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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88개소 순례는 四国八十八ケ所巡り(시코쿠 하치쥬핫케소 메구리), 통칭 お遍路(오헨로)로 알려진 순례길이다. 코닌(弘仁)6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94년 전에 만들어 졌다고 전해지는 이 길은 일본 밀교의 가장 큰 종파인 신곤슈(진언종)을 창시한 스님 '코보다이시 쿠카이(弘法大師 空海)' 약칭 '오다이시사마(お大師樣:대사님)'이 42세 되던 해 자신과 중생들의 재액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시코쿠를 한바퀴 삥~돌면서 절을 세우거나 수행한 자리에 절을 세워서 개창한 순례길이다. 전설에 따르자면 코보대사는 아직도 이 시코쿠를 돌며 순례자들을 돌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남자는42세, 여자는 33세에 큰 액이 낀 해라고 한다.) 코보대사 쿠카이(弘法大師 空海: 744~835) 현 시코쿠 카가와현 젠츠지시(市)에서 출생하였다. 신라계도래인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당나라 장안 청룡사에서 밀교의 스승 혜과(746~805)에게 밀교의 모든것을 전수받고 귀국, 교토의 도지(東寺)를 하사받아 불법을 전했으며 진언종을 창시했다. 시코쿠(四国)라는 말의 어원은 전국시대 이 섬이 4개의 나라로 갈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 아와, 토사, 이요, 사누키 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금은 도쿠시마, 고치, 에히메, 카가와 이 4현이 되어있는데. 옛 지명에 다음과 같은 별명이 붙어있다. 발심의 아와, 수행의 토사, 보리(菩提)의 이요, 열반의 사누키 한 나라(國)마다 각각의 명칭을 붙여 수행의 도장으로 만든것이다. 발심의 도장 아와에는 23개소의 절이, 수행의 토사에는 16개소의 절이, 보리의 이요에는 26개소, 열반의 사누키에는 23개소의 절이 있어, 모두 합쳐 88개소, 해당하는 각 절마다 시코쿠 88영장 제○○번 ○○○절 이라는 표식이 붙어있다. 다음은 이 절들의 명단이다. 이상 시코구 88개소 전 절의 명단이다. 이 중에 보면 13번 다이니치지의 주지스님은 한국분이라는 소식이고, 4번이나 중복된 코쿠분지(국분사)는 나라시대 쇼무천황이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며 일본 66지역에 관영사찰로 코쿠분지를 세웠는데 시코쿠순례에서는 이 코쿠분지들이 모두 순례사찰에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75번절 젠츠지(선통사)는 코보대사의 생가터에 선 절로 쿄토의 도지(東寺:동사), 고야산의 콘고부지(金剛峰寺:금강봉사)와 더불어 코보대사의 3대 성지로 불리는 절이다. 이 88곳 말고도 벳가쿠 20영장이 있는데 원 88곳과 벳카쿠 20곳을 합쳐 총 108곳. 이 곳을 모두 돌면 108번뇌가 사라진다고 한다. (종종 벳가쿠 영장들은 방카이(番外)영장과 이름이 혼동된다. 하지만 방카이와 벳가쿠는는 전혀다른 영장들이다. 예를들어 24번 호쓰미사키지 근처에 있는 코보대사가 수행한 동굴 이라던지, 73번 슛샤카지의 대사 투신처라던지... 그런곳들을 방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절들을 찰소(札所:후다쇼)라고 하는데 이는 각 절마다 자신의 납찰(納札:오사메후다/노우사츠)을 공양올리기 때문이다. 이쯤되니... 순례자의 기본물품을 설명해야 계속 설명이 될 듯하다. 위에 보이는 것들이 가장 기본적인 순레자 세트라고 하겠다. 설명하기 이전에 순례자라는 말을 오헨로상(お遍路さん)으로 바꿔야겠다. 오헨로상이란 우리말로 직역하면 "순레(자)씨"라는 뜻으로 일본어 사전에도 당당히 등록된, 순례자들을 부르는 일본어 명사이다. 시코쿠에서는 오헨로상 혹은 오시코쿠상 이라고 불린다. 자, 그럼 용구 설명을 봅시다! 사진 제일위의 긴 지팡이는 콘고우 즈에(金剛杖:금강장)이다. 금강장은 원래 흰 나무로 금강저(불교에서 쓰는 법구로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한다.)의 모양을 본따 사람의 신장과 비슷한 길이로 만든다. 고 한국 불교 사전에는 설명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이 콘고우 즈에는 시코쿠 순례의 필수 아이템으로 코보대사의 화신이라 여겨지므로 소중히 다뤄야 한다. 예를 들면... * 순례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기전 흙이 묻은 지팡이 끝을 깨끗이 씻어야한다. *잠잘때는 반드시 도코노마(다다미방에서 방한쪽의 바닥을 약간 올려 장식품을 두는곳)에 세워두거나 머리맡에 세워둬야 한다. *지팡이 끝이 닳거나 나무결이 일어나면 절대! 칼로 깎거나 사포등으로 문지르지말고 돌이나 나무등걸에 비벼 다듬는다. *다리밑에서 코보대사가 자고있다는 전설이 있기에 대사님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다리를 건널때는 지팡이를 짚지않는다. *지팡이로 어딘가를 가르키거나, 던지거나, 바닥에 막 내려놓거나, 화장실에 들고 들어 가거나 하지 않는다. 뭐 이 정도의 준수사항이 있다. 제일 위 비단으로 싸인 부분의 안에는 공(空), 풍(風), 화(火), 수(水), 지(地)를 상징하는 범자(梵字)가 차례로 쓰여있는데 이는 오륜탑(五輪塔)을 상징한다. 그 아래는 미륵보살을 상징하는 범자 'YU'가 그 아래는 '나무대사변조금강' 이라는 귀의문이 마지 막으로 同行二人(동행이인)이라고 쓰여있는데 이뜻은 코보대사가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오헨로 도중에 가장~ 많이 보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지팡이는 지팡이...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결국 험하게 다루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뱌쿠에 혹은 하쿠이 라고 부르는 백의(白衣), 이건 쉽게 말해서 수의다. 옛날에는 오헨로를 돌다가 산적을 만나거나, 병들어 죽는 경우가 많았던 데다가 보통 병자들이 죽기 전에 자신의 업을 씻기위해 서, 또는 홍법대사의 축복으로 병에서 났길 바라며 죽을 각오를 하고 순례를 했다고 한다. 혹은 이 순례를 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는 뜻을 나타내며 수의를 입던것이 지금은 유니폼 처럼 됬다. 등에는 "나무다이시헨조콘고우(南無大師遍照金剛:나무대 사변조금강)"이라고 쓰여있다. 나무대사편조금강이 아니다. 변조금강이다. 遍자는 불교한문에서 '변'으로 발음된다. 아무튼 '나무대사변조금강'이란 "홍법대사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나무'는 범어로 Namas. "돌아가 의지(귀의)합니다." 라는 뜻이고 대사는 말 그대로 홍법대사를 부를때 쓰는 대사. 변조금강은 홍법대사가 당나라에서 혜과 아사리로부터 관정을 받 을때 받은 관정명(灌頂名)이다. 이 "나무다이시헨조콘코우"는 "코보대사께 귀의 합니다." 라는 뜻으로 진언종에서 가장 많이 하는 기도문구이다.(정확한 명칭은 어보호(御宝号)라고 한다.) 3번째! 스게카사(菅笠:관립)이라는 삿갓이다. 정면에는 미륵보살을 상징하는 범자(梵字)가 쓰여있는데, 이 범자부분이 앞으로 오게 써야 헨로도중에 악운이라던지, 재액이 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범자의 반대편에는 동행이인(同行二人)이 쓰여있다. 그 두 글의 주변으로 迷故三界(혹고삼계), 悟故十方空(오고시방공), 本来無東西(본래무동서),何処有南北(하처유남북) 이라고 쓰여있는데 뜻은 "삼계를 해는 이유는, 시방의 공(空)을 깨닫을 까닭이니 , 본디 동서에 없거늘, 어찌 남북에 있겠는가?" 라는 뜻을 가진 게송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옛날엔 죽음을 각오하고 걷던길이라 했다. 당시에 삿갓은 사자의 얼굴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참고로 콘고우 츠에는 묘비로 쓰였음.) 하지만 지금은 비나 태양광을 가리는 그냥 모자의 역할을 하고있다. 일웹의 설명을 빌리자면 "삿갓 덕 에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하니 참, 편리한 물건이다. 4번째! 와게사(輪袈裟:륜가사) 사진에는 삿갓 아래 보이는 보라색 길쭉한 천 조각 되겠다. 와게사, 우리말로는 륜가사 라고 하는것인데. 스님들이 입으시는 가사의 약식으로 목에 거는 가사이다. 가사가 뭔고하니. 왜 TV나 사진등에서 스님들 보면 회색 승복위에 입으시는 갈색 혹은 붉은색 천을 본적 있을 것이다, 그게 가사다. 원래는 출가 한 수행자들에게만 허락된 물건인데... 일본에서는 승, 속 다쓰는 모양인듯 하다. (어떤책에는 독경때 목에거는 영대라고 되어있는데. 와게사는 가톨릭의 영대(Casula)와 관련이 없다. 가사와 영대는 가진 의미 도 완전히 다르고... 목에 거는 것과 모양이 비슷해서 착각한 듯하다. 또 와게사는 순례길을 걷는 중에도 착용하는것이 예의이다.) 시코쿠에서는 순례용으로 만든 와게사가 따로 있는데. 이 와게사에는 "시코쿠 88개소 순배(巡拜)", "나무대사변조금강"이 쓰여 있다. 시코쿠 순례용 와게사. 이 것말고도 일반 비단으로 만든 것이나 반야심경이 수놓인 것도 있다. 이 가사도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에 들고 들어 가면 안되고 식사때엔 벗는게 원칙이다. 5번째! 쿄혼(經本:경본)과 노우쿄우쵸(納經帳:납경장) 쿄혼은 말 그대로 불교 경전이다.원래는 반야심경을 한 부씩 베껴써서 그것을 올리고 납경장에 묵서(붓글씨-보통 절이름과 절의 본존을 상징하는 범자를 써줌)와 주인(스탬프)을 받는게 원칙이나 요즘에는 경본의 순서대로 독경하는 것을 납경(베껴 쓴 경전을 올리는 것)을 대신한다. 물론, 아직도 옛 방식대로 경전을 베껴써서 올리는 오헨로상들도 있다. 간단하게 개경게, 반야심경, 본존진언, 어보호, 회향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듯하나 원래는 시코쿠 순례전용 경본이 따로 있어 그 경본의 순서에 따라 경을 읽어야 한다. 전용 경본에 따르면 독경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개경계-참회문-삼귀-삼경-십선계-발보리심 진언-삼매야계 진언-반야심경-어본존 진언-광명진언-어보호-회향. 어본존 진언은 각 절 본존의 진언으로 본당에서만 외우고 코보대사를 모신 다이시도(大師堂:대사당)에서는 외우지 않는다. 또 어떤 경본은 십선계라던지, 13불(진언종에서 각12지 띠별로 모시는 본존)진언등이 있는 경본도 있으나 대략 위 순으로 하면 될 듯하다. 이 외에도 고레이카(御詠歌:어영가)라 하여 불, 보살을 찬탄하는 아주~ 느릿느릿하고 구슬픈 노래가 있어 독경을 대신하는 것도 있으나 개인이 고레이카로 순례하는 이들은 적은 듯하다. 보통 고레이카를 공부하는 사람들 끼리 단체로 와서 순례를 하는 듯. (절마다 가사가 다 다른데다가 음도 다 다르다.) 개경계나 발보리심 진언, 삼매야계 진언, 광명진언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쓰는 진언이나, 발음이나 글의 순서가 약간틀리다. 반야심경도 그렇고... 경본은 다음에 한번 따로 올려보도록 노력을... 그리고 시코쿠 헨로의 핵심! 납경장 되시겠다.. 납경장은 위에서 말했듯이 납경후에 납경소에서 각 절의 본존을 상징하는 범자와 절의 이름을 붓글씨로 써주고, 주인(朱印:도장)을 찍어 주는 공책이다. 주인은 "시코쿠 ○○번" 도장과 그 절의 본존을 상징하는 범자, 그 절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 3개를 찍어준다. 제1번절 료젠지의 납경장 쓰는 모습 (시코쿠 순례드라마 "Walkers"제 1화 캡쳐) 사실 납경장의 묵서는 사람이 손으로 쓰는것이 아니라 목판으로 된 도장으로 누르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 부턴가 자필 묵서로 변하더니 지금은 전부 자필 묵서로 납경장을 써주고 있다. (가장 마지막 까지 목판으로 해주던 곳은 4번절 다이니치지로 1990년대 후반까지 했었다.) 아무튼... 이 납경장은 한 번 쓰고 끝! 이런게 아니라. 계속해서 쓸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한 번 순례를 끝낸 사람이 다시 왔다, 그러면 그 장에 묵서는 생략하고 주인만 찍어준다 . 그러면 납경장이 결국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시뻘겋게 된다. 헨로를 143번이나 돈 오헨로상의 납경장 그리고 납경을 받을때는 그 페이지를 펴서 주고, 거스름돈이 남지 않도록 딱 정확히 주는 것이 예의라는게 일웹의 통설이다. 그렇다고 잔돈을 일부러 만들지는 말 것! 순례중에 동전으로 묵직한 지갑은 상당히 짐이다. 그냥 눈 딱감고 1만엔 짜리 지폐 를 내밀어도 싫은 기색 없이 거스름돈을 주니 걱정하지 말자. 공책외에도 족자, 백의 등에도 찍어주는데, 88개소의 도장이 모두 찍힌 백의를 죽을때 수의로 입으면 홍법대사가 저 세상 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는 믿음이 있다. 납경장을 써주는 가격은 시코쿠 88영장회에서 결정했는데 다음과 같다. 백의에 주인을 찍을 경우-200엔(묵서는 생략) 납경장-300엔(주인, 묵서) 족자-500엔(주인, 묵서), 주인(도장)만 찍을경우-200엔 (납경을 받을 수 있는시간: 오전7시~오후5시까지.) 이 납경장이 가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데. 특히 단체 순례자들이 미리 잔뜩 왔을 경우가 그렇다. 단체 순례자들이 왔을 때 가이드가 가방 한가득 납경장, 족자, 백의를 가져와서 납경을 받는데. 덕분에 도보 순례자들은 한참 기다려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긴다. 종종 단체납경을 하던 납경소 직원이 도보 순례자 것을 먼저 해주고 다시 이어서 단체 남경을 해주기도 하지 만 그냥 기다리는 것이 편하다. 필자도 20분 정도 기다려본 경험이 있다. 또 이 납경장의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종종 도보순례자와 단체순례자의 납경장이 섞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납경장 안쪽에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따로 표시를 해두자. 자자..일단은 사진에 나온 용구 설명은 끝났고.. 마지막으로 오사메후다/노우사츠(納札:납찰)과 오미에후다(お御影札: 어영찰), 즈타부쿠로/산야다이(頭陀袋:두타대/山谷袋:산곡대)를 설명으로 용구 설명은 진짜 끝이다. 위쪽 왼쪽이 오미에후다, 오른쪽이 오사메후다. 그리고 아래의 가방이 즈타부쿠로. 오미에후다는 보는것과 같이 각 절의 본존을 그린 카드이다. 보통 오미에후다라고 하기보단 "오스가타"(御影)이라고 한다. 각 찰소에서도 그냥 오스가타라고 말하고...칼라로 된 것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따로 말을 해야하고. 돈을 별도로 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사메후다(보통 '후다'라고 부른다.)는 자신의 이름, 주소를 써서 본당과 대사당에 공양하는 일종의 명함같은 것이다. 제일 위에는 홍법대사의 진영과 함께 "국태민안, 가내안전" 등의 글귀가 쓰여있는 것과 "추선공양(追善 供養), 가내안전"이라고 쓰여진 오사메후다. 크게 이 두 종류가 있는데 처음 헨로를 도는 순례자는 추선공양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예의라는 설이 있다. 추선공양이란 죽은 조상이나 부모의 명복을 빌며 공양한다는 뜻으로 먼저 나를 이렇게 존재하게 해준 조상들과 부모께 감사를 표하는게 먼저라는게 일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설명이다. 이 오사메후다는 헨로를 몇번 돌았는가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데 1~4회는 흰색, 5~6회는 녹색, 7~24회는 붉은색, 25~49회는 은색 50~99회는 금색, 100회 이상은 비단으로 된 오사메후다를 쓴다. 순례도중에 오헨로상에게 선물을 하거나 도와준 사람에게도 주며 머무른 숙소나 휴게소의 벽에 붙이기도 한다. 은색, 금색, 비단으로 된 오사메후다를 헨로 도중에 받게되거나 줍게되면 헨로길을 편안히 해주는 부적이라 하여 금색이나 비단을 쓰는 오헨로상들 중엔 절 입구등에서 다른 오헨로상들에게 나누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비단으로된 오사메후 다를 얻기위해 본당이나 대사당앞 오사메후다를 넣는 상자를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다고...(물론 엄청난 실례이다. 하지만 오사메후다를 넣으려고 상자를 봤더니 금이나 비단으로 된 것이 바로 위에 있어서 주었다는 경우는 괜찮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즈타부쿠로/산야다이 라고도 하는 이 가방은 오헨로상들이 사용하는 납경장, 경문, 향, 초, 지도등 손이 자주가는 물건들을 넣어다닌다. 단체 순례객들이나 짐을 어디 다른데 맡긴 사람은 이 가방만 달랑 들고 길을 걷고 있는 보습이 종종 보인다. 고야산 곤고부지(금강봉사)에서 직접 찍은 사진, 부부가 참배를 왔는데 죄측의 아저씨가 매고있는 흰색 가방이 즈타부쿠로다. 시코쿠를 다돌고 마지막 고야산 참배에서 금강봉사의 묵서를 받아갔다. 그럼 도구소개는 대충 된 것 같으니 이 길의 시작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코쿠에 전해지는 전설 "최초의 오헨로상 에몬사부로(衛門三郎)" 이야기를 보도록 하자... ....옛날옛적 제47번절 야사카지(八坂寺)근처에 에몬사부로 라는 탐욕이 그득한 사내가 있었다. 그때 마침 코보대사는 시코쿠를 돌며 수행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날 코보대사 앞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야사카지 근처에 있는 탐욕이 많은 남자를 구제하라는 말을 하셨다. 코보대사는 문수보살님의 말씀에 따라 에몬사부로의 집에 가서 발우를 내미시며 평상시와 같이 시주를 받으려하셨다. 에몬사부로는 당연히 무시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7일째 되던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에몬은 빗자루로 발우를 내리 쳐서 8조각을 내버렸다. 발우를 잃어버리고 씁슬히 그 집에서 물러나셨고 에몬은 그 모습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에몬사부로의 여덟자식이 차례 차례 죽어나가는 것! 에몬은 매일은 눈물을 흘리며 지냈다. 코보대사는 이 이야기를 들으시곤 아무리 부처님의 인도라고는 하나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시곤 자신의 신통력으로 자갈을 날려서 죽은 아이들의 무덤을 만들 어주고 아이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49재를 지내주었다. 하루하루를 절망속에 살던 에몬은 문득 한 스님의 발우를 박살낸 것을 기억해 내고 이 모든게 바로 그 죄로 인해 일어난 것이 라고 생각했다. 이에 에몬은 코보대사에게 사죄를 위해 코보대사가 머무르고 있던 절로 찾아갔다. 그러나 코보대사는 이미 다른 절로 간 후였 다. 절의 주지스님은 에몬에게 "쿠카이님은 당신의 아이들을 위해 무덤을 만들어주고 49재를 지내는 동안 매일마다 아이들을 위해 독경을 하셨소" 라는 말을 듣곤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어 집을 떠나 코보대사를 뵙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노라 결심하고 순례에 나섰다. 시코쿠를 20바퀴나 돌았을 때. 에몬은 자신이 살던 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결 같이 자신을 기다리던 아내 는 전날 숨을 거둔 상태였다. 이에 에몬은 "그래! 거꾸로 돌면 스님을 뵐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21번째 순례를 시작한다. 그것도 역으로. 그렇게 돌고돌고 드디어 제12번 쇼잔지(燒山寺)에서 병에 걸려 쓰러져 죽으 려는 순간! 홀연히 머리맡에 코보대사가 나타나 모든 것을 용서해 주며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에몬은 말했다. "제가 이 생 동안 온갖 악업을 쌓고 인색했는데 그것이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다음생에는 한 나라의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 선업 을 많이 쌓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던 집을 절로 만들어 후세의 사람들에게 경계가 되게 해주십시오" 홍법대사는 작은 돌에 ""에몬사부로의 재래"라고 쓰고 오른손에 쥐어 주자 에몬은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리고 에몬사 부로의 집은 벳가쿠 영장중 한 곳인 몬쥬인(文殊院)이 되었다. 뒤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몇 백년뒤 시코쿠의 어는 영주에게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들의 오른손을 꽉 쥔채로 태어났단다. 그런데 3살이 되던 생일날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몬주인이 있는 남쪽으로 향하더니 "나무다이시헨죠콘고우"라고 외치자 그동안 쥐었던 오른손이 펴졌고 손안에서 돌이 하나 나왔다. 그 돌엔 "에몬 사부로의 재래" 라고 쓰여있었단다. 즉 에몬 사부로의 환생이였던 것이다. 이에 그 부모는 그 돌을 절에 공양 올렸 고, 장성해서 나라를 이은 에몬사부로의 환생은 선정을 펴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전하다. 그리고 돌을 공양올린 그 절이 바로 현재 51번절 이시테지(석수사)이다. 위 이야기가 시코쿠에 전해지는 최초의 오헨로상 이야기이다. 그리고 최초의 사카우치(逆打ち)의 이야기이다.(참고로 오사메후 다를 쓰게 된 것도 이 에몬사부로가 어느 절에서 홍법대사의 조각을 보고 "이 스님을 꼭 뵙게 해주십시오. -에몬사부로"라고 종 이쪽을 올리게 된 것이 시초라는 전설도 있다.) 제12번 찰소 쇼산지 경내에 있는 에몬사부로의 묘와 전설을 보여주는 동상, 묘비에 순례원조 에몬사부로의 묘라고 분명히 쓰여있다. 사카우치란 우리말로 "역으로 치기" 라는 뜻이다. 즉 반대로 걷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와 반대로 바로 걷는것은 토시우치 (通打ち)라고 한다. 여기서 "치기"라는 말의 유래는 말 그대로 못이나 뾰족한 물건따위를 망치 따위로"친다"에서 온 말이다. 위에서 말한 오사메후다는 원래 종이나 비단이 아닌, 나무나 구리로 만든 패였다. 이 패들을 구멍을 뚫어 실에 꿰어 목에 매고 다니다가 각 찰소의 참배를 마치고 본당이나 산문(山門:우리나라 절의 일주문에 해당)등에 못으로 쳐서 박은데에서 비롯된말 이다.(근대에 와서 건물등의 보호를 위해 종이로 바뀌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53번절 엔묘지(원명사)에는 에도시대 초기 (1650년)에 순례한 사람이 남기고 간 시코쿠에서 가장 오래된 오사메후다는 동제로 만든 판이다. 참고로 오사메후다가 종이로 바뀐 지금. 절의 시주함에 세전을 넣기위해 가운데 구멍이 뚫린 5엔짜리 동전들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순례하는 오헨로상들도 있다한다. (여기서 5엔은 구멍이 뚫려 실에 꿰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5엔의 일본어 발음 '고엔'은 좋은 인연이라는 뜻인 호연(好緣)의 발음인 '코우엔'과 발음이 비슷하여 세전으로 주로 쓰이는 돈이다.) 여하튼 에몬 사부로의 전설로 인해 아직도 많은 순례자들, 특히 자신의 업이 깊다고 생각하거나 바로 도는 순례를 하는 여러번 한 사람들은 아직도 홍법대사가 시코쿠를 돌고있다는 전설을 믿고, 홍법대사를 만나기 위해 사카우치를 돌기도 한다. 그러면 참배 순서를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예를 올린뒤에는 관음전을 가든, 산신각을 가든, 자기 마음 대로참배를 하나 일본은 참배 순서가 있다.(어느 절은 '참배순로'라고 쓴 푯말까지 세워놓은것을 본적있음.) 그럼 순서를 봅시다~ 1. 절의 입구인 산문(山門)또는 인왕문(仁王門)등에서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2. 절입구에 있을 미즈야(水屋)에서 국자로 물을 퍼서 손을 씻어 몸을 정갈히 한다. (주의!) 손도 씻는 순서가 있다. 1.왼손을 씻는다.→ 2.오른손을 씻는다→ 3.왼손에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뱉는다.→ 4.물을 퍼서 국자를 그대로 세워 자루로 흘려보내 자루까지 씻는다. 3. 몸을 정갈히 했으면 종각에 가서 종을 친다. 종을 쳐서 부처님께 아무개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본당에서는 큰 방울이나 징이 매달려 있으니 2번 정도만 치자. 이 역시 본존께 참배하러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절에 따라서 는 종을 못 치게 하는 곳이나 타종료를 받는 곳도 있다. 이른 아침 등에는 종을 치는것이 주변에 실례가 되니 삼가.) 4.본당에 오사메후다를 올리고 향과 초를 공양올린다. 향은 3자루씩 올리는게 원칙이지만 1개씩 올려도 무방하다. 초를 킬때 는 촛대의 안쪽부터 키는 것이 예의. 불을 옮기라고 중간중간 큰 초에 불을 켜놓은것이 있으므로 그 곳에서 불을 옮겨도 좋지 만 라이터나 성냥을 휴대하는게 더 좋다. (다른 사람이 킨 초에서 불을 받으면 그 사람의 업(業)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으므 로 주의.) 5.경문을 읽는다. 경문을 읽을때는 본당 바로 앞이나 정면 계단에서 읽는것은 삼가하자 다른 오헨로상들이 오사메후다를 올리거나 징을 치는데 방해될 수 있다. 6.본당 다음은 대사당이다. 대사당은 코보대사를 모시고 있는것이 보통이나 절에 따라서는 그 절을 세운 스님을 모시고 있는 경우도 있다. (4번, 5번을 반복) 7.납경소에서 납경을 받는다. 8.산문에서 합장하고 인사를 한뒤 다음 찰소로.... (돌아 갈때는 종을 치지 않는다. 돌아갈때 종을 치는 것은 말 그대로 이 인연을 종치겠다는(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참배를 88번 다하면, 일단 시코쿠 순례를 마친것이다. 요즘은 보니 88번 오쿠보지를 참배하고 다시 1번 료젠지에 가서 감사참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은 데 원래는 이런 전통이 없다고 한다. 이런 전통은 2차대전 이후부터 나타난것으로 보고있는데, 이 전통에 한몫한것은 1번 료젠지에서 팔고있는 납경장... (이곳에서 파는 납경장에는 제일 마지막장에 다시 1번 료젠지가 있다. 다른 곳에서 파는 납경장에는 없고...) 뭐, 88번에서 마치는 것보다 다시 료젠지까지 가게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시코쿠를 일주한 것이니 그것도 그것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코보대사가 미륵보살이 올때까지 죽지않고 명상에 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일본 와카야마현 고야산(高野山) 오쿠노인(奥の院) 바로 앞의 다리, 이 이상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있다. 진언종의 가장 신성한 성지이며 오헨로상들의 최종 도착지이다. 1번에서 88번까지 모든 절을 다 돈 것을 게치간(結願:결원)이라고 한다. 결원을 한 오헨로상들은 바다를 건너 와카야마현에 있는 고야산으로 참배를 가는데. 고야산은 코보대사가 개산(開山)한 산으로 고야산 진언종의 총본산이자 진언종의 성지이다. 이 곳에는 코보대사가 세운 절인 콘고부지(金剛峰寺)와 부처의 세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만다라를 지상에 건축으로 옮긴 단 조가란(壇上伽藍:단상가람)과 함께 코보대사의 묘굴(墓窟) 오쿠노인이 있다. 특히 이 오쿠노인에 대해서는 전설이 하나 전해 온다. 진언종에서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코보대사가 열반한후 당시 천황이었던 다이고천황은 그에게 코보다이시(弘法大師:홍법 대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전까지는 코보대사는 법명인 쿠카이(空海)로 불렸는데 이 이름도 시코쿠와 관련이 있다.) 이를 보고하기 위해 교토 도지(東寺)의 장로였던 칸겐(觀賢:관현) 스님이 고야산으로 올라가 홍법대사의 시신이 안치된 묘굴의 문 을 열었다. 그런데 열반한 당시 선정(=명상)에 든 상태 그대로, 피부와 살은 물론 체온까지 그대로 계셨다고 한다. 즉 홍법대사는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오실때 까지 불사의 몸으로 선정에 들어 중생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명상 중이라는 것이다.(여기서 시작된 것이 입정신앙(뉴죠신코:入定信仰)이라는 신앙이다. ) 실제로 고야산 곳곳에서 "대사님이 살아계신 성지이므로 정숙을"이라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오쿠노인은 진언 종의 절대적인 성지가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참배객들이 오고있다. 그리고 바로 이 오쿠노인이 오헨로의 최종 도착지이다. 앞에서 88번을 돌면 다 끝났다라고 했는데 왜 여기가 최종 도착지이냐? 하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 원래 오헨로상들은 시코쿠로 떠나기 앞서 이곳 오쿠노인을 참배, 코보대사와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고 88절을 돌았다. 그런데 몇몇 오헨로상들이 "마지막도 정성스레 하고 싶다." 라 하여 마친 후에도 오쿠노인에 가서 무사히 순례를 끝나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참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 풍습이 전해오면서 현재는 88번 참배(결원)→ 다시 1번 료젠지(감사참배)→ 고야산 오쿠노인(보고참배) 라는 형식이 되 어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몇몇 납경장들에 보면 제일 마지막 장에 "고야산 오쿠노인"장이 따로 있고 3~4장의 여벌 납경페이지가 첨부되어있다. 본인이 직접 본 어느 오헨로상은 시코쿠를 돌고와서 고야산 3대 성지인 오쿠노인, 콘고부지(금강봉사), 단조가란(단상가람), 콘도(금당. 고야산의 총본당에 해당) 세 곳의 납경까지 모두 받아 가는 것을 보았다. 고야산까지는 전차가 있으므로 편안히 갈 수 있지만 몇몇 엄격한 오헨로 상들은 료젠지에서 도쿠항에서 배를 타고 와카야마 항으로 건너간후 거기서 고야산 입구까지 걸어간 뒤 거기서부터 옛 순례길인 쵸이시미치(町石道:정석도)를 따라 오쿠노 인까 지 걸어서 올라간다. 쵸이시미치란 원래 홍법대사가 순례오는 이들을 위해서, 또 한달에 9번 산 아래 사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만든 길에 109M 에 하나씩 나무로 된 탑을 세워 길을 표시한데서 시작된다. 이 나무 탑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훼손이 되었고 가마쿠라시대에 고야산에 있는 절 중 하나 인 헨조코인(遍照光院:변조광원)의 제 9번 아사리(阿闍梨:밀교에서 관정을 줄 수 있는 단계 의 승려로 그냥 우리나라의 큰스님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의 건의로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시주를 해서 돌로 된 탑을 세웠다. 고야산 다이몬(大門)바로 뒤에 있는 돌탑. 이와 같은 돌탑이 고야산 단조가란에서 산 아래까지 36개가 있다. 이렇게 고야산까지 참배하면 시코쿠88개소 순례는 모두 끝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위에서 다루지 못했던 또는 설명이 부실한 몇몇 오헨로의 용어를 살펴보자. 1. 도교니닌(同行二人:동행이인): 시코쿠 오헨로 도중 가장 많이 보게 되는말. 마음은 항상 홍법대사와 함께 걷는다는뜻. 2.아루키 헨로(步き遍路:걸음순례): 시코쿠 88개소를 모두 걸어 순례함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토시우치, 사카우치, 그리고 쿠키리우치(区切り打ち:구역 잘라치 기)라 하여 보통 직장인들이 걷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발심의 아와를 올해 걷고 다음해에 수행의 토사를 걷는, 즉 부분 부분 을 걸어서 모두 걷는 방법이다. 보통 직장인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다. 3.오헨로상(お遍路さん) : 시코쿠 88개소를 걷는 순례자들을 말한다, 종종 오시코쿠상(お四国さん) 이라는 말도 쓰인다. 4.오셋타이(お接待:접대) : 시코쿠 주민들은 오헨로상을 홍법대사의 화신으로 여겨 작게는 물이나 먹을것, 크게는 돈 등을 보시한다. 이를 오셋타이라 고 한다. 오셋타이는 부처의 선물로 여겨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거절해서는 안된다. 종종 도보 순례자들에게 차로 다음 찰소 까지 태워주는 엄청난 오셋타이도 있다. 5.센다츠상(先達さん:순례 선배) : 이미 시코쿠를 모두 돈 사람중 4번이상 걸어 시코쿠 영장회로 부터 공인 센다츠가 된 사람들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여행가이드정도 되겠다. 그래서인지 단체 순례객들의 경우 센다츠상을 가이드로 고용해서 순례하는 경우도 있다. 센다츠상들은 콘고츠에가 아닌 스님들이 짚고 다니는 석장(錫杖)을 들고 다니고 센다츠 전용 와게사를 사용하므로 구분하기 쉽다. 센다츠는 모두 7단계가 있는데 가장 낮은단계가 센다츠, 가장 높은 단계가 겐로다이센다츠(元 老大先達:원로 대 센다츠)이다. 다이센다츠 정도 되면 납경장에 주인을 빽빽히 받아 새빨갛게 되는 경우도 있다한다.(위의 납경장 사진 참조.) 센다츠가 되려면 다른 센다츠의 추천 혹은 오헨로 안에 있는 찰소의 주지스님의 추천이 필요하며 시코쿠 영장협회에서 심 사후 75번 절 젠츠지에서 하루 간 연수를 받으면 센다츠로 등록된다. 6.카케즈레(掛け連れ:도중 동반) : 순례를 하던중 모르는 타인과 안면이 터서 같이 걷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7.슈큐보, 민슈쿠, 제곤야도, 츠야도 (宿坊:사찰 숙소, 民宿:민박, 善根宿:무료숙소/저가숙소, 通夜堂:사찰 무료숙소): 모두 헨로도중에 만나게되는 숙소들의 명칭이다. 슈큐보는 사찰에서 운영하는 유료숙소로 아침, 저녁을 포함하고 목욕시설도 제공하는 일종의 여관으로 보면 되겠다. 요금 은 대략 6000엔 남짓 슈큐보에 묵게되면 저녁이나 아침에 있는 기도에 참가 해야하며 이때 보통 오헨로상들은 들어가지 못 하는 본당에 들어갈 수 있는 특전(?)이 따른다. 민슈쿠는 우리나라의 민박과 같은 개념이다. 요금은 식사 포함해서 대략 6000엔에서4000엔 정도. 식사를 불포함으로 묵는 스도마리로 묵으면 약간 싸진다. 제곤야도는 시코쿠에만 있는 독특한 숙박시설이다. 보통 지역주민들이 오헨로상들을 위해 잠자리를 오셋타이 한다는 의미 로 방 한 칸 정도를 무료로 내주는 것이다. 식사나 목욕, 세탁도 함께 해주는 곳도 가끔 있다. 츠야도는 사찰에서 제공하는 무료숙소, 숙소라 하기엔 창고나 종각의 한켠을 개조한 곳이다. 식사나 샤워시설등은 제공하 지 않지만. 종종 샤워시설이 있는 곳도 있다. 8.고레이카(御詠歌:어영가) : 고레이카는 옛날 문맹률이 높던 시절 오헨로상들이 참배를 와서 경전등을 읽지 못하므로 경전을 대신하여 부른,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로 이 노래를 부르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믿었다. 일본의 시(詩)인 와카(和歌)에 느릿느릿하고 구슬픈 곡조를 붙인 것으로 종이나 징에 맞춰 부르는데 가사의 내용은 보통 그 절의 이름이나 본존과 관계가 있으나 절의 전설이나 주변의 유명한 산이나 강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예시로 다음은 1번 료젠지의 고레이카이다.참고로 료젠은 우리말로 영산, 료젠지의 본존은 석가여래이다. 이 점 기억하고 고레이카를 보자. "霊山の釈迦の御前に巡り来て 万の罪も消え失せにけり" (영산의 석가앞에 순례를 오면 수많은 죄도 녹아 없어지리니.) 뭐, 언젠가는 가보겠지. 마지막으로 시코쿠 순례와 관련된 유용한 사이트들.. 그래도 일어 쫌 한답시고 전부 일어 사이트들 만 봤다... 일본어가 안되는 분들은 네이버 일본어 번역기를 추천. http://www.kushima.com/henro/ -쿠시마 헨로관, 운영자가 시코쿠를 여러번 돌았을 뿐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의 순례기를 볼 수 도 있고 특히 운영자가 만든 "체험적, 헨로백과(体験的,遍路百科)"는 운영자와 다른 오헨로상들의 체험으로 만들어진 사전으로 아주 정확하고 또 읽기 에도 좋다. http://www.iyohenro.jp - 시코쿠 헨로길 보존협회, 한국어판 오헨로 가이드북을 주문할 수 있다! http://www.maenaem.com/henro/ - 오헨로의 권유, 오헨로의 기본지식과 찰소를 참배하는 방법, 오헨로전용 경본을 볼 수 있다. http://www.nbn.ne.jp/~club88/ -오헨로 클럽, 홍법대사의 생애, 오헨로의 역사를 볼 수 있으며 벳카쿠20영장에 대한 소개도 있다. http://www.shikokuhenrotrail.com/ -시코쿠헨로 트레일, 유일한 영문 사이트. 운영자가 미국인으로 88개소와 벳카쿠 20영장을 모두 도보로 순례한 사람이다. 순례준비에 대해 상세히 알려준다. 일웹의 헨로 관련 사이트들도 추천하는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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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중에 은퇴기념으로 한번걸어 보겠습니다
한오년 남은것 같은데 ~
풀코스는 1400km라고 하는데 꼭 도전하려고 합니다.
2016년도에는 힘들 것 같아 2017년도를 기약합니다.
지금 시코쿠 카페에서 상세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합니다.
나팔씨가 빨리 일본을 다녀와야 좀 잠잠해질텐데
그때까지는 걱정입니다.눈만 뜨면 일본 타령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