 앙상한 가지와 대비되어 푸르름을 선사한다. 평소에는 소나무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겨울철에라야 더 선명해져 소나무의 존재를 안다. 가지가 휘어져라 버티고 있는 눈 속의 그 모습에 반한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줄기는 거북 등처럼 굵게 덕지덕지 갈라져 연륜을 말해준다.
얼마나 소나무를 좋아하면 내 아이들에게 '솔'자 들어가는 이름이 둘이나 될까? 중학교 다니는 조카딸은 '해솔'이다. 이른 아침 배시시 눈을 비비고 뒷산에 올라 소나무 밭에 들자 하늘에서 햇살이 솔가지 틈으로 쫙 비치면서 솔향을 코끝으로 느끼게 해주면 '해솔'이요, 더운 여름날 맑은 계곡에서 멱을 감고 깨끗한 몸상태로 옷을 입으러 나갔을 때 강가에 있던 그 소나무가 그늘이 되어 송진에서 그윽한 향이 퍼지게 하면 내 아들 '솔강'이다.
노송이 들 한 가운데에 떡 버티고서 너른 들을 지키고, 마을 입구와 뒷산에 한 두 그루는 반드시 있어서 동네와 운명을 같이 하는 나무가 소나무다. 그곳에 가면 금줄이 쳐져 있다. 느티나무와 함께 수호신 노릇을 하고 있다.
사군자의 그윽한 풍모에 취하려면 세심한 관찰을 해야 하기에 매란국죽(매란국죽)은 마냥 한가한 양반님네들이 만지작거리며 빠질 놀잇감이라면 소나무는 조선 전역에 퍼져 온 산을 뒤 덮었던 서민 나무다.
바닥에 떨어진 잎과 삭정이를 따고 솔가지를 모았다가 쟁여둬서 마르면 땔감으로 쓰고, 관솔 기름을 모아 불을 밝히는데 썼다. 정월 대보름 불 깡통 돌리던 일이 어제 같다.
소나무는 집을 짓는 주요 건축재다. 금강송, 강송, 춘양목이라 불린 조선 소나무로 집을 지었다. 지역에 따라 붙여 졌던 이름인데 본시 한가지 였던 것이 향토수종으로 굳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나무는 한강 줄기를 따라 뗏목으로 천리길 한양까지 운반되어 궁궐을 짓는데 쓰였다. 그 아름드리 나무를 이제는 대관령휴양림 부근과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서나 볼 수 있으니 안타깝다.
소나무 이름만 해도 여러가지다. 소나무, 솔나무, 내륙에 산다고 붙여진 육송(陸松), 표피가 붉어서 적송(赤松), 여자 몸매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여송(女松), 강원도 강릉지역에서 나는 향토수종을 강송(江松), 금강산 부근에서 나는 금강송(金剛松), 봉화 춘양면 일대에 널리 퍼져 있는 춘양목(春陽木)이 한국 고유의 보통 소나무인 조선소나무다.
이웃사촌으로 잣나무라 불리는 홍송(紅松)과 곰솔 또는 흑송(흑송)이라 불리는 해송(海松), 추사 김정희 고택에 백송(白松)도 있다. 학명 Pinus koraiensis S. et Z과 영문명 Korean Pine로 보아 잣나무가 한국의 대표 소나무성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소나무인 조선소나무를 일본 식물학자들이 학명으로 Pinus densiflora S. et Z.라 하고 영명 Janpanese Red Pine를 붙여 자기네 나무라고 버젓이 등록하여 식물종의 국적마저 국력의 순위에 따라 매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근세 이후 도입종으로는 리기다소나무, 테다소나무, 리기테다소나무가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리기다소나무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에도 리기다 소나무를 심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제발 청계천이 복원되면 우리 고유 수종을 심어 주길 바란다.
늘푸른 나무가 어디 소나무 뿐이랴! 사철나무가 있고 전나무, 구상나무, 측백나무, 향나무가 다 사철 푸르다. 상록수(常綠樹)라고 솔잎이 안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착각이다. 소나무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두껍고 무거운 옷을 한 번 벗고, 겨울을 맞이할 때 또 한번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버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잎만 두고 죄다 잎을 떨어뜨린다. 자체 체중조절을 계절에 따라 하는 지혜가 있다.
늦가을 추수가 끝나면 갈퀴를 들고 산에 가서 사방 2~300평을 긁어 모아 수숫대나 주위에서 벤 솔가지를 가에 두르고 칡넝쿨이나 새끼줄로 묶어 집채만한 솔잎 나무를 해오던 어른들이 있었다. 이걸 땔감으로 쓰면 연기 한 방울 나지 않고 슬슬 타 들어가 그렇게 방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상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무를 감췄던 일도 아직 또렷하다.
피마자 기름과 함께 일제 때 공출 대상 1호였던 관솔은 소나무에서 나는 진이 엉겨 붙은 것이다. 관솔은 가지를 잘라낸 부분에 조금 있고 나무 밑둥을 베면 그루터기에 있던 남은 송진이 뿌리를 따라 내려가다 나무 겉은 사라지고 심재 부분에 붉고 딱딱하게 엉겨 붙는다. 이것이 진짜 관솔이다. 방안에 이것 하나 갖다 두면 자연의 향이 “솔~솔, 술~술” 오래오래 풍겼다. 이것이 바로 피톤치드 아니가!
'솔의 눈'이라 해서 음료 재료로 각광받는 것도 소나무에서 난다. 궁핍하던 6-70년대 껍질을 벗겨 먹고 어른들은 한 시대를 연명했다. 송편의 재료와 약재로도 쓰임새가 많다. 북한에선 봄철이면 송화(松花) 가루 채취하느라 바쁘단다.
산판을 끝낸 후 3년쯤 지나 노출된 그루터기가 푸석푸석 삭아 발로 차도 툭 쓰러질 때가 될 무렵 긴 창과 약 괭이를 하나 씩을 담아 약망태를 들춰 메고 소나무 밭으로 가서 뿌리가 뻗친 맨땅을 쑥쑥 쑤셔대면 "찐~득!"하는 맛이 느껴진다. 괭이로 조심조심 주위를 파보면 복령(복령)이 나온다. 감자나 고구마가 타다 남은 모양을 하고서 껍질을 조심히 벗겨 칼로 쓱쓱 쳐서 잘 말린다. 백복령은 고가로 팔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