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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한 뒤 기자회견을 가진 이수근씨. |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있던 이수근이 조선노동당 대남사업총책 이효순으로부터 위장 월남귀순하라는 지령을 받고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회의를 취재하다가 회의가 끝나자 UN군측 대표인 준장 밴 클러프트의 승용차에 뛰어 올라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월남귀순하게 됐다.
한국정부는 그가 북한의 언론계 거물이며 지식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였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전국순회강연 및 TV-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북한실정을 폭로하는 척하면서 한국의 각종 기밀을 수집하여 북한으로 보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의 여러가지 행동이 점차 수상해지자 한국정부의 정보 및 수사당국에서는 그를 주시하고 경계하기 시작했고 이수근은 더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음을 눈치채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비행기로 탈출, 호치민에서 북한으로 귀환하려다 한국정부의 정보요원에 의해 체포, 군용기 편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1969년 7월 3일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사형 39년만인 2008년 12월 19일 위장간첩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이 내려졌다. 1989년 처음으로 문제 제기된 이수근의 간첩 논란은 이로써 종지부를 찍게됐다.
2015년 3월 22일
‘건국 1세대’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 별세
송인상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 |
재무부 장관과 초대 수출입은행장을 지낸 ‘건국 1세대’ 송인상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효성그룹 고문)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송 명예회장은 한국 경제 근대화의 선도자이자 한국 경제외교의 산증인이다. 준수한 외모와 탁월한 외국어 실력, 풍부한 식견을 갖춰 ‘재계의 신사’로도 불렸다.
그는 재무부 이재국장과 한국은행 부총재를 거쳐 1957년 부흥부(전 경제기획원) 장관과 1959년 재무부 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 수장을 역임했다.
최초 장기 경제개발계획인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추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계획은 후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틀이 돼 한국경제 근대화에 큰 업적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주EC(벨기에, 룩셈부르크 겸임)대사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명으로 경제외교에 주력, 유럽 수출을 3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끌어올려 ‘기적을 만든 대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같은 수출증대 경험을 높이 평가받아 1976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초대 수출입은행장으로 임명된 바 있다.
민간에선 동양나이론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20여년 간 한국능률협회를 이끌며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올바른 기업가의 모습을 전파하고 산업인재 육성에도 힘썼다.
송 명예회장의 뚝심이나 중재자 역할과 관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부흥부 장관 겸 경제조정관 재직 시절 원조 국가들은 주로 농업분야에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송 명예회장은 공업에 투자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맞서 이를 관철시켰다. 이를 통해 건설된 것이 충주 비료공장과 수력발전소, 디젤기관를 도입한 철도 산업 등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정부청사로 쓰는 것은 민족적 수치”라며 거부하고 나섰을 땐 원조 당국에 쌍둥이 청사를 지어 나란히 하나씩 사용하자는 기발한 제안을 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 등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남덕우 전 총리, 유창순 전 총리, 총진기 전 법무부 장관 등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남 전 총리는 평소 자신을 ‘제2의 송인상’이라고 칭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고인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송 명예회장은 한국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이에 앞서 1991년 수교훈장 광화장, 2004년 한미협회 한미우호상, 2007년 국제로타리 최고영예상도 수상했다.
2012년엔 평전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을 통해 “(나의 삶을) 가난한 조국에 다 바치고 싶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건국 1세대’의 마지막 증인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며 “그의 ‘가난한 조국에 다 바치고 싶었다’는 문장은 격동의 세월을 산 한 경제인의 평생 염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사업가 송동진씨 등 1남4녀가 있다.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전 상공부 장관), 고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전 전경련 회장), 주관엽씨(사업가) 등이 사위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39건
ㆍ2015년 · ‘건국 1세대’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 별세
ㆍ2009년 · 김점선 화가 별세
ㆍ2005년 ·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 중국 방문
ㆍ2004년 · 한국,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서 11개 금메달 획득, ‘금 신기록’ 달성
ㆍ2004년 ·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창설자 야신 피살
ㆍ2004년 · 스타더스트호, 혜성 ‘코멧 와일드 2’ 근거리 촬영 성공
ㆍ2001년 · ‘톰과 제리’ 제작자 윌리엄 해너 사망
ㆍ1996년 · 프랑스의 소설가 모리악 사망
ㆍ1990년 · 한국,체코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ㆍ1987년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발생
ㆍ1985년 · 소흑산도 근해서 표류중이던 중국어뢰정 구조
ㆍ1983년 · 아마드 샤 말레이지아 국왕 내한
ㆍ1982년 · 스위스 유엔가입 발의
ㆍ1980년 · 한국여자핸드볼 올림픽예선대회 우승으로 첫 올림픽참가권 획득
ㆍ1977년 ·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 사임
ㆍ1975년 · 로디지아 민족지도자 헤르베르트 치테포의 장례식
ㆍ1972년 · 이화여대 86년 만에 남학생 첫 수강
ㆍ1969년 · 삼일고가도로(청계고가도로) 완공
ㆍ1968년 · 석유화학계열 공업단지 기공
ㆍ1966년 · 켄터베리 대주교 교황청 방문
ㆍ1965년 · 단일변동환율제 실시
ㆍ1963년 · 3군 비상지휘관회의서 3.16성명 지지결의, 박정희의장 방문
ㆍ1962년 · 제4대 윤보선 대통령 사임
ㆍ1958년 · 미국, 열전자엔진 발명
ㆍ1957년 · 미군기, 태평양 횡단중 실종으로 67명 사망
ㆍ1953년 · 헌병총사령부 신설, 초대 사령관에 원용덕 소장
ㆍ1948년 · 일본정부, 재일교포 학교 폐쇄
ㆍ1948년 · 딘 군정장관 선거법 및 시행세칙 공포
ㆍ1947년 · 남한에 24시간 총파업, 이를 계기로 좌익조직 검거 시작
ㆍ1947년 · 트루먼, 파괴분자의 관직추방 명령
ㆍ1945년 · 카이로에서 이집트 등 7개국 아랍연맹 결성
ㆍ1935년 · 독일, 유럽최초로 정기적인 TV방송 개시
ㆍ1933년 · 계초 방응모 조선일보사 경영권 인수
ㆍ1923년 · 프랑스의 무언극 배우 마르셀 마르소 출생
ㆍ1910년 · 스코틀랜드 열차 충돌로 227명 사망
ㆍ1897년 ·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기공식
ㆍ1889년 · 화폐 남발로 물가폭등, 주전소 폐지
ㆍ1832년 · 독일 문호 괴테 사망
ㆍ1687년 · 프랑스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 사망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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