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구시(오후 세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성전 미문(아름다운 문) 앞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 구걸하기 위해서 그 시간에 맞춰 앉아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을 부르자 그 사람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쳐다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보고 은과 금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리에 힘을 얻어 서고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곳에 온 모든 백성이 구걸하던 사람을 알아보고 심히 놀랐다고 합니다(1-10). 구걸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필요가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보다 본질적인 것, 곧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고, 사람들이 저주로 여겨지던 장애에서 회복되는 것임을 알고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참된 자유와 회복을 얻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행각(솔로몬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던 기둥으로 둘러 쌓인 지붕이 있는 복도)이라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며 베드로와 요한의 개인의 능력과 경건함으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들에게 주목하지말고 유대인들이 죽인 예수님을 주목하라고 하며 소개합니다. 그분은 그들의 조상에 의해서 약속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고, 바로 그 예수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낫게 했다고 합니다(11-16).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했다고 하면서 사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구약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는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새롭게 되는 날이 올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말씀하신 대로 하늘에 계시며 꼭 다시 오실 것이고, 그분은 모세가 예언한 참된 선지자가이기에 반드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17-26). 베드로는 예수님을 구약성경을 완성하신 참된 메시야, 기름 부음을 받는 자로, 그리고 복의 근원으로 전파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의 필요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금전적인 것에 달려있지 않고 오히려 죄의 문제에 달려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전함으로 그를 죄에서 해방하여 새로운 삶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진정한 필요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정확하게 압니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근본적으로 중요한지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와 요한은 기적의 원인을 자기들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예수님만 증거했습니다. 교회와 생명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기적을 행하는 사람에게 주목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만 집중 해야하고 예수님의 복음만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필요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얻는 사람은 다 얻는 자들 입니다. 예수님을 잃은 사람은 다 잃은 자입니다. 다른 것들은 이 땅에서 시작된 우리의 영원한 삶에 근본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진정한 필요로 인정하십니까? 아니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부차적인 분으로 여깁니까? 우리의 참된 필요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과 그분과의 교제임을 믿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인트호벤 사랑의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