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세 마리
文 熙 鳳
내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은 4~5년 전이다. 요즘은 사양길을 걷고 있지만 한때 전국 3대 유명 상고에 포함되었던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9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학교다. 부임해 보니 시골 상고로서는 학교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과(인문반) 설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총동창회측과 힘을 합하기로 했다. 그 때 총동창회장과 뜻을 같이 해 그 일에 적극 협력해주던 분이다.
그로부터 새로운 친분관계를 맺었다.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통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는다. 시골태생으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서울 바닥의 정서를 일찍 파악하고 건실한 둥지를 틀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분이 통화 중에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나를 만난 것을 행복으로 느낀다. 서울에 오면 꼭 들러 달라.”는. 이 말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진정성이 담겨 있다.
그래서 엊그제는 서울에 볼일이 생겨 미리 전화해 약속을 했다. 만나서 막걸리 한 잔 나누기 위해서였다. 이번 만남으로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곤 쾌재를 불렀다. 조물주께 감사했다. 이런 좋은 사람과 친분관계를 맺게 해준 것에 감사했다.
시인 같은 사업가다. 주옥 같은 시 구절들이 그의 입을 통해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항상 웃는다. 그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생활철학이 매우 긍정적이다. 적극적이다. 좋은 일에는 나방이 불에 뛰어들 듯 가리지 않고 앞장 선다. 그리고 흥이 좋다. 술 한 잔만 걸쳐도 세상은 다 자기 것이 된다. 춤도 간드러지다. 사물놀이패를 이끌면서 그 육중한 체구에 율동을 보일 때면 유연한 몸놀림에 좌중은 부러움의 호수에 빠져든다. 팔방미인이다. 항상 달리는 인생이다.
그런 사고의 소유자이니 하는 일마다 안타다. 때로는 홈런도 뽑아낸다. 왼쪽 모서리를 통과하는 발리슛, 오른쪽 모서리를 통과하는 터닝 슛, 벌써 얼마나 많은 골을 넣었는지 모른다.
그분의 집은 아담한 4층집이다. 지하까지 포함해서다. 지하와 1, 2층은 세를 주었다. 3층에 산다.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한다. 사업을 하면서도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응접실에는 가족사진과 그 밑에 가훈이 자리하고 있다. 가훈은 어렵지 않은 말이다. 실천하기 쉬운 말이다. 한자로 된 가훈이 아니다. 한글로 정성껏 쓴 글이다. 바로 ‘웃음’이란 단어다. 웃자는 것이다. 매사 웃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간 화를 낼 일이 없다.
사업을 하면서도 많은 시와 좋은 글들을 모으고 있었다. 차곡차곡 상자에 담아놓은 것이 아마도 A4용지 만 장은 될 것 같다. ‘좋은 생각’ 등에서 얻은 글들, 유명 시인이나 큰 스님, 추기경님의 말씀까지 총망라 되어 있다.
평상시 대화할 때 고상하고 우아하며 멋이 있는 단어나 문장을 많이 사용한다 생각했는데 그런 기본 바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이제 알았다.
‘좋은 생각’, ‘비타민’, ‘행복이 가득한 집’ 등을 십여 년 넘게 구독하고 있다. 값이야 차치하고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은 그 값을 훨씬 뛰어넘는다. 내가 증인이 될 수 있다. 매달 그런 책들에서 정말 좋은 생각들을 추려 두뇌에 입력해 두니 대화 시에 명언이, 고상한 말들이 술술 나올 수밖에 없다. 그걸 바탕으로 생활은 부드러움 그 자체가 되었다.
생활철학이 적극적인 사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자는 것이다. 사무실이나 서가 책상 팻말에도 ‘Finest People’, ‘Positive Thinking’ 등 자신의 철학과 관련된 단어나 구 등이 적혀 있다. 책상 위에 명패처럼 세워놓고 오가며 스스로 칭찬하며 격려하는 것이다.
그분 집에는 금송아지가 세 마리나 산다. 하나는 ‘가훈’이다. ‘웃음’이란 가훈이다. 이런 가훈을 정해 가지고 생활하는 가정도 드물 듯하다. 정말 그렇다. 가훈이라면 ‘고상한 문장, 고상한 구’ 같은 것들이 많다. 이렇게 한 단어로 정해 실천하는 가정도 드물 것이다. 웃음은 우리들 생활의 비타민이다. 웃음은 심신치료약이다.
그 둘은 ‘조상 모시기’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이 옥상 입구 적당한 곳에 모셔져 있다. 그분의 아버지의 모습은 고등학교 때 사진이다. 유복자로 태어난 사람으로 아버지의 고등학교 적 사진이라도 입수할 수 있었음은 정말 다행이다. 아침마다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절을 올리며 하루 일과를 계획한다. 조상이 없이 어찌 자신이 세상에 생겨 나와 생활할 수 있는가?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분들을 모신 곳으로 올라가 인사를 올린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셋은 ‘화목’이다. 한 번도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난 적이 없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많이 주는 것이 바로 이기는 것이라는 성현들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아끼고 보살펴 주는 가운데 가족 간 화합의 끈을 더욱 조이는 것이다.
옥상은 농장이다. 고추가 자라고, 상추가 자란다. 가지가 자라고, 대파가 자란다. 거의 자급자족할 만한 정도이다. 조상님께 아뢰고는 농장에서 그들과 또 대화를 나눈다. 주인의 사랑을 맘껏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그들이 부럽다. 아주 검푸른 빛깔로 건강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문학은 우리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삐걱거리지 않는삶을 제공해준다. 문학은 향수에 젖게 하고 영혼을 씻어주는 청량제 구실을 한다. 시와 수필, 그리고 명언들을 가까이 하는 사업가는 그래서 얼굴이 늘 평화롭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그분이 부럽다. 늘 배우는 자세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성과 사랑이 들어 있다. 넉넉한 부처님 상이다. 생불 같은 사람이다. 황소같은 체력과 강철 같은 신념이 오늘의 그분을 만들었다. 대나무처럼 사철 푸르름을 과시한다. 시인 같은 사업가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