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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5]
제임스는 그녀 등에 베개를 세워 그녀를 앉게 한 후 그녀의 옷을 가져다 주었다.
“지영아. 우선 옷 부터 입어. 그 자리에서 입어. 내려오지 말고. 알았지?”
그녀가 옷 입는 것을 보고 탁자에 비어 있는 음료수병 하나와 아직 마개를 따지 않은 또 한 병의 음료수 병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지영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영아.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 상황이 심각하니 나를 믿고 그냥 그대로 있어야 해. 알았지?”
“네. 알았어요”
그녀는 주변을 보기가 두려웠는지 창을 통해 보이는 강을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한 손으로 지영의 한 손을 잡고 탁자위의 전화기를 들었다.
벨이 몇 번 울리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듯한 목소리의 여순경이 전화를 받았다.
“서울 경찰청 살인과 최병훈 경감을 빨리 바꿔주십시요.
“누구시라 전할까요?”
“캐나다 토론토에서 온 제임스입니다.지체말고 바꿔주십시요”
곧 이어 굵직한 탁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제임스? 어디서 전화하는 겁니까?”
긴급상황이라고 말해서인지 그도 프로답게 인사도 다 생략하였다.
“서울입니다. 나중에 설명하고, 긴급으로 지금 워커힐 호텔 앞을 지나가는 그린색 엘란트라의 여성 운전자를 검거하십시요. 살인용의자입니다. 이곳은 광장동 강변 모텔 516호입니다. 즉시 오십시요. 살인사건입니다”
지영은 침대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아직 맑지 못한 상태에서 옷 자락을 만지고 있었다.그녀는 제임스를 눈에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만두었다. 이상황에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음을 그녀도 생각하고는 죽은 남자가 누워있는 반대편으로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에 있는 다른 의자에 앉아 멍한 눈으로 강을 바라 보고 있었다. 제임스 또한 지금 무슨 말로도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알고는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불을 붙혔다.
그는 다시 한 모금 빤 담배를 침 묻힌 손가락으로 비벼 불을 끄고 남은 담배가치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 때까지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있는 지영이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어루만지며 가슴에 안았다. 그의 가슴에 안겨 가픈 숨을 몰아쉬던 지영은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와이셔츠가 흥건히 젖도록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점차 흐느낌으로 바뀌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임스! 당신 정말 제임스맞아요? 토론토에서 온 제임스?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되었어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왜 이제서야 이렇게 만나게 되었어요 왜? 왜?”
그녀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서럽고 억울하여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지영아~ 사랑한다. 지영아”
그는 그 말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지영이 마음을 진정하고 거칠었던 호흡이 가라 앉자 그는 그녀를 다시 한번 꼭 안아주었다.
“지영아! 사랑한다. 이제 진정하고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 경찰이 올 때까지 그대로 있어”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시트를 살폈다. 침대를 덮은 하얀 시트는 아직도 애액이 마르지 않아 흥건히 젖은 채 있었다. 다섯개의 음모가 애액에 묻혀 있거나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꼬불 꼬불 한 것으로 여성 음모였으며 나머지는 남성 음모였다.
그는 수첩을 안 주머니에서 꺼내어 그 위에 볼펜으로 하나씩 메모하였다. 침대 옆 탁자 아래 카페트위에서 반쪽의 적색 알약을 줏은 것은 지영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바닥에 떨어진 호텔용 티슈 상자를 주우려 허리를 굽혔을 때였다. 그는 그것도 얇은 티슈 한장에 잘 싸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영아~ 지금부터 기억을 잘 더듬어 생각나는 모두를 우선 나에게 말해. 아무래도 나에게 말하는 것이 편할거야. 나는 캐나다가 인정한 탐정면허를 가지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너의 진술을 들을 수 있고 요구할 수 있으니 차분히 다 말해라. 도움이 되도록 할테니 알았지?”
신지영은 그를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다 말하자 그리고 운명에 맡기자 하며 결심한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기억나는 부분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은 박희철이라 해요. 한영문학까페를 직접 운영하는 까페지기이고 아이디는 내사랑이예요. 모두가 그를 박 사장이라 불렀어요. 그 외는 아는 게 없어요. 모임이 끝나고 점심을 사준다해서 배도 고프고하여 함께 차를 탔어요. 한강을 건너며 박사장이 우선 목을 축이라며 직접 음료수 마개를 따서 주는것으로 생각하여 긴장하였던 몸이 풀어졌고 피곤하기도 하여 별 의심없이 그 음료수를 받아 마셨어요. 좀 지나자 가슴이 뜨거워지고 조금씩 호흡이 빨라졌어요. 어디에서든 쉬고 싶었어요. 졸음도 막 쏫아졌어요. 차에서 내리려는데 머리가 멍하였고 구름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박 사장이 저를 부축해 주었어요. 뿌리칠 힘이 나지않고 나른해 지기만 하였어요. 침대에 누웠는데 김사장이 제 옷을 벗겼어요. 반항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지만 몸이 말을 않들었어요. 소리치려해도 호흡만 가파지고 소리가 안되었어요”
그녀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지영아~ 어서 계속해봐. 기억나는 그대로 빨리”
그는 초조하였다. 경찰이 곧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듣기 힘들었고 지영이가 안타까웠지만 지금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수가 없었다. 가능한 한 다 들을 수 있어야 했다.
“박 사장님이 제 옷을 다 벗기고 저는 몽롱한 상태에서 그냥 누워 있었어요. 박 사장이 샤워를 하려는지 옷을 벗었을 때 문이 열린 것 같았고 박사장이 급히 수건을 두르고 문을 열고는… 아마 여자 목소리였어요. 뭐라고 하였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곧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는 음료수를 마신 것 같았어요. 그 때까지 저는 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볼 수는 있었고 다만,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어요. 호흡은 가펐고 가슴은 뜨거웠어요. 그리고 온 몸이 가려운듯이 스믈거렸어요. 손을 움직이려해도 되지 않았어요. 벌거벗은 박 사장이 제 위로 올라왔어요. 저는 거부하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소리도 쳤지만 나오지 않은 것 같았어요. 박 사장이 가슴을 혀로 빨고 아래를 주무르면서 손가락을 넣었어요. 저는어떻게 반항할 수가 없었어요. 호흡은 더 빨라지고 몸부림치고 싶어서 움직여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이상하였어요.”
그러면서 지영은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제임스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기다렸다.
“박 사장이 제 속으로 들어왔어요. 제 다리를 강제로 들고는 거친 숨을 쉬기 시작하였어요. 저는 눈을 감았어요. 그 때부터 아래가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배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눈을 떴어요. 박 사장이 없었어요. 저는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누워 있었어요. 차츰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 때 당신이 눈앞에 있었어요. 꿈을 꾸었나 보다 생각하였어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꼭 다문 입술에 스며 있었다.
이미 경직이 시작되고 있는 박희철의 엎드려져 있는 사체의 입에서는 누런 거품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까지 적셨다. 그것은 약물중독에 의한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는 지영이 앉아있는 의자 옆에 서서 온 신경을 곤두세워 현장을 기억하려고 침대와 침대위에 깔린 시트. 박희철 그리고 침대 가까운 부근과 그의 주변 바닥을 유심히 보고있을 때 문이 열리고 경찰청 감식반이라고 초록색 글씨가 쓰여진 곤색 조끼를 입은 두명의 감식반원이 최 경감과 한 명의 사복입은 형사와 모텔 사장 그리고 한 명의 정복을 입은 경관이 들어왔다. 그들은 우선 사체의 사진을 찍었으며 침대시트를 조심스럽게 거두어 큰 비닐 봉지에 담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탁자위의 빈 병과 마개를 아직 따지않은 병을 수거하여 따로 비닐 봉투에 넣었고 주변의 탁자와 화장실 손잡이 의자 등 지문이 남아 있을 만한 곳을 찾아내어 지문을 채취하였다.
그들의 행동은 민첩하였고 이미 어느 곳을 먼저 조사해야 하는지 각본을 만든 것같이 거침없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생각되는 곳을 뒤져 증거 가능한 것들을 채집하였다. 그들은 침묵하며 전문가답게 신속히 그런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최 경감이 난감한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운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임스”
“좋습니다. 경감님. 이 사건은 우연히 제가 목격하여 추적하였습니다. 좋을 때 진술하겠습니다. 여기있는 신지영씨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또 왜서 이런 상황에 처 하게 되었는지? 등을 아직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쩧던 현장을 잘 보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점은 잘 하셨습니다. 일단 신지영씨를 용의자로 경찰서까지 압송하겠습니다. 함께 가셔야지요 제임스?”
그 때 최경감의 휴대폰이 요란스런 노래소리와 함께 긴장돼 있던 실내를 울렸다.
“엘란트라를 운전하고 가던 다른 용의자를 검거했답니다. 수사본부를 강동경찰서에 설치하였으니 가시지요”
그렇게 제임스에게 말하며 동행할 것을 암시하였다. 그리고 최경감은 감식반원에게 급히 지시하였다.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하나도 놓치지 말고 수집한 후 이방을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폐쇄하고 오 순경이 지키도록 하시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현장 보존을 잘 하도록”
난감하고 혼란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결국 그 시간이란 이소희 라고 이름이 밝혀진 용의자가 체포되어 취조실에 연행되어 와서는 박희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였으나 살해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최경감은 용의자인 이소희를 빈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앉아 조서철을 펼치며 미란다 조항을 천천히 말해 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이소희의 눈을 보며 취조하기 시작하였다.
“이소희씨! 당신은 왜 살인사건 현장인 그 호텔 510호에 들어갔습니까? 들어가서 누굴 만났습니까? 왜 박희철을 살해하였습니까?”
“저는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당신이 말하여 알았어요. 저는 510호에 들어가지 않았어요.저는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정말이예요.”
그녀는 놀라 발악하듯 빠르게 말하였다.
“당신은 박희철을 알고 있었지요?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당신이 그 방에서 나와 에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요. 당신이 살해하지 않았다면,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제2의 용의자인 신지영 또한 살해할 이유도 증거도 없었다. 범인이라고 검거하였던 제1의 용의자 이소희에게서 기대했던 자백을 받지 못하자 오히려 제임스가 난감해졌다. 아직 사체 검시 결과나 증거 수집품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혼란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지금 그는 미궁같은 혼돈상태로 빠졌다.
제3취조실의 하얀 벽에 어울리지 않게 걸린 분홍색 막대기만 돌아가고 있는검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