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먼저 만화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곳은 도에이 동화(東映動畵)이다.
본래 일본의 3대 영화 메이져(東寶, 東映, 松竹) 중 하나이기도 한 도에이는, 1956년 니치도(日動) 영화사를 인수하여 도에이 동화사로 개칭하고 스스로 이곳을 동양의 디즈니 스튜디오라고 공표하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실사 영화의 흥행으로 벌어들인 탄탄한 자본력을 앞세워 대규모 인력이 투여되는 일본 최초의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의 제작을 시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되는 모험이었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처음 있는 시도였기 때문에 당시 특별한 제작 노하우가 없는 상황에서 도에이 동화는 좀 무모해 보이지만 그래도 가장 확실한 디즈니식의 인해 전술로 작업을 강행했다.
도에이 동화의 이러한 노력은 2년 뒤인 1958년, 일본 최초의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 『백사전』의 탄생이라는 기념비적인 결실을 맺게 된다. 최초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펙타클한 액션 장면들이 신비로운 동양적 분위기로 연출된 1시간 18분짜리 대작 만화영화였다. 물론 일본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가 일본의 창작물이 아닌, 중국의 설화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피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백사전』으로 일본은 세계 시장에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국제적인 규격의 자국산 장편 만화영화를 갖게된 것이었다. 이후 도에이는 자체 영화 배급망을 십분 활용하면서 디즈니처럼 세계 명작 동화들을 새롭게 각색한 극장 만화영화들을 본격적으로 만들게 된다.
특히 샤르르 페로 원작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지금까지도 도에이 동화의 마스코트로 쓰일 만큼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서 지난 1998년 3월 도에이 동화 창립 40주년 기념 특작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 명작 만화영화들은 도에이 동화의 전통으로 또한 월트 디즈니에 대항하는 일본 만화영화계의 자존심으로 흥행 실패를 감수하면서 까지 무려 20년간이나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1981년에 개봉된 『백조의 호수』는 도에이 동화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서 도에이 세계 명작 만화영화 시리즈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실제로 도에이 동화는 이 작품의 개작을 『캔디 캔디』의 원작자인 이가리시 유미코와 공동으로 작업했으며 차이코프스키의 명곡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연주를 의뢰하여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PCM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을 하는 등 역대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표적인 도에이산 세계 명작 만화영화였다.
일본식 세계 명작 만화영화의 재창조
하지만 초창기 세계 명작 만화영화를 제작하여 스스로 동양의 디즈니 스튜디오를 자처했던 도에이 동화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 만화영화들이 많은 적자를 보게 되자 작품의 기획 방향을 바꾸게 된다. 게다가 거품 경제의 영향으로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못하게 되어 한국을 제 2의 만화영화 하청 기지로 활용하는 등 만화영화의 제작비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감시켜 나간다.
이처럼 작품의 질을 좌우하는 제작비를 줄인 대신 인기 만화의 판권을 사서 그 만화의 유명세만을 믿고 만화영화를 선보이는 전형적인 도에이식 제작 공법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무렵 도에이 동화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된 작가가 일본 SF 만화계의 거성 이시노모리 쇼타로였던 것이다. 당시 만화잡지 「소년 킹」에 연재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사이보그 009』가 도에이의 첫 번째 시도작으로서 그동안 잡지에서만 보아왔던 9명의 사이보그들이 커다란 극장 스크린을 종잡으며 활약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이보다 3년 앞선 1963년부터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 만화영화화 되어 매주 TV에서 방영중에 있었지만 당시는 일본의 TV들도 흑백 방송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들이 천연색 칼라 화면으로 개봉되자 마치 이들이 현실 세계에 등장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던 것이다. 결국 도에이 동화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 것이었고
그로 인해 『사이보그 009』는 이듬해 전작 극장판의 앵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2번째 극장판 '괴수 전쟁'편이 개봉되었는가 하면 극장판의 인기에 편승한 TV 시리즈가 만들어지는 등 오랜 기간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에 이어서 초창기 도에이 동화와 손을 잡은 또 한 명의 대작가는 바로 일본 거대 로봇 만화의 신화적 작품 『마징가 Z』를 창조해낸 나가이 고였다.
그런데 마징가 시리즈의 경우는 『사이보그 009』와는 반대의 방법으로 먼저 TV 시리즈를 제작, 방영하여 기본적인 인기를 확보한 뒤에 TV 시리즈와는 내용이 다른 특별편 형식의 극장판을 만든 것이었다. 때문에 좀 황당하게도 극장판 마징가 시리즈는 나가이 고가 창조해낸 마징가 형제들은 물론 『게타 로봇』이나 심지어는 『데빌맨』까지 가세를 하여 함께 활약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로봇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신기함 때문이었는지 TV판과는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 극장 앞에 줄을 서게 되었고 이때부터 도에이 동화는 TV 만화영화와 극장 만화영화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각의 매체가 상대방 매체의 흥행을 보장해 주는 공조 체제를 구축해 나가게 된다. 또한 도에이 동화는 남자 어린들 뿐만이 아닌 여자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의 제작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는데, 이전까지 순정 만화의 만화영화화는 그 누구도 선 듯 나서는 제작사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까지 모험적인 요소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도에이 동화는 이러한 고정 관념을 깨고 『캔디 캔디』의 만화영화화를 강행하여 원작 만화를 능가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그로 인해 이 작품은 도에이 동화사에 또 한번의 명성을 안겨다 주게 된다.
결국 이와 같은 인기 원작 만화의 만화영화화 시스템으로 일본 극장가를 석권해온 도에이 동화는 언제부터인가 아예 여름과 겨울에 한차례씩 '도에이 만화 축제(東映のまんが祭り)'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매 시즌 가장 인기 있는 도에이 동화의 TV 만화영화를 새롭게 각색한 극장 만화영화들을 동시 상영작으로 개봉시키고 있다. 때문에 『은하철도 999』에서부터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근육맨』, 『북두의 권』, 『미소년전사 세일러문』, 『슬램덩크』, 『꽃보다 남자』, 『지옥 선생 누베』, 『소년 탐정 김전일』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일본의 최고 히트 만화들은 거의 대부분 도에이 동화사에 의해서 TV 시리즈와 극장판 만화영화가 만들어져 왔으며 또한 언제나 기본적인 흥행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도에이 극장 만화영화들은 극장판이라고 보기 보다는 TV판 스탭들이 짬을 내 만든 번외편 정도의 취지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일련의 극장판 만화영화들과 대비해 보아서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저예산 만화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즉,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외형적인 인기에 의존한 박리다매성 작품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도에이 만화영화를 지탱시키고 있는 커다란 바탕으로서 특히 지난 1995년부터 도에이 동화는 10년이 넘게 개최해 온 '도에이 만화 축제'의 타이틀을 '도에이 아니메 페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바꾸고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양의 디즈니 스튜디오로 출발해 지난 40년간이나 일본 만화영화계의 진정한 메이저로 군림해 온 도에이 동화는 비록 초창기에 시도했던 세계 명작 만화영화 시스템은 실패했지만, 어쩌면 지금 도에이 동화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은 보다 일본적인 세계 명작 만화영화의 재창조 인지도 모른다. 도에이 동화의 작품들은 이제 전세계 어린이들의 동심 속에 살아 있는 새로운 모습의 세계 명작 만화영화로서 5대양 6대주로 뻗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