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언약궤
삼상4:5-11
(삼상 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삼상 4: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삼상 4: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삼상 4: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삼상 4: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삼상 4:10)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삼상 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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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이 하늘에게 올 때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성취하기 위해서
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들 마음 속에 들어왔다하면
금방 하나님의 뜻은 날아가버리고
인간의 뜻을 이루기 위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이런 경우를 가지고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우상이란 용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함이냐
아니면 ‘인간의 자기 뜻을 위함’이냐로
구분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성령을 찾아도
인간이 ‘자기 뜻’을 포기 못하면
그저 우상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 밖에 안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어떻게 다를까요?
본문의 경우
언약궤가 등장하느니
언약궤를 가지고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언약궤 스스로가
어떤 능력을 드러내느냐를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여기 안경이 있습니다.
이 안경을 높이 들고자 하면
안경 스스로의 힘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안경을 높이 쳐들어야
비로소 안경은 이 탁자로부터
들릴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것도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능력이라는 것이
따로 주어져야 합니다.
그 구원의 능력으로 주어진 것이
본문 같은 경우에 언약궤입니다.
따라서 언약궤가 제대로
구원의 능력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이 언약궤가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뜻에 의해서
훼방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훼방한다면
그 훼방하는 쪽이
바로 언약궤의 적이 됩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자신의 뜻을 포기 못한다면
구원은 커녕 결국
하나님의 원수가 될 뿐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나의 뜻이 묵사발되고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뜻이 뭉개지지 않는 하나님의 뜻은
참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내 뜻을 무너뜨리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자기 뜻이 없는 자는 없습니다.
특히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위기가 주어졌다고 여기면
갑자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뜻을 만족시켜줄
자기에게 맞는 신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인간에 의해서 막혀버리면
자신의 뜻을 포기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막아설
그 어떤 위인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의 적을 통해서
결국은 이스라엘이 알게 하는 식으로도
작동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데,
도리어 이스라엘의 적들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이 패배당하므로서 말미암아
우회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본인들이
하나님의 적이 되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결코
인간의 뜻과 타협하는 경우가 없음을
명백히 하게 됩니다.
이런 패배가 있기 전에,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자기 편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이지
결코 인간 편이 아닙니다.
이점에 있어 인간들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은 어디까지나 인간들 편이지
결코 하나님 편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는 경우는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성취됩니다.
바로 이러한 진실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자기 하나님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격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언약궤 옆에
언약궤와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궤가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우상처럼 인간들의 뜻에 의해서
놀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언약궤를 가지고 나올 생각을 했던가요?
언약궤없이
블레셋이라는 적들과
싸워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만
무려 4000명이라는 군사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원인을 어디서 찾았는가 하면,
‘언약궤를 안 써먹어서’ 그러하다는 겁니다.
민수기 10:35-36에 보면,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 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언약궤는
이스라엘에게
막강한 무적 무기로 사용가능하다는 겁니다.
언약궤에서
이스라엘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자생적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약궤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언약궤가 물리치는 적은
‘주의 대적’이지
결코 ‘이스라엘 적’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적이지
인간의 적을 언약궤가 물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적으로 자신의 적이
곧 언약궤의 적인로 알았습니다.
이는 자신이 곧 언약궤와 한편이요,
언약궤는 자신들의 뜻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를 꺽어버리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제대로 언약궤의 의미를 아는
이스라엘이 되게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적을 통해서
언약궤의 진정한 취지를 알려주십니다.
패배를 통해서 알게 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언약궤의 진정한 가치는
적인 블레셋 나라가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언약궤는 무서운 것이다는 겁니다.
따라서 블레셋 군대가 전쟁 중에 내내
‘언약궤는 무서운 것’이라는 취지를
버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비해 이스라엘은
언약궤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하나님을 보여주는지를 알지 못한채
“언약궤는 우리 뜻대로
승리를 안겨다 줄 물건”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3만 명이나 죽게 하십니다.
이처럼 언약궤와 함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따라서 언약궤의 승리에 참여할 자는
먼저 언약궤의 무서움이
자기 위에 덮쳐서
본인부터 그 언약궤의 능력에
삼킴을 당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결코 ‘하나님은 내 편이다“는
소리를 못하고
그 대신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드러낸다”고
고백할 수 있는
참된 성도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