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자 문화의 보고 화림동 계곡
- 녹음·기암괴석 어우러진 절경
- 거연정~군자정~동호정 등 지나
- 10.6㎞ 거리 울창한 트래킹 코스
- 곳곳 '탁족' 즐기며 무더위 잊어
한 선비가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보기 좋게 자란 데다 머리털이 정수리 너머까지 벗겨진 게 적어도 50대는 돼 보인다. 학창의를 풀어헤쳐 가슴과 배를 드러내 놓은 채 소나무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흐르는 냇물의 시원한 감촉을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선비 옆에는 시동이 술병을 들고 서 있다. 시동이 등에 멘 보따리에는 안주가 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비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영감마님, 술 대령했습니다." "오냐, 여기까지 가져오느라 고생했겠구나." 이런 대화가 오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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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함양군 동호정에서 화암사 사이의 화림동 계곡. '선비길' 트레킹을 하던 사람들이 짙푸른 소나무 그늘이 드리운 냇가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조선 중기의 사대부 화가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1545~1611)이 그린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의 정경이다. 탁족은 여름철 선비들의 대표적인 피서법의 하나였다.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려 발만 물에 담그는 것이다. 하지만 발은 온도에 민감한 데다 발바닥에 온몸의 신경이 모여 있어 발만 물에 담가도 전신이 시원해진다. 탁족은 정신 수양법이기도 하다.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나의 갓끈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흐림이여,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는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고사가 그 전범이다. 치세 때는 나아가 벼슬을 하고, 난세 땐 물러나 은거한다는 뜻이다.
지난 11일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거연정에서 안의면 금천리 광풍루까지 화림동 계곡을 따라 조성된 '선비길(약 10.6㎞, 4시간가량 소요)'을 걸으며 탁족을 떠올렸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를 몰고 온 살인적인 뙤약볕이 원인 제공자였다. 한낮의 도롯가에 서서 만물이 새하얗게 증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며 낭패감에 젖어들 무렵 화림계곡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넉넉히 드리운 녹음 아래 울퉁불퉁 기이한 형상을 한 암반 위로 흐르는 맑고 찬 물은 어서 둥둥 바지를 걷고 들어와 내게 몸을 맡기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이는 기자만의 충동이 아니었다. 트레킹 구간 곳곳에서 계곡 물에 발을 담근 '탁남탁녀'들을 만났다. 심지어 옷을 입은 채 첨벙 물에 뛰어드는 사람도 적잖았다. 그들은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고 기자도 굳이 그들에게 묻지 않았지만, '여름 산행이나 트레킹의 묘미는 계곡이나 강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탁족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는 여름날은 무덥지만 흥겹고 아름다웠다.
화림동 계곡은 남덕유산(1508m)에서 발원한 물이 서상·서하면으로 흘러내리면서 이룬 하천이다. 장장 24㎞가 넘는 이 계곡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절경의 정자가 많아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보고로 꼽힌다.
트레킹은 '거연정(居然亭)'에서 시작한다. '자연에 머문다'는 뜻의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울창한 숲을 병풍처럼 두른 암반 위에 세워져 산수화 속의 정물을 보는 듯 그윽하다. 이 정자는 1640년께 억새로 지었다가 1872년 목재로 재건했다.
거연정에서 봉전교를 건너 계곡가에 난 소로를 따라 150m쯤 가면 '영귀정(詠歸亭)'이 나온다. '귀거래사를 읊는다'는 뜻이다. 맞은편 계곡 가에는 단아한 정취의 '군자정(君子亭)'이 암반 위에 서 있다. 봉전리는 조선 5현의 한 명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처가가 있던 마을이다. 마을 선비들이 일두를 기려 그가 처가에 들를 때면 찾았다는 현재의 계곡 가에 1802년께 이 정자를 지었다.
영귀정에서 1.6㎞가량 가면 '동호정(東湖亭)'이 있다. 1895년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인 이 정자는 화림동 계곡에 세워진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정자 앞 계곡 한복판의 너럭바위가 눈길을 끈다. 수십~수백 명이 모여 시회나 토론회를 열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호성마을과 경모정, 람천정을 지나면 발길은 '동호정에서 3㎞쯤 떨어진 '황암사(黃巖祠)'에 이른다. 이곳은 정유재란(1597년)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숨진 당시 안의현감 곽준(郭埈),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 등 순국선열 수천 명의 넋을 추모하려고 세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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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 |
황암사를 뒤로 하고 1㎞가량 걸으면 널따란 반석 가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달을 희롱한다'는 뜻의 '농월정(弄月亭)'이다. 이름처럼 밤이면 달빛이 계곡물을 타고 흐르며 찬란한 금빛 그물을 드리운다고 한다. 농월정 앞 반석을 달바위라고 부르는데, 그 면적이 3300여 ㎡에 달한다.
농월정에서 1.3㎞쯤 농로를 따라 걸으면 월림마을에 이르고, 다리를 건너 1㎞가량 더 가면 길가에 아홉 노인이 모여 놀았다는 '구로정(九老亭)'이 나온다. 여기서 1.8㎞쯤 떨어진 금천변에 오리숲이 우거져 있다. 오리숲에서 조금 내려가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우람한 팔작지붕 누각이 자리하고 있다. '광풍루(光風樓)'다. 1412년(태종 12)에 지은 누각으로, 당시 이름은 '선화루(宣化樓)'였다. 1494년(성종 25)에 안의현감으로 재직했던 일두가 중수한 뒤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 주변 가볼만한 곳
- 조선조 5현 일두 선생
- 곧은 절개 품은 고택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일두 고택(사진)'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중건한 것들이다. 대문을 지나 동북 쪽으로 비스듬히 들어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백세청풍(百世淸風)' 등 현액이 걸린 'ㄱ' 자형 사랑채는 높직한 댓돌 위에 지그시 앉아 있다. 일각문에 들어서서 사랑채 측면을 통과한 뒤 다시 문을 지나야 안채에 들어서게 된다.
주목되는 건물 구조는 사랑채 앞마당 끝 담장 아래 자리한 석가산(石假山)이다. 보통은 후원에 조성하는데, 이 집에서는 사랑채에서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도록 배치했다. 삼봉형(三峰形)인데 주산(主山)을 높이고 좌우 봉우리를 그보다 낮춰 그 아래에 깊은 계곡을 꾸몄다.
인근 수동면 원평리에는 일두와 강익(姜翼), 정온(鄭蘊)을 배향한 남계서원(藍溪書院)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일두와 동시대를 살았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을 모신 청계서원(靑溪書院)도 볼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돼 탁영은 처형되고, 일두는 유배 가서 숨졌다.
# 교통편
- 사상서 함양행 시외버스 승차
- 서상·사하 버스타고 봉전 하차
부산 사상구 괘법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시외버스를 탄다. 버스는 오전 7시, 9시, 11시에 있다. 함양터미널 인근 군내버스터미널에서 서상·서하행 버스를 갈아타고 가다 봉전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버스는 오전 6시20분 및 6시30분발에 이어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