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1956년생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가 3살 때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왼발을 절고 있어 급우들과의 원만한 대인관계도 어려워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다니다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그후 미싱공·페인트공 등을 전전하다 23세부터 검정고시를 시작해 24세때 중등, 25세 고등과정을 합격하고 26세때 충북대 법대를 입학 졸업하고 외국어대 정보관리학과 석사과정 1학기를 수료한 뒤 방한칸에서 창업하여 현재의 문헌정보(주)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계기로 안산공과대학 인터넷정보과 겸임교수로 겸직하고 있습니다.
창업 후 8여년의 세월이 흐른뒤 다시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사과정 1학기에 입학하여 현재는 2학기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창업시작>
1991년 12월초 방 한 칸짜리 살림집에 286 컴퓨터와 도트 프린터 그리고 전화와 팩시밀리를 각각 한 대씩 들여 놓았다. 1992년부터 방한칸에서 철저히 틈새시장을 찾아 ‘비포 서비스’로 틈새시장 공략을 했다. 사업 승부처는 ‘노하우’가 아니라‘노웨어(Know-Where)’였다.
당시 가장 값이 싼 286 컴퓨터와 도트식 프린터기, 그리고 팩시밀리 한대가 전 재산.
각종 자료 목록을 스스로 만들어 국내 연구소와 정부기관에 팩스로 전송하였다.
귀한 자료를 손에 넣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고객들을 보는 일이 무엇보다도 뿌듯했다.
고객 한명 없이 단칸방에서 시작한 본인의 사업은 일정한 매출액이 넘자 3년 만에 법인체로 등록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는 오픈하며 그가 목록에 올린 자료를 전량 사들였다.
케이블 TV가 출범할 땐 외국의 케이블 방송 관련 자료들을 납품했다. 국내 건전지회사들에 30년 전 절판된 책을 마이크로 피쉬로부터 복원해 공급한 일도 있다.
마진율은 자료에 따라 10∼25%. 대상그룹의 한 계열사에 A4 사이즈로 2쪽짜리 자료를 제공하고 2백30달러를 받기도 했다. 외국 월간지 1년치를 7백만원에 납품한 일도 있다. 본인은 자료를 쉽게 입수하기 위해 미국화학회·국제전기전자학회 등 7개 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주요국에 협력사를 두고 있고 미국 뉴저지주엔 연락사무실도 확보하고 있다.
<창업동기>
본인은 대학 졸업 뒤 일자리가 없어 만화영화회사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한미시계에서 납땜과 시계 포장일을 하기도 했다. 그 뒤 대학교재와 원서를 수입해 파는 회사에 들어갔다. 그때 본인의 월급은 45만원. 91년 결혼한 부인은 교사로 월 90만원을 받았다. 자신의 월급으론 도저히 식구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91년 7월 회사를 퇴직하고 그해 11월 문헌정보를 세웠다.
<창업아이템>
원서 수입판매 회사에서 일하면서 연구소에서 원하는 특수한 자료를 구해주는 일을 몇번 했다. 그러면서 그쪽 분야에 대한 수요가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이것을 창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일반 외서 수입 대행은 마진도 적고 워낙 경쟁업체가 많아 승산이 없기도 했다.
<창업자금>
말 그대로 소호(SOHO)로 시작했다. 연립주택에 1천3백만원 짜리 전세를 얻어 방 한구석에 286급 컴퓨터와 팩스, 도트형 프린터, 집에서 쓰던 전화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세 가지를 사는데 쓴 돈은 1백80만원이 전부. 이것도 신용카드을 이용, 18개월 할부로 끊었다.
<거래처 뚫기>
신문을 유심히 본다. 특히 기업동향이나 신기술, 신 사업을 눈여겨본다.
고무관련 회사인 금호화학 연구소에 고무(Rubber)관련 자료를 넣어주어 수천 만원어치 매출을 올리고 또 신문에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환경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 환경연구소를 세운다는 기사를 보고는 환경 관련 문헌의 목록을 찾아 삼성 비서실로 보내어 이들 업체로부터 목록에 적힌 문서의 90% 이상을 주문 받아 납품했다.
<사업내용>
쉽게 찾을 수 있는 외국정보는 일반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외국의 전문 학술단체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나 저널 잡지 제인연감 등 각종 군사자료, 각국 정부가 발행하는 원자재 수급동향 등 산업이나 신기술과 관련된 분야의 정보는 부탁하면 뭐든지 찾아내어 납품한다.
즉, 문헌정보가 국내에 없는 첨단기술 관련 논문이나 보고서 책 악보 필름 잡지 CD-ROM 비데오테이프 등의 희귀 자료만을 대체로 납품한다. 심지어는 1백년전 외국 신문에 실린 기사도 부탁하면 찾아주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해외 학술 정기간행물이 많아지고 있다.
<경쟁력의 원천>
경쟁력은 ‘상대가 손을 내밀기 전에 먼저 알아서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는 것.
찾기도 전에 목록 서비스를 하는 그런 이유에서이다. 즉, ‘비포어 서비스'를 했다. 문헌정보가 구해주는 학술관련 첨단 정보는 찾기 쉬운 자료들이 아니다. 또 그런만큼 고가여서 수익성도 짭잘했다. 대신 값이 부담스러운 개인은 손님이 아니다. 철저하게 기업이나 연구소만 상대한다.
<사업소득>
91년 단칸 셋방에서 시작한 문헌정보는 92년 주택가 골목에 사무실을 하나 얻을만큼 커졌고 지금은 직원 4명과 미국 뉴저지주에 물류 사무실까지 두고 있다. 뉴저지 사무실은 미국내의 자료 수집 창구로 쓰고 있다. 취급하는 문헌의 평균 가격은 권당 4백달러가 넘는다. 비싼 것은 권당 4천~5천달러나 하는 것도 있다. 그가 대상(구 미원 그룹)에 구해다준 축산업 관련 문서 중엔 A4용지 두 장 분량에 2백30달러 짜리도 있다. 얻는 이익은 책값의 8~15% 정도의 중개수수료이다. 첫해인 92년 5천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매출은 가파른 곡선을 그리기 시작, 지난해엔 첫해의 열 배 이상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회사 또는 연구소와 거래활동을 해온 명단>
필요로 할 법한 각종 해외자료의 목록을 만들어 연구소·정부기관 등에 팩스로 밀어 넣었다.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성생명· 삼성지구환경연구소· 대우중공업·두산건설·환경부· 한국가스공사·한국마사회 등 그 동안의 거래 기업· 기관은 수백 곳을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