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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ランプ大統領が蘇らせた「150年前の保護貿易」…その末路は戦争だった / 11/30(日) / ハンギョレ新聞
「略奪的」貿易の世界史
貿易の歴史は詳しく見てみると決して美しくない。自由貿易は現代に入ってまるで空気のように日常的なものになったが、近代史の大半を支配したのは保護関税の障壁と略奪、そして植民化だった。保護貿易主義は数多くの貿易戦争を招き、国家間の軋轢(あつれき)の要因になったうえ、軍事衝突にまで拡大した。ドナルド・トランプという希代の扇動家の登場は、貿易を再び美しくない時代へと巻き戻している。トランプ大統領は80年間続いてきた多国間主義と国家間の非差別という国際貿易秩序の根幹を破壊している。その代わりに力の論理が幅を利かせている。
■ トランプ大統領の40年来の「関税への執着」、18世紀の重商主義に基盤
トランプ大統領の貿易政策は重商主義に基づいている。16〜18世紀に西欧で広がった重商主義は、特定の地域や商品交易に対する排他的統制権を掌握し、独占利益を享受する体制だ。貿易自体がゼロサムゲームと同じであるため、利権をめぐり奪い合いの争いが起きた。金・銀本位制の下では、貿易赤字が発生すれば、国富である金と銀の流出が実際目に見える形で行われるため、各国は敏感に反応した。当時、西欧世界が略奪と戦争で綴られた理由だ。
トランプ大統領は今年4月2日、世界を対象に高率の関税賦課計画を一方的に発表した。「今日は解放の日」と宣言して始まったトランプ大統領の50分間にわたる露骨な内容の演説は、重商主義的論理にまみれたものだった。「数十年間、我々は友好国であれ敵であれ、略奪され、強奪され、強姦され、収奪されてきた。彼らは我々の雇用を奪い、工場を略奪した。我々は50年以上も奪われてきたが、もう二度とそのようなことは起きないだろう」。第2次世界大戦以降、自由貿易の秩序が定着し交易の相手が互いに「ウィンウィン」となるポジティブサムに変わったにもかかわらず、トランプ大統領はこれを全面否定している。この50年間、米国は実質1人当たりの国内総生産(GDP)は140%以上増加しており、自由貿易の最大の恩恵国の一つに挙げられる。2024年の1人当たりGDPは8万5810ドルで、今もなお世界最大の富国の座を占めているのも、このような理由からだ。米国が略奪されたという話は、真実とかけ離れている。
演説はこのように続いた。「多くの場合、貿易の面では友人の方が敵よりもひどい。このようなひどい不均衡は、米国の産業基盤を崩壊させ、国家安全保障まで脅かしている」。トランプ大統領が韓国や日本のような同盟国に高率関税を課し、数百兆ウォンに達する資金投資まで強圧した名目はこのように作られた。これまで貿易赤字で「奪われた」金を取り戻すということで、21世紀版「新重商主義」と言える。
トランプ大統領の誤った認識は40年近く前にさかのぼる。41歳だった1987年9月、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紙などに自ら9万4千ドルをかけてこのような内容の全面広告を載せた。「同盟国として我々が提供する保護に対する見返りを、日本、サウジアラビア、そして他の国々に払わせましょう。我々が作った最高の『黒字マシーン』(貿易黒字国を指す)から返してもらい、米国の農業者、病人、ホームレスを助けましょう。米国人ではなく、この富裕国に『税金』(関税)を課しましょう」。貿易黒字国に関税を課し、恩を返してもら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彼の偏見と我執は、38年が経っても全く変わっていないことが分かる。米最高裁判所が国際緊急経済権限法(IEEPA)を根拠にした相互関税に違法判決を下しても、トランプ大統領の関税への執着は簡単には変わらないことを示唆する。トランプ大統領は迂回路を見つけるだろう。
■ 戦争で終わった19世紀の列強の保護貿易
西欧の貿易史は19世紀の産業革命を機に転換点を迎えた。欧州の飛躍的な資本主義の発展で、世界が北半球と南半球の間で格差が広がる大分岐が到来した。運送手段と産業・軍事技術の革新は、経済的不均衡だけでなく、軍事的・政治的不均衡まで招いた。列強のアジア、アフリカ、中南米に対する支配力の拡張は、経済民族主義と領土拡張主義の旗印のもとで加速化した。植民地に対する政治・経済・軍事的支配現象である帝国主義が19世紀後半から20世紀半ばまで猛威を振るったのは、このような背景からだった。地球上で大国の属国に転落した国は1800年の37%から1878年には67%、1914年には84%まで増えた。
国際貿易体制は覇権国がどのような態度を取るかに大きく影響される。「日が沈まない国」大英帝国は19世紀半ばに一時的に自由貿易を主導した。圧倒的な産業競争力の下で、工業製品を外国に売る代わりに農産物を輸入した。自由貿易拡散の中核装置である「最恵国待遇(MFN:第3国に与える条件より不利でない待遇)」条項を導入するなど、重商主義時代の二国間貿易から多国間貿易体制への転換を最初に試みた。もちろん、このような自由貿易も西欧諸国の間だけに適用された。アジア、アフリカ、中南米に対しては不平等貿易を強要した。最も悪名高い事例が、1839年の英国と中国(清)間のアヘン戦争だ。英国がお茶などの輸入で銀が大量に流出し、中国との貿易不均衡が進んだことを受け、アヘンの密輸出に乗り出したのが直接的な原因だった。この戦争の結果結ばれた南京条約(1842年)で、中国は上海など5つの港を開放し、英国の治外法権を認めただけでなく、香港島を割譲し、関税の自主権を喪失した。この条約はその後、西欧と東洋の間の不平等条約の原型となった。中国の「屈辱の100年」の序幕がこうして上がった。中国の習近平国家主席がこの事件に言及し、「中国夢」(中華民族の偉大な復興)を人民に繰り返し強調する理由も、それだけ中国国民の感情に触れるからだろう。習主席は当時、アヘンを没収・焼却し、英国に抵抗した官僚の林則徐が書いた詩を机の上に置いたという。この詩には「国を利することなら命を捧げる」という一節が含まれている。習主席は若い頃、林則徐の生家がある福建省で17年間勤務し、彼を称える遺跡地を復元した。トランプ大統領の関税圧力に屈しなかった習主席の決然とした態度がどこから由来するのか推測できる。アヘン戦争の恥辱が180年余りという歴史の川を渡って、国際秩序再編の無視できない要因に浮上したのだ。
英国はドイツの急速な産業化と海軍力増強に驚き、1870年代末から再び保護貿易主義に回帰した。覇権をめぐるドイツの挑戦に脅威を感じて対応に乗り出したのだ。大国は保護貿易を進めても、経済成長と軍隊維持のために外国の資源と市場、投資先を必要とする。保護貿易が領土拡張主義につながる理由だ。この時期、欧州列強の植民地争奪戦は後発国のドイツやロシア、日本、米国などが加勢しピークに達した。帝国主義的拡張の末路は、大国間の戦争という破局だった。列強はこれ以上植民地を開拓する地域がなくなり、欧州大陸をめぐって対立したすえ、1914年に第1次世界大戦に巻き込まれた。
さらに、1930年代初頭、大恐慌に見舞われると、再び保護貿易の壁を築き上げたが、これによって対立が深まり、第2次世界大戦を迎えることになる。
■ 150年前の大英帝国の保護貿易回帰と酷似した米国の動き
米国はまさにそのような悲劇的な歴史から教訓を得て、第2次世界大戦後、自由貿易中心の国際経済体制の構築に乗り出した。そして戦後80年間、繁栄を謳歌した。ところが、トランプ大統領はこの体制を根こそぎ崩している。自由貿易と多国間主義を要諦とする世界貿易機関(WTO)体制では、もはや中国との覇権争いで勝ち目がなく、製造業の衰退も取り返しがつかない状態まで進んだため、保護貿易と二国間交渉体制に転じたのだ。トランプ大統領の保護貿易は約150年前、英国がドイツの脅威に対応して保護貿易に回帰したのと似ている。当時のように経済民族主義に基づいたトランプ大統領の保護貿易は、高率の関税と制裁の脅威、資本強奪(韓国と日本)、「砲艦外交」(ベネズエラ)など重商主義的な様相を呈している。問題は、保護貿易は根本的に経済不安定と貿易戦争、最悪の場合は戦争までもたらすリスクを抱えているという点だ。
ナチス・ドイツから米国に亡命した著名な経済学者、アルバート・ハーシュマンは1945年の著書『国力と外国貿易の構造』でこのように述べた。「貿易戦争は疑いの余地なく、国家間の鋭い敵対感を高める。また、国家指導者たちが大衆の怒りを引き起こす絶好の機会を提供する。国際経済関係はこれらの指導者たちが自分の目的を達成できる有用な道具を用意してくれる。空襲で素早く確実に敵国を制圧して勝利を得るという約束が、こんにちの戦争に最も重要に寄与したのと同じ理屈だ」(『貿易の世界史』p.545から再引用)。1世紀前の悲劇的世界史から教訓を引き出せなければ、世界は再び大混乱に陥るだろう。
パク・ヒョン論説委員 (お問い合わせ japan@hani.co.kr )
https://news.yahoo.co.jp/articles/f00cb28cf505b60dee136d8e22de51b041d431e5
트럼프가 되살린 '150년 전 보호무역'…그 말로는 전쟁이었다 / 11/30(일) / 한겨레 신문
◇ '약탈적' 무역의 세계사
무역의 역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 자유무역은 현대에 들어 마치 공기처럼 일상화되었지만 근대사의 대부분을 지배한 것은 보호관세의 장벽과 약탈, 그리고 식민화였다. 보호무역주의는 수많은 무역전쟁을 초래해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이 됐고 군사적 충돌로 번졌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희대의 선동가의 등장은 무역을 다시 아름답지 않은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0년간 이어져 온 다자주의와 국가 간 비차별이라는 국제무역질서의 근간을 파괴하고 있다. 대신 힘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 40년째 '관세 집착', 18세기 중상주의 기반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은 중상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16~18세기 서구에서 확산된 중상주의는 특정 지역이나 상품 교역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장악해 독점 이익을 누리는 체제다. 무역 자체가 제로섬 게임과 같다 보니 이권을 놓고 뺏기 싸움이 벌어졌다. 금·은 본위제 하에서는 무역적자가 발생하면 국부인 금과 은의 유출이 실제 가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각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서구 세계가 약탈과 전쟁으로 점철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세계를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 부과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오늘은 해방의 날이라고 선언하며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의 50분간 노골적인 내용의 연설은 중상주의적 논리로 얼룩진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우방이든 적이든 약탈당하고, 강탈당하고, 강간당하고, 수탈당했다. 그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공장을 약탈했다. 우리는 50년 넘게 빼앗겼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질서가 정착되고 교역 상대가 서로 '윈윈'이 되는 포지티브섬으로 바뀌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미국은 실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40% 이상 증가해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로 꼽힌다. 2024년 1인당 GDP가 8만 5810달러로 여전히 세계 최대 부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이 약탈당했다는 얘기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연설은 이렇게 이어졌다. 많은 경우 무역 면에서는 친구가 적보다 더 심하다. 이런 끔찍한 불균형은 미국의 산업기반을 무너뜨리고 국가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맹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수 백조원에 달하는 자금 투자까지 강압한 명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동안 무역적자로 빼앗긴 돈을 되찾는다는 것으로 21세기판 신중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은 40년 가까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1세이던 1987년 9월 뉴욕타임스 등에 스스로 9만 4천 달러를 들여 이 같은 내용의 전면 광고를 실었다. 동맹국으로서 우리가 제공하는 보호에 대한 대가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치르게 합시다. 우리가 만든 최고의 흑자 기계(무역흑자국을 지칭)로부터 돌려받아 미국의 농업인, 병자, 노숙자를 돕습니다. 미국인이 아니라 이 부유한 나라에 세금(관세)을 부과합시다." 무역흑자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혜택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그의 편견과 아집은 38년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상호 관세에 위법 판결을 내리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집착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회로를 찾을 것이다.
■ 전쟁으로 끝난 19세기 열강의 보호무역
서구 무역사는 19세기 산업혁명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유럽의 비약적인 자본주의 발전으로 세계가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대분기가 도래했다. 운송수단과 산업군사기술의 혁신은 경제적 불균형뿐만 아니라 군사적 정치적 불균형까지 초래했다. 열강의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 대한 지배력 확장은 경제민족주의와 영토확장주의의 기치 아래 가속화됐다. 식민지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적 지배 현상인 제국주의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기승을 부린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지구상에서 강대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나라는 1800년 37%에서 1878년 67%, 1914년 84%까지 늘어났다.
국제무역체제는 패권국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19세기 중반 일시적으로 자유무역을 주도했다. 압도적인 산업경쟁력 아래에서 공산품을 외국에 파는 대신 농산물을 수입했다. 자유무역 확산의 핵심 장치인 최혜국대우(MFN: 제3국에 주는 조건보다 덜 불리한 대우) 조항을 도입하는 등 중상주의 시대의 양자무역에서 다자무역 체제로의 전환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 물론 이런 자유무역도 서구 국가들 사이에만 적용됐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 대해서는 불평등 무역을 강요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가 1839년 영국과 중국(청) 간의 아편전쟁이다. 영국이 차 등의 수입으로 은이 대량 유출되고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이 심화되자 아편 밀수출에 나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난징조약(1842년)으로 중국은 상하이 등 5개 항구를 개방해 영국의 치외법권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홍콩섬을 할양해 관세 자주권을 상실했다. 이 조약은 이후 서구와 동양 간 불평등 조약의 원형이 되었다. 중국 굴욕 100년의 서막이 이렇게 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 사건을 언급하며 중국몽(中國夢·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인민에게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그만큼 중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시 주석은 당시 아편을 몰수 소각하고 영국에 저항한 관료 린지가 쓴 시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에는 '나라를 이롭게 한다면 목숨을 바친다'는 구절이 담겨 있다. 시 주석은 젊은 시절 임칙서 생가가 있는 푸젠 성에서 17년간 근무하며 그를 기리는 유적지를 복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력에 굴하지 않은 시 주석의 결연한 태도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편전쟁의 치욕이 180여 년 역사의 강을 건너 국제질서 재편의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영국은 독일의 급속한 산업화와 해군력 증강에 놀라 1870년대 말부터 다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했다. 패권을 둘러싼 독일의 도전에 위협을 느껴 대응에 나선 것이다. 강대국은 보호무역을 추진하더라도 경제성장과 군대 유지를 위해 외국의 자원과 시장, 투자처를 필요로 한다. 보호무역이 영토확장주의로 이어지는 이유다. 이 시기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은 후발국인 독일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 가세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제국주의적 확장의 말로는 강대국 간의 전쟁이라는 파국이었다. 열강은 더 이상 식민지를 개척할 지역이 없어졌고 유럽 대륙을 놓고 갈등을 벌인 끝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렸다.
이어 1930년대 초 대공황이 닥치자 다시 보호무역의 벽을 쌓았는데 이로 인해 갈등이 심화돼 제2차 세계대전을 맞게 된다.
■ 150년 전 대영제국 보호무역 회귀와 흡사한 미국의 움직임
미국은 바로 그런 비극적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중심의 국제경제체제 구축에 나섰다. 그리고 전후 80년간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체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요체로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더 이상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승산이 없고 제조업의 쇠퇴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보호무역과 양자협상 체제로 돌아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은 약 150년 전 영국이 독일의 위협에 대응해 보호무역으로 회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처럼 경제민족주의에 입각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은 고율의 관세와 제재 위협, 자본 강탈(한국과 일본), 포함외교(베네수엘라) 등 중상주의적 양상을 띠고 있다. 문제는 보호무역은 근본적으로 경제 불안정과 무역전쟁, 최악의 경우 전쟁까지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나치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저명한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먼은 1945년 저서 국력과 외국무역의 구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역전쟁은 의심의 여지 없이 국가 간 날카로운 적대감을 고조시킨다. 또 국가 지도자들이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 경제 관계는 이들 지도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를 마련해 준다. 공습으로 빠르고 확실하게 적국을 제압해 승리를 얻겠다는 약속이 오늘의 전쟁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것과 같은 이치다.(무역의 세계사 p.545에서 재인용). 한 세기 전 비극적 세계사에서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세계는 다시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박 현 논설위원 (문의 japa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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