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는 День Победы라 불리는 5월 9일 전승기념일이 가장 중요한 국경일입니다.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 초대규모의 전쟁이라고 해서 2차 세계대전을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위대한 조국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민족 2700만의 희생으로 조국을 지켜냈다고 해서 전쟁승리를 아주자랑스럽게 여깁니다. 1812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략을 격퇴시킨 전쟁을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조국전쟁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 Вели́кая위대한 이라는 형용사를 추가해 대조국전쟁이라고 호칭합니다. 대조국 전쟁은 유럽에 대한 푸틴의 감정을 형성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유럽국가들끼리 벌어진 전쟁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나치 독일을 패퇴시키는데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게 러시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친이 참전용사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매년 5월 9일이 되면 애국심이 묻어나는 격정적인 연설을 합니다. 푸틴은 전쟁에 참여한 노병들을 매우 존중합니다. 참전용사들은 누구든 푸틴에게는 영웅이자 애국자입니다. 한번은 행사가 끝나고 외국국가원수와 나란히 걸어가다 백발의 노병이 반갑게 접근해 오자 곁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전승절 행사에서 푸틴은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 무르만스크에서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까지 러시아 전역에서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돼 파시스트를 물리쳤다는 늘 언급합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영자지 Kyiv Independent가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5월 9일까지 전쟁종식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가 나치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날이 바로 5월 9일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특수작전의 목적이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라고 여러차례 강조해왔습니다. 러시아측은 지난 한달동안 민간인이 아닌 나치를 타격목표로 삼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아조프 대대가 핵발전소를 폭파시킨 뒤 그 책임을 러시아에 뒤집어 씌우려 하는 것을 알아채고 핵연구소를 미리 제거했다고 말했습니다.미국의 뉴스위크지는 푸틴이 주장하는 비나치화가 프로퍼갠더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네오나치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준동은 사실이라는 NBC뉴스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뉴스위크에 따르면 Svoboda,자유라는 단체의 지도자도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계열의 유태인 마피아에 조종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유태인이긴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역사의 밝은 시기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National Guard 산하 아조프 대대가 밝힌 소름끼치는 국가목적도 뉴스위크는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열등한 민족과 유태인을 제거하는게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목표라는 겁니다.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는 핵분열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은 G20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벨기에 브라설에서 NATO와 G7지도자와 만난 조 바이든은 기자회견에서 G20에 대해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러시아를 G20에서 제외할 생각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오늘 제시한 아이디어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주최국인 인도네시아나 다른 나라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참석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느닷없이 동유럽의 빈국 우크라이나가 G20에 참석할 자격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G20에 대해 바이든은 아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상식조차 없이 횡설수설하고 있습니다. G7은 국제사법재판소의 러시아의 전범행위 조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맘대로 해보라는 스탠스입니다. 사실 전세계가 푸틴과 러시아를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나라가 훨씬 더 많고 인구도 압도적입니다. 게다가 산유국등 자원부국의 대다수는 러시아편입니다.서방의 제재 움직임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장은 저들이 진정한 하이브리즈전,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말했습니다.나치독일이 사용한 용어를 유럽정치인들이 이제는 유럽정치인들이 사용하고 있다면서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대놓고 러시아 경제와 나라자체를 파괴하고 말살하고 목조르려 하고 있다면서 법은 안중에도 없는 제재를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방이 러시아에 훈계해 왔던 표현의 자유, 시장경제, 사유재산의 불가침성, 무죄추정원칙을 깔아뭉개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구는 필요에 따라 자기네들의 원칙을 버린다면서 러시아는 고립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 우호국, 동맹, 파트너들도 많고 모든 대륙에서 같이 일하는 협의체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절대다수의 나라들이 서구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절대다수의 나라들이 UN헌장에 명시된 개별주권국가의 평등성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바이든과 젤렌스키가 EU에 대해 강한 제재를 요구했지만 유럽각국은 동상이몽입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천연가스는 루블로 결제하라고 요구하자 겁에 질렸습니다.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으면 경제가 멈춰버리는 게 현실이라 제재라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에너지는 해오던 대로 구매한다는 입장입니다. 벨기에가 에너지 수입중단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독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는 식량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Bread Basket인 러시아, 우크라이나로부터 밀수입이 차질을 빚을까 걱정입니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전쟁중이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수 있도록 하면 안되겠냐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사에서 제재를 당해서 망한 나라는 없습니다. 대러시아제재는 아주 희한한 제재입니다. 정작 제재를 당하는 쪽은 살림살이가 괜찮은데 제재를 가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는 서방측의 제재가 좀 늦은 감이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그동안 러시아군은 키예프를 포위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지만 최근 키예프 동부의 러시아군은 후방으로 55킬로미터나 후퇴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은 이제 전세를 역전시켰다고 고무돼 있습니다.우크라이나 영자지 Kyiv Independent는 3월 25일까지 러시아군의 손실을 보도했습니다. 16,00명의 병력, 115대의 항공기, 125대의 헬리콥터, 561대의 전차, 291대의 야포, 1625대의 병력수송장갑차가 격파됐다고 전했습니다.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아조프 대대를 섬멸하기 위한 러시아군의 집중포격으로 도시의 90%가 초토화됐습니다. 이제 주민들 가운데는 아사자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10억달러 규모의 인도적 원조를 약속하는 한편 러시아에 대해서는 추가로 제재한다는 방침입니다. 미국과 NATO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함미사일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젤렌스키는 G7에 대해 러시아의 군사력을 멈추기 위해 제재조치의 강도를 높이라면서 이는 식량위기나 정치적 안보문제에 대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훈계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젤렌스키는 또 헝가리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EU가입을 막지 말라고 호통쳤습니다. 6:57젤렌스키의 요구는 너무나도 당당합니다. 맡긴 물건 내놓으란 식입니다.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해 스팅어 대공미사일과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요구했습니다. 하루에 500기씩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재블린 미사일의 경우 NATO동맹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물량이 5만기입니다. 100분의 일을 매일같이 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재블린 미사일의 최대 단점은 1발당 가격이 한화로 2억원 정도의 고가라는 점입니다. 전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NATO전체의 전차대수가 2만대 가량인데 이 가운데 100분의 1인 200대를 내놓으라는 황당한 요구도 한 바 있습니다.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내 바이오랩과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됐습니다. 헌터 바이든의 투자펀드가 바이오랩에 24억 달러의 금융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입니다.이고르 키릴로프 러시아군 화생방전 사령관은 미 정부기관과 우크라이나 바이오랩간의 거래내역이 담긴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거래구조는 현재 미국지도부, 즉 바이든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관계된 투자펀드사로 헌터 바이든의 Rosemont Seneca를 직접 지목했습니다. 이고르 키릴로프 사령관은 이 같은 거래가 미 펜타곤의 통제하에 이뤄졌다면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우크라이나간 공모관계를 제시했습니다.미 백악관은 이에 대해 크렘린의 음모론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부분이 가짜 주장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가 미국과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뒤집어 씌울 생물학적 공격의 전조라고만 했습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펜타곤이 통제하는 26개의 바이오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오히려 객관적으로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관측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던 바이오랩 관련정보를 분쟁초기에 급히 삭제했습니다. 미국은 전세계 30개국에 336개의 바이오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일본관계가 더욱 험악해지고 있습니디. 서구의 대러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럭셔리상품의 금수조치와 함께 자산동결대상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에 대해 평화조약교섭중지를 선언한 러시아는 쿠릴열도에서 3천명이상의 병력과 차량수백대가 참여하는 군사연습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일본은 추도일에도 누가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는지를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그는 일본교과서에도 미국이 원폭투하로 저지른 학살행위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진실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비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일본은 미국을 추종하고 서방제국은 역사인식을 왜곡하고 있다는 그의 지론을 전개했습니다. 0:50 그는 일본이 미국을 과도하게 배려한 나머지 러시아국민에게 엉뚱한 어필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말해 전쟁 말기 원폭으로 그렇게 미국에 당해놓고 왜 러시아를 적대시하느냐는 겁니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지는 우크라니아 전역에서 자행돼 온 인종주의와 네오 나치즘의 잔학행위를 서방세계도 잘 알고 있으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디고 밝혔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를 위한 특수군사작전을 게속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주요도시에서 자행되고 있은 온갖 잔혹행위를 담은 동영상과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폭로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무고한 사람들을 전신주나 나무에 테입으로 묶어놓고 약탈자, 러시아의 간첩, 사보타지 행위자란 종이을 등에 붙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푸트니크지는 이 같은 비인도적 행위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와 네오나치 그룹의 소행이라고 말했습니다. 런던에 있는 외교전문가로 Bow Group 씽크탱크의 국제관계 위원회 의장을 지낸 아드리엘 카손타는 이 같은 사진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프 길거리 전신주에 여러 여성들이 테이프로 묶여 있는 모습입니다. 이 여성들의 얼굴은 스프레이칠을 당했습니다. 스프레이 색과 노란 테입은 우크라이나 국기입니다. 일가족이 전신주 하나에 묶여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중공 문화대혁명당시 홍위병들이 자행한 만행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를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법에는 이 같은 잔학행위를 금지한다는 규정조차도 없습니다. 무법천지의 나라가 우크라이나입니다. Mob Justice 군중심리에 따른 린치가 묵인되는 나라입니다. 전신주에 투명테입으로 묶여 있는 이 남성의 등에는 marauder, 약탈자란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아조프 대대는 러시아계 주민이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들을 이처럼 묶어놓고 러시아의 간첩, 사보타지분자로 낙인 찍고 있습니다. 중공이 문화혁명때 지주, 자본가, 반동이란 낙인을 찍어 무고한 이들을 탄압한 것과 같습니다. 이 같은 장면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이 드센 하리코프, 르비프, 체르카시, 드네프로페트롭스크등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테입으로 묶어놓는 것도 모자라 채찍질도 하고 있다고 스푸트니크지는 보도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구미디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이 같은 명백한 인권침해를 좀도둑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혼내주고 있다는 식으로 축소시키고 얼버무리고 있다고 스푸트니크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오래됐다는 사실은 서방측의 독립취재에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에 점거된 바 있는 루간스크의 한 빌딩 지하실에는 고문실도 존재했었습니다. 러시아계 주민들이 고문을 받다가 죽어갔고 살아있던 이들은 우크라이나 군이 철수하면서 사살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또 가장 악명높은 우크라이나내 고문시설로는 마리우폴 국제공항내 고문실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조프 대대가 직접 운영했던 마리우폴 국제공항의 고문실은 도서관이라는 암호명으로 통했다고 스푸트니크지는 보도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3월 25일 서방의 Cancel Culture가 천년된 러시아의 문화유산에도 촉수를 뻗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 서구세계가 고의로 차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구의 지배 엘리트들이 러시아에 대한 Cancel Culture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가 컨서트 포스터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러시아 작가들의 문학작품도 금지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1940년대 나치독일의 책불태우기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가장 이익을 보고 있는 나라는 중공입니다. 미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시절의 무역제재를 거의 풀어줬습니다. 러시아편을 들면 후과가 있을 것이란 메시지 직후 느닷없이 보복관세를 해제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와 정반대로 대중공포위망을 풀고 러시아를 타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공과 러시아는 군사동맹을 맺은 적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목린우호관계, 가까운 이웃끼리 화목하게 지내자는 수준입니다. 러시아와는 말 그대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에너지를 국제시장가보도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고 있습니다. 중공의 아킬레스건인 식량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면 됩니다. 또 2년동안 국경분쟁을 벌여온 인도와도 이제 화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인도와 본격적인 화해가 이뤄질 경우 중공은 타이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중공-러시아간에 뭔가 균열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들은 그저 서구세계가 상상하고 있는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현실과 희망사항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라는 방향으로 현실을 도외시하면 판단을 그르치게 됩니다.
마리우폴 극장 폭격의 배후?3월 17일, 마리우폴 극장 내 민간인 1,200명에 대한 폭격에 관한 뉴스 보도는 이 지역 민간인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방으로부터 더 많은 무기를 받을 수 있도록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서다.
기자명에릭 주세
입력 2022.03.25 07:15
마리우폴 극장 폭격 배후에 아조프 부대가 있었는가? 아니면 러시아였는가?
월요일에 마리우폴 극장을 촬영한 인상적인 위성 이미지 - 이미지는 극장 앞과 뒤에 큰 흰색 글자로 러시아어로 "어린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음을 보여준다.
3월 16일 수요일, 러시아의 타스 통신은 "아조프 부대 무장세력이 마리우폴 극장 건물을 폭파했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러시아 국방부는 아조프 민족주의 부대 무장세력이 폭발물로 마리우폴 극장 건물을 폭파했다고 수요일 발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민간인들이 인질로 잡힌 극장 건물 공습에 대한 키예프의 비난을 반박했다.
“3월 16일 낮 동안 러시아 공군은 마리우폴 경계 내에서 지상 목표물에 대한 공격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확인된 정보에 따르면 아조프 민족주의 부대 투사들이 극장 건물을 조작·폭파하는 유혈 도발을 반복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다음 날 CNN은 "러시아가 폭격한 마리우폴 극장 잔해에서 생존자들이 나온다"는 배너를 내걸고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시의 한 극장에 대피한 사람들이 건물 폭격 후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 도네츠크 지역 수장이 목요일 밝혔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포위하는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극장에 대피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CNN은 러시아 국방부에 "3월 16일 낮 동안 러시아 항공기는 마리우폴 경계 내 지상 목표물에 대한 공격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분명히 CNN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만 관심이 있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선전일 뿐이다.
‘여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하고 완벽하게 문서화된 설명을 참조하라. ‘여기에서’ 타스통신은 옳았고 CNN은 틀렸다고 확신한다. 나는 링크된 모든 출처를 확인했으며 매우 신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이치 벨레(독일 공영 방송), 뉴스위크, 더 네이션, 스탠포드 대학 및 국제 앰네스티와 같은 일부 보도는 완전히 주류언론일 뿐이다.
다음은 주류가 아닌 어느 출처로, 우크라이나의 극동 돈바스 지역에 있는 분리 공화국의 게시물이며 3월 12일자 발표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의 도발에 실패한 후 두 번째 도발을 준비하는 젤렌스키는 서방 언론을 위한 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군이다... [폭파될] 장소가 러시아 연방에 의해 폭격되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마리우폴 여성, 어린이 및 노인을 드라마 극장 건물로 데려갔다. ... 침묵하지 마라! 이 [준비]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친러시아 측이 이를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러시아가 그 극장을 폭파할 이유가 있었다면 우크라이나 정부의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은 고려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분리된 공화국은 인근 마리우폴의 거주자로부터 사전 경고를 받았다. 아마도 그 극장에 인질의 친척(들)이 억류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마리우폴 민간인의 소집이 일어났다. 마리우폴은 (그리고 항상) 키예프의 정부에 의해 통치되었다. 따라서 이 민간인 학살은 분명히 그곳 정부(우크라이나)에 의해 수행되었거나 아니면 러시아 침공군에 의해 수행되었다. 문제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그렇게 했다면 친러시아 분리주의 공화국이 3월 12일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러시아는 특정 건물을 폭파하기로 선택했을까? 군사적 가치는 없었고 그 안에는 민간인만 있었다. 그들은 3월 12일부터 그 안에 있었다.
과연: 왜 민간인만 거기에 있었을까? 왜 도시를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그곳에 없었을까? 서방의 더 많은 사람들을 속여 우크라이나 정부에 더 많은 무기를 보내 침공하는 러시아 군대를 죽일 수 있게 하는 것 외에 어떤 군사적 목적이 있었겠는가?
그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아조프 부대가 통제하고 있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돈바스 분리지역 바로 외곽에 있는 도시로, 시민들은 2010년에 있었던 선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에 대한 2014년 2월 강제 전복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행정부는 야누코비치에 대한 2013년 "마이단" 시위를 준비하고 이끌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고도로 조직된 인종차별주의자-파시스트 반러시아 "우익세력"과 기타 극우세력을 고용했으며, 이후 그들은 미국이 새로 세운 쿠데타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최고 국가안보 직책에 임명된다. 다음은 2014년 5월 9일에 마리우폴 주민들이 대통령 전복에 대해 평화적으로 항의하는 모습과 새로 설치된 정부의 경찰에 의해 총에 맞는 동영상이다.
친 쿠데타 정권(즉 친미) 우크라이나 국영 신문인 키예프 포스트는 "아바코프는 경찰과 분리주의자 간의 충돌 이후 마리우폴에서 21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라는 표제를 내고 이 새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보도했다.
현재 도네츠크 주 올레 리아슈코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크렘린의 지원을 받는 "테러리스트"가 마리우폴 경찰청장 발레리 안드로슈추크를 현지 경찰본부에 대한 총격전에서 납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끝까지 싸웠”지만 “테러리스트”가 그를 “SUV 차량에 의해 부서진 불타는 경찰서에서 데려갔다”고 리아슈코는 썼다. "전투병들은 지프 운전자를 칼로 찔르고 안드로슈추크를 차 트렁크에 넣고 알 수없는 방향으로 운전했다."
리아슈코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극우 정치인 중 한 사람이자 미국이 세운 정부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그래서 리아슈코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국 어디에서든 저항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기 위해 "대테러 작전"을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쿠데타 정권에 저항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였다.) 이것이 사실상 우크라이나 내전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훨씬 더 이른 2014년 5월 2일 오데사(우크라이나 중남부)에서 새 정부의 살인적인 성격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우익 부문은 노동조합 건물에 알 수 없는 수의 시위대를 가두고 산 채로 불태웠다. 그 중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의 개요가 여기*에 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즉시 내전이 시작된 2014년 5월 9일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남동부 전역에서 시위를 촉발했다.
따라서 현재의 전투에서 침공한 러시아군과 오늘날의 우크라이나군(미국이 부과한 우크라이나 정권의 수호자) 간의 전투에서 인간방패가 우크라이나 미국 대리군를 보호('차폐')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3월 17일, 마리우폴 극장 내 민간인 1,200명에 대한 폭격에 관한 뉴스 보도는 이 지역 민간인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방으로부터 더 많은 무기를 받을 수 있도록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서다.
저자: 에릭 주세(Eric Zuesse), 탐사 역사가, 그의 다음 책(곧 출간 예정)은 ‘미국이란 악의 제국: 히틀러의 사후 승리와 사회과학이 변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미국과 동맹국의 억만장자들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세계를 장악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카르텔은 대중을 속이는 '뉴스' 미디어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 대한 통제력으로 세계의 부를 추출한다.
러시아어로 우크라이나는 변경(borderland)이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다. 러시아제국의 중심지인 페테르스부르크(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일대는 이민족과 대치하는 변경지역이었다.
이 보통명사가 나라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17년 2월 혁명 직후였다. 니콜라이 2세 황제가 퇴위하고 러시아 남부 지역의 민족주의자들이 중앙 라다(Central Rada)라는 의회를 소집해 국가 창설을 논의했다. 1917년 11월 중앙 라다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Ukrainian People's Republic)을 수립했는데, 이 나라가 우크라이나의 시초다. 중앙 라다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이자 역사학자인 미하일로 흐루셰프스키(Mykhailo Hrushevsky)에 의해 주도되었다.
곧이어 러시아에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볼셰비키들은 1차 대전 교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와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에 우크라이나는 독일 점령지에 포함되었다. 1차 대전과 혁명, 반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의 여러 국가들이 생성-소멸되었고,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이 최종 승리했다. 우크라이나는 1922년 결성된 소련(USSR)에 가입했고, 69년 후 1991년에 독립했다. 소련 시절의 우크라이나는 공화국이자, 유엔 회원국이었으나 지방정부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으로 존재한 기간은 러시아 혁명기의 4년과 1991년 독립 이후 30여년에 불과하다. 이 객관적 사실은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해 범러시아주의자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라고 주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우크라이나 위치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는 면적이 60만㎢으로, 대한민국의 6배, 한반도를 합친 면적의 3배나 되며, 인구는 4,000만명을 웃돈다. 과거 소련의 13개 공화국 가운데 러시아 다음으로 큰 공화국이었다. 언어는 우크라이나어, 종족은 우크라이나인으로 분류되지만, 광의로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족이며 러시아어족에 해당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국이라고 강조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1천여년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러시아인과 구분되는 차별화된 종족이라고 주장한다. 두 나라의 분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중세국가였던 키예프 공국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키예프 공국이 몽골에 의해 멸망하고 슬라브족은 흩어졌다. 남부 슬라브족은 몽골,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북부 슬라브족은 모스크바 공국에서 출발해 러시아 제국으로 다시 일어났다. 1천년 가까이 남과 북의 슬라브족은 다른 역사 과정을 거쳤고, 남부 슬라브족은 17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에 통합되었다.
제정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슬라브족을 멸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식량공급기지로 활용했으며, 농민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1861년 농노해방령 이후에도 제정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높은 토지세와 이자를 부과하며 수탈했다.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원성이 높아갔고, 지식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지식인들은 대러시아에서 독립하자는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억압하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에서 민족 문화운동이 뿌리를 내려 갔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코스토마로프(1814~1870)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싹을 틔운 인물이다. 그는 키예프 대학 역사학 교수로 우크라이나 분리주의를 지원했다는 혐의로 시베리아 유형을 가기도 했다. 페테르스부르크 대학 교수로 복귀한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해 방대한 저술을 남기면서, 남부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과 북부 러시아인(러시아인)은 서로 다른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미하일로 흐루셰프스키(1866~1934)는 우크라이나 민족을 만들어낸 역사학자다. 아버지 세르히 흐루셰프스키는 언어, 민요, 전통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적인 모든 것에 깊은 애착을 가져 이를 아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고, 아들 미하일로는 어린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의 민족감정을 키웠다. 미하일로는 키예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후 10권으로 구성된 역사서 ‘우크라이나-루스의 역사’를 집필했다. 이외에 ‘우크라이나 문학의 역사’,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에 대한 개요’, ‘삽화로 보는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집필했다. 1917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의회인 중앙 라다의 의장을 역임했고, 볼셰비키에 의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망명했다가 1924년대에 우크라이나로 귀환했다.
푸틴 대통령도 흐루셰프스키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조장한 인물로 지목한다. 푸틴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흐루셰프스키가 우크라이나 문화와 언어, 독자성을 강화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이러한 활동이 러시아 국수주의에 대항하게 되었다”고 했다.
니콜라이 코스토마로프(왼쪽)와 미하일로 흐루셰프스키(오른쪽) /위키피디아
러시아는 자신을 대러시아,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 벨라루스를 백(白)러시아로 부르며, 세 나라가 러시아 민족의 3형제라고 부른다. 1939년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하며 얻은 영토를 우크라이나에 붙여주었으며, 1940년엔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를 우크라이나에 합쳤다. 이런 것들이 형제국가였기에 가능했다고 푸틴은 주장한다.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르 체제 이전부터 한뿌리에서 뻗어나간 자연스런 관계”라며 독립된 국가로서 인정하길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올린 글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형제국가로 동슬라브족이라는 한 민족임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푸틴의 대러시아주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은 과거 서유럽의 제국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세기초에 영국이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억누르고, 프랑스가 알제리를 억압하던 구태를 새로운 세기에 러시아가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인에게는 우크라이나가 파시스트 군벌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주장한다. 언론을 통제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유대인이고, 우크라이나는 다당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2019년 선거에서 젤렌스키는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다. 푸틴은 러시아인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푸틴은 또 돈바스(Donbas) 지역에 러시아인의 봉기를 부추겨 우크라이나 내부를 흔들고 있다. 영국이 북아일랜드에 스코틀랜드 출신 신교도를 흔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1991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독립 선언을 환호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푸틴의 주장대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한뿌리임은 역사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같은 슬라브족이지만, 러시아와 따로 독립해 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극도로 혐오하게 된 계기는 1930년대 기근이다. 1930년대 후반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단농장화 정책과 대기근으로 우크라이나 농민 250만~350만명이 굶주림으로 아사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때 소련 당국은 집단농장화를 반대했거나 민족주의 정책을 지지했던 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숙청하고, 농민 반발을 통제하기 위해 마을을 통째로 강제이주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로 우크라이나인들은 2차 대전중인 1941~44년에 나치 독일을 해방자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스탈린은 이를 반역행위로 보았다.
1980년대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yov)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장악력이 약화되자, 1991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선언법을 채택하고 1991년 12월 1일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법을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국민투표에서 전체 유권자의 84.18%인 3,189만명이 투표에 참가해 92.3%의 지지로 독립이 가결되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와 같은 민족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와 함께 하기 싫어한다.
첫댓글 좋은 자료이네요.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 ̄)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