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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0-27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입니다. 최초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과 하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20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1:18, 20-23)
특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부의 연합은 영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1:24-25)
이때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이러한 배경 가운데 하와는 남편 아담을 돕는 배필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언약 안에서 세워지는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이루기 위한 연합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가치와 사명을 위해 남녀의 결혼이 있게 된 것이며, 가정이 생겨나게 된 것이고, 나아가 교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그러나 이러한 영원한 보람이 담긴 숭고한 사명을 망각한 가정은 오직 이기심과 정욕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가정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것을 따르며 세상의 썩을 것을 쌓아 놓기 위해 수고할 것이고, 어느 정도 세상의 것이 쌓이면 죽을 육체를 만족시키는 허망한 가정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6-17)
둘째로,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또 다른 목적은 각 지체가 믿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면서 흠과 점도 없는 온전한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4-27)
이와 같이 가정의 사명은 두 가지로서, 첫째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온전한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사명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와 결혼 언약을 맺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의 주의 백성은 가정의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불신자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이 땅의 기독교 교회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독교 가정이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적인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가정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무한한 지복과 보람과 감사와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가정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을 교회로 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0-32).
즉, 경건한 가정은 작은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것입니다.
이때 교회로서의 가정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그 가정의 자녀들을 참 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일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통치가 그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에게도 임할 수 있도록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디모데야)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주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백성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백성을 형성하시는 보편적인 방법은 생육의 법칙입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의 부부를 통해 그 가정에 자녀들을 보내시고 그 자녀들이 영적인 군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든든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또다시 믿음이 든든한 가정을 세워나가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강력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부모는 하나님이 보내어 주신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의지하도록 믿음으로 양육하여야 할 것이며, 자녀 교육에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모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주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경건한 본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즉,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복음 안에서 양육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가정은 자녀들이 어떠한 인생을 살든, 한 세상 잘 살아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그들의 자녀들이 만왕의 주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양육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이 사명을 부모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자녀들은 믿음을 잃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서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비참한 현상은, 한 때 일곱 교회가 있던 아시아와 또한 강력한 종교 개혁이 있던 유럽 교회를 볼 때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부모들이 자녀를 복음으로 양육하지 못한 채 세월이 지나면 어느새 그 땅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물러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활개를 치게 됩니다.
사사기를 보면, 신앙의 대가 끊어짐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서지 못하고 사회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도다”(삿 2:10-12).
이처럼 자녀들에게 참된 믿음을 전수해 주는 일은 기독교 가정과 교회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한편, 믿음의 가정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을 중심으로 함께 모이면 그 모임은 거룩한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에 속한 가정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믿음과 성령으로 연합하면서 복음의 능력에 의해 더욱 강건하여집니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인하여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면 교회의 영원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아내로 준비됩니다.
[
6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계 19:6-9)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앞에서 영광스러운 가정과 교회를 세워야 하는 사명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2장은 우리의 주 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공동체, 곧 가정과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부터 새로운 주제로 서신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 주제는 소위 "신령한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특성을 먼저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며 인정하며 높이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특성 아래 다른 모든 성령의 일들이 나타납니다. 바로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즉, 우리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의 목적이며, 그러하기에 성령으로 충만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면서 모든 삶 가운데 주께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신령한 것들”, 즉 “성령의 은사들”이 가정과 교회에 차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이때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나타나는 신령한 일들은 공동체의 덕을 세웁니다. 성령의 은사로 인한 덕은 궁극적으로 거룩함과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높이기 위해 성령께서 나누어 주는 것으로서 그 열매는 거룩함과 사랑입니다.
이 원칙은 가정과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지면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게 되면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주께 충성하게 됩니다. 그러할 경우 가정은 거룩함과 사랑이 넘치는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맛보게 되고 각 지체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게 되어 있습니다.
한편, 본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은 성령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 머리에 연결된 각 지체들은 어떤 기능을 나타냅니다. 그 기능들이 바로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구성원들을 보면 어찌 서로 그리 다른지 기이할 뿐입니다. 자녀들을 낳아도 부모를 닮기는 하지만 서로가 다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피차 사랑으로 연결되면 가정의 풍성함과 기쁨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2장 12절 이하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라)”(고전 12:14)
그리고 성령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각 지체들은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로부터 계속적으로 흘러 나오시는 성령을 마시며 풍성한 삶을 누립니다.
“우리가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이러한 풍성한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령의 역사와 은사들의 기능입니다. 즉, 성도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할 때 성령의 풍성한 역사가 나타나 가정과 천국을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며 각 지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가족 및 교회 공동체는 한 지체가 죄를 범하더라도 전부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여러 지체들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그 지체를 돌아보면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물론 죄를 범한 지체는 회개함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누룩과 같은 존재로서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둠과 고통의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모든 지체들이 계속 경성함으로 주의 지시를 따르면 마침내 가정과 교회는 계속 거룩하고 건강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2).
여기서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르도록 돕는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공동체에 어려움과 고통을 가져오는 지체에 대해 다른 모든 지체들이 더욱 깨어서 그가 회개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주의 공동체는 사랑과 거룩함으로 더욱 든든히 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또는 교회 공동체에 어려움이 임할 때는 아무도 불신앙에 떨어지지 않도록 깨어서 경계해야 합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터가 무너지는" 그런 어려운 일이 발생한 때에는 우리 믿는 자들은 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께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벧전 2:25).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처럼 사랑으로 미움을,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인내하면 어느새 고난을 통과하고 다시 견고한 공동체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가장 복된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가정과 교회가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신령한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어느 상황이든 가정과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와 말씀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우리의 모든 삶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는 든든히 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은 더욱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가정의 주일을 맞이하여 주의 공동체의 각 지체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을 어떻게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아내는 아내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주께서 명하신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어둠이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면서 그 공동체에 천국의 기쁨과 풍성함이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자는 주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이며 따르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예수님을 본보기로 삼고 그분을 삶의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의 교훈에 철저하게 마음을 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하는 신자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삶의 모든 면에서 그분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부인하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 말씀에 따라 주께 순종할 때 우리는 어느새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복음의 강력한 전파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셨습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법적인 아버지 요셉과 실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사시면서 그들의 권위에 복종함으로 그들을 공경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 2:51).
예수님은 30세가 되실 때까지 나사렛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일반 사람들이 겪는 모든 유혹과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는가 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예수님은 장남이었기 때문에 그가 40일이 지나면 모세의 법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정결예식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요셉과 마리아는 산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그 가족이 양 한 마리 조차 없는 매우 가난한 가정이었던 것을 보여줍니다(참조, 눅 2:22-24; 레 12:8).
또한 예수님이 사는 집에는 최소 4명의 형제와 최소 2명의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막 6:3).
여기에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를 더하면 8명입니다. 법적인 아버지 요셉이 살아 있었을 때는 9명의 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집에 들어가셔도 편안하게 앉거나 누울 자리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개인 시간을 가질 공간도 없으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은 예수님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죽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요셉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8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장남인 예수님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수로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많은 어려움과 유혹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30년 동안 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늘 부모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보다 내 생각을 주장하며 내 멋대로 행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번도 부모님께 불순종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를 함부로 대했습니다.
[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 7:2-5)
심지어 동생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이 정신 나간 이상한 사람이라고도 여겼습니다.
[
21 예수의 가족(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또는 형제들)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막 3:21, 31-35)
이처럼 예수님의 가정 생활은 여러 면에서 녹록지 않았습니다. 가난했고 가정에서 오해도 받았습니다. 동생들은 맏형에게 조롱하며 대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모 및 동생들에게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련한 어머니를 향한 존경과 사랑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멸하지 말지니라(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크리스찬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그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귀한 교훈은 우리 주 예수께서 나사렛에 계실 때 부모와 가족들에게 행한 모습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본을 배우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른이 되어 결혼한 후에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노아의 아들 함처럼 연로한 부모의 실수를 들춰내며 명예를 실추시키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 질서를 무너뜨리며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참된 기독교 신자에게는 전혀 용납될 수 없는 악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평생 부모의 약점을 덮어주고 그 약점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러한 자녀들은 가정의 수많은 죄를 덮는 성령의 사람이 될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늙고 연약해졌을 때 자녀들은 반드시 부모님을 돌봐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과부인 어머니를 돌보도록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셨습니다. 이 모습은 가난한 어머니를 죽음의 순간까지도 챙겨주시는 매우 소중한 모습으로서 패역한 이 시대의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됩니다.
한편, 우리는 거듭났지만 부모님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에 위배되는 요구를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면서 신앙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정중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분명하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통을 터뜨리거나 짜증을 내면서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경멸하는 투로 대답하거나 거만하고 오만하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을 갖고 차분하게 잘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 과정에서 은혜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복음적인 대답을 듣고 비웃는 부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용히 기도하며 예절 바르게 행동하며 부모 뒤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계속 부모를 공경하면 복된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두 번째로는, 결혼하는 자녀들과 관련한 부모의 자세 및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신혼 부부가 알아야 할 진리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결혼을 하여 따로 가정을 꾸린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주의 지시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안타깝게도 이 분명한 주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자기 아내나 남편보다 부모에게 더 애착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이 기본적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을 장가 시집을 보낸 후에는 어떤 경우에도 새 가정의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들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결혼 언약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형성한 부부는 자기 부모에게 배우자의 흉을 보거나 새 가정의 비밀을 털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즉, 부부 간의 사랑과 신뢰보다 부모와의 사랑과 신뢰가 더 깊은 남편이나 아내가 있다면 그 배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정에는 반드시 어려움과 비참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 사이의 인간적인 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새로운 가정이 섰을 때 부모들의 간섭을 막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반드시 그 일을 해내어야 든든한 새 가정이 주 앞에서 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명령은 주께서 친히 새로운 가정에 주신 지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보호하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면 주께서 우리의 삶 전체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더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이 우상이 되면서 결국 가정 안으로 죄가 들어오게 되고 무질서와 어둠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온유함을 갖되, 어떻게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화평과 사랑의 복이 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분신(分身) 같은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것을 입증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메시야의 조상이며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는 영원한 영광과 복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들은 자녀들을 장가 시집 보내면서 아브라함처럼 그들을 바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마치겠습니다.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에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젊은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신앙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신자들은 주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독신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진정성을 주께 보여주는 청년은 하나님께서 아내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 사이에 불행한 결혼 생활이 많고, 결혼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많은데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를 위해 친히 아내를 준비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적절한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생의 동반자를 데려오셔서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배우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주를 앞서다가 아브라함이 하갈을 얻었듯이 우리 역시 엉뚱한 배우자를 만나 평생 불행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혼 청년들 역시 하나님께서 결혼을 제정하신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경건한 자손을 얻는 것입니다.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말 2:14, 15).
그러므로 부부 둘이 모두 한 마음으로 주를 사랑할 때 그 가정에서는 자연스럽게 경건한 자녀들이 날 것이요, 그들은 태어나는 자녀들이 우리 주께서 보내주신 최고의 복인 줄 알고 많이 낳아서 참된 신앙으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짧은 안개와 같은 인생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맡기신 가장 보람된 사명 중 하나입니다.
주일 학교 학생들이여! 가능한 한 어릴 때부터 미래의 인생 파트너를 두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어릴 때부터 결혼할 대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본인에게 많은 신앙의 도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배우자로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꼭 맞는 선물을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물론 신자가 세상적인 기준을 따라 배우자를 찾을 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놓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온통 주님께 있어야 하고 결혼 대상을 점검할 때에도 참으로 내면의 사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지 내 눈에 보기에 매력적인 이성을 결혼 대상으로 생각하면 그 신자는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혼에 대해 주께 묻는 것을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말로 어떤 사람을 여러분을 위해 정해 주셨다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가로채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 신자가 되기 위해 온 마음으로 어릴 때부터 준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께서 준비해 주신 참으로 고결한 복된 배우자를 만나 영광스럽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 19:14).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의 사탄의 공격은 주로 가정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 놈은 가정을 무너뜨리면 교회가 부패할 것이고, 교회가 썩으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설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사탄을 이겨야 할 곳은 바로 부부 사이의 관계이며 자녀들과 부모들과의 관계입니다. 가정의 아름다움은 은행의 돈이나, 차나 집이나 세상에서 잘 풀린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주님의 참된 신자들은 환경을 초월하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정을 세움으로 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복락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맞물려 있습니다. 가정이 경건하면 교회도 그 가정 때문에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교회가 복음으로 인한 힘이 있으면 경건함으로 변화하는 가정이 점점 많아집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가정의 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철저한 순종과 함께 선물로 주시는 성령의 은사들은 가정과 교회를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죄와 어둠의 풍랑이 이 시대를 엄습하더라도 오직 성경,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에 서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또한 각 지체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 항상 영원한 보람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신자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