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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3년 10월 21일 화요공부방
□김제원교무님 설법
수심결이 3개월 하는데 1주만 더 하면 수심결을 마치게 됩니다.
석달 째 반을 지났는데 수심결이 윤곽이 지난주까지 해서 끝난 거거든요.
삼계화택에서 사는 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고
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다가
돈오와 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자성문정혜와 수상문정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고
돈오 점수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야기 했습니다.
살아오면서 돈오 점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 돈오를 한다는 생각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부의 스타팅은 돈오 전에는 오렴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오 하기 전에 스승을 모시고, 경전을 읽고, 수행을 하고 보시를 하다보면 본래자리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나는 본래 요란함도 어리석음, 그름도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습관과 욕심에 따라서 일어나게 되는 거구나라는 것이 이것이 돈오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못난 것도 없이 텅 비었구나라는 것을 돈오해서
수많은 경계 속에서 요란한 그름을 어떻게 공부로 대치해 나갈것이가가 점수, 공부의 방법입니다.
그것이 자성문정혜를 통해서 수상문정혜를 통해서 정혜등지를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침리석삼. 이치를 보아서 산란함을 가두는 것입니다.
택법관공 이것이 혜의 방법입니다.
택법관공으로써 혼치를 다스려서 본래 다스려온 지혜를 갖춘다.
이때의 수상문정혜는 돈오하기 전에 다른 수상문 정혜입니다.
본래 자리로 바로 가야하는데 습관과 욕심이 자꾸 튀어 나와서
본래 자리로 가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 택법관공등을 쓰는 것입니다.
모든 경전이 그렇고, 대종경에도 부촉품이라는 것이 있고 정산종사 법어에도 유촉품이 있습니다.
36장 부터는 유통분입니다. 말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촉말씀이 나에게 해주시는 이야기인가 보다하면서 내용을 보세요.
오늘은 양이 많습니다. 속도있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5편 스승님의 간절한 부탁말씀
제36장 간절히 부탁하노니
원제수도지인은,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입니다. 나입니다.
연미차오하야, 연마하고 도의 맛을 느껴야
맛을 느껴야 합니다. 좌선을 하라고 해서 하고, 사경을 해야 한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맛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연미입니다.
갱막호의하야, 여우 같은 의심을 다시 내지 말라.
자생퇴굴이어다. 스스로 퇴굴심을 내지 말고
호의라는 여우는, 한번 보고 또 보고 하면서 확 달려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우같은 의심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몰라서 믿지 않습니다. 어중간히 알면 중근병에 걸립니다.
법위마다 중근병이 다 있습니다. 특신급에도 있고 법마상전급에도 있습니다.
핵심은 스승과 법을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법도 자기의 잣대로 대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중근병입니다. 병에 걸리면 100명이 걸리면 99명은 나가 떨어집니다.
핵심은 서원이 얼마나 크고 신심이 얼마나 있으냐가 중요합니다.
스승과 법에 대한 신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 신으로써 성리로써 뚫어버리고 중근병도 뚫어버리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신으로써 통과하는 것이지, 지혜로써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자들이 가장 불신하는 것 중하나가 호의불신증입니다.
지혜가 어둡고 교만하고, 서원이 약하고 욕심이 많고,
어른을 모실 줄 모르고 건방진 사람은 호의불신증 중근병에 댜부분 걸리기 쉽습니다.
이때는 교무님이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때는 정말 곤란합니다.
자기 주견이 딱 들어섭니다.
대산종사님께소 “너가 깨달았으면 어디까지 깨달았냐?”하면서 자문자답을 하셨습니다.
약구장부지지하야, 만약 장부의 뜻을 갖추고
장부지지라는 것을 졸부, 필부가 아닌 대장부라는 것입니다.
내 가족, 나만의 삶이 아닌 이 세상의 불국토를 위해서 일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장부의 뜻이라는 것은 큰 사람이 되어서 큰 일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은헤를 입은 것에 대해서 보은해 보겠다는 큰 욕심이고 큰 서원입니다.
구무상보리자인댄, 위없는 도리를 추구할 진대
사차해이재리오, 이 길을 놓고 어찌할 것인가.
이 길이란 어떤 길인가요? 구도의 길이요, 성불제중의 길이요, 돈오점수의 길입니다.
이 길을 놓고 어디를 갈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이 길 놓고 피곤하다고 오지 않고, 행사 있다고 오지 않고, 바쁘다고 오지 않는 것은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무엇이 바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절막집문하고, 간절히 부탁하노니 문자에만 집착하지 말고
문자에 집착한다는 것은 경전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배우기만 좋아하는 것입니다
배워서 내 삶과 내 마음과 연결을 하자는 것이고 생활 속에서 가치 있게 쓰자는 것입니다.
배움이라는 것이 배움에만 멈춰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금강경을 기가 막히게 해석을 잘합니다.
어떤 구절이 있는데, 장사꾼이 지금은 마음을 불가득이라고 했는데 어디에 두느냐? 하고 강사에게 질문을 하니, 탁 막혀버렸습니다.
밑에 그림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경전을 많이 보셨습니다.
그런데 이 정육점의 사장님이 불경을 많이 공부한 사람이 갔는데, “정한곳으로 주세요” 하자
주인이 칼을 대고 “어디가 정한곳이냐?”하는 소리를 듣고 깨쳤습니다
나라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깨끗한 데가 따로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깨끗한 데가 따로 있고 난 공부를 한다, 자성자리가 따로 있다라는 것이 모두 중생의 생각입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직수요의하야, 바로 뜻을 요달하여
바로 직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경전을 해석하는 것을 보면, 제가 좀 특이한 거 같습니다.
반야심경을 강연할 때, 이것이 풀기위한 강연입니다.
그것은 문자가 아닌 이미 마음 자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정혜등지가 뭔가요? 마음이 정혜잖아요
정이라고 따로 있고 혜라는 것이 따로 있는 건가요?
청지불문(聽之不聞)이라고 하였습니다. 뭔소린가요? 풀어보세요.
좌선할 때, 외부 소리가 들리지만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인가요? 그것은 초보자입니다.
마음은 성성하게 듣지만 듣는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소리는 성성하게 듣지만 듣는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경전 서점에 가서보면, 문자를 풀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의 내용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일귀취자기하여, 하나하나를 자기 서원에 돌아가
자기라는 것은 자기 서원, 자기 본마음입니다. 자성반조입니다.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가 내 마음과 둘이 아닙니다.
계합존종 즉무사지지가 자성본원에 합일하면 스승 없는 지혜가
그 무엇과도 짝하지 않는 진리자리, 법신불지라가 존종입니다.
스승은 깨달음을 인도하고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깨닫는 것은 나입니다.
스승이 깨닫도록 안내할 뿐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수양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안과 내가 만나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자성자리가 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밖으로 신앙과 수양이 만나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처럼 밖으로 신앙만 하면 안됩니다. 스승없는 지혜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자연현전하고, 자연히 나타나고
천진지리가 요연불매하야, 천진스러운 이치가 분명하게 드러나서
천진스러운 이치는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이 없는 그대로입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성취혜신호되, 지혜의 혜명이 완성이 되나
혜신이라는 것은 지혜의 법신이다. 근본질입니다.
불유타오하리라. 이것은 다른 사람에 의하여 깨친 것이 아니로다.
끝까지 나가 없어서 전체이다. 그런데 다른 외에서 온 것에 의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이차묘지가 수시제인분상이나. 이러한 묘한 종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으나
약비숙식반야종지한 대승근기자면, 만약 일찍이 반야의 종자를 심은
근이라는 것은 근성을 말하고 기(器)를 쓴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른 것입니다.
대승이라고 하는 것은 큰 그릇입니다.
불능일념이생정신하리니, 능이 한 생각 깨달음에 의한 바른 신심이 나지 않나니
정신 바른 신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기도불신이리오, 어찌 한갓말씀을 믿지 않으리요.
신의 뿌리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을 통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역내방독하야, 또한 대승의 자성도리를 비방하여
반초무간자, 무간지옥을 부르는 사람이
무간이라는 것은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즐거운 공간이 없고, 일이 없으면 일이 없는 대로 고뇌 번뇌 망상입니다
여기서 헤매고 저기서 헤매는 것입니다.
죽어서만 무간지옥이 아니고 살아서도 무간지옥이 있는 것입니다.
자성을 돌아볼 시간이 없고 즐거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무간지옥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중생들은 일이 없으면 고통거리를 장만하고 그 고통거리가 고통거리가 되어서 서로 얽히고 설켜서 악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비비라는 것은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수불신수나, 비록 확실하게 믿지는 않으나
일경오의하야 잠시결연하면, 자성도리를 귀로 한 번 스쳐 잠시 인연을 맺더라도
옛날 어떤 양반이 일생을 살다가, 비가 와가지마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독경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비오시는데 독경을 하시구나” 생각을 하고 갔습니다
그 분이 일생에 딱 한번 독경 소리를 들은 걸로 사람 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비슷한 것입니다.
설사 믿는 맘이 적었어도 귀로 스쳤다는 것은 법문을 들은 것입니다
나가 없는 것이 나라는 것입니다.
독경 음악소리를 들어도 그 인연이 되어서 그 공덕을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거 같습니까?
지금 상당히 뻥이 심한거 같지 않나요?
이 법의 가치를 얼마나 생각하느냐를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서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믿고 인과를 믿고 배우고 깨달아서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참 나를 안다는 것이고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줄 아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가지 못한 사람은 조금 과한거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유심결에 운, 유심결에 말씀하시기를
문이불신이라도 법문을 듣고서 확실하게 믿지는 않아도
상결불종지인하고, 부처님의 종자를 마음에 맺고
학이불성이라도,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더라고
유개인천지복이라하니, 인간과 천생중생보다 그 복덕이 우월하다고 하였나니
천상과 인도 선도에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실성불지정인이온, 이렇게만 하여도 성불하는데 바른 인연을 잃지 않는데
황문이신하고 학이성하야 하물며 법문을 듣고 믿어서 배워 이루어가며
수호불망자야, 본성을 수호하기를 잊지 않는다면
기공덕을 기능탁량이리오, 그 공덕을 어찌 능히 헤아리겠는가
헤아릴 수 없는 무량공덕이라는 것입니다.
뻥이 심한 것처럼 느껴지신다면, 그 가치와 고민등을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어찌 다행히 이 법을 만났는가 하는 생각이 드셔야 합니다.
37장 위태한 곳에서 후회한들
추념과거윤회지업컨댄, 과거 생의 윤회하였던 업을 미루어 볼진대
부지기기천겁을 알 수 없다고 몇 천겁을
타흑암입무간하야, 흑암지옥에 떨어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수종종고하며, 갖가지 고통을 받았는가를
우부지기기하이욕구불도호대, 또한 그 얼마나 불도를 찾아 헤메이되
선지식을 가까이 하라는 것을 내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안내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연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그러니깐 우리 원불교 좋은 풍토가 있는데 돌아가신 분이 천도제를 하는데, 대개가 장학사업을 많이 하십니다. 이번에 우리 회장님이 1000만원을 내셨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분이 다음에 출가하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출가하려면 출가인연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떤 분은 자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생에 어떤 인연을 만날지 모르니깐 돈을 내는 것입니다.
다음 번에 인연이 없을 수 있으니깐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지금 짓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아까워서 못하는 것입니다.
장겁침륜하야, 오랜 겁을 윤회의 수렁에 빠져서
명명무각하야, 어둡고 어두워 바른 길을 깨지 못하여
조제악업이런고, 모든 악업을 지었던가.
우리가 설사 업을 돌파해서 깨달았다고 해도 보조국사가 말하는 돈오점수라고 하는 것이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경계에 따라서 요란함이 얼마나 있어지던지요
설사 깨달았다고 해도 서게 도는 것입니다.
못 깨달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업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것은 본래 그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하고, 습관과 욕심, 분별성 주착심에 따라서 있어지는 것이니 대하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공부가 부족해서 이런 마음이 나는구나 하는 사람은 못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역시 인생이 고해다 하고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도 요란도 있습니다. 이것이 경계에 따라서 또 나왔구나
전생에 습관 때문에 또 나왔구나, 이것을 한번 공부삼자하는 것이 공부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원불교를 만나서 법회올 때, 즐겁게 오는지 헌배를 할 때 즐겁게 하는지보아야 합니다.
한마음 돌려서 하다보면 되는 것입니다.
시혹일사에 불각장우로소니, 때때로 한번씩 혹 생각을 해보면 저절로 긴 한숨이 나오나니
기가방완하야 재수전앙가, 어찌 방심하고 게을러서 다시 지난 날의 재앙을 받을 손가
마음이 항상 편안한 사람이 있죠?
진리를 알아서 동정이 없는 그 자리를 알아서 편안한 것이 아니라, 일이 안보이는 것입니다.
사장은 죽어라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 밑에서는 사장님 바쁘시네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처음에 출가해서 편안하게 소변을 10년간 시원하게 못 했습니다.
준비할것이 너무 많아서 그랬습니다.
오늘은 어디 가서 놀아볼까하는 사람은 신심도 없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없고 서원도 없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잘 수 있습니다 목표를 적어놓고 일과표를 짜 놓고, 대종사님 상시일기 아닙니까?
화요공부방을 기다렸다가 기쁘게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일생을 객으로 살 것인지 주인이 되어서 주체적인 인생을 살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단상에만 섰다고 주인이 아닙니다. 앉아 있어도 얼마든지 주인된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주인된 마음으로 참 정성을 들이면 시일에 관계없이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부지수부사아로, 또 누가 나로 하여금
금치인생하야 위만물지령하야, 지금처럼 사람 몸을 받게 하여 만물의 영장이 되게하고
사람이 만물지령입니다.
체령한 것이 사람입니다. 복도 지을 수 있고 가장 큰 죄업을 지을 수도 있는것입니다
불매수진지로, 진이 가장 중요합니다.
참다운 길, 이것을 어찌 참 어둡지 않게 하겠는가
실위맹구우목이요, 이것은 마치 맹구우목이라고 합니다. 넓은 바다에 판자가 깔린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정법회상을 만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섬개투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위경행을 갈승도재아, 그 경사스럽고 다행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으리요
어떤 사람이 원불교를 만나서 죽겠다고 합니다
죽겠다고 하는 사람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법을 할려고 하는데 힘들어서 하는 경우와
두 번째는 가기 싫은데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경도 하고 헌배도 하라고 하고 돈도 내라고 합니다
이 중에도 불평대학 투덜학과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원망대학 나태학과, 어떤 사람은 행복대학 감사학과를 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대학 어느과 다니십니까?
대종사님 일상수행에 내 놓으시고, 먹기만 하면 선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은사요 삼학 팔조가 돈 벌려면 더 벌 수 있고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먹기만 하면 선약인데, 늙었다고 가버리고 다리가 아프다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윤회의 성품에서 벗어날려면, 그 마음을 잘 비추고 어떻게 경계 속에서 해야 하는지 수행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방법이 연구, 수양, 취사를 두는 것입니다.
불교 육바라밀에서는 수양연구 취사의 삼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바라밀에 첫 번째가 바로 보시입니다.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원불교 학과를 들어갔는데 너가 제일 소중한 것이 뭐냐 하고 내 놓으라 하는 것입니다.
보시라고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내 놓는 것입니다.
아금에, 내가 금생에
약자생퇴굴커나 혹생해태하야, 만약 공부에 퇴굴심을 내거나 혹 게으른 마음이 나서
이항상망후라가 수유실명하고 , 항상 공부를 뒤로 미루다가 잠깐 사이에 목숨을 잃고
퇴타악취하야 수제고통지시에, 악도윤회에 떨어져 고통을 받을때에
퇴타악취, 악도라고 합니다.
수욕원문일구불법하야, 비록 한 구절 불법을 들어서
신해수지하야, 그것을 믿고 알고 받들어 지켜서
욕면신산인들. 쓰리고 괴로운 윤회를 면하고자 한들
인과를 모르는 사람은 어제 뉴스처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은혜덩어리입니다.
여러분 취업이 안되 죽겠죠? 제가 사장을 만났더니 사람이 없다고 난리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 정성이 하는 것입니다. 삼학을 들이대는 것입니다.
기가부득호아, 어찌 다시 얻을 수가 있겠는가
급도임위하야는 회무소익이니, 위태한 곳에 이르러서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전 이런 사람 많이 보았습니다.
죽기전에 다 누리고 이제 할려고 하니깐 늙어버렸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해야하나요? 그때해야 하고 지금 해야 합니다.
젊을 때 해야합니다. 근데 젊은 놈들은 과외한다고 취업 준비한다고 연애한다고 하고 새끼 나서 돈 벌고, 집장만한다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종사님 그래서 영육쌍전 법을 내 놓으셨잖아요
영과 육을 함께 하는 것이 장난 아닙니다.
원제수도지인은, 원컨대 모든 수도인은
막생방일하며, 방심하고 게으른 마음을 내지 말며
막착탐음하괴, 탐욕과 음욕에 집착하지 말고
여구두연하야,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여
한 인생을 살 때 크게 3단계라고 합니다
젊을 때는 색경계가 넘기가 어렵고
나이가 들면 재물 경계가 어렵고 돈 벌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이 들면 박수 받고, 차 뭐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3관문을 넘어야 합니다.
여자는 머리에 불붙는 것처럼 공부하고 남자는 수염에 불이 붙는 것처럼 공부하라고 하였습니다.
좌선을 할까 말까가 아니죠,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죠
무상이 신속하야, 덧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서
무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일 무상이라는 것은 물건과 마음은 생주이멸 변하는 것입니다.
육조대사께서 생사가 가장 큰 일이요 무상이 신속하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금방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생사라는 것이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수양해야지 하는 것입니다.
70대가 1000시간 하는 것보다 20대가 10분하는 것이 낫습니다.
신여조로하고, 이 생명은 아침 이슬과 같고
하루살이와 같다.
명약서광이라, 저녁에 지는 해와 같은지라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짧다라는 것입니다.
저도 보니깐 그런거 같습니다.
금일수존이나, 오늘은 비록 여기에 살아있으나
명역난보니, 내일도 또한 살아있기가 어렵나니
절수재의하며, 간절히 모름지기 마음에 새기고
절수재의어다. 간절히 모름지기 마음에 새길지어다.
제38장, 환자가 의왕을 만났으나
차빙세간유위지선하야도, 세상에 하염이 있는 착한 일만 하여도
유상(有相)-> 유위(有爲)->윗거름
무상(無相)-> 무위(無爲)->속거름
유상도 삼도 육세를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공부하고 복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일단 유상으로라도 복을 지어라. 그것도 복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상이라는 것이 윗거름이라는 것은 비가 와도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근데 속거름은 안에 거름을 준지도 모르고, 복을 짓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속거름은 그러나 무량공덕이라는 것입니다.
여경에 운, 그러므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약인이 삼천대천세계칠보로,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에 가득한 일곱가지 보배로
포시공양이소세계중생하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할 만큼 보시하며
개득충만하며 우교화이소세계일체중생하야,또 이 세상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영득사과하면 기공덕이, 사과를 얻게 하면 그 공덕이
무량무변이나 부여일식경을, 한량이 없을 것이나 잠깐 이 대승의 자성법문을
정사차법소획공덕이라하시니, 생각하여 얻는 공덕만은 못하다고 하셨다.
불
보살
연각
성문
결정순구자
무연중생
무연중생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해가 가장 늦게 비추는 것이지요.
성문이라는 것이 4과입니다. 교화를 열심히 한 사람입니다.
법문을 듣고 좋다라고 하면서 중생을 교화한 것입니다.
물건을 보시한 공덕도 더 한량이 없는 것도 정사 소위공덕입니다.
시지아차법문이 최존최귀하야, 이렇게 알라 나의 이 성리에 대한 법문은 가장 높고 귀해서
어제공덕에 비황부급이로다. 다른 어떤 공덕에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라는 것은 위도 아래도 없는 것입니다.
고로 경에 운하사대, 그러므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보탑은 필경쇄위진이어니와, 왜냐하면 보배의 탑은 필경에는 부서져 가루가 되지만
일념정심은 성정각이라하시니, 한 생각 바른 마음은 진리를 깨닫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원제수도지인은, 원컨대 수도하는 사람은
연미차어하야, 나의 이말을 깊이 연구하고 체험하여
절수재의어다. 반드시 간절히 뜻을 새길지니라.
절수하십니까? 절수 속에서 뚫리는 것입니다.
정주영씨가 “나는 학벌도 좋지 않는데, 너희는 서울대학교 나오고 박사까지 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답이 나오지 않느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러니깐 “간절하면된다”고 하셨답니다.
간절하면 뚫립니다. 건성건성합니다.
법마상전에도 항마위로 올라갈려면 간절해야 합니다 남 볼때만 하면 계속 중생입니다.
차신을 부향금생도하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강수라도 두어라, 억지라도 둬라하는 말입니다.
난수지행이 점득부난하야, 어렵지만 닦아져서 점점 어렵지 않게 되어
공행이 자진하리라. 공들임이 스스로 전진되리라.
차부라 금시인이, 슬프다 요즈음 사람들이여
기봉왕선호되, 배고픈 사람이 임금의 밥상을 만났으니
불지하구하고, 먹을 줄을 알지 못하고
병우의왕호되, 병자가 의왕을 만났으나
우리에 대한 자비심입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고민 좀 하라는 것입니다
경을 쓰면서 보조국사의 간절한 마음, 스승님에 대한 마음이 간절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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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짐도 많던데...힘드셨겠어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
이연님 감사합니다. 옮겨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