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미국에선 한 청년이 음악시장에 등장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이 청년은 당시 흑인들이 주로하던 음악인 '로큰롤'을 시도한다.
하반신을 흔드는 춤으로 10대 ~ 20대 소녀들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막 내뱉듯 한 춤사위는 보는 것만으로도 이유 모를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해줬다.
https://youtu.be/MfrC8PAQtlg
특히 그의 곡 Jailhouse Rock은 정말 큰인기를 얻었고, 마치 엘비스라는 인간을 상징하는 곡처럼 보였다.
그는 세계 최초의 슈퍼스타이자 시대에 반항하는 락스타였지만, 그 때문인지 기성세대들은 그를 천박하고 마치 유해물처럼 간주했다.
대중음악의 전설인 프랭크 시나트라 역시
"엘비스의 음악은 개탄스럽다."
"썩은 냄새가 나는 최음제같고, 젊은이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반응을 조장한다." 라며 신랄하게 비난했었다.
그러나 이런 시선을 바꾼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엘비스의 군입대였다.
당시 미국은 징병제였고, 당연히 엘비스 또한 명단에 포함되어 군대를 가게된다.
당시 로큰롤의 인기는 절정에 이루렀지만, 그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떠났다.
2년의 복무를 마친 후 엘비스에겐 애국자라는 타이틀이 붙여졌고, 결국 기성세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된다.
https://youtu.be/Mi9OV6PAFec
아까 위에서 로큰롤을 대차게 까던 프랭크 시나트라와도 서로의 곡을 부른다.
하지만 그는 당시 매니저이던 '톰 파커' 대령에 의해 7년간 영화 배우일만 맡게 된다.
당시 엘비스의 기분은 최악이었지만, 어쩔수없는 계약에 의해 영화를 7년간 하면서도 OST로 여러 히트곡을 내며,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https://youtu.be/vGJTaP6anOU
이렇게 엘비스가 영화에만 집중하다보니 그 엘비스의 빈자리엔 영국에서 날아온 4인조 남자 밴드인 '비틀즈'가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엘비스는 점점 잊혀지는가 했지만, 그는 영화 계약을 끝마친 1968년, 드디어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화려한 복귀는 TV 스페셜로 방영되며, 당시 미국의 TV 시청률 42%를 달성하며, 여전히 엘비스의 시대라는 걸 보여줬다.
https://youtu.be/u-pP_dCenJA
화려한 복귀가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추락도 있는 법...
그는 영화로 쌓인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풀었었는데....
그러나 음악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의 식사량은 점점 늘어만 갔다...
엘비스는 살이 찌게 되었고, 여러 약물치료도 해보았지만 결국엔 항상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1977년, 그는 158kg이라는 엄청난 몸무게를 달성하기도 했을만큼 상황이 심각해져만 갔다...
결국 그는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집 욕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은 우리나라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다."
"20여 년 전, 그는 전례없고, 결코 필적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갑작스럽게 세계에 등장했다."
"그의 음악은 컨트리와 R&B의 스타일을 융합하여 미국 대중 문화의 얼굴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활력, 반항심, 유머 감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 지미 카터 대통령 -
https://www.fmkorea.com/best/5924861848
첫댓글 모병제도 아니고 징병젠데 군대 갔다왔다고 애국자 되는겨??
제일하우스락 개좋아ㅠㅠㅠㅠㅠㅠ미국 5-60년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