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도훈은 평소 출근길에 자주 지나다녔던
에비뉴필드 백화점의 고급지고 무거운 문을 힘껏 열었다.
그 곳의 특유의 냄새는 평소의 그였다면 어지럽다고 생각 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콤하고 자신감 넘치는 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평소 옷을 좋아하는 도훈이지만, 신세가 신세인지라 쇼핑을 해본지도 오래되었을뿐더러
백화점 중에서도 고급 평품 브랜드 들만 입점 할 수 있다는 에비뉴필드 에선
경호 아르바이트로 몇 번 면접을 보러 왔을 뿐 (결국 떨어졌지만)
스스로가 이곳에서 쇼핑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모두가 여유로워 보였고, 행복해 보였으며 차가운 세상의 풍파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
아름다움 만을 쫒아 화려한 불빛에 스스로를 내던져 버리는 나방 인 마냥
이곳 저곳의 화려한 스토어 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여자 남자 할것 없이 모두가 멋지고 화려해 보였다.
순간 로비에 유리로 설치되어 있는 크고 멋진 구조물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낡은 스니커즈에 인터넷 특가로 3만원에 구매한 회색 트레이닝 세트,
나름 유행에 따르겠다며 길거리에서 싸게 구입한 검은색 볼캡,
겨울옷은 동묘 라며 가게 사장님에게 무려 7천원이나 깍아 구입한 만이천원 짜리 코트.
도훈은 갑자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 새로 태어나겠다. 남영이와 방송국 관계자님에겐 죄송하지만,
신나게 잘 쓰겠습니다!
도훈은 손에 쥔 검은 카드를 꽉 쥐고는 안쪽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사실 명품 브랜드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그는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에겐 돈이 있다.
도훈은 일단 천천히 둘러봐야겠다고 생각 하곤 제일 먼저 보이는 브랜드 로 들어갔다.
그 곳은 확실하게 달랐다.
동대문 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상품하나하나 가 모두 깨끗하고 반짝였으며
모두들 날 어서 데려가줘 라고 소리치는 듯 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붙여져 있는 가격또한 어마어마 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고상한 말투로 배꼽 인사를 하는 점원 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담스러움과 불편함이 한번에 몰려왔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였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점원은 다시한번 친절하게 그에게 물었다.
“아, 아니요 그냥 구경 하려구요”
“네 고객님,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녀는 마치 천국의 문 앞에서 망자들을 안내하는 천사인마냥
친절한 목소리 안에 주님의 제일은 사랑이니라 의 말씀이 녹아 있는 듯 했다.
여기저기를 넋 놓고 구경하는 그는
계속 의식적으로 입을 닫으려고 노력하며
‘원래 이런데 많이 와 본 것 처럼 행동해!!X신 아’
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꾸짖었다.
코트가 걸려있는 곳을 스윽 지나가나 슬쩍 코트의 팔 부분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여태 그가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부드러움 이였다.
세상 최고의 원단은 이불인 줄 알았는데,
이건, 인간 세게에 존재하지 않는 원단 인 듯, 엄마의 품처럼 부드러웠다.
이 옷을 사면, 평생 굶어도 행복 할 것 같았다.
그는 가격 텍 을 찾기 위해 옷 안쪽을 이리저리 휘저어 봤지만,
텍은 그 어디에도 붙어있지 않았다.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점원의 말에 도훈은 세상 끝날 듯 놀랐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음...어, 좀 입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고객님”
순간 그의 예리한 눈에 그 천사 같은 점원의 입고리가 씰룩 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미소를 되찾으며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빼 그 앞에 펼쳐 보였다,
‘이건 뭐지, 왜 코트를 들고 펼쳐 보이는 건가.. 부자들은 입기전에 옷안 쪽에 폭탄이 있나없나라도 확인하는걸까,
저여잔 나에게 무얼 원하는 거지 분명히 옷을 입어본다고 했는데, 왜 코트를 펼지고만 있는걸까...’
도훈은 편안한 얼굴 상태를 유지하며 속으로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객님, 입어보신다고....?”
어리둥절 하는 점원에 말에 도훈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아 미안합니다. ”
그는 입고 있던 싸구려 코트를 벗어 바닥에 고이 접어 내려 놓았다.
점원은 순간 이 또라이는 뭐지? 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입으시는 거 도와 드리겠습니다”
도훈은 자신의 팔 뒷 쪽에서부터 부드럽게 올라오는 부드러운 그 원단의 감촉에 감격하며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옷이 날개다 의 의미를
순간 그는 에비뉴필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는 이미 처음 그가 코트를 만진 그 순간부터 이건 사야된다! 라고 마음 먹고 있었지만
“ 괜찮네”
라고 말할 뿐이었다.
순간 그는 스스로가 아침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돈 많은 사모님이나
내 뱉을 만한 대사를 말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이건, 얼마죠?”
“네 고객님, 이상품은 F/W 신상 으로써 저희 브랜드와 디자이너 알자르달쇼폭스가 콜라보한 제품으로
오백 육십 사만 팔천원입니다 ”
순간 도훈은 코트안에 넣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와, 명품 브랜드 들이 비싼건 알고있었지만 해봤자 백 이백 하는 줄 알았더니 코트 하나에 오백?! ...
이걸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만든거겠지...와...오백이면... 내 월세 몇 달치지? 알자..뭐? 걘 누구고...
하..진짜 사도되는건가. 근데막 갑자기 카드 안긁히고, 나 당황하고...몰래카메라입니다! 하고 끝나면..
그냥 난 전국적으로 호구새끼 인증 하는 거고 그래도 방송국에서 선물 몇가지는 주지 않을까? 출연료는 나오겠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롤러코스터 타듯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을 무렵
정적을 깬 친절하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깨웠다.
“많이비싸죠 고객님?”
“네?”
“음.. 조금 고민하시는것 같아서요, 옆건물 쇼핑몰에 가지면 스파 브랜드들도 많고,
가격대 저렴한 옷들 많으신데 가보시는건 어떠세요?”
순간 도훈은 아..그렇죠?..알겠습니다 라고 무의식 적으로 대답할 뻔했으나
그는 예전에 그가 아니었다.
순간 그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제가 제 입으로 비싸다고 했나요? 고객이 생각 좀 해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요?
다른 고객한테도 이렇게 응대하시나 보죠? 제가 이 동네는 처음이라, 이사온지도 얼마 안됐고,
짐정리가 좀 안돼서 후즐근 하게 입고왔다고 무시하시는 건가요?...“
“아니..고객님 그게 아니”
“됐습니다!, 매니저 불러오세요”
도훈은 순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3학년때 학교 수업에서 연기했던 배역의 대사랑 일치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그는 분명 봤다. 그 천사의 눈에서 육두문자가 흐르는것을,
눈으로 욕할 수 있다는건, 엄청난 고급 기술이라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다.
곧이어 완벽하게 관리 한 듯한 키큰 여자가 완벽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고객님 무슨 일 이십니까?”
순간 도훈은 그녀의 모습에 잠깐 기가 눌릴 뻔 했지만
의식에 흐름에 스스로를 맡겨보기로 했다.
“.....이거.. 주세요 ”
그녀는 잠깐 놀라는 듯 했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계산 도와드릴까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도훈은 말했다.
“ 그리고 이 코트에 어울리는 신발 바지 상의 가방 까지 추천 좀 해주시겠어요?
제가..눈이 좀 높아서... 매니저 분하곤 말이 통하겠죠? “
그는 쓰윽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이어 여자 도 스윽 미소를 짓더니 문앞 에 서있던 남자를 호출해 귓속말로 무언가 지시했다.
남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매장의 모든 커튼을 닫았다.
그리곤 매장의 셔터 또한 내리는 것이 아닌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그 공간엔 매니져와 남자, 그리고 도훈 뿐이었다.
도훈은 어리 둥절 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마른 침을 한번 삼켰다.
“자, 준비가 다 된 듯 하네요, 고객님, 커피한잔..하시겠습 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