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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클랜드전의 전개
1. 시작되는 전쟁
서로 승리를 호언 장담하면서 적군의 철수를 요구한 양측의 대치국면은 4월 22일 드디어 영국군이 공격을 위한 작전에 나서면서 깨졌다. 상륙작전을 위하여 정찰 헬기들이 양륙함을 이함한후 포클랜드섬의 정찰을 실시한 것이다. 해병대원들을 탑승시킨 헬기들은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접근했으나 접근을 탐지한 아르헨티나군의 반격으로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헬기 2기가 격추당했으며, 강력한 대공포화에 당황한 영국군은 즉시 철수했다. 이로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4월 25일 아르헨티나측이 반격에 나섰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잠수함 산타페호가 사우스 조지아섬을 몰래 떠난후 영국함대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르헨티나 해군으로서는 영국 함대에 정면 승부를 걸 입장은 되지 않았으므로 이 산타페같은 잠수함의 활약을 기대했었다. 이 산타페가 영국함대내로 몰래 접근한후 항모 인빈시블이나 허미스와 같은 주요 목표에 일격을 가할수만 있다면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산타페호는 영국함대의 외곽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탐지되었다. 영국의 대잠 초계 헬기가 '적의 잠수함으로 보이는 이상한 수중물체를 탐지했다'는 무전을 선도 구축함대에 긴급하게 전한 후 즉시 대잠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정통으로 명중하지는 않았으나 산타페호는 큰 손상을 받고 즉시 귀환코스로 도주했다. 그러나 비틀거리며 간신히 돌아온 산타페호는 그리트리켄 항내에 들어서자마자 침몰해 버렸다. 게다가 곧이어 함포사격을 집중하면서 헬기로 투입된 영국의 해병대가 사우스 조지아섬에 상륙하여 맹공을 가했으며 결국 아르헨티나 수비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로서 오히려 아르헨티나측이 더 큰 타격을 받은 셈이 되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결국 영국 함대의 상륙을 막아내는 중책은 아르헨티나 공군에게 맡겨지게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영국군의 상륙을 허용했다가는 손쉽게 포클랜드 제도를 내줄 것 같았던 것이다. 영국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면서 드디어 5월 1일에 양측의 공군력이 정면 충돌하는 공중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5월 1일 새벽에 먼저 공격을 개시한 쪽은 영국이었다. 영국 공군의 발칸 폭격기가 장거리 폭격작전에 나선 것이다. '블랙 벅스'라는 암호명하에 추진된 이 작전은 2차대전중 폭격기 왕국이었던 영국의 위상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었으나, 무엇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전쟁에 빠져들었던 영국공군이 허겁지겁 수립한 작전이었으므로 많은 난점이 있었다. 사실 영국 공군의 발칸 폭격기 부대는 한창 퇴역 중이었는데 갑자기 폭탄을 탑재하고 실전에 나서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폭격기부대의 전부대원이 당황한 것이다. 게다가 작전의 내용도 너무 광대한 것이었다. 대서양의 전진기지 아센션 섬으로 일단 출격한 후에 아센션섬에서 다시 출격하여 포클랜드의 포트스탠리 비행장을 폭격한 후 다시 아센션 섬으로 귀환하라는 것이었다. 이 작전에 예상되는 총 비행거리는 대략 12000 km 이었으며, 공중급유를 3-4회이상 받으면서 15시간 이상을 비행해야하는 대장정이었다. 결국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5대의 발칸 폭격기와 각 폭격기당 5명의 정예 승무원들이 선발되어 긴급히 재래식 폭격 훈련을 했다. (사실 발칸 폭격기는 핵폭탄을 투하하기 위한 훈련만을 해왔었다.) 1982년 4월 30일, 드디어 블랙벅스 작전이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아센션섬을 이륙한 발칸 폭격기 1대가 공중급유를 6회나 받으며 5월 1일 새벽 3시경에 포클랜드에 접근할수 있었다. 아르헨티나군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서 약 250피트의 저공으로 침투한 발칸폭격기는 목표인 포트 스탠리 비행장근처에서 고도 10000피트로 급상승한후 폭격을 개시했다.
모두 21발의 1000파운드 폭탄이 투하되었으며 그중 2발이 활주로에 명중되었고 나머지 폭탄은 비행장 여기저기에 떨어졌다. 기진 맥진한 승무원들은 즉시 귀환코스로 기수를 돌렸다. 아르헨티나측의 레이더는 발칸 폭격기가 급상승한 시점에서 발칸을 탐지해냈으나 발칸 폭격기의 ECM 재밍으로 인해 놓쳐 버렸으며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했다. 결국 발칸 폭격기는 총 16시간의 비행후에 아센션섬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용 대 효과면으로 따진다면 한심한 지경이었다. 이 한번의 공격을 위해서 소모한 연료가 무려 180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르헨티나 측에서도 발칸 폭격기의 공습을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결국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들만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발칸 폭격기의 공격은 5월 1일에 벌어진 대 공중전을 알리는 예포였다. 동이 터오르면서 영국해군의 시해리어기들이 일제히 이륙하여 포트 스탠리와 구즈 그린의 비행장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영국해군의 프리키트함 2척과 구축한 1척이 해안으로 접근하여 포트 스탠리 비행장과 근처의 아르헨티나군의 진지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결국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아르헨티나 공군과 해군의 공격기들이 출격하기 시작했다. A-4 스카이호크, 대거로 이루어진 공격기들이 폭탄을 탑재하고 일제히 출발했으며, 이들의 호위를 위해 미라쥬 III EA 기들이 엄호비행에 나섰다. 총 56소티에 달하는 출격비행에서 아르헨티나의 공격기들은 격렬한 대공포화 및 대공미사일망을 뚫고서 용감하게 돌격해왔다. 결국 영국해군의 HMS 애로우가 폭탄 1발의 명중탄을 맞고 불타올랐다.
그러나 함대의 외곽을 방어하던 시 해리어편대가 이 공격기 편대를 포착했으며 즉시 요격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격기들을 엄호하던 미라쥬 III EA 2기가 이 시 해리어의 편대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미라쥬가 먼저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시 해리어기들은 이를 쉽게 희피했으며, 우수한 선회능력을 과시하면서 미라쥬기들의 후미에 따라붙었다. 미라쥬 IIIEA기들은 즉시 산개하면서 연료탱크를 투하하고 급선회했으나 해리어가 발사한 AIM-9L 사이드와인더에 의해서 2기가 모두 격추되었다. 결국 이 날의 공격작전에서 아르헨티나측은 해리어와 함대공 미사일에 의해서 총 4기의 공격기를 잃었다.
이 5월 1일의 첫 공중전에서 맹활약한 영국의 시 해리어는 공중전에서도 결코 미라쥬 III에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였으며 다시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날 미라쥬에 탑승하고 있었던 아르헨티나 공군의 카를로스 페로나 중위는 "근접 공중전이 시작됨에 따라 시저스 비행을 시도했으나, 해리어는 놀랄 만한 감속능력을 발휘하여 나의 미라쥬를 오버슛 시켰으며 나는 전력을 다해서 급선회를 시도했으나 전혀 따돌릴 수가 없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말했다.
그러나 5월 1일의 전투는 포클랜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으며 이후에 영국 함대는 아르헨티나 공군, 해군의 공격기부대에게 계속적으로 공습을 받게되어, 더욱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질 운명이었다. 이후에도 아르헨티나 공격기 부대는 첫날의 손실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영국 함대를 위협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으며, 영국해군은 약소국이라고 얕보았던 아르헨티나 공격기들의 저돌적인 공격을 받게 되었다.
어쨌든 이날의 공격은 양측이 모두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영국은 발칸 폭격기를 그토록 먼거리에서 이륙시켜 적의 비행장을 폭격하는데 성공했으며, 함재기 해리어의 신뢰성을 입증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비록 4기의 항공기를 상실했으나, 장거리 비행을 강요당했던 조종사들이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영국 함대의 함정들을 빨리 포착하여 폭탄을 명중시켰기 때문이었다. 양측의 과제는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서 서로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2. 액조세폭풍
격전이 시작된 5월 1일의 해가 저문후 5월 2일이 되자 이번에는 영국의 잠수함이 공격작전을 시작했다. 영국의 원자력 잠수함 HMS 컹커러호가 함대의 선두에서 잠행하여 아르헨티나해군의 순양함 제네랑 벨그라노호를 탐지한 것이다. 제네랄 벨그라노호는 전혀 잠수함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며 최고속도로 도주하지 못했다. 끈질기게 추격을 계속한 컹커러호는 벨그라노호를 완전히 사정권안에 잡았으며 유도어뢰 2발을 발사하여 격침시켜 버린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언론은 당연하다는 듯이 영국이 전쟁에 이길 것이 유력하다며, 아르헨티나군의 능력을 의심했다. 사실 개전이후 영국은 계속 큰 전과를 올리고 있었으며 아르헨티나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가고 있었다. 이때까지 영국도 아르헨티나측도 서로 '그러면 그렇지'하는 생각을 해가고 있었다.
5월 4일 영국이 계속 공세적인 군사작전을 펼치면서 다시한번 발칸폭격기에 의한 블랙벅스 작전을 실시했으며, 곧이어 씨 해리어 전투기들이 포트 스탠리와 구즈 그린의 비행장에 대한 공습작전에 나섰다. 비행장 공격에서 영국군은 아르헨티나의 푸카라 공격기 몇대를 파괴했으나, 격렬한 대공포화의 반격과 만나 결국 1대의 씨 해리어가 명중탄을 맞고 격추되었다. 이것은 영국에게는 불길한 징조였으니...
영국의 공습이 끝나갈 무렵, 산타페호와 제네랄 벨그라노호의 손실로 망신살이 뻗친 아르헨티나 해군이 슈페르 에땅다르와 AM-39 액조세 미사일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고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오전 10시경 아르헨티나 해군의 초계기였던 P-2H 넵튠 1기가 초계비행중 영국의 함대를 발견했다. 영국은 조기 경보기가 없었으므로 원거리에서 초계중인 넵튠기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오전 10시에 이 정보를 전해들은 아르헨티나 해군은 즉시 2기의 슈페르 에땅다르를 발진 시켰다. 공중 급유를 받아가면서 목표해역에 도달한 슈페르 에땅다르기들은 영국함대의 레이더망을 피해 저공으로 접근했다. 영국함대의 방어망은 최신형 구축함인 쉐필드, 글래스고우, 코벤트리등 3척의 구축함들이 장비한 시다트 함대공 미사일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축함의 레이더만으로는 탐지거리의 한계가 있었으며, 더구나 저공으로 접근해오는 적기들에대한 탐지는 곤란했다. 넵튠 초계기가 보고한 지점으로 접근한 슈페르 에땅다르기들은 500피트정도의 고도로 잠시동안 상승하여 아게브 레이더를 작동시켰다. 첫 번째 탐지 시도에서 목표가 잡히지 않자, 이들은 레이더의 역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레이더를 끄고는 다시 저공으로 비행했다. 오전 11시에 이르자 충분한 거리로 접근했을 것이라 생각한 슈페르 에땅다르의 조종사들은 다시한번 고도를 상승하면서 레이더를 방사했다. 이번에는 레이더 스크린에 영국의 함대의 선도부대가 잡혔다. 작은 함정사이에 큼직한 목표물로 보이는 큰 점이 2-3개나 나타난 것이다. 약 39km정도의 거리였으며 이거리는 대함 미사일 액조세의 최대 사정거리 이내였다. 슈페르 에땅다르기들은 즉시 액조세 미사일을 큰점 2개에 나누어 록온하고는 영국의 레이더가 탐지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즉시 발사했다. 그리고는 레이더를 꺼 버리고 다시 고도를 낮춘후에 기수를 기지쪽으로 돌렸다.
한편 영국함대의 최전방에서 초계임무를 맡으면서 항진중이던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형 구축함 쉐필드호의 레이더수가 잠시동안 이상한 주파수의 레이더방사를 탐지했다. 그러나 레이더망에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자 당직사관은 이 보고를 무심히 들어넘겼다. 잠시동안의 시간이 흐른후, 함상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던 한 수병이 수평선상에서 연기를 피워올리는 물체를 발견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유심히 쳐다본 수병이 미사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액조세 미사일이 4km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미사일이다!~"라는 고함을 질러대면서 경보를 발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수초뒤 해면고도 3m정도의 초저공을 날아온 액조세 미사일은 쉐필드의 옆구리에 직격해 버렸다. 엉청난 폭발과 함께 쉐필드는 화염에 휩쌓였으며, 함장은 곧 함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 다른 액조세 미사일은 어떤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훗날의 보고에 의하면 연료를 소진하여 자폭했을 것이라한다. 수시간이 흐른후 불길이 화약고로 번져 2차 폭발이 있었다. 그러나 쉐필드는 침몰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영국민들이 애타게 지켜보는 가운데 영국해군은 끝까지 어떻게든 쉐필드의 불길을 잡고 영국으로 귀환시키려 하고 예인선으로 예인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5월 10일 예인중이던 쉐필드는 침몰해 버렸다.
전투기에서 발사한 미사일 1발에 의해서 구축함을 격침시켰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아르헨티나 해군측은 뛸 듯이 기뻐했으며, 영국 해군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번에는 세계 언론도 이날의 아르헨티나의 대반격 작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foxmouse의 기억으로는 초등학생시절이었던 1982년 TV에서 뉴스시간마다 떠들어대던 액조세 미사일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면을 가르며 날아가는 액조세의 자료화면을 한 10번은 넘게 본 것 같네요.) 이로서 프랑스의 액조세 미사일은 완전히 스타가 되 버렸으며, 이를 발사할 수 있는 공격기 슈페르 에땅다르도 덩달아 상한가의 인기를 얻었다.
이날, 쉐필드호를 수장시켜 버린 슈페르 에땅다르와 액조세 미사일의 콤비는 이후 영국함대의 골치거리로 남게 되었다. 사실 1982년 현재, 아르헨티나는 총 5대의 슈페르 에땅다르와 5발의 액조세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이날 2발을 사용했으므로 3발만이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몰랐던 영국측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레이더에 탐지 되지도 않는 거리에서 미사일이 날아왔는가? 도대체 아르헨티나는 몇발의 액조세를 가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은 없는가? 이런 문제가 영국 해군을 골치 아프게 했다. 만일 항모 인빈시블이나 허미스가 이 미사일에 맞았다면, 포클랜드 전쟁의 전반적인 양상이 뒤바뀔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영국 함대는 큰 위협과 직면했으며 포클랜드 전쟁의 양상은 다시 미궁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3. 산카를로스 상륙작전
쉐필드가 격침된후, 영국해군은 액조세 노이로제에 빠져 전력을 다시 한번 추스렀다. 액조세 미사일의 레이더를 교란할수 있는 챕탄 살포 장비를 갖춘 함선들이 함대의 외곽에서 엄호하도록 했다. 이들 함선은 챕탄 살포를 위해 헬기도 준비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수동적인 방어체계외에는 이렇다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영국해군은 당시만해도 대함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후의 방어체계인 CIWS와 같은 지근거리 교전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항모 허미스와 인빈시블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 함대가 이들 항모를 중심으로 원형 방어진을 구축했다.(소형함선들이 육탄으로라도 방어 하겠다는 좀 원시적인 발상이었으나 영국으로서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 이러는 동안 영국의 공격작전은 일순간 주춤했으며 전쟁은 잠시동안 소강상태로 빠져드는 듯 했다.
이러는동안 아르헨티나 항공기들의 활동도 더욱 과감해졌다. 5월 12일 미라쥬 III 4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12대의 A-4 스카이호크기들이 영국함대에 공격을 가해왔다. 저공을 고속으로 돌파해온 이들 스카이호크기들은 격렬한 대공포화와 대공미사일의 반격에도 굴하지 않고 영국의 HMS 그래스고우호와 브릴리언트호에게 폭탄을 투하했다. 스카이호크의 폭탄 1발이 그래스고우에 명중했으나 저공에서 투하된 폭탄은 신관이 작동되지 않아 선내를 관통하는데 그쳤다. 영국함대의 시다트, 시울프 함대공 미사일들이 맹렬하게 발사되었으며, 2대의 스카이호크가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항모 허미스에서 이륙한 씨 해리어 전투기들이 황급히 교전지역으로 접근했으나 아르헨티나 공격기들은 해리어와 만나기 전에 모두 귀환했다. 그러나 귀환도중 미사일을 피하던 스카이호크 1기가 회피기동중에 바다로 추락했다.
이 전투는 당시 파견되있던 영국의 BBC방송의 종군기자에 의해서 생생히 녹화되었다. TV카메라로 긴박하게 중계된 이날의 전투는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아~ 저기 적기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았 폭탄이 떨어집니다. 빗나갔습니다! 흰 연기를 끌고 미사일이 발사됩니다. 저기 적기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사일이 명중됐습니다."
아나운서의 긴박한 멘트와 함께 중계된 이채로운 화면이 이제 전쟁이 보다 가까운 곳에 있음을 영국민들에게 알려주었다. 특히 미사일에 맞은 아르헨티나의 스카이호크기가 바다로 추락하는 모습을 본 일부 런던시민들은 거리에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결국 방송의 위력으로 영국민을 더 단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국도 공격작전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영국군은 전력을 점차로 강화하여 본격적으로 상륙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후속 수송부대가 도착하여 전력이 속속 보강되었다. 특히 5월 18일 징발되어 참전한 영국의 콘테이너 수송선 아틀란틱 콘베이어호가 도착했는데 이 수송선에는 영국 공군의 해리어 GR. Mk3 6기와 해군의 씨 해리어 FRS.1 8기, 그리고 헬기 10대가 실려있었다. 그리고 수직이착륙이 가능했던 해리어기들이 모두 수송선을 이륙하여 항모 인빈시블과 허미스로 이동했다. 이로서 영국해군의 해리어는 기존의 17대에서 거의 2배 가까이 증강된 총 31대의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벌써 20여일간이나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으며 본국의회는 무진장으로 소요되는 전쟁경비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군은 전력을 쏟아부어 포클랜드 섬에 상륙한후 아르헨티나 지상군을 제압하기로 했다. 사실 영국군은 철저하게 훈련된 직업군인들로서 아르헨티나의 징병된 육군전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승리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륙을 감행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손실이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항공기들이 상륙을 막기위해 전력을 다해 올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반구의 고위도에 위치한 포클랜드에는 벌써 쌀쌀한 날씨를 동반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상륙에 부적합한 기상조건이 올것이라는 예상도 영국군의 마음을 조급하게 많들었다. 어쨌든 포클랜드 전쟁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포클랜드 상륙작전이 곧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5월 20일 영국함대는 2개부대로 분리하여 포클랜드 해협의 북쪽으로부터 접근했다. 7척의 호위함들의 보호를 받는 13척의 양륙함들이 포클랜드 해협을 따라서 상륙예정지점이었던 산 카를로스강의 하구로 향했다. 영국이 이 지점을 상륙지점으로 택한 이유는 아르헨티나군의 방어군이 비교적 적었을뿐더러 폭이 좁은 해협의 지형적 특성과 주변의 높은 구릉으로 인해서 아르헨티나기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측이 상륙작전을 감행 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아르헨티나 해군과 공군은 전력을 투입하여 무슨일이 있어도 상륙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모든 조종사들이 조국의 영토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했으며 모든 항공기들이 보조 연료탱크를 장비하고 출격 태세를 갖추었다. 특히 조종사들은 전투가 매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문제는 항속거리의 한계점에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파일럿들은 조금도 싸우려는 의지를 움츠리지 않았다.
결국 5월 21일, 영국은 본격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하였으며, 동시에 아르헨티나의 미라쥬III, A-4, 대거, 캔버라등 전투, 공격기들이 일제히 이륙하여 산카를로스를 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클랜드 항공전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4. 타오르는 창공
5월 21일 산카를로스에 대한 영국의 상륙작전으로 포클랜드전쟁의 최대 전투가 시작되었다. 산 카를로스만으로 접근한 영국함대는 여러척의 지원함을 동원하여 함포사격으로 상륙을 지원함과 동시에 방공태세를 구축했다. 공군의 해리어와 해군의 씨 해리어기들이 함대의 외곽 상공에서 1차 공중 방어망을 형성했으며, 해군의 지원함들에는 시울프, 시다트, 시캐트 함대공 미사일 및 각종 대공포가 접근해오는 아르헨티나 항공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륙지점에는 아르헨티나의 지상군이 거의 없었으므로 신속히 상륙이 진행되었으며 상륙한 선도부대는 즉시 지상에 래피어 지대공 미사일을 설치했다.
아르헨티나측역시 최대규모의 공격을 시작했다. 총 75소티의 출격이 감행되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측의 문제는 여전히 연료부족으로 인한 짧은 전투시간과 공중우세의 부재에 더불어, 격렬한 함대공 미사일망을 돌파해야 하는 것이었다. 공격의 주축은 A-4P,Q 스카이호크기들과 대거 공격기들이 었으며 이들은 자유낙하 폭탄이나 로켓탄을 장비하고 산카를로스만에 몰려있는 영국 함선을을 목표로 하여 돌진해 들어오고 있었다. 미라쥬 III EA기들이 공중엄호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 미라쥬기들도 연료부족으로 교전시간에 제한을 받았다. 대략 5분여의 시간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짧은 시각에 공격기들은 목표를 탐지하여 폭탄을 투하해야 했으며 폭탄을 투하하는 즉시 기수를 돌려야 했다.
산카를로스만의 상공에 아르헨티나 항공기들이 모습을 나타내면서 하늘은 온통 비산하는 대공 미사일과 대공포화, 그리고 공격해 들어오는 아르헨티나기들과 방어에 나서는 해리어 전투기들이 뒤엉켜 날았다. 스카이호크와 대거기들은 저공으로 돌격해 들어와 폭탄을 투하했다. 사실 이런 공격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으나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은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공격은 함대의 외곽에 있던 영국의 프리키트함 HMS 아덴트호에 먼저 집중되었다. 스카이호크 3기 편대가 아덴트호를 행해 돌격해 들어왔다. 즉시 아덴트호의 시울프, 시다트 미사일들이 반격에 나섰으나 이들 미사일들은 모두 빗나갔으며, 이 공격기 편대는 성공적으로 폭탄을 투하했다.
아덴트호는 3발의 폭탄을 맞았으여 화염에 휩싸여 침몰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탈을 시작했을 때 상공에서 이 전투를 지켜보던 해리어기들이 분노에 불타올라 급강하해왔다. 스카이호크기들은 산개하여 희피기동을 시작했으나 구름사이로 숨어 버린 1기를 제외한 나머지 2기는 모두 해리어가 발사한 AIM-9L 사이드와인더에 맞아 격추되었다.
이날의 전투에 참가하여 아덴트호를 격침시킨 편대의 일원이었던 알베르토 조르게 필리피 대위는 이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편대의 목표는 산카를로스만의 영국 함선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공격은 아군의 엄호 전투기도 없이 시행되어야 했다. 해리어와 마주치지 않기를 빌면서 고도 15미터의 저공으로 돌입했다. 산카를로스만의 외곽 바위사이로 적의 함선한척을 포착했는데 나중에 이 함선이 프리키트함 HMS 아덴토 호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목표를 윙맨에게 알리고 고도 90미터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폭탄 투하조준경이 적의 함미와 겹치는 순간 격렬한 대공 기관포와 흰 연기를 끌고 날아오는 미사일들이 나의 스카이호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짝 긴장하여 십자선이 목표를 벗어나기전에 폭탄버튼을 누르고 우로 급선회를 했는데 '명중! 잘했다' 는 윙맨의 무전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그 프리키트함은 많은 연기를 토하면서 기울어 있었다. 기쁜 마음이 들기도전에 격렬한 대공포화망을 벗어나기 위해 급기동을 시행하면서 기수를 기지로 돌렸다. 그러나 갑자기 큰 충격을 느꼈으며, 전혀 기체를 조종할수가 없었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나의 스카이호크는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 쳤다. 우측을 바라보니 씨 해리어 1기가 기관포를 발사하며 돌진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미사일에 맞은 것 같았다. 즉시 무전기로 탈출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출핸들을 잡아당겼다. 다시 큰 충격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었는데 찬 빗방울이 얼굴에 맞아 정신을 차려보니 낙하산으로 강하중이었다."
이날 영국은 프리키트함 HMS 아덴트호를 잃었으나, 함대 방공전은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아르헨티나의 항공기 15대를 격추시켰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중 8기는 해리어에 의한 것이었다. 격추의 대부분은 저공으로 돌격해오는 아르헨티나의 공격기들을 포착한후 상공에서 강하하며 기습하여 이루어 진 것이었으며, 전투기간의 공중전은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엄호전투기 미라쥬 III EA기들은 모두 연료가 떨어져 급히 기수를 돌렸던 것이다.
5월 23일이 되자 아르헨티나공군의 공격이 더 거세졌다. 영국의 HMS 안텔로프호가 스카이호크가 투하한 4발의 폭탄을 맞고 대파되었다. 그러나 이날의 방어전에서도 해리어는 4기의 미라쥬III와 스카이호크 1기를 추가로 격추하였다. 안텔로프호에 명중한 폭탄중 1발은 불발탄이었는데 5월 24일에 신관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폭탄은 폭발하고 말았다. 많은 사상자와 함게 안텔로프는 바다속으로 가라않아 버렸다. 안텔로프가 가라않으면서 하늘에 다시 아르헨티나 기들이 출현했다. 이날의 공격은 산 칼를로스만의 함선과 지상에 구축된 영국군 진지에 대해서 실시 되었는데 그간 많은 동료기들을 잃었음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격렬한 전투의 와중에 HMS 써 게라하드호와 HMS 써 란스롯호가 폭탄에 맞았으며 지상의 영국군 진지도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해리어의 눈부신 활약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날 총 8기의 아르헨티나기들이 격추되었는데 이중 3기를 해리어 1개편대가 해치운 것이었다. 앤드류 올트 소령이 이끄는 영국 해군 제 800 비행대대의 씨 해리어기들이 미사일과 기관포를 사용하여 스카이호크 2기와 미라쥬 III 1기를 격추하였다. 아르헨티나의 항공기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음에도 영국은 해안에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본격적인 육상 전투를 시작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저항은 여전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독립기념일인 5월 25일에는 영국함대가 아르헨티나 공격기 편대의 공격을 12회나 받았다. 함대의 북방에서 초계임무중이던 HMS 브로드소드호와 HMS코벤트리호가 공격을 받았으며 코벤트리는 3발의 1천파운드 폭탄의 직격을 받아 대폭발과 함께 침몰해 버렸다. 영국측의 발표에 의하면 7기의 아르헨티나 공격기를 격추했다고 하였으며 아르헨티나측은 3기의 손실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시점에서 볼 때 영국측은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어느정도 물리치고 있었으며, 가장 큰 고비였던 상륙작전도 성공적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5월 25일 다시한번 2대의 슈페르 에땅다르기들이 출격했다. 영국 함대의 외곽에서 목표물을 찾으며 비행하던 슈페르에땅다르기들은 산카를로스만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영국 함대의 본진을 탐지했다. 그리고 즉시 액조세 미사일 2발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영국 함대도 슈페르 에땅다르의 레이더파를 탐지하였고 전함대에 비상이 걸렸으며, 즉시 필사적인 방어작전에 들어갔다. 각 호위함에서 채프탄이 일제히 발사되어 채프 구름을 형성함과 동시에 헬기들이 이륙하여 함대의 주위에 채프를 뿌렸다. 액조세 미사일은 마지막 유도단계에서 가장 큰 반사파를 내는 목표물을 추적하도록 되어 있었다. 액조세 1발은 채프의 효과로 인해서인지 빗나갔으나 나머지 1발이 함대에서 3km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던 수송선 아틀랜틱 콘베이어호에 명중했다. 항모는 무사했으나 아틀랜틱 콘베이어호가 대파되어 화염에 쌓임에 따라서 영국은 이 배에 실려있던 헬기 10여대와 막대한양의 탄약, 보급물자를 상실했다. 이제 아르헨티나 측으로서는 1발의 액조세만이 남게 되었으며 이 1발을 어떻게든 영국의 항모에 명중시키고자 했다.
이날을 고비로 산 카를로스 상공에서의 공중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5월 25일을 고비로 전반적인 승세는 영국측으로 기울었다. 사실 상륙한 영국 지상부대는 아르헨티나 지상군과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으며 아르헨티나 지상군은 체계적인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 지상부대가 공세적이었던데에 반해서 아르헨티나군은 방어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군의 공격으로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되면서 양측의 항공전 양상도 지상부대에 대한 근접지원 형식으로 바뀌어 가게 되었다.
5. 영국의 승리
산카를로스에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영국의 공수부대와 해병대가 주축이 된 지상부대는 5월 27일 다윈과 그스그린에 대해서 공격을 시작했다. 이 두 지점이 아르헨티나군의 방어의 주력이었던 것이다. 지상군끼리의 교전이 격렬해지기 시작되자 양군의 항공기들이 근접지원에 나섰다. 영국 공군의 해리어 GR.Mk3기들이 근접지원에 나섰으며 공습도중 1기의 해리어가 대공포화에 맞아 격추되었다. 반면 아르헨티나군의 미라쥬와 스카이호크기들은 산카를로스 만에서 함포사격으로 화력 지원을 하던 영국 함선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이 날 하루동안 2기의 스카이호크가 대공미사일에 의하여 격추되었다.
한편, 지상군간의 교전은 단연 영국이 우세했다. 아르헨티나의 방어군은 처음에는 용감하게 저항했으나, 고정된 위치에서 단지 방어만을 하겠다는 전술이 문제였다. 주로 야음을 틈타 기습해오는 영국의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공세에 대해서 방어만을 생각한 아르헨티나 수비진지가 하나 둘 무너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군은 역습이라던가, 공세작전에 대해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병사들 사이에서도 정신력의 문제로 나타났다. 영국군은 자신들이 세계 최정예 군대라는 자부심과 또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데 반해, 주로 징집병으로 구성된 아르헨티나병사들은 체계적인 훈련이 영국군에 비해서 부족했으며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영국군에 대해서 매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5월 28일 마침내 영국의 공수부대가 포트 다윈을 점령했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의 교두보는 구스그린만이 남게 되었으며 이곳에서는 아르헨티나군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양측의 항공기들이 구스그린 상공에 나타나 근접항공지원을 시행했으며 조우하게 되면 공중전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군의 근접 지원기인 푸카라 공격기들이 대거 모습을 나타내 기관포와 로켓탄으로 영국 지상군을 공격하자 영국의 해리어, 씨 해리어기들이 반격에 나섰다. 이 날 한 대의 푸카라기가 영국 지상군의 브로우파이프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으며 다른 한 대가 영국의 스카우트 헬기에 의해서 격추되었다. 그러나 점점 전세는 영국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으며, 구스그린은 5월 30일 무너졌다. 점점 전황이 불리해지자 아르헨티나 해군은 마지막 남은 1발의 액조세 미사일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슈페르 에땅다르 2기가 1기에만 액조세를 장착하고 해군의 A-4Q 스카이호크기들과 함께 출격했다. 이날 슈페르 에땅다르는 어떻게든 영국의 항모를 명중시키고자 했으며 영국의 항모기동부대에 최대한 접근하여 액조세를 발사했다. 물론 영국측도 액조세 공격을 감지하고 많은 챕탄 살포를 실시 했으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액조세 미사일은 영국함대를 향해 날아간후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A-4Q의 편대가 폭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스카이호크기들은 항모 근처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대공 미사일과 씨 해리어의 반격을 받아 2기가 격추된후 퇴각했다. 아르헨티나 측은 영국의 항모 인빈시블이 액조세에 맞아 대파되었다고 발표했으나 영국측은 이를 부인했으며 액조세는 빗나갔다고 주장했다. (이때 영국측은 작전상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세계 언론들은 영국이 정말로 큰 피해를 입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보였으며 실제 액조세 1발에 의해서 영국의 최정예 항모가 격침되었다는 소문을 믿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영국함대가 귀환할 때 인빈시블이 건재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아르헤티나측의 발표가 틀린 것으로 최종확인 되었다.)
이리하여 영국군은 포클랜드 제도에 남은 마지막 목표인 포트 스탠리에 대한 공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군은 점점 몰려 포트 스탠리에 최종 집결하여 방어전을 펼쳤다. 영국은 포트 스탠리 근처의 거점을 하나하나 공격하여 점령함으로써 마침대 완전한 포위를 했으며 산카를로스의 거점에 260m정도의 임시 활주로를 건설하여 해리어, 씨 해리어기들이 지상에서 작전할 수 있도록 했다.
6월 8일이 되자 영국군은 포트 스탠리의 버프 코브에 상륙을 시행하여 양동작전을 펼칠 것을 계획 중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아르헨티나군에게 노출되었으며, 아르헨티나의 전투기와 공격기들이 즉각 공격에 나섰다. 20대의 스카이호크와 대거기가 출격하였으며 상륙중인 영국의 함선들을 공격했다. 그 중 양륙함 써 트리스트람호와 써 가라하드호가 폭탄의 직격을 받아 큰 화재가 발생했다. 영국병사들의 사상자는 100여명에 달했으며 근처에서 화력지원을 하던 프리키트함 프리마우스호가 4발의 폭탄을 맞았으나 다행히 신관이 작동하지 않아 폭발을 면했다. 이날의 공격은 아르헨티나군의 마지막 반격작전이었으며 피해도 상당하여 공격에 참가했던 10대의 항공기가 씨 해리어에 의해 격추되었다.
6월 12일 영국의 마지막 숨통 조이기 공격이 시작되었다. 야간에 격렬한 화력지원과 함께 돌격해온 영국군에 의해서 아르헨티나군의 포트 스탠리 방어선이 도처에서 돌파되었으며 아르헨티나군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병사들은 전쟁공포증에 빠져들었으며 최고지휘관부터 일선의 병사까지의 명령계통이 완전히 와해 되었다. 6월 14일에 이르자 도처에서 항복하는 아르헨티나군이 속출하였고, 영국은 포클랜드제도 전체를 장악했다. 그리고 도저히 가망이 없음을 인지한 아르헨티나군이 정식으로 항복을 하여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출처: 불타는 하늘 (airwar.hihome.com)
첫댓글 아...조금 힘빠지는 글이네요~하하하..ㅡㅡ
영국과 아르헨티나에 일본과 한국을 대입시키면 힘이 빠지지만... 이런 전사를 거울삼아 우리는 잘 대처해 나가야죠.
솔직히 독도영역에서 전쟁한다는건 즉 해군력과 공군력만일텐데... 일단 우리나라가 부족하지만 정말 맞짱뜬다면 예상외의 결과가 있을수도 있겠죠? 예전의 이순신장군처럼... 솔직히 우리나라군대같이 훈련잘된 나라는 세계에서 없다고 하더군요. 특히 제 아는놈이 미국군대를 갔었는데 무슨 장난하는거라고. ㅎㅎ
이순신장군이 숫적열세를 만회하고 일본수군을 물리친건 판옥선이라는 좋은 함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판옥선이 없었다면 이순신장군의 신화도 불가능했을겁니다. 사실 이순신장군이 높이 평가 받을 일은 전쟁 전에 전쟁을 대비해서 좋은 무기를 만들고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전쟁에서의 좋은 결과는 이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였죠.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아쉽게도 임진왜란 당시의 판옥선이 없습니다. 현재의 해군력은 일본에 비해서는 정말 암울하고 이지스함이 건조된 이후에도 일본에 열세인 것은 마찬가지죠. 이건 목숨걸고 용감하게 싸운다고 어찌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해군의 함포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한데... 고속정끼리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한국과 일본의 대규모 해전에서는 별 쓸모 없어지죠... 우리 공군은 독도 상공에 가면 10분 있다가 와야되서 독도상공에서의 공중전은 포기해야 하니 공군은 더 암울하네요.
현재는 일본이 슬쩍 독도를 점령해버리면 우리로서는 외교적인 노력을 제외하고는 어케 손을 써 볼 수가 없습니다. 쨉도 안되는 경제력 때문에 일본의 해공군력을 넘어선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무력을 제외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그렇다면 님께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군과 해군의 객관적인 분석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육군은 어느정도 비교한 글들을 읽어서 압니다만 공군과 해군의 전력에 대해 접해보지 못해서...
일본과 한국의 한국본토에서의 싸움에 대해서 쓴 글이 있으니 제 아뒤로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본토와 독도의 차이는 한국에겐 레이더 싸이트가 없어진 다는 것과 일본 항공자위대의 조기경보기가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는 것, 일본의 해상자위대의 88함대 또한 마음껏 휘젓고 다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전면전 같지만, 독도에서 열세라면, 그족만 치우치지말고 대마도나 일본본토에 해병대나 특전사를 상륙시켜야지요~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야 하니까요
솔직히 지금의 우리 해군력으로는 아마도 일본의 88함대 하나에도 전멸당할겁니다. 그런데 그런 88함대가 일본에는 4개가 있습니다. 북방4도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1개 함대가 묶여 있다고 해도 일본 본토나 대마도로 상륙은 절대 무리입니다.
아무튼 전력에서 절대적으로 딸리는 만큼 중국이나 러시아를 이용한 외교전을 통해서 사태를 해결하는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외교전에서 참패한 이 후에 객관적으로 열세였던 전력으로 부딪혔다가 본토까지 위험해진 상황까지 가서야 항복을 하는 치욕을 당했지만 외교전에서 승리한다면
의외로 쉽게 일본이 물러날 수도 있으니까요. 유사시엔 일본을 견제하려 안달이 난 중국과 러시아만이 희망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 편을 들게 뻔하니까요.
seoul_united님 88함대가 머에여?;;
88함대는 구축함 8척에 대잠헬기 8기로 구성된 함대입니다. 그리고 공고급 이지스함이 기함입니다.
일본과는 해상부터 어떻게 해결 안되면 무리입니다..... 정말 분통터지는 현실
전에 seoul_united님이 올리신글 봤고 오늘 다시 봤는데요.. f-16이 많이 안좋은거 같네요.. 예전에 전투기 선정할때 f-16말고 f-18했으면 더 나았을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밀리터리사이트 있으면 좀 소개해주세요..
괜찮은 밀리싸이트란게... 분야별로 워낙 많이 나눠져 있어서 딱히 추천할 만한게 없네요. 항공, 해상, 전사, 최신밀리 등 이것저것 많거든요. 난나야님께서 관심있는 분야를 네이버에 치시면 괜찮은 싸이트들이 뜨니까 검색해보시라고 밖에...
그리고 f-16은 북한이 주적으로 있는 우리 상황에서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어서 f-15k가 모두 들어와야 독도에서도 어느정도 힘을 낼텐데... 미국이 일본에게 f-22랩터를 판다고 하니 정말 초난감이죠 --;;;;;;;;;
전쟁까지는 안갈꺼 같은데요. 전쟁 발발 땅! 하면 양국(특히 우리나라)주가 폭락하고 외자 빠져 나가고~ 북한은 북한대로 난리치고~ 일본은 일본대로 중국 눈치 봐야하고~ 그동안 우리한테 팔아먹은 제품들 판로 막히고 평소 일본 별로 않좋게 생각했었던 아시아 각국들 난리치고~ 이런거 다 한거랑 독도랑 봐꾸겠냐라면
(특히 지금 별로 아쉬운거라곤 국제 영향력밖에 없는 일본입장에선)안할꺼 같은데요. 제 눈에 지금벌어지는 상황도 단순한 정치 퍼포먼스로 보이는데요~
제글의 의도를 너무 다르게 받아드리시니 혹시 글과 리플들을 안 읽어보신 건 아닌가 싶네요... 제 글은 일본과 전쟁을 할 것이다.. 라는 글이 아닌데요... 오히려 포클랜드전을 본받아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을 리플로 이미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쟁 중에 전쟁이 일어날마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쟁도 많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나왔듯이 영국도 포클랜드전쟁을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포클랜드란 섬 자체가 영국이 무리해서 전쟁을 해야할 만한 가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영국이라는 나라의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정치생명이 위태해진 영국정치가들이 전쟁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독도도 그런 식으로 전쟁으로 갈 것이란 건 아니고... 포클랜드를 두고 아르헨티나가 하지 못한 외교등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