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은 무지하게 깁니다!! 참고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활화산 열혈남아표를 확인하세요~!!! ***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작년 2000년.....
내 재수시절 때 일이다. 유식한 말로 에피소드.....
쉽게 말해 내 폐인 시절때 일이다.....
재수생이라 하면 두문불출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절차탁마해야 도리거늘...
3월.. 꽃피는 봄이 오자마자, 난 미친듯이 XX상가 오락실을 문지방이 닳토록 들
락거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오락실을 출입하며, 슬슬 폐인생활의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예로부터 오락실은 폐인생활의 가장 기본적 교과서라 불리운다.
폐인생활의 꽃! 오락실 생활을 시작하면서,폐인의 기본기를 충실히 다져나갔다.
오락실 생활 40 여일이 지나자, 난 제법 폐인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폐인계엔 나말고도 다른 쟁쟁한 루키들이 많이 입문했지만, 나의 기량은 그들보
다 훨씬 월등했다! 폐인계 선배들의 눈에도 난 군계일학이었다.
난 폐인계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아,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MVP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난 입문동기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다!
난 진정 폐인계의 신동이었다!
내가 몸담았던 오락실엔 여러 쟁쟁한 폐인들이 즐비해있었다.
각계에서 내놓으라하는 폐인들조차, 갓 들어온 날 내심 경계하는 눈치였다..
난 무서운 기세로 일취월장했다. 불과 폐인 입문 40여일만에, 폐인계 준회원에서
바로 운영자 자리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쥔장자리까지 노리는 위치에 오른 것이었으리라.....
난 폐인들 사이에서 언제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었다.
누군가 그 당시 나에게
"폐인이 비전이 있소?" 라고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럼요! 폐인은 폐인하기 나름이라구염~!! 웁~ 스!!!" 라고.....
폐인(廢人)....
참 적성에 맞았고.. 하면 할수록 천직이라 확신했다. 딱 내 필이었다....
폐인이나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다 김 한장 차이였다. 어쨌든 난 분명
오락실에 지독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사실.. 내가 무턱대고 괜히 폐인되어, 미친
듯이 오락실에 들락거린 건 아니다.
만사가 필유곡절이나니.... 다 이유가 있었으리라.....
왕성하게 폐인활동을 펼치고 있던 어느 꽃피는 봄날이었다...
나도 원래는 굳이 홀홀단신으로 그 험난한 폐인의 길을 걷고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어느날... XX상가 오락실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쇼킹 재팬 무삭제판같은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글쎄 한 아가씨가.. 어쩜 세상에나.... 어머 왠일이니~!!
격투게임의 대명사! 남성전용 게임 <철권>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지적인 테트리스도 아니고..깜찍한 바블바블도 아닌..그렇다고 1942도 아니었다!
철권하는 여성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순수한 남자의 대명사인 나한테는 엄청난
파장이었다! 난 내눈을 믿을 수 없었다. 머리 열나 긴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여자였다!
갸날픈 목선.. 좁고 아담한 어깨.. 섬세하고 부드럽게 꺾이...
아,아니다!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다...! 쑥스럽거동~!! 헤헤헤...
아무튼 내 눈앞에서 철권을 하고 있는 사람의 성별은 분명 여자였다! 여자가 철
권을 하다니.. 여자가 철권을 한다는 것은.. 남자가 팬티스타킹을 신고 앞구르기
하는 행위만큼이나 쇼킹한 행위인 것이었으리라. 신기했다. 여자가 철권을...
철권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충격을 넘어서서, 신선함마저 주고 있었다.
정말 후레쉬 우먼이었다! 간만에 보는 쇼킹하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런 기분
은 예전에 영화 <마루타- 통나무 인간> 편을 본 이후로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보니, 꽤 괜찮은 미모의 소유자였다. 칙칙한 오락실과는 전혀 어울
리지 않는 경국지색이었다! 난 뒤에서 조용히 그녀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물론 막무가내로 눌러대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초점흐린 눈빛과 언밸런스한 손짓
에서, 그녀가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두번 연달아 첫판에서 죽고는 약간 어두운 얼굴로 급히 오락실을 나가버
렸다. 참 특이하면서 귀여움을 유발시키는 여자였다.
그런데 집에 왔더니, 처음 본 그녀가 자꾸 아른거렸다. 워낙 인상 깊었다. 철권
하는 것도 특이해서 그렇지만, 꽤나 단순호치의 미인인지라....
그 여자는 뭐하는 여자인지 몰라도, 그 뒤로 오락실에서 못봐도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볼 수 있었다. 오락실에 오는 페이스를 봐선, 분명 폐인 페이스인데...
예쁜 그녀를 폐인으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결코 폐인 필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철권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락이란 게 하면
할수록 진전이 있는 법인데... 언제나 1탄을 넘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단 한치
의 발전도 없었다..늘 1탄이었다... 난 처음 그녀가 연기하는 줄 알았다....
아무튼.. 난 그런..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의 그녀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몰래 나 혼자 가슴앓이하는 거지만...)
사랑을 하면 크게 달라지게 된다고 했던가..
난 그녀를 좋아하게 되면서, 더 이상은 쾌쾌묵은 츄리닝차림으로 오락실을 다닐
수가 없었다. 조금씩 오락실을 갈때면 옷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
었다. 나에게 정말 놀라운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씻기 시작한 것이다!!
큰 마음먹고 머리도 감았으리라...
폐인된 후 6개월만에 재회한 샴푸와 비누는 날 변함없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그래.. 이 자식.. 너 돌아올 줄 알았어.. 으이구~ 이 자식.. 잘 생각했어..!!"
난 점점 나날이 변화해갔고.. 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깔끔했다...
오락실 주인도 놀랐고.. 여러 폐인 동료들도 놀랐다. 갑자기 변한 날 두고 오락
실 폐인들은 내가 의리없이 마음이 변했다며 수근거렸다. 신인상에서 제외되었고
운영자 자리에서 차츰 차츰 준회원으로 하락해버렸다.
운영자 자리는 그저 나에게 한낮 꿈이었다. 일장춘몽이었으리라.....
난 철권 그녀를 좋아하기 위해, 날이 갈수록 깨끗해지고, 깔끔해져 갔다.
너무 깨끗해져서 심지어 청순한 느낌까지 풍기고 있었다.. 진정 클린 업이었다.
난 그녀를 위해 주저없이 폐인의 길을 버리고 위생을 택한 것이다.
난 결국 폐인계에서 강퇴당하고 말았다. 단지 너무 깔끔해졌다는 이유로...
상관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철권 그녀에 대한 애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
애정을 넘어서 애증이 되어 있었다.. 애증...아주 끈적끈적했다.
다시 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이미 엎질러진 야구르트였다...
한번 엎질러진 유산균은 다시 담을 수 없으리라.....
그렇게 말 한마디 못걸고 가슴앓이만 죽어라 하던 나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어느 늦은 밤...
나 또한 철권의 골수팬인지라, 철권에 혼을 빼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
2인용자리에 턱 앉더니 나한테 주저없이 이었다. 난 늘 누군가 이렇게 나한테
도전해오면 이상하게 흥분이 됐다. 누굴까하고 옆을 봤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나한테 이은 사람은 바로 그녀였던 것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언젠가는 이
런 날이 올거라 예상은 해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올줄이야..!!
늘 그녀와의 상상을 꿈꾸곤 했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 상상- 그녀와의 프로젝트 ***
1. 어느 날씨 좋은 날 내가 지적이고 중후한 모습으로 철권을 하고 있다.
2. 그녀가 금촉같은 100원을 넣고, 나한테 도전한다.
3. 예상대로 난 엄청난 실력차로 첫째판을 이긴다.
4. 그녀는 앙증맞은 표정과 어조로 한판만 봐달라고 내 팔을 붙잡고 애원한다.
"한판만 봐주시면 안되염~!!? 어우야~!!"
5. 난 그녀의 자존심이 상하지않게 아주 접전을 하는 것처럼 플레이를 이끌어줘
서 둘째판을 져준다음 그녀의 환심을 산다.
6. 난 일부로 세째판마저 져준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아주 매력적인 어조로
"저의 실력으론 도저히 아가씨를 이길 수 없군요.. 후훗..." 이라고 말하며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라는 걸 보여줘서, 그녀를 무아지경에 빠트린다.
7. 난 그녀와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한다... 웁스~!!
이것이 나의 늘 상상해온 그녀와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프로젝
트를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정말 나에겐 놓칠 수 없는 천재일우였다.
그녀와 첫째판 대결을 펼쳤다. 역시 예상대로 프로젝트 3번이 맞아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번도 적중했다!! 그녀는 날 보며 한판만 봐달라고 말했다.
"아저씨..!! 한판만 봐주세요..." 결코 아저씨가 아닌 난 순간 아주 일시적으로
마음이 상했지만... 뭐, 그래도 프로젝트가 맞아 들어가니 기쁨이 더했다.
난 그녀에게 중저음의 베이스톤으로 멘트를 던졌다.
"네.. 봐드릴께요.... (속으로 웁~스!!)"
물론 "나 아저씨 아닌데..."라는 멘트를 하고 싶었지만, 상관없었으리라....
이제 프로젝트 마지막 7번까진 얼마 안남았다! 내가 그녀에게 마음좋게 져주기만
하면 됐다. 내 캐릭터는 프로레스링을 구사하는 <킹> 이었고, 그녀는 태권도선수
<화랑>이었다.
난 무작정 봐주면 안 될 것 같아, 접전을 벌이다가 져주는 컨셉을 택했다. 그래
야 그녀도 재미를 느끼고, 자존심도 안 상하고 기도 살고.... 난 현명했다!!
난 그녀를 몇대 툭툭 친 후 계속 맞아줬다. 아주 리얼하게... 내 캐릭터 킹은
거의 에너지가 바닥 나있었고, 그녀의 캐릭터 화랑은 에너지가 반도 넘게 남아
있었다. 난 열심히 하는 척하다 죽어줄려고 뒤로 막 도망다니는 척했다. 그러면
순진한 그녀는 막 날 기어히 죽이겠다고 필사적으로 쫒아오며 공격을 시도했다.
그때였다!!
그녀가 회심의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난 좀 더 있다가 극적으로 져줄려고, 그녀의 이번 돌려차기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이게 왠 변인가....!! 이게 왠 오락실측의 농간이란 말인가.....!!!
순간 그녀앞에서조차 씨벌...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내 실수란 말인가! 아님 오락기가 고장이란 말인가..!!
내 캐릭터 킹은 돌려차기를 하려는 그녀의 캐릭터 화랑을 순간적으로 덥썩 붙잡
더니... 그 빌어먹을 필살기에 바로 들어갔다.....
평소 하려고 하려고 해도 죽어도 안 되던 필살기가 순간 정확하게 들어갔다..
내 캐릭터 킹의 필살기는 잡고 돌리기,스플렉스,연속 방아찍기,똥꼬찍기...
쉴새없이 가해지는 연속기였다..미소년 화랑이 이겨내기엔 너무 가혹한 강행
군이었으리라....
킹은 그녀의 캐릭터 화랑을 무슨 마네킹 농락하듯 들었다 놨다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그저 그 빌어먹을 놈의 필살기를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해져 갔고... 그녀의 캐릭터 화랑또한 그렇게 싸늘히 식어갔
다... 난 인정사정없는 킹을 말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야~ 킹!! 이제 그만해...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어우야~!! 제발..."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주 어두운 얼굴로 오락실을 조용히 나갔다..
난 도저히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변명하기엔... 내 필살기가 너무 정교하고 완벽했으리라......
그렇게 평소 하고 싶어도 못했던 그 킹의 필살기.... 난 그녀를 상대로 처음 성
공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녀란 말인가...!! 엄마도 아니구....
그녀는 떠났고...
내 캐릭터 킹은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씨발 킹!! 좋~ 댄다!!" 난 킹을 잠시 비난한 후 전원을 꺼버렸다....
난 그날 이후 그녀를 봐도 그저 말한마디 못걸고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폐인 가슴에 폈던 한떨기 꽃은 그렇게 시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