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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
독일 브룬스빅의 가난한 집안에서 일용 노동자인 아버지와 농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가우스는 일생동안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오늘날까지 모든 수학자들의 왕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독일 수학의 본거지 괴팅겐 대학을 다녔고, 1830년 무렵부터 이 대학에서 가르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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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갈릴레이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사흘 전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애초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피사 대학에 들어갔으나, 곧 그만두고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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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유복자로 태어난 뉴턴이 애초 어머니의 영향으로 농사꾼이 될 뻔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만약 농사일을 좋아하여 대학 진학을 포기했더라면 만유인력의 법칙과 미적분학의 확립으로 고전역학의 기초를 쌓은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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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함께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2대 이론으로 불리곤 한다. 지동설이 지구와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밀어낸 것처럼 다윈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숭이를 닮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격렬한 종교적?윤리적 논쟁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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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턴
18세기 후반 라부아지에가 원소의 개념을 정립하고 산소이론을 발표하면서, 화학은 과거의 연금술과 결별했다. 그러나 여전히 화학적 현상을 일으키는 원소의 물리적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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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부아지에
과학자인 동시에 공직자로서도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라부아지에는 무엇보다도 천재적인 화학자였으며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연소 반응에서 산소의 역할을 밝히고 원소를 기본 물질이란 개념으로 파악했으며, 화학 반응에서 물질의 보존 원리를 규명하는 등 근대화학의 토대를 쌓으며 화학을 과학의 한 분야로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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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건너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농사꾼 러더퍼드가 장학금을 받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캐븐디시 연구소로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러더퍼드 개인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영광이었다. 당시 세계 실험 물리학계를 이끌고 있던 캐븐디시 연구소에서 그는 X선 방전과 방사능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 방사선을 알파, 베타, 감마선으로 분리하고 급기야 원자핵의 존재를 알아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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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네
근대 분류학의 창시자이며 이명법을 고안한 린네는 스웨덴 시골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원예를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어린 식물학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가 고안한 명명법은 속명과 종명을 나란히 쓰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생물학의 기본적인 분류 체계로 사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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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태어난 맥스웰은 뉴턴, 다윈, 패러데이와 함께 영국이 낳은 인류의 대표적인 과학자이다. 그가 발견한 ''맥스웰 방정식''의 가장 큰 기여는 전기와 자기를 측정 가능한 단일한 힘으로 통합했다는 데 있다. 이에 따르면 빛도 전자기파의 일부이며 눈에 보인다는 것이 큰 특징일 뿐이다. 그의 연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비롯한 모든 전자통신기술의 기본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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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
오늘날 체코공화국의 영토인 슐레지엔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은 수도사로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1865년 세 가지 유전법칙, 즉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 우성의 법칙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이론은 거부당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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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레예프
19세기 말까지 수십 종의 원소가 발견되고 그 원소들의 성질이 밝혀지면서 화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금속과 비금속, 기체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었으나, 원소의 주기성 문제는 여전히 미궁에 싸여 있었다. 이 궁금증의 해답은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1869년 주기율표를 제시함으로써 베일을 벗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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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
20세기를 풍미한 최고의 물리학자로 아인슈타인과 보어를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서 비롯되었다면,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양자역학은 보어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물리학자들의 공동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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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원소의 개념을 확립한 독창적인 화학자이자 물리학자, 영국 실험철학의 위대한 주창자, 기계적 철학의 옹호자. 이 모든 수식어는 로버트 보일을 위해 준비된 말들이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보일은 왕립학회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며 17세기 영국 과학을 대변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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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자연계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자 열역학의 기본 법칙이다. 흔히 열역학 제 2법칙이라 불리는 엔트로피 법칙은 19세기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정립한 개념이었다. 사디 카르노, 켈빈경, 조지아 깁스,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등 쟁쟁한 물리?화학자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루드비히 볼츠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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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왕관이 순금으로 제작되었는지를 생각하다가 ''부력''을 발견한 기쁨에 벌거벗은 채로 뛰쳐나와 ''유레카(그리스어로 ''발견했다'')''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아르키메데스의 왕성한 과학적 호기심을 오늘날까지 잘 대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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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자, 시인, 과학자, 철학자 등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식하는 말은 대단히 많다. 이것은 그가 그만큼 많은 분야를 섭렵한 데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자에 가까웠다. 그는 특히 해양생물의 분류에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120종의 어류와 60종의 곤충을 포함해서 500종이 넘는 동물을 분류하고 관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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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우리는 아인슈타인하면 상대성 이론을 생각하고 상대성 이론하면 곧 아인슈타인을 떠올린다.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직원으로 근무할 때인 1905년에 발표한 특수상대성 이론과 이를 확장하여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우리는 뉴턴 이래 일반화된 것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의 개념을 갖게 되었고, 중력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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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
기하학을 잘 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왕의 질문에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에우클레이데스(영어식 유클리드)의 삶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그가 헬레니즘 시대를 살았고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과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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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밀어내기는 했지만 수십 년 동안 적극적인 동조자를 얻지 못하고 있던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케플러였다. 그는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밝혀내고, 천체역학을 탄생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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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흔히 대담하고 획기적인 생각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태양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겉보기 운동과는 달리,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혁으로 불리는 ''과학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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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지구상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우라늄광에서 새로운 원소를 분리해 내고, 이 원소들을 라듐과 폴로늄이라고 이름붙였다. 폴로늄은 러시아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던 자신의 조국 폴란드를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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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톰슨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빨리 성장했고 기억력도 비상했다. 1880년 수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1884년 맥스웰이 초대 소장을 지낸 바 있는 캐븐디시 연구소의 실험 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전자를 발견한 업적으로 19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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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
프랑스 동부 접경 지대의 한 소도시에서 대대로 가죽 무두질을 해오던 집안의 세째 아들로 태어난 파스퇴르는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성실한 학생이었다. 파리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처음에는 결정화학에 대한 연구를 했으나 1954년 경부터 미생물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침내 그는 각종 질병이나 부패 현상 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원인균에 의한 것이라는 ''세균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
7
패러데이
영국 뉴윙턴 지방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패러데이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런던으로 이사하여 열네 살 때부터 서점의 제본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패러데이뿐만 아니라 인류 과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미래의 대과학자 패러데이가 온갖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마셀 부인이 쓴 <화학에 관한 대화>나 <대영백과사전>의 전기화학 부분을 즐겨 읽었던 그는 간단한 화학 실험이나 전기 장치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
6
플랑크
양자물리학의 창시자. 베를린 대학의 교수. 독일 과학을 이끈 이론 물리학자. 이 모든 수식어는 플랑크를 위해 준비된 말이다. 20세기로 전환되던 시기에 그가 제기한 양자가설에 의해 물리학의 역사는 근본적인 변혁을 겪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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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피타고라스는 사실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기원전 560년경 에게해의 사모스섬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며, 일설에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조인 탈레스의 제자였다고도 한다. 그는 이후 "피타고라스 학파"라 일컬어진 추종자들을 데리고 "만물은 수"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수론과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을 연구하였으며,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이탈리아 남부의 여러 도시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였다. ..
4
하비
심장이 마치 펌프와 같이 수축 운동을 하면서 피를 온몸에 순환시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의 의사 하비가 피의 ''순환 이론''을 밝히기까지 사람들은 로마 시대의 위대한 의사 갈레노스의 이론, 즉 피가 간에서 만들어져 신체의 각 부분으로 보내지면서 영양분을 공급하고 사라진다는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3
하이젠베르크
독일 뮌헨 대학 문헌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하이젠베르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고전문학과 그리스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1920년 뮌헨 대학에 진학한 그는 대학자 좀머펠트를 만나 물리학에 일생을 걸게 된다. 이 대학에서 그가 만난 볼프강 파울리 역시 이후 대물리학자로 성장하였고, 이들의 우정은 일생 동안 계속되었다. ..
2
허블
''허블의 법칙''이나 ''은하의 분류 방식''으로 유명한 이 과학자는 미국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물리학과 천문학은 물론 권투에도 소질을 보였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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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오늘날 ''히포크라테스 학파''라고 알려진 의사 집단의 지도자로서 히포크라테스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코스(Cos)섬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내과 의사가 되어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였으며, 생전에 이미 높은 명성을 누렸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
첫댓글 향기 님 최고!
아니야 언제나님이 최고야 바로그대 당신 이영혜가 최고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