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정팅에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위희철님,
장경호님,박종혁님,그리고 구르카병님께서도 더운 여름 잘 보내고 있으시
겠죠? 게시물들을 읽다보니 운영자이신 박종혁님께서 영화 게티스버그
에 대한 글을 올려 놓으시길래 생각나는 게 있어 졸필 한편 올려 놓으니
한번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남북 전쟁을 다룬 영화라면 우선은 제일 먼저 전쟁영화라고는 할 순 없지만 당시를 배경으로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우선 떠오르고 그외 몇편의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고 정확한 시각과 역사관으로 만들어졌다고
인정받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영화 "Glory"입니다.국내에서는 "영광의 깃발"이라는 제목으로 출품되었고 많은 분들이 보신 영화입니다.
1989년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되었을때 언제나 혹평만을 일삼던 비평가들
도 이 영화엔 호평을 보냈고 역사가들도 상당히 정확한 시각의 영화라는
평을 하여 그 작품성과 사실성을 상당히 인정받은 작품으로서 현재도
인터넷 영화 사이트에서 네티즌들로부터 최상위의 평가를 받는 작품중의
하나죠.1989년 아카데미는 영화에 출연한 덴젤 워싱턴에게 남우 조연상을
선사하였고 또 촬영상과 편집상,음악상들을 선사하였죠.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극장개봉이 안되었는데 아마 소재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할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되었기에 수입한 배급사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다들 아시다시피 남북전쟁당시 흑인들로만 구성되었던
메사추세츠 제54연대의 흑인병사들과 그들의 지휘관이었던 로버트 굴드
쑈 대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보스톤의 명망있는 노에페지론가의 외동아들이었던 로버트 굴드쇼
대령은 남북전쟁 초기의 앤티애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후 보스턴의
집에서 휴양 중이었고 당시 메사추세츠 주 주지사로부터 흑인연대 구성
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지휘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쑈대령의 부
친은 아들 쑈대령에게 지휘를 맡으라는 제안을 하였고 처음엔 고민하던
쑈 대령은 결국 흑인연대의 지휘를 맡기로 합니다.
이때 연대에 필요한 참모와 단위 중대장에도 쇼 대령의 뜻에 동감하는 백인 장교들이 지원하였고 이들 중 대부분이 하버드와 기타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백인 장교들이었습니다.백인부대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미래를 보장받을 수있었던 이들은 메사추세츠 제54연대의 구성취지와
그들이 왜 싸워야 하는 지 아니 당시 남북전쟁의 진정한 목적이 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기꺼이 그들의 지위를 버리고 흑인연대의 구성원이 된 양심있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메사추세츠 제54연대가 구성된 후 부대원 선발과 훈련 병참,보급에 있어 많은 문제점들에 봉착하였고 군 내부뿐 아니라 밖에서의 인종차별적
시각과 대우도 함께 극복해 나가면서 흑인병사들을 단련시켰습니다.
<
특히 북부 연방 정부는 흑인병사들에게도 백인 병사들과 같이 13달러
월급을 지불토록 하겠다고 하였으나 실지급액은 10달러 였고 이에
쑈대령의 주도하에 항의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정부로부터 동등한 급료를
받아냅니다.
1863년 5월 훈련을 마친 메사추세츠 제54연대가 보무도 당당하게 보스턴
시내를 행진하여 전선으로 출정할떄 당시 의 언론과 시민들의 시각은
과연 흑인들이 전투나 제대로 할 수있을까라는 의문을품고 있었고 상당
히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사추세츠 제54연대의 흑인병사들은 첫번째 전투에서 훌륭한
전투능력을 보여줬고 1863년 6월 18일 남부 찰스턴의 와그너 요새 공격
의 최선두 공격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공격당일 쇼대령은 600명의 흑인병사들과 같이 최선두에서 해안가를 따라
포탄을 뚫고 와그너 요새로 돌격하였고 결국 와그너 요새의 흉벽을 오르다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으며 다른 백인 장교들과 흑인병사들도
많은 수가 전사하였죠.
메사추세츠 제54연대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 요새의 담을 넘어서기도 하였을때 해안가에서 후위부대로 대기중이던 백인부대가 당연히 투입되었어야
하나 후위부대는 투입되지 않았고 지원을 기다리면서 요새 바로밑의 해안가에서 공격중이던 흑인병사들은 결국 공격일 익일 새벽에 지휘관 쇼대령을 잃은 채 후퇴하였고 결국 와그너 요새는 남북전쟁이 종료될때까지
점령되지 않았습니다.메사추세츠 54연대는 전사 227명을 포함 절반이상의
사상자를 낸채 후위부대로 돌려집니다.
와그너 요새 공격이 끝난 후 남부군은 쇼대령의 군복을 벗긴후 흑인병사
들과 함께 구덩이에 같이 묻어 버렸으며 덩시 관례에 따라 고위장교인
쇼대령의 시체를 찾기 위해 깃발을 들고찾아온 북군장교에게 경멸스러운 어조로 검둥이들과 묻었다는 말을 전해줍니다.
당시 남부군은 흑인연대를 폭도로 규정하였고 이들을 지휘하는 백인 장교
들 역시 반란분자로 규정하여 잡히면 무조건 처형한다는 포고를 선포한 상태였습니다.
엘리트 백인장교가 흑인병사들을 지휘하였고 그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는 소식은 와그너 요새 공격을 목격한 기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당시 북부 사회내부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쇼대령의 용기와 흑인병사들의 희생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하였
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백인으로 법관의 길을 걸을수 있었지만 양심과 정의에
따라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쇼대령의 전사소식은 쇼대령의 부모에게도
전해졌고 아들이 흑인병사들과 함께 묻혔으며 시체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쇼대령의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아마도 그건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였으니 그냥 그들과 같이 있도록 하는게 아들의 뜻에
따르는 길이라고 대답하여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영화 는 북군의 시각도 남군의 시각도 아닌 오직 양심과 정의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갔던 쇼대령과 자신들을 희생함으로써 남북전
쟁의 목적이 무었인지 알리고자 했던 흑인병사들의 용기를 정확하게 그려냄으로써 기존의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내포하고 있던 왜곡된 시각
과 상당히 차별화된 훌륭한 영화입니다.
전쟁영화로서도 그간 출시된 남북전쟁 소재영화중 전투씬이 가장 리얼하
며 전달하고자 하는 선명한 메세지가 있기에 명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
습니다.
현재 보스톤에는 로버트 굴드쇼 대령의 기념관이 있으며 웹상에도
<>
지도층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 쇼대령을 기리는 사이트가 제법 많이 보이더군요.
쇼대령이 전사할 당시의 나이는 26세였습니다.
이상 부산에서 SUBMARINE 이었습니다.
ps:참고로 아들이 북군 포로로 끌려가자 아들찾아 나선 남부의 아버지
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간 영화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던데
그 영화 제목은 "셰난도"입니다.영화 후반부에 치열했던 셰난도 전투장면이 볼만한 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