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선생이라 애들이 짖궂을 수도 있어요.
애들말이니 신경쓰지말고
어른답게 대처하면 돼요.알겠죠?"
나는
어른답게하는 대처가 어떤 대처인가요?
질문이 목끝까지 나왔지만 꾸역 꾸역 집어 삼키고
"네, 그럼요. 아이들인걸요"
예술중학교,예술고등학교,미대테크
나는 내가 당연히 작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열정도 끈기도 작가가될 그릇은 아니었고
도망치듯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임용공부 역시 쉬운일은 아니며 내 적성은 공부와 영 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까운 친척이 이사인 재단의 학교로 또 한번 도망쳤다.
'도망'이라고도 하지만
다들 이렇게 사는거 아니겠는가
요즘 세상에 누가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겠어?
"첫수업이니까 너무 어려워하지말고 뭣하면 자습이라도 시켜요"
첫수업부터 자습이라니...
나이가 지긋한 교감선생님은 이사빽으로 들어온
내가 영 어려운듯하다.
그래도 봐.
정말 다 이렇게 살잖아.
지금은 딸만한 내 눈치를 보는 이 교감도 언젠가는
교사정신에 불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거지.
다시 되뇌인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그래야 고숙 뵙기 안부끄럽죠"
어두워진 교감의 표정, 집중되는 시선.
못박아놓는거지.
응 나 빽으로 들어왔어,
'너희도 교사자리 몇천,몇억주고 여기 앉아있는거잖아.
근데 난 거기서 받고 또 아주 친척이야.조심해?'
"...그래요...수업 들어가봐요..."
"네."
드르륵
미닫이 문을 닫아도 교무실의 분위기가 전해진다
지금 빽있다고 말한거야?요즘 젊은 애들은...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웬만하면 건들지 말자
딱 왕따 당할 상이다.
그래라,그래
나도 나이 안맞고 고고한 너희랑 어울릴 마음 없단다.
미술실문은
나이 먹은 여교사들처럼 세월을 감추려
어울리지않은 밝은색으로 자신을 감추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 누추하고 붕 뜬 듯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시커면 남자고등학교에 분홍색 문이라니...
센스하고는...
드륵
교무실보다 훨씬 뻑뻑한 문을 밀자
남자애들 특유의 답답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말 코를 찌르는듯한 냄새구나
소년에서 남자가 되가는 아이들의 끕끕한 냄새와 오래된 학교의 회색빛 먼지냄새가 섞이자
밝은 교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다.여자.
쌤이야? 존나 어린데?
치마 졸라 짧아
여자다부터 시작해서 존나,시발,등등
남자애들이란 정말 치마만 둘렀다하면 미쳐버리는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부임한 서환희에요.
전에 계시던 양미정 선생님은 몸이 많이 안좋아지셔서 오랫동안 쉬게 되셨어요. 양 선생님 만큼은 아니어도 열과 성의를 다해 여러분을 가르치겠습니다. 우리 즐거운 미술 수업 해봐요"
오오~네!
우웩
즐거운 미술 수업이래. 고등학교 2학년들한테 즐거운 미술 수업은 무슨... 수업에 들어오기나 하면 다행이다.
나의 가식적인 멘트에 호응은 좋았지만
여전히 그 속에 들리는 나를 향한 비속어들과
나를 훑는 시선들.
정말 웃기다. 지들도 남자라고...
"와 씨발 스타킹 다 비춰 개꼴려"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답지 않은 말이 한마디 들렸다
개꼴린다니
내가 지금 스물 여섯인데 열여덟한테 개꼴린다니
맘같아선 잡아내서 두들어 패고싶지만
그래 열여덟 십팔세잖아
내가 봐줘야지
"첫 날이니까 출석부터 불러 볼까요?"
1번부터 이름이 특이하다
관태호
"관태호"
"하앙..."
아 미친 뭐야 또라이새끼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쌤 쨰 미쳤나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새끼ㅋㅋㅋㅋ신음 소리 존나 잘 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 그 목소리다 웃겨서 죽으려고하는 아이들과 달리 여유로운 표정으로 날 당당하게 쳐다보고 있는 저 애새끼
그래.내가 국어나 가정이었으면 당황하고 씹었겠지.
관태호는 기싸움이 필요한 아이다.
그리고 나는 기싸움에 아주 능통하다.
"우리 태호 앞으로 나와볼래?"
화내거나 창피할줄 알았는지 담담하게 자신을 부르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비추다 이내 여유롭고 껄렁한 표정으로 척척 걸어나온다.
그래 양아치같이 생겼다. 너는
쌍커풀 없이 큰 눈에 어딘가 반항기가 서려있고
길게 뻗은 콧대가 남자답고 여유롭다.
내가 17이었으면 관태호가 오토바이 삼치기하는 모습도 멋있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26이다. 꼬마야
"우리 태호는 목소리가 참 예쁘네
다시 한번 대답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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