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 골로새서 3장 12~17절.
제목: 거룩한 예복(6)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서론>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은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옷을 입어야 했는데, 이것을 성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이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옷은 백성의 제사장이라는 표식임과 함께 그가 구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직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제사장의 중보 없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벧전 2장 9절에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우리 더러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더는 제사장의 중보나 희생제물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짐승의 피가 아닌, 우리 자신의 거룩한 삶이 제물이 되어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음은,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입었던 성의와 같은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의를 입음을 통해서 제사장인지 아닌지를 구별한 것처럼, 우리 또한 새 사람을 입음을 통해서 왕 같은 제사장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연속해서 새 사람이 입는 옷, 여섯 번째로, 오래 참음의 옷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래 참음을 옷 입는다는 것이 성경에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일반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는다는 것은 인내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오래가 붙어서 오래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오래 견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오래 인내한다, 오래 견딘다는 것은 감정과 관련될 때는, 긍정적으로는 웃음을 참는다, 부정적으로는 화를 참는다는 말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시간과 관련될 때는 오래 기다린다. 오래 인내하며 기다린다, 란 뜻이고, 이것이 장래 소망과 관련될 때는 오래 동안 인내하며 소망한다, 그리고 어떤 일과 관련될 때는 힘든 , 운동, 노동, 고난, 환난을 오래 견딘다, 오래 견딘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오래 참음이란, 감정, 시간, 소망, 행위 등을 오래 참음, 오래 인내, 오래 견딤을 뜻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사람들은 잘 참지 못합니다. 인내하지 못해요, 견디지 못합니다. 화를 참지 못해서 부부싸움 끝에 집에 불을 지르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또 한 직장에서 오래 인내하지 못합니다. 직장 상사에게서 안 좋은 소리를 들었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서 월급이 적다고 생각하면, 또 회사가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면, 다른 회사로 옮겨버립니다. 물론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주 회사를 옮겨 다닌다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3D 업종은 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을 오래 동안 견디지 못한다고 그럽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성경에서 오래 참음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특히 그리스도의 성품과 관련해서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저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에게 구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 같이 썼고” 아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앞 절 8절과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한 것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아멘. 그러므로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사 우리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신다는 것입니까?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씀드리면, 우리의 하루는 주님의 시간에 천년 같고, 우리의 천년이 주께는 하루 같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하루도 참기 힘들지만 주님은 천년을 하루 같이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년 같이 길게 느껴지지만, 주님의 약속은 하루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에게는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2장 4절과 9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것은 그가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인데,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그렇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진노의 그릇을 쏟아 붓는다면, 그 앞에서 살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인에 대해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비롯된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즉 본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1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아멘.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인데 주님의 진노의 그릇을 쏟아 붓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곧 창자가 흘러져 나오는 아픔을 가지고 바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끝없이 참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아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끝없이 참으라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알라는 말씀처럼,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려 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그를 믿어 영생 얻는 우리는 그 긍휼하심을 드러내는 존재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과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 참고 견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세상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그가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며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쫒으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지라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오래 인내하며 가르쳐서 잘못 하면 꾸짖고 경계하며 권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자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바울은 우리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아멘. 이것은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이 각각 구별된 것이 아니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많이 견뎌왔다는 것입니다. 오래 견뎌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을까요? 소망 때문입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무슨 소망이요 무슨 믿음 때문입니까? 그 때에는 주를 만나 뵙는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 때문에 바울은 많은 고난과 많은 환난과 많이 매 맞음과 많이 자지 못함 가운데서도 기뻐했던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아멘.
그러므로 어떻게 저와 여러분은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점도 흠도 없이, 거룩함으로 평강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베드로 후서 3장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15절, 또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아멘.
여러분, 이렇게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주를 뵙게 되리라는 소망을 갖는 것은 오래 참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 10절 11절에서,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고 하였고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욥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재앙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시기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고, 오늘날 오래 인내해서 좋은 결말을 본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기로 인해 욥은 열 자녀와 가진 모든 소유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1장 21절,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서 이제 욥의 건강을 쳐 버렸습니다. 그러자 욥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는 병이 생긴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욥의 아내는,”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놀랍게도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하지만, 욥이 비록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 하여도, 그가 완벽한 자는 아닙니다.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자기 생일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욥의 세 친구는 욥을 정죄하고, 그런 후에 욥기서 42장 보면, 욥은 이 고난을 통해서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42장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아멘.
그렇다면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욥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즉 욥을 정죄했던 세 친구는 욥 까닭에 벌을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42장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리고 둘째로, 갑절의 소유로 복을 주셨습니다. “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복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는데, 그 딸들이 모두 미스코리아더라는 것입니다.
42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 셋째로, 욥은 무병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그 후에 욥이 백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할렐루야, 이와 같은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래 참음 또한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보시는 것처럼, 성령의 열매로 언급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런데도 만약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오래 참지 못하고, 오래 인내 하지 못하고, 오래 견디지 못한다면, 그래서 화를 쉽게 내고, 우리를 핍박하고 박해하고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서 오히려 적대적으로 대하고, 미워하고 되갚아 주려고 한다면, 아직도 옛 사람 곧 땅의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다고 하지만, 새 사람으로 변화되지 못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일절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되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들로 회개하기에 이를 때까지 오래 참아야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평강 가운데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여야 갰습니다.
그래서 주 오실 때까지, 서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에나 일에나 무엇을 하든지 원망 없이 주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강을 위하야 부르심을 받았음을 믿으시고, 다투지 아니하고 평강이 온전히 우리 마음과 몸을 주장하도록 하여야 갰습니다. 기도드립니다.
출처: 해운대숨쉬는교회 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