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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묵은 타시라바트(Tash Rabat) 계곡의 유르트마을은 워낙 고지대라서
새벽 04:20 이 되니 벌써 뒷산의 산등성이에는 햇빛이 들고 날이 밝아졌다.
역시 아침이 되어 날이 밝으니, 주변의 산은 초록빛 옷으로 갈아 입고, 소와 양
은 아침 일찍 우리(牢)를 나선다. 한 무리의 양떼들이 벌써 평원의 초지를 거쳐
서 산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평원이라도 군데군데 중간에 물길도랑이 있어 차
가운 물을 피하고, 웅덩이와 구덩이를 돌아서 풀을 뜯으면서 잘도 대장(隊長)
양을 따라간다.
▲ 타시라바트 유르트마을은 고지대라 해가 일찍 뜨는데 양떼들은 바로 풀밭으로 나간다
▲ 양떼들이 아침에 풀을 뜯으러 나갈 때는 대장 양을 따라 무리들이 같이 움직인다
▲ 아침에 양떼를 따라 가보니, 양들은 계속 풀을 뜯으면서 높이 올라간다
▲ 타시라바트(Tash Rabat)골짜기의 높은 곳까지 양떼들이 벌써 올라갔다
그런데 양떼를 따라 나섰던 필자는 이 양떼들이 분명한 규율과 원칙을 지니
고 있음을 알았다. 한무리의 양떼는 대강 30~50마리로 떼를 이루고 있는데,
무리의 양들은 절대로 우두머리 양(羊)보다 앞서서 나가지 않고, 뒤쳐진 양도
20~30m이상의 거리를 떨어지지 않으며, 아침에 산언덕을 오를 때에는 위로
오르기만 하지 내려 가는 법이 없다. 그런 질서를 지키면서도 빠르게 움직이
면서 잘도 풀을 뜯어 먹는다. 그냥 따라가는 필자로서도 양떼와 가까이 가려
면, 뛰어 달려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이동한다.
▲ 아침에 계곡을 바라보니, 맑으면서 깨끗한 가시거리를 보이고 있다.
▲ 산밑쪽에 자리잡은 유르트 뒷쪽으로는 여름인데도 밤새 눈이 더 쌓였다.
▲ 산등성 풀밭에는 일찍 잠이 깨어 우리에서 내달은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 산능선에서 초지와 유르트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소와 양들은 일찍 풀을 뜯고 있다.
한참을 양떼를 쫓아 따라가는데, 양떼들은 급경사의 산등성이 언덕배기로
왼쪽으로 올라가고, 필자는 계곡을 따라 초원을 계속 뛰었다. 마지막 큰 개
울을 건너 <타시라바트(Tash Rabat)>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타시라바
트(Tash Rabat)>란 말의 뜻은 키르기스어로 풀이하자면, "돌(tash)로 지은
요새(rabat = fortified place : 要塞)" 즉 '석성(石城)'이다. 타시라바트(Tash
Rabat)의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 ; 商队旅馆)는 옛날의 <비단길(Seiden
straße =Silk Road ; 絲綢之路)>에서 가장 완전하게 잘 보존된 숙박시설이면
서, 유명한 역사적건축물이다. 구체적인 건축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15세기
이후에는 그곳을 지나가는 여행객이나 행인들에게,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면서
<비단길>에서 쉬어가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유명한 역사 문물의 한
곳이면서, 여전히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로, 부근 산골짜기의 풍광이 빼
어나게 수려(秀麗)하다.
▲ 타시라바트 유르트마을의 뒷산 높은 곳에는 밤새 눈이 많이 쌓였다
▲ 날이 밝아지고 여행객이 정리한 유르트마을 모습
▲ 앞산 편평한 언덕배기에는 마소와 염소들이 모여 열심히 풀을 뜯는다.
▲ 타시바라트 카라반사라이에 다다라 현장과 뒷산을 포커스로 하니 밤새 눈이 흩날렸다.
타시라바트 입구에는 50솜(som/ KGS≒US$1≒한화1000원)의 입장료를 받
는다. 조금 더 올라가니까 왼쪽에 유르트(Yurt)마을이 듬성듬성 몇 곳에 있고,
오른쪽에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가 있다. 타시라바트(Tash Rabat)는
10세기 이전에는 종교적인 상징물이었다가, 동서교역로인 <비단길>의 왕래
가 잦아지자, 여행자 및 장사꾼들의 숙소로 쓰였는데, 15세기에 돌로 건축되
었다는 주장이 가장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역은 현장을
가보고, 거기에 기록된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의 유르트마을을 멀리서 촬영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계곡에서 조망한 사진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해가 돋는 방향으로 바라보고 촬영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뒷면에서 바라보고 언덕과 함께 촬영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뒷면 언덕과 함께 촬영
필자는 타시라바트에 도착하여 건축물과 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영어로 해설을 붙여둔 내역을 모두 읽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적혀있는 내
용을 요약하여 여기에 써두어, 우리 독자들에게 알려드린다. 그곳에 갔다온
여행객들이 그냥 짐작과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책임없이 쓴 글이나, 거
꾸로 그곳에 갔다왔어도 그 내역을 전하지 못하는 여행자들을 대신한다. 아
직 우리나라에는 키르기스여행에 관한 한글판 키르기스스탄의 소개나 제대
로 된 여행기가 별로 없다.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화면을 세워 뒷산과 함께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가 자리잡은 골짜기 전체를 유르트마을과 함께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 관리소 유르트도 보인다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정면에서 약간 간격을 두고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를 측면에서
현재 남아있는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Tash Rabat Caravanserai / 塔什
拉巴特商队旅馆)는 방이 31개인 대상(隊商)들의 숙소인데, 키르기스스탄이 소
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인 1980년에, 버려져서 황폐해 있던 것을 발견하였
다고 한다. 돌로 건축한 숙소는 뒤편은 반 지하이고 전면은 벽을 쌓아서 추운
겨울에 대비한 것 같다. 각 방은 지붕을 돔형으로 하였고, 창문을 내어 환기와
조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밖에서 보이는 돔은 중심 홀에 해당하는 공
간의 지붕이다. 내부에는 견고하게 건축한 두꺼운 벽이 보이고, 오랫동안 사
용하여 마모된 부분도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 상인은 물론 가축까지도 숙식을
하던 공간이 있다.
▲ 타시라바트의 뒷산에 해가 조금 들기 시작한다.
▲ 타시라바트와 근처의 유르트마을에 아침이 왔다.
▲ 타시라바트를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중세기 지은 석조건물로는 너무 훌륭하다
▲ 타시라바트의 정면 가까이에서 촬영
<타시라바트(Tash Rabat)>는 15세기에 지어진 석조건물의 여행자 숙소인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로 잘 보존되어 있다. 키르기스의 나린주(Naryn
Province / 纳伦州)의 아트바쉬군(At-Bashy District / 阿特巴希郡) 타시라
바트(Tash Rabat / 塔什拉巴特) 계곡에 있는데, 필자가 머무른 숙소에서 약
700~800m 떨어져 있어, 계곡상류로 한참 올라가서 해발 3,200m지점에 위
치하고 있다.
▲ 타시라바트의 정면 입구를 촬영
▲ 타시라바트의 내부에 들어가서 현장을 하나하나 촬영
▲ 타시라바트의 내부에 말이 쉬는 곳
1888년 연초에 러시아의 의사이면서 여행가인 리콜라이 르보비치 질란드
(Nicolay Lvovich Zeland)는 그것은 원래의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이
거나 불교수도원이라고 주장했다.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에 키르기스
과학아카데미 산하의 역사학회에서 연구에 착수하여 타시라바트에 있는 건
축물은 발굴 중에 비록 기독교적인 신성한 내용을 담은 인공물로서 발견되
지는 못하였지만, 원래 10세기에 네스토리우스 수도원으로 만들어진 것이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 타시라바트의 각 방으로 통하는 내부 통로
▲ 타시라바트의 내부통로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 석조건물의 내부 조명장치
<타시라바트>는 키르기스의 중요한 남북간선도로의 약간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타시라바트 남쪽에는 차티르쿨호수(Lake Chatyr-Kul)와 토루가트고
개(Torugart Pass)가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코소이 코르곤(Koshoy Korgon)
이 있는데, 어느 시대에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폐허가 된 요새이다. 이
지역을 돌아보려면, 하이킹이나 승마트레킹으로 돌아보게 되는 중심지역이다.
타시라바트(Tash Rabat)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 계곡이나 가까운 유르
트캠프에 머물면서 이런 곳을 돌아볼 수 있다.
▲ 타시라바트의 내부시설 - 석조건물조명
▲ 타시라바트의 내부현장 - 조명
▲ 타시라바트의 내부모습을 보고나와서 바깥정면을 보면 대조적이다.
아마도 10세기이전 시대에는 기독교 수도원이었는지도 모른다. 타시라바트
(Tash Rabat)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는 <비단길(Seidenstraße = Silk
Road / 絲綢之路)>의 중요기착지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원래는 산속에 건물
의 일부가 파묻힌 형식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건물을 짓는 굴착공사를 시작
하였는데, 산사태로 건물 뒷부분이 반쯤 땅 속에 파묻혀져 버려, 그냥 건물을
짓는 작업을 계속 한 것이다. 이곳은 키르기스와 중국의 국경이 맞닿는 토루
가트고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 현대에도 타시라바트에서 아침 일찍이나 저녁에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 축조물을 먼 곳에서 보면 뒷산에 반쯤 묻혀있다.
▲ 아침햇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타시라바트와 계곡의 모습.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Tash Rabat Caravanserai / 塔什拉巴特商队旅馆)
는 중앙홀의 가운데는 구멍이 있고, 31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는 구조물이다.
각방은 돔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사각형의 프레임에서 돔에 이르기까지 크기에
맞춰 ‘든모홍예(a squinch)’ 건축술을 기용하여 이행형식(移行形式)으로 되어
있다. 타시라바트(Tash Rabat / 塔什拉巴特)는 완전히 부서진 돌을 석고분쇄
기로 점토모르타르를 다루듯이 밀봉조인트로 건축작업을 마무리하였다.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의 중앙돔 대형홀 천장에는 조명 구멍이 뚫여있다.
▲ 타시라바트의 내부현장 - 석조건물의 천장을 통한 조명장치가 놀랍다.
▲ 타시라바트 카라반사라이 내부에서 본 것과 바깥 전체모습은 대조적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역사적 도시인 타시라바트의 숙식용 복합건물인 카라반
사라이(caravanserai)는 15세기에 지어진 것인데, 고대 중앙아시아에서 중
국으로 통하는 무역로의 중심지였으므로, 상인들이나, 외교사절, 여행가 및
방랑자들의 휴식 장소로 쓰였다. 석조건축물로는 가장 큰 구조를 지녔으며,
그 시대의 중앙아시아 건축술에서 도입된 기술로 축조된 것이다. 건축술 뿐
만 아니라 그 규모와 건축재료도 놀랄만한 것인데다, 특별한 레이 아웃을 기
반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태고적부터 이어져온 황무지에다가, 사
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는
아직도 때묻지 않고, 그 당시의 건축기술에 대해 도저히 이해불가하면서 난
공불락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라고 할까?
▲ 타시라바트카라반사라이를 둘러보고 근처상점에서 기념엽서 매입
▲ 타시라바트 내부를 다 살펴보고 나오는데, 핀란드부부여행객이 사진촬영요청
▲ 타시라바트 전체와 주위를 포함한 모습을 담아 보았다.
타시라바트의 카라반사라이를 관람하고 나오니, 현지 키르기스인이 말을 타
고 앞장을 서서 인도하고, 그를 따라 자전거트레킹을 하는 4명의 서양여행객
을 만났다. 대단히 용기있고, 힘이 많이 드는 자전거여행이라 한편으로 부럽
고, 또 한편으로는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자전거트레킹하는 사람이 걱정되기
도 한다. 그래도 젊음이 부럽다.
▲ 키르기스인 마부 한사람을 길잡이로 한 자전거트레킹팀을 만났다
▲ 타시라바트 계곡의 오프로드를 자전거로 오르는 젊은이
▲ 타시라바트계곡의 그 차거운 물을 발을 담그고 건너는 젊은이
▲ 타시라바트를 거쳐서 중국으로 자전거여행을 계속할 거라고 말한다.
▲ 타시라바트(Tash Rabat)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 사진과 계곡
◀ 타시라바트(Tash Rabat ; 塔什拉巴特) ▶
위치지역(位置地域 ; Location) : 나린(Naryn)州 아트바쉬(At-Bashy)郡
경위도좌표(緯經度上座標 ; Coordinates) : 40°49′23″N / 75°17′20″E
건물형태(建物形態 ; Type) : 대상(隊商) 휴식처 및 숙소(Caravanserai)
축조시기(築造時期 ; Founded Age) : 15세기(15th century)
건물관리(建物管理 ; Ownership) : Tursun Ayilchyeva (caretaker)
보존형태(保存形態 ; Conserved Type) : 역사문화유물(Hisroric Culture Artif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