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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2020년 5월 27일 오후에 봉담집을 출발 수원화성을 향했다.
경기도청 주변에 주차를 하려다 여의치 않아 북문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수원 화성(사적 제 3호)
팔달산과 그 동쪽의 낮은 구릉과 평지를 감싸며 쌓은 평산성(평지와 산을 이어서 쌓은 성)으로 타원형태를 이루고 있다.
성의 전체둘레는 5.744km이고 높이는 4.9~6.2m이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마련하게 위해 신도시 화성을 계획하게 되었다.
수원 화성은 당시의 최첨단 과학과 건축술이 빗어낸 역작으로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화성 건설에 관한 모든 과정은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한국의 세계적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수원 화성의 그 방대한 공사를 2년 9개월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정약용이라는 젊은 실학자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성의 설계를 맡아 전통적인 방법을 기초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여러 서양의 건축을 참고하였다.
화성은 정약용의 설계를 바탕으로 채제공을 비롯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와 같은 유능한 실학자들의 젊은 패기와 기중기, 녹로와 같은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만들어졌다.
당시 건설된 주요시설물로는 문루와 옹성을 갖춘 4대문과 행궁, 암문, 수문, 연못, 장대, 공심돈, 각루, 포루, 봉돈, 궁대, 치성, 용도, 적대 등 48개소이다.
코스:북문 공영주차장→용연→북암문→방화수류정→화홍문→장안문→화서문→서장대→성신자→팔달문→창룡문→팔달문→지동시장→화홍문→북문공여주차장
거리: 8km
시간:2시간
수원화성 안내도
수류정과 화홍문 모습
용연
방화수류정 밖 용머리바위 아래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살려 연못을 파고 작은 섬을 만들어 용연이라 하였다.
북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화성의 5개의 암문 중에서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으며 1796년(정조 20) 3월 27일 완공되었다.
방화수류정
보물 제1709호(2011.3.3)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방화수류정 우측에서 바라본 성곽모습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용연
방화수류정 밖 용머리바위 아래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살려 연못을 파고 작은 섬을 만들어 용연이라 하였다.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방화수류정에서 장안문쪽을 바라본 모습
방화수류정에서 남서쪽 팔달산을 바라본 모습
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장안문쪽으로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디딤돌이 있어 올라서서 방화수류정쪽을 바라보며...
북동포루
북동포루(北東砲樓)는 장안문과 북수문 사이에 있으며, 1794년 (정조 18년) 9월 23일에 준공되었다. 정면 1칸, 측면 3칸의 2중층이며, 도리는 납도리이고 홑처마의 5량 구조이다.
포루 밖으로는 우진각지붕을 안으로는 박공지붕으로 하였다.
하층의 중간에서 중층 및 상층에 계단을 설치해서 위아래로 돌아다닐 수 있도로 했다. 그 외는 북서포루와 비슷하다
수원 화성 장안문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그러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 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가 설치되어 있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 시) 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북동치
치는 철(凸)자 모양으로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물 중 하나이다.
치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북동적대(北東敵臺)는
현안과 총안을 두어 성문과 옹성을 방어하던 곳이다.
장안문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장안문 안 모습
장안문에서 서문을 향하여
성곽밖의 모습
화성어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북서적대(北西敵臺)는
현안과 총안을 두어 성문과 옹성을 방어하던 곳이다.
성곽밖의 공원모습
서북포루
서북각루(西北角樓)는 화서문 옆에 있으며, 동남각루와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1796년(정조 20년) 7월 9일에 완공되었다.
화서문
화서문(華西門)은 성의 서문이다.
동남으로 행궁과 460보 떨어졌으며,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다만 좌우의 돌 계단을 꺾이게 해서 층을 만들었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아래 너비가 각각 9척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각각 22척 2촌이다.
홍예문 사이 좌우의 무사는 높이가 각각 18척이고 수문청은 문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다.
서옹성의 제도는 동옹성과 같은데 높이는 11척, 안쪽 둘레는 76척 정문에서 36척 떨어져 있으며 바깥 쪽 둘레는 110척이다.
안과 바깥 면 모두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방안 총혈 19개의 구멍과 활 쏘는 구멍 6개를 뚫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옹성과 같다.
1964년 9월 3일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었다.
서북공심돈보물 제1701호.
돈(墩)이란 성역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시하는 높은 망루를 뜻하며, 공심돈은 돈의 가운데가 비어있는 구조이다.
내부는 층을 나누어 사다리를 통해 오르내릴 수 있으며 위 아래에 많은 구멍을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살피며 화살이나 화포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형태이다.
성외곽 수원 서문시장쪽 모습
서북 각루
성곽을 따라 서장대를 향해...
서포루
성곽길 오르막길이 심해서 숨을 몰아쉬며....
우측 건물 서노대, 좌측 건물 서장대
서노대
서장대 바로 뒤에 서노대(西弩臺)가 서있다. 서노대는 서장대의 서북쪽에 동향하여 성 한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곳으로 정팔각형꼴로 전벽돌을 쌓아놓았고 계단 부분은 트이게 하였다.
서장대
서장대는 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화성 일대는 물론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을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이 곳에는 장대석으로 대를 쌓고 세 벌의 계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다 또 한 단의 대를 놓고, 또 그 위에다 2층지붕의 건물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상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모임지붕으로 되어 있다.
서장대에서 바라본 수원시내..
화성행궁
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여러가지 전통문화체험은 우리 문화재를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외에도 대장금의상 입어보기, 소원성취 나무와 스탬프 찍기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성신사
성신사는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가파른 계단...
팔달문[남문]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남문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헐려 길이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
축대 위로 누각이 서 있는데 2층으로 지어져 매우 높게 보인다.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내고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주위 사방에는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는 반달형 옹성, 좌우에는 적대 등 성문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설을 두었다.
옹성은 우리 나라 성곽에서 일찍부터 채용되었던 방어 시설로서 한양도성의 흥인지문, 전주성의 풍남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 면에서 한층 돋보인다.
또한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1964년 9월 3일 보물 제 402호로 지정되었다.
팔달시장 부근에 있는 정조 대왕의 불취무귀 술상 동상
정조는 화성축성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자리에서 '불취무귀'라고 하였단다.
즉,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불취무귀'란 말은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한편,아직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지 못한 군왕으로의 자책감과 미안함을 토로 한것이다.
지동시장 천변 모습
수원화성은 팔달문을 기준으로 좌우성벽이 단절되어있다.
이곳은 남수문에서 팔달문 동쪽으로 어어진 구간으로 184m의 성벽에 남동적대,남암문, 남공심돈이 있었다.
팔달문에서 동쪽으로 약 49m 떨어진 곳에 있었던 남동적대는 남서적대와 함께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고, 남암문은 주이동 통로로 사용했다.
보통 암문은 비상시 출입구로 쓰이지만 축성당시부터 남암문 바깥쪽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주 출입구로 쓰였다.
남암문에서 약 36m 떨어진 곳에는 성밖을 살피는 망루인 남공신돈이 있었다.
이 구간은 1920녇대에 도로를 넓히기 위해 철거된 이후 복원되지 못했지만 1907년에 촬영한 사진을 통해 예모습을 볼수 있다.
남수문
남수문은 화홍문과 마주서서 물줄기의 흐름을 인도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석축으로 9칸의 홍예를 틀고 철전(鐵箭)을 설치하여 잠가두는 것이 화홍문의 제도와 같았다.
남수문은 9개의 홍예문 위에는 통로를 만들고 여장을 높이 쌓았는데, 돌기둥 8개가 돌다리를 떠받들게 되어 있다.
또한 장포(長舖)라는 전돌로 만든 긴 포를 설치했는데 길이는 수문의 다리와 같고 폭은 다리의 3분의 2로 해서, 이 안에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많은 포혈을 설치하여 군사시설로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원시는 수원 화성이 199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0년 9월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2010년 6월 공사를 시작한 남수문 복원사업은 길이 29.4m, 너비 5.9m, 전체 높이 9.3m로, 수문 아래쪽은 9칸 홍예수문(무지개다리)을 연결한 형태이고 수문 위쪽은 전돌을 이용해 원형 복원됐다.
남수문에서 동쪽 동남각루를 바라본 모습
동남각루
각루는 성곽 부분 가운데 높은 구릉을 택하여 누각 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위를 감시하고, 가끔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정자처럼 다기능성이 있는 건축물이다
동일포루를 향해 걸으면서...
봉돈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키고 하층은 석축으로 쌓고, 위는 전축으로 성벽보다 높이 쌓아 위쪽에 여장을 두었다.
내부는 3층의 계단식으로 만들어서 가장 높은 곳에 5개의 횃불 구멍인 화두(火竇)를 설치하였다.
여장 3면에는 포혈 18개를, 그 아래 3면 벽성(甓城)에는 총안 18개와 누혈(漏穴) 1개를 뚫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남쪽의 첫째 것에만 사용을 했다.
나머지 4개는 긴급한 일이 없으면 횃불을 들거나 연기나게 하지 않았다.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그리고 적과 접전시에는 5개의 봉화를 올렸다.
동포루 쪽은 한참 복원 공사중...
동일포루쪽도 한창 복원 공사중...
창룡문
창룡문(蒼龍門)은 성의 동문이다.
이름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다.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동장대[연무대]
동장대(東將臺)는 성의 동쪽 동북공심돈과 동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동장대의 지형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험하게 높이 솟아 있는 곳으로 동쪽 구릉인 선암산(仙巖山)의 요지이자 성중에서 지휘소를 설치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3단으로 쌓은 대가 있고, 3층의 대에서는 총수(銃手)가 숨어서 쏘기에 편리하게 시설되어 있다.
한가운데 좌우에 와장대(臥長臺)를 설치하고, 흙을 판판하게 해서 돌로 깔아 하대에서 말을 타면서도 장대에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장대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9칸의 익공식(翼工式) 단층의 팔작기와지붕이다.
건물 주변에는 터를 동서로 80보, 남북으로 240보로 넓이를 잡아 조련장(操鍊場), 일종의 훈련장 같은 것을 닦아 놓았다.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갖고 있나요♡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갖고 있나요?
당신이 갖고 있는 향기가 사람들에게
따스한 마음이 배어 나오게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향기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윽한 장미의 향기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향기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려고
또는 자신의 몸을 향기롭게 하려고
향수를 뿌립니다.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써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본 사람만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영혼의 향기가
고난 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그렇다면 당신의 향기도
참 그윽하고 따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향기를 맡게 하는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 행복한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