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어제 저녁식사 메뉴를 카페에 업로드했는데요. 역사성생님인 제 대학동기가 피자랑 한식을 같이 먹는 사진을 보고 헬레니즘식단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역덕인지 사실 좀 웃었습니다. 오랜만에 역사감성이 풍부해진 상태로 직장 근처서 대학 졸업식에서 자식들 뿌듯해하는 어머님아버님을 바라보니 괜히 영친왕이 떠오르더라고요.
(영친왕과 이방자여사)
(이구와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훗날 이혼을 당하는 줄리아)
아시다시피 이토히로부미의 주도로 영친왕은 유학을 명분으로 1907년 11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보내집니다. 볼모로 끌려간 타국에 당연 마음을 둘 곳은 없었기에 가족에게 유독 애뜻했다고 하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렇게 아끼던 아들 이구가 미국 MIT로 유학을 가고 1957년 졸업을 하게 되는데요. 영친왕은 미국으로 날아가 오랜만에 아들을 만나고 졸업식에도 꼭 참석해 축하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친왕은 미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영친왕은 여권이 없었거든요. 영친왕은 해방이후 일본에 머물렀지만 국적도 없고 여권도 없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광복직후에도 황실 인물들의 입국을 거부했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국민들의 정서에는 이씨왕족을 나라의 주인으로 보는 개념이 남아있어 왕정복고세력으로 정치가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영친왕은 대한민국에 입국은 못해도 여권이라도 얻고 싶어 대한민국 정부에 여권을 신청했지만 이승만 정부는 또 거부를 하게 되죠. 괜한 소란을 원치 않았겠죠. 그리고 영친왕은 결국 일본에 여권을 신청합니다. 개인적으로 고작 아들의 졸업식을 위해 망국의 왕족이 타의가 아닌 자의로 자기의 모국을 망하게 한 적국의 국적을 얻는 다는 게 어떤 이유에서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당시 영친왕의 일본 여권 발급에 대해 한국 여론도 굉장히 사나웠다고 하고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뜻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네요. 그리고 영친왕의 일생이 투쟁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렇게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2달간의 미국여행을 떠납니다. 아들의 대학졸업식도 참석하고 뉴욕과 하와이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하죠.
대학 졸업식에서 아버님 어머님들을 보고 문득 영친왕이 떠올라서 몇 자 끄적여봤습니다. 제코가 석자지만 졸업하는 사회 초년생분들 무사히 연착륙하길 바랍니다.(참고로 영친왕부부는 배를 타고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첫댓글 역사이야기 저도 엄청 좋아합니다!
간간히 부탁드려요~~
가슴아픈 현대사네요. 또 후속글 기다려집니다. 흥미롭고 재밌네요
덕분에 역사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