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2. 7. 2. 토요일.
배가 불편해서 새벽 일찍 잠이 깼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는 책상 컴퓨터를 켜서 '한국국보문학카페'에 들렀다.
최근 국보문학에서 실시한 문학행사 '부산 경주 대구지역' 방문에 관한 후기가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랐다.
경주 최부자댁에 방문했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나중에 최부자댁에서 핸드폰을 찿았다는 이야기인데도 나는 최부자댁 그 자체에 대해서만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 올리면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50여 년 전 경주 최부자댁을 방문했고, 몇 해 전에는 고교동창생과 함께 경주를 방문했다.
아쉽게도 경주 최부자댁은 지금은 최씨네 소유가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소유이다.
나한테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내 댓글
댓글 1 :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니 하늘이 노랗게 물들 만큼이나 놀랬군요.
방문지인 최부자댁에서 찾았다니 다행이군요.
저는 대학생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방문, 12대 마지막 부자 '최준' 선생을 뵈었지요.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때에도 서울에서 뵙고.
12대 만석꾼이었던 최부자댁은....
대구 영남대학 전신을 짓다가 건물 붕괴사고로 많은 인명사고를 내고는 수습하다가 빚에 졌고...
삼성그룹 이병철한테 운영권이 잠정으로 넘어갔고,
이병철은 삼분 밀수사건 수습으로 최부자댁 건물을 박정희한테 임의로 넘겼고.
지금은 이름뿐이지요. 최부자댁 건물 소유권은 박근혜에게 있을 겁니다.
건물은 1970년 화재로 소실되어서 지금은 일부 새로 지은 것.
*훗날 최준의 손자(최염)가 소유권을 되찾고자 노력하나 그게 법적으로 가능할까요?
12대 마지막 부자 최준선생은 일제시대 상해임정부에 독립자금을 댔고. 백산상회를 통해서
경주 방문이 아주 뜻이 있기에 조선생님한테는 오래 기억되겠군요.
좋은 여행지에 관한 내용이기에... 엄지 척!
제 한 명뿐인 친손자의 이름도 '최준'.
제가 경주 최부자 12대를 존경했기에 족보에 오른 돌림자를 골랐지요.
댓글 2 :
경주최부자 1대 부자 최진립은 1592년 임진왜란에 참여, 1636년 병자호란에 참여 전사.
최진립 장군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무관으로 참전, 전과를 세웠다.
이 분을 위해서 용산서원에서 제사를 지냄.
인터넷에서 발췌 :
'한겨레'(2013년 2월 2일자), '중앙일보'(2017년 6월 14일자) 등의 보도와 2012년 국회에서 열린 영남학원 재단정상화를 위한 토론회 등에서도 밝혀졌지만,
박정희 정권은 1967년 최준씨가 대구대학 운영을 맡긴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사건과 청구대학 건설현장의 대형사고 등에 대한 사법처리를 면제해주는 대가로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휘 아래 두 대학을 영남대학으로 통합, 접수했다고 한다.
영남대 설립이사에 최준선생도 포함시켰지만 허수아비였고 실질적인 운영은 다른 이사들인 이후락, 이효상, 백남억, 신현확 등 정권실세들이 좌지우지했다. 몇 년 뒤 최준선생은 이사에서조차 쫓겨났다.
아쉽네요.경주 교동 최부자댁의 전설같은 이야기.
혹시 '경주법주'도 한 잔 하셨나요?
최씨네 후손이 전통으로 빚은 술
최준 선생을 뵈은 지가 5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 분의 얼굴이 내 기억에 남았다.
경주최씨... 대한민국에서는 4대성씨에 들어가며, 성씨 본관별 순위로는 6위에 들어간다.
씨족 숫자는 거의 100만 명에 가깝다.
그런데도 관계(정치계) 등에는 이름을 날리는 씨족이 별로 없다.
신라말 고운(해운) 최치원의 후손이며, 고려조에서는 이름을 날렸으나...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잊혀지는 성씨였다.
'최부자' 등으로 허명만 남았다.
경주최씨의 후손으로는 1860년 '동학교'를 창도한 제1대 최제우, 제2대 최시형은 구한말의 사람이며.. 모두 조선조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경주최씨 후손으로는 또 있다. 일제 을사늑약(1905년)에 항거한 면암 최익현 선생...
대마도로 유배되어서 왜놈의 밥을 먹지 않겠다며 굶어서 돌아가셨다(1907. 1.).
이처럼 경주최씨네의 성품은 불의에 굴하지 않기에...
21세기인 지금도 관계/정치계 등에는 거리가 멀다는 게 내 사적인 견해이다.
많은 것을 떠오를 것 같다.
나중에 보탠다.
밥부터 먹자...
조금 더 보완한다.
몇해 전((2019. 8. 12.)에 쓴 내 글이다.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린 '최부자집 소유권자'
조금 퍼 온다.
경주 최부자는 왜 망했을까?
그 분은 독립자금을 댔으며, 대구대학를 설립하다가 빚을 졌으며, 이것은 삼성 이병철 회장한테 위탁경영으로 넘겼으며, 이병철 씨는 3분(밀가루, 설탕가루, 시멘트) 밀수 사건에 걸려서 대학을 박정희 대통령한테 넘겼다.
※ 이병철 씨의 자료에는 '밀수사건' 용어 대신에 '폭리사건'라이는 단어로 대체했어? 왜?
2022. 7. 2. 토요일. 맑음
첫댓글 그곳은 경주 최 부잣집 홍보관이었습니다. 물론 경주 법주도 한 병 사 와서 한 잔씩 음미하였습니다.
예..
의미가 많은 경주 여행이었군요.
최부자댁... 지금은 소유권이 박씨네한테 넘겼어도 이름만큼은 최부자댁으로 남았군요.
경주 법주도 한 잔씩 음미했다니 잘 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