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최야곱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단순히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간주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조차 영으로 우리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문자에 불과하며 우리 영혼을 죽게 할 것입니다. (고후 3:6)
영의 새로운 법은 우리 밖에서 문자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히 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는 말씀은 바로 영의 새로운 법이 무엇인지를 일관되게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천적인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독특한 명령을 우리는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율법 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명령을 성경은 내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령은 성령을 모신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개가 없는 사람에게 하늘을 날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무리하고 어리석은 명령입니다. 그것은 날지 못하는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명령은 그런 무리하고 어리석은 명령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독특할 수 밖에 없음은 바로 성령을 모시고 있고, 성령을 좇아 살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신비에 속한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매우 일상적인 것입니다. 일년에 한번 정도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삶 속에서 그분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만 있으면 됐지, 성령의 인도하심은 필요없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아주 초보적인 신자이거나, 아니면 성령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오셔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몇 가지 독특한 일을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며(요 16:14),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25) 장래 일을 알리신다(요 16:13)고 하셨습니다.
오래된 간증을 하나를 언급하자면,
과거에 제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있을 때, 훈련이 고되어서 성경도 읽지 못하고 기도도 못하고 그야말로 영적생활이 최악이 되었습니다. 군대 가서 전도 많이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정작 훈련소의 내 모습은 내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책했습니다. 제가 낙심하여 돌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 주님은 저에게 “은혜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짤막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롬 6:14)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힘이 생겼고, 주님의 은혜를 느끼며 눈물이 날 정도의 감격이 내 속에서 흘러넘쳤습니다. 비록 성경도,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논산 훈련소 생활이었지만,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율법을 만들고 그 속에 얽매이며 종교적인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더 이상 성령의 역사는 필요가 없고 오직 성경의 말씀과 그것을 이해하는 지성과 지키려는 의지가 삼박자가 되어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렇게 살아도 사람들 보기에 꽤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과 같으며,
성경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롬 8:5)
자신의 의지와 극기의 노력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은 율법 하에서 최고의 극기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하지 못한 바리새인의 길을 걷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극기로는 완전한 십일조, 금식, 종교적인 여러 행위는 가능하지만, 원수를 사랑함과 용서와 너그러움 같은 것은 극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것으로 그의 생명이 나를 통해 흘러나감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
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진실로 열매맺는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한마디로 잘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 분에게 붙어있음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로마서 7장 6절에서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개역개정판)라고 합니다.
그리고 8장에서 바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고 하였고,
14절에서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영의 새로운 법으로 섬기는 것이란,
바로 성령을 좇아 사는 삶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며 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며,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내 속에서 넘치는 그의 생명이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여기에서 진정한 순종과 성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심지어 주님의 일에 너무 바뻐서 주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화려해보이지만, 실상은 아무런 열매도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높아지고자 하는 야망과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자 하는 욕심이 변장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단지 지식만 쌓아서, 교회 개혁을 논한다면, 그를 통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순종하지 않는 차가운 지식은 결국 자신을 망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솔직히 교회를 비판하는 일은 거듭나지 않은 세상 기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달라야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하나님 앞에 코람데오하려고 해야 하며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넘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첫댓글 윗글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구약의 도덕법까지 폐했다는 전제하에 읽기 바랍니다. 양심에 기록된 성령의 법으로만으로 살아가도 되는가?
윗글이 도덕법(십계명)을 이제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글인가요? 글에는 그런 부분은 나와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만약 도덕법이 폐기되었다고 하면 그는 율법폐기론자 이단이겠죠.
바로 윗글과 연계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숭사리의 확실한 율법관을 새글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