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김대중|
학선 | 조회 172 |추천 0 |2010.12.17
추억 김대중
1974(甲寅)년도에 나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했던 육준삼씨(당시 안양교도소 교도관)가 누구의 생년,월,일,시를 주며 봐 보란다.
시 일 월 년
丙 丙 丁 乙 <- 1935년생 남자
申 辰 亥 亥
일주 병화(丙火)가 매우 신약하다..
금년 甲寅에는 신약을 도와주니 좋은 운이고 지난 壬子, 癸丑년은 水剋火로 나빳을 것이다 라고 하니 육선생이 하는 말이 위의 사람은 국회의원이었던 김상현씨인데 1972(壬子)년에 시월 유신을 반대하여 현재 안양교도소에서 수감생활 중인데 언제 출소하겠냐고 묻는다.
그래서 금년에 출소하겠지요 하고 답을 해 주었는데 육선생이 그 분에게 그대로 말을 전달했단다. 해서 8.15 특사를 기대했는데 8.15날은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피격 사건이 나서 여름에는 그냥 넘어가고 연말에 출소했다.
그런데 2년후쯤 이 사주를 또 보게되는 일이 생겼다.
김상현씨의 부인이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필자의 조카가 여의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김상현씨의 아들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나의 형수와 김상현씨의 부인은 아는 사이였는데 형수가 시동생인 내 소개를 했던 모양이다.
상담을 끝낸 후 2년전에 김의원이 안양 교도소에 계실 때 교도관을 통해 예언을 들은 일이 없었냐 하고 물으니 들은 봐 있었는데 그 분이 선생이냐고 아주 반가워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이후 여사께서는 자주 나에게 오게되었다.
그 후 1980년 어느날 김의원 부인께서 작은 쪽지를 들고 나에게 왔다.
쪽지를 보낸 분은 이희호 여사였고, 쪽지 안에 적힌 분은 김대중씨였다.
당시 1980년 김대중 내란죄로 재판하기 직전이던 무렵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살벌하여 김대중씨는 사형을 받을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이희호 여사도 가택에 연금상태라 나한테 직접 못오고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운 김상현씨의 부인께 부탁하여 남편의 안위를 물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사실로 이여사(나중에 영부인)님은 기독교 신자지만, 남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한치 앞이 안보이자 멀리 계신 하느님보다 가까이에 있는 역술인의 점괘가 필요하셨던 것이다(신앙심 하고는 별개의 문제이니 오해 없으시길...)
사형당하지 않을 것이고 훗날 웃을 일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적어 보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참고로 시중에 돌아다니는 수 많은 가짜 사주가 아닌 이여사님의 친필에 근거한 사주를 적어본다.
시 일 월 년
丙 乙 乙 癸
子 酉 丑 亥
처음에 생시는 한밤중이라 적혀있어 子시인지 丑시인지 애매하여서 워낙 달변가라 식신이 있는 丑시로 보았는데...가면서 그 분의 행적을 보고 또는 육임 원명과식으로 보니 子시가 그의 운명과 합치하여 丙子시로 본다.
대원의견)
시 일 월 년
丁 乙 乙 癸
丑 酉 丑 亥
첫째 부인 차용애 1944년 만남, 45년 4월 결혼, 59년 사망
딸 1명(사망), 아들 2명(김홍일, 깅홍업)
둘째 부인 이희호 1961년 결혼, 2019년 6월 10일 사망
아들 1명(김홍걸)
고 김대중 대통령 사주는 부인과 자식의 숫자를 참조하여 축시로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