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 저산서원에서
삼월 끝자락 수요일이다.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조경수 벚나무에서 피는 꽃은 구름처럼 일어났다. 봄 한때지만 벚꽃이 피면 진해까지 가지 않고도 꽃 대궐을 이루어 사진으로 몇 장 남겨 지기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재건축이 논의되는 시점의 아파트단지라 간밤 저녁 교통문화원 강당에서 입주민 대상 설명회가 열렸는데 나가보질 못했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가니 밀양댁 안 씨 할머니는 호밋자루를 들고 뭔가 꼼지락거렸다. 여든이 넘은 나이 치매 증상이 가볍게 옴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비결이 꽃 가꾸기인 듯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꽃을 워낙 사랑해 이미 화원을 찾아가 시중에 파는 봄꽃 몇 종을 사다가 꽃밭 가운데 심어 놓았더랬다. 그 덕분으로 단지 내 오가는 이들은 예쁜 꽃을 잘 완상하고 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팔룡동을 거쳐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탔다. 소답동을 지난 창원역 앞에서 내려 유등 종점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같은 강변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보다 운행 간격이 뜸해 출발 시각을 잘 맞춰 타야 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으니 안개가 짙어 가시거리가 짧게 느껴졌다. 전날 강수로 인해 대기 중 높아진 습도 때문인 듯했다.
동읍 사무소 앞에서 주남삼거리를 지난 가월마을에서는 갯버들 잎이 돋는 동판저수지 전경은 안개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달려 대산 일반 산업단지를 두르기까지는 1번 마을버스와 노선이 겹쳤다. 2번은 삼봉마을 입구에서 주천강 천변 상포마을을 거쳐 가술 시외버스 정류장을 지나 모산에서 북부동으로 내려갔다. 그즈음 안개는 서서히 걷혀가기 시작했다.
내가 목표로 삼은 산책 기점은 종점 유등 배수장 못 미친 유청이었다. 유청삼거리에서 내려 한식뷔페 식당을 지나자 창고를 겸한 작은 공장이 나왔다. 들녘으로 펼쳐진 농로를 따라 찾아간 곳은 저산(楮山)서원이다. 저산서원은 김해 김씨 삼현파 후손들이 고려말 판도판서를 지낸 중시조 ‘관’을 주향을 모시고 같은 집안 ‘문숙’과 ‘항’과 ‘서’를 배향으로 삼아 경덕사 사당을 이루었다.
서원은 대개 산기슭에 위치하는데 저산서원을 들녘 한가운데였다. 신도비에 새겨진 김관의 직책 판도사는 고려말 직제로 조선시대 호조에 해당하는 부서 책임자를 지낸 판서에 해당했다. 저산서원도 서원의 일반적 건축 구조는 지켜 전방은 강학 공간이고 후방은 제향 공간이지만 한국 전쟁을 거친 이후 김해 김씨 삼현파에서 그들 선대 조상을 기리는 재실 격으로 세운 사당이었다.
서원 경내를 둘러보니 건축물 연륜이 짧은지라 고색창연함을 찾을 수 없어도 뜰에 세워둔 기념식수 푯말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날 제관으로 참석했을 후손으로 도지사를 역임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다수였다. 유등 일대는 들판으로 야트막한 산이 드묾에도 ‘저산’이라 붙였는데 ‘저(楮)’는 닥나무다. 뽕나뭇과의 낙엽 관목인 닥나무는 종이를 만드는 재료이니 문신임은 짐작했다.
저산서원에서 둑방으로 나가니 고삐에 묶인 커다란 싸움소는 일광욕을 즐기며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들녘에 몇몇 농가는 싸움판으로 데려나갈 덩치 큰 황소를 사육하기도 했다. 벼농사 뒷그루로 당근 재배가 주력 작목이지만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박이나 딸기와 같은 특용작물도 자랐다. 죽동에서 흘러오는 천변을 따라 우암으로 가니 월림산이 나오고 덕현에는 초등학교가 보였다.
들판 가운데 야트막한 산에서 아침 해를 바라보는 동곡마을이고 암자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고개를 넘은 남쪽은 산 이름을 딴 월림마을과 덕현마을이었데, 덕현은 덕치와 같은 의미지 싶다. 고개를 일컫는 한자어로 현(峴)과 치(峙)가 있는데 둘 다 같은 뜻이다. 들길을 더 걸어 25호 국도가 지나는 가술에 이르러 국숫집으로 들어 점심을 때우고 오후에 부여된 과제를 수행했다. 2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