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역사 카페에 갔다가 파렴치한 한국고대사학회 란 글을 보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원출처인 아래 기사는 몇일만에 몇백명이 사람들이 글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글을 쓴 사람인 이희진 기자. 이 사람은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서강대에서 가야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성무 위원장님의 아드님이기도 하지요. 그런만큼 평범한 분이 아닙니다.
이분은 얼마전 내 카페의 책소개 게시판에도 옮겨 실었던 '김태식 교수의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한국고대사학회 게시판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분은 김태식 교수에게 상당히 유감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김태식 교수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 가야사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희진 박사는 김태식 교수를 중심으로 한 서울대학파의 전횡을 비판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 글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하긴 우리라나라에 전체에 서울대 출신들이 많은 부분에서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서로 치열하게 토론해서 문제를 비판할 것을 굳이 이렇게 인터넷 신문에 기사를 써서 비판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지난번 김태식 교수의 책에 대한 서평은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이 무엇이 잘못이고, 어떤 독단이 있었는지를 비판했으니까요.
하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한사람을 비판하기 위해 한국역사학계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듯한 이러한 글은 자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이희진 박사의 부친이신 이성무 위원장은 서울대 출신이기는 하지만, 같은 서울대 출신의 한영우 교수와 조선초기 양반 논쟁을 치열하게 하다가, 결국 서울대 원로들로 부터 낙점을 받지 못하고, 정문연 교수로 밀려났고, 한영우 교수가 서울대 교수로 낙점 받았던 일이 있지요. 결국 이희진 박사는 부친의 대를 이어 서울대 출신 역사학도들을 비판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문의 전횡, 또 엉터리 논문에 대한 비평은 좋지만, 이희진 박사는 너무 분함을 못이겨 비판의 방법면에서 조금은 서툴지 않았나 합니다.
단순한 비평보다는 보다 치열한 가야사에 대한 논쟁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그간에 김태식 교수와 이희진 박사간에 가야사에 대한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이희진 박사가 자신의 학설이 김태식 교수로 인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분함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학문은 치열한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개인의 비방을 통해서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고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학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오해를 막고, 양자의 입장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이해하자는 의미에서 이희진 박사에 대해 약간의 비평을 해보았습니다. 김태식 교수의 학설에 대해서는 이희진 박사가 이미 치열하게 비판했으므로(책소개 게시판 60번), 나의 의견은 추가시키지 않겠습니다.
지난 2월 21-22일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던 한국고대사학회 합동토론회의 주제였던 '고대한일관계사의 새로운 조명'의 발표 내용이 한국고대사연구 27집으로 출간되었다. 주제만으로 보자면 일본의 역사왜곡이 문제가 되고 있던 시점에 고대사학계가 이번 학술토론을 통해 그동안 축적되어왔던 고대한일관계에 대한 연구논문을 정리하며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보려는 시도였다고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런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중에서도 김태식 교수의 [고대한일관계연구사]라는 글이 문제다. 다른 글들은 전반적인 연구경향에 대한 탐구라기 보다 비교적 세부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사에 치중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한일관계사 논쟁의 핵심문제라 할 수 있는 '임나문제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연구경향에 대해 분석하고, 더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한 교육현황까지 분석, 비판한 김태식 교수의 글이 전반적인 주제에 비추어 중요한 비중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중을 가진 김 교수의 글 대부분은 10년 전에 출판된 {가야연맹사}에 수록된 내용의 재탕에 불과하다. 이것만으로도 최소한 '고대한일관계사의 새로운 조명'이라는 주제를 무색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10년이나 지난 연구사를 재탕해도 될 만큼 그동안 고대한일관계사 연구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고대한일관계사 연구가 침체되어 있던 상태는 아니었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김 교수가 주장하는 대로 임나일본부는 안라에 있었던 왜신(倭臣)을 의미한다는 학설을 비판 없이 수용할 정도는 아니다. 김 교수가 빼먹은 그 10년 동안 여러 연구자가 김 교수의 학설을 비판해왔으며, 김 교수 자신도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이 사실을 놓고 보면 굳이 10년 전 연구사를 재탕해야 했던 이유도 분명해지는 듯하다. 이 글에서 완전히 무시되어 있는 부분이 바로 지난 10년간 김 교수에 대해 제기되었던 연구들인 것이다. 결국 이번 글에서 자신의 학설에 비판적인 연구들을 완전 삭제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해버린 것이다. 이래 놓고도 '잘못된 임나 관련 역사 인식이 양국의 학생들 사이에 대를 이어 받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글을 맺는 김 교수의 뻔뻔함에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글이 고대사학회 합동발표회 정도 되는 중요한 학술토론회의 중심적 발표로 나오게 되면 그 영향은 심각하다.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한일관계사 연구가 김 교수의 학설을 중심으로 가닥을 잡아 나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고대한일관계사 연구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야 할 당위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한 개인의 사견에 불과한 학설을 정설처럼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파렴치한 행위가 여러 가지로 지원을 받으며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통하는 학계라면 자신에게 비판적인 연구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10년 전 연구사를 재탕하는 행위가 용납될 턱이 없다.
그런데도 이 글은 2002년 7월 30일자로 당당히 심사를 통과해 이번 고대사학보 27집에 게재된 것이다. 단순히 게재된 것만이 아니다. 발표 당시에도 공개석상에서 어떻게 이런 학술토론회에서 재탕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사회자에 의해 발언이 저지되고 말았다. 파렴치한 재탕성 글의 발표가 주최측의 비호를 받은 것이다.
이런 글이 심사를 통과하는 현실을 놓고 고대사학회를 비롯한 역사전문학술지에서 그동안 게재를 거부당한 연구자들에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고의적 재탕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 글이라면 표절 이외에 더 있는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동안 게재가 거부되어온 글들은 모두 표절이었다는 뜻인가?
학문적인 차원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당당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고대사학회 실세들의 관심이 학문적인 차원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있을지 의문이다.
더 기가 막힐 일은 이런 글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2001년도 협동연구과제 지원으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개인의 기득권 유지와 사리사욕 채우기에 국민의 혈세가 지원된 꼴이다. 이것만해도 납세자의 입장에서 기분 좋을 일이 아니겠지만, 그 영향을 단순히 연구비 몇 푼 낭비했다는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김 교수에게는 이번 연구비말고도 이 분야에 관련된 지원이 집중적으로 주어졌다. 이런 글을 쓸 정도의 능력밖에 없는 연구자에게 연구비가 집중된다는 사실은, 역으로 말해 이보다는 나은 글을 쓸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차단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학계 상황에 비추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연구자 상당수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의 혈세를 들여 파렴치한 한 교수의 경쟁자 매장시키기를 도와주는 셈이다.
이런 사태가 몰고 올 결과는 뻔하다.
김 교수 같은 실세들에게는 이런 식의 재탕성 글을 양산해서라도 연구업적을 채우고 연구비를 지원 받아도 상관없다는 관행이 확립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이런 실세에 끼지 못하는 연구자들은 공들여 쓴 글들이 게재조차 되지 못하거나, 운이 좋아봤자 읽어 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학회지 한쪽 구석에서 매장 당하는 꼴을 보아야 한다.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면 앞으로는 표절이나 재탕 같은 파렴치한 행위에 항의하는 연구자들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터질 때마다 역사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데도, 얼마 가지 못하고 쉬쉬 덮고 마는 이면에 이렇게 우리 학계 내부에서부터 새로운 연구성과와 대안의 출현을 막고 있다는 요인이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