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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국역총서 茶관련 문헌해제
고전국역총서 내(內) 차관련 문헌해제는 고전국역총서 중 차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 책만을 골라 수록하였다. 차(茶)자나 명(茗)자 등이 나타난 것을 비롯 두 글자가 없더라도 차문화와 관련된 내용이면 모두 인정하였으며 글자가 나타난다 하여도 차문화와 관련이 없는 경우 즉 연다(담배), 다갈색(색이름), 산다화(꽃나무이름) 등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소리로만 쓰인 경우(홍다구-사람이름 등), 뜻이 다르게 쓰인 경우(맛이 쓰다, 나물 등)는 모두 제외하였다.
경세유표(經世遺表)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간행 1977,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이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 토지 제도, 부세 제도 등에 대한 개혁 원리를 제시한 책이다. 원 제목은 『방례초본(邦禮艸本)』으로 순조 17년(1817) 강진 유배 중에 저술된 미완성작이다.
계곡집(谿谷集)
장유(張維, 1587~1638) 간행 1994,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시문집이다. 계곡은 정주학(程朱學) 사유 체계 속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고, 육왕학(陸王學), 선학(禪學), 단학(丹學) 등 모든 학문과 사상을 자유롭게 수용하고, 알고 난 뒤에 그 진위를 가리면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계곡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는 철학사에서 더욱 귀하게 자리매김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서긍(徐兢, 1091~1153) 간행 1977, 송(宋) 나라 서긍(徐兢)이 지은 책으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고려 인종 1년(1123)에 송 휘종(宋徽宗)의 명에 따라 사신으로 파견된 서긍이 한 달 남짓 개성(開城)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송나라에 돌아가 편찬한 것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김종서(金宗瑞, 1383~1453) 간행 1968, 고려 시대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정리한 사서(史書)이다. 세종 6년(1424)에 윤회(尹淮)에 의해 편찬되었던 편년체의 고려사인 『수교고려사』를 개수(改修)한 것으로, 문종 2년(1452)에 김종서 등에 의하여 편찬되었다.
고봉집(高峯集)
기대승(奇大升, 1527~1572) 간행 1988, 조선 중기의 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문집이다. 서문, 연보, 본집, 속집, 부록, 별집 부록, 논사록(論事錄),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로 구성되어 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신숙주(申叔舟, 1417~1475) 간행 1994, 조선 시대 역대 군주의 업적 가운데 선정(善政)만을 모아 편찬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로, 폐왕(廢王)되어 끝까지 추존되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군주들의 재위 순서에 따라 편차가 구성되어 있다.
기측체의(氣測體義)
최한기(崔漢綺, 1803~1877) 간행 1979, 조선 후기의 학자 최한기(崔漢綺)가 사물에 대한 사고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인간의 신체를 분석하여 비유한 책이다. 『신기통(神氣通)』과 『추측록(推測錄)』과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을 합쳐 『기측체의』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간행 1982,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전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중에서 시문집 22권을 국역서 10책(색인 1책 포함)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시문집은 전형적인 문집의 형태로 시(詩)와 서(序), 기(記), 발(跋) 등 각종 문체의 글을 수록한 것이다. 자연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과학 정신, 제도 개혁을 주장한 정경(政經)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담헌서(湛軒書)
홍대용(洪大容, 1731~1783) 간행 1974, 조선 후기 실학자 담헌(湛軒) 홍대용의 문집이다. 내집(內集) 4권, 외집(外集) 6권,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었다. 내집은 주로 심성설(心性說)과 경의(經義)에 관한 글과 『사론(史論)』과 『계방일기(桂坊日記)』와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설(說), 시(詩)로 구성되었다. 그의 사상은 근대 개화사상에 밑거름이 됐으며, 박지원, 박제가 등에게로 이어져 북학파의 선구 구실을 하였다.
대동야승(大東野乘)
성현(成俔, 연대 미상) 간행 1971, 여러 사람들이 편술한 59종의 야사(野史), 일화(逸話), 소화(笑話), 만록(漫錄), 수필(隨筆) 등을 모은 조선 시대 책이다. 72책의 사본으로 전해 오던 것을 1909년에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13책 양장본에 나누어 수록하였다. 당쟁과 관계 깊은 사화(士禍)나, 옥사(獄事)에 대한 기록이나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에 관한 기록물은 역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며, 인물이나 풍속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풍부하여 문화 자료로서 활용도가 높다.
광해조일기(光海朝日記)
찬자미상(未詳), 연대 미상, 간행 1971, 『광해군일기』가 광해군 재위 15년간의 실록 정사라면, 이 『광해조일기』는 광해조의 작자 미상의 야사라고 할 수 있다. 광해군 즉위 전후의 사실, 계축옥사(癸丑獄事), 영창대군을 살해한 전말,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 허균(許筠)의 역모 사건 등에 관한 사실이 자세히 실려 있다.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안로(安璐, 연대 미상) 간행 1971, 조선 명종 때의 안로(安璐)가 『기묘당적(己卯黨籍)』을 보충한 책으로, 기묘사화와 신사무옥에서 화를 당한 인물들의 전기가 기록되어 있다.
기축록(己丑錄)
황혁(黃赫, 1551~1612) 간행 1971, 조선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의 역모 사건으로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에서부터 인조 3년(1625) 옥사가 일단락될 때까지의 기록 및 문서를 모아 엮은 책이다. 편자는 황혁(黃赫)으로 기재하고 있으나, 적어도 상권의 절반 이하의 부분은 황혁보다 뒤의 사람들이 적어 넣은 듯하다.
난중잡록(亂中雜錄)
조경남(趙慶男, 1569~1641) 간행 1971, 남원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이 쓴 임진왜란 때의 야사(野史)이다. 13세 때인 선조 15년(1582) 12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광해군 2년(1610)까지의 중요한 사실을 엮은 것이다. 인조 때에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을 편찬하면서 이 초본을 올려다가 사료(史料)로 참고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사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당쟁, 외교, 군사 등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속잡록(續雜錄)
조경남(趙慶男, 1569~1641) 간행 1971, 남원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이 쓴 야사(野史)이다. 임진, 정유 두 차례 왜란의 기사를 적은 『난중잡록』을 지은 후에, 광해군 4년(1612)부터 인조(仁祖) 16년(1638)까지의 역사를 서술하여 4권으로 완성하였다. 조선 중기 전란사의 귀중한 사료가 되는 동시에 그 시대의 정치, 문화, 사회, 당쟁, 외교 관계 연구에 필요한 자료이다.
송와잡설(松窩雜說)
이기(李墍, 1522~1604) 간행 1971, 조선 중기 문인 송와(松窩) 이기(李墍)가 지은 시화만록집(詩話漫錄集)이다. 저자가 보고들은 것과 자기 나름대로 생각나는 것을 차례 없이 뒤섞어서 기록한 것으로 총 1백 30여 장(章)이다. 기자 조선부터 시작해서 선조 당시까지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전후 7년에 대한 기록은 자세치 않다. 그 외에 언어나 풍속 상에 참고가 될 만한 것과 인물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는 귀한 자료다.
역대요람(歷代要覽)
조경남(趙慶男, 1569~1641) 간행 1971, 조선 중기의 무인 조경남(趙慶南)이 지은 역사서이다. 중국 명나라 태조의 연호인 홍무(洪武) 연간부터 이후 건문(建文), 영락(永樂), 선덕(宣德), 정통(正統), 경태(景泰), 천순(天順), 성화(成化), 홍치(弘治), 정덕(正德), 가정(嘉靖), 명나라 목종(穆宗)의 연호인 융경(隆慶) 연간까지 각 시기마다 연도별로 주요 기사를 싣고 있는데, 주로 명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 있었던 외교 활동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선조 사이 중국과의 외교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용재총화(慵齋叢話)
성현(成俔, 1439~1504) 간행 1971, 조선 중기 학자 용재(傭齋)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수필집이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의 풍속, 지리, 역사, 문물, 제도, 음악, 문학, 인물, 설화 등 문화 전반을 다루고 있다. 각 권은 편차 없이 서술되어 있고, 권별 구분도 내용과는 무관하다. 당시의 인정과 풍속을 유려한 문장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 민족학 및 구비 문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응천일록(凝川日錄)
박정현(朴鼎賢, 1562~1637) 간행 1971, 조선 중기의 문신 의곡(義谷) 박정현(朴鼎賢)이 광해군 1년(1609) 11월부터 인조 13년(1635) 8월까지 일어난 일들을 조보(朝報)나 소초(疏草)를 바탕으로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광해군대와 인조를 둘러싼 정치적 분위기를 파악하고 당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료이다.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신경(申炅, 1623~1653) 간행 1971,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우리나라를 명(明) 나라의 구원으로 재건한 사실을 화은(華隱) 신경(申炅)이 기록한 책이다. 주로 임진왜란 7년간의 사실을 다루면서 그 이전 선조 10년(1577)부터 이후 선조 40년(1607)까지의 대명(對明) 및 대일(對日) 관계의 사실을 함께 다루어 그 연원(淵源)과 결말을 함께 밝히려 하였다.
정무록(丁戊錄)
황유첨(黃有詹, 연대 미상) 간행 1971, 조선 중기 황유첨(黃有詹)이 대북파와 소북파의 정쟁(政爭)에 대하여 쓴 책이다. 『정무록(丁戊錄)』이란 정미년(丁未年), 무신년(戊申年)의 기록이란 뜻으로, 왕의 건강이 위급해진 정미년(1607, 선조40) 10월 9일부터 이듬해 2월 선조의 승하와 광해군의 즉위를 거쳐, 유영경(柳永慶) 등이 역률(逆律)로 치죄(治罪)되고, 기자헌(奇字獻)까지 제거되는 무신년(1608, 선조41) 8월까지의 정변 기사를 기록했다. 소북파의 입장에서 기술되고 있어 공평성을 잃고 있다고는 하나,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소북파와 대북파의 정치적 대립과 광해군 때의 정치적 사건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패관잡기(稗官雜記)
어숙권(魚叔權, 미상~미상) 간행 1971, 조선 명종 때 문신 야족당(也足堂) 어숙권(魚叔權)이 지은 패관문학서이다.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 『동인시화(東人詩話)』,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秋江冷話)』 등을 참고 자료로 하여, 조선 시대의 각종 설화, 시화(詩話), 풍속, 일사(逸事) 등을 모아 해설을 붙였다. 풍부한 설화적 소재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크며, 여러 가지 사실(史實)의 서술은 역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필원잡기(筆苑雜記)
서거정(徐居正, 1420~1488) 간행 1971, 조선 초기 학자 사가정(四佳亭) 서거정의 수필집이다. 성종 18년(1487) 의성 군수(義城郡守) 유호인(兪好仁)이 초간본을, 인조 20년(1642) 6대 후손 서정리(徐貞履)가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간결하면서도 정연한 필체로 기술되었으며, 훌륭한 설화 문학 작품으로 조선 초기 풍속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해동잡록(海東雜錄)
권별(權鼈, 1589~미상) 간행 1971, 조선 중기의 학자 죽소(竹所) 권별이 기자조선(箕子朝鮮) 이래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의 왕실의 사적(事蹟)과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의 인물에 대하여 각 왕조별, 성씨별로 사전식으로 엮은 책이다. 그의 선인 권문해(權文海)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중심으로 벼슬한 사람들만 선별하여 학문과 일화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엮은 일종의 인물사 성격의 문헌 설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책들을 인용하였고, 임진왜란 이전의 고문헌의 면모를 볼 수 있어 고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이규보(李奎報,1168~1241) 간행 1980, 고려 중기 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문집이다. 자유자재로 시사(詩思)를 구사해 신선미가 있고, 또 고풍시(古風詩)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동감 있고 기운차다. 현존하는 몇 안 되는 고려 시대의 문집으로,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일세를 풍미하던 대문장가인 저자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동문선(東文選)
서거정(徐居正) 등 간행 1968, 삼국 시대 후반기로부터 통일신라 및 고려를 거쳐 조선 중종 초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의 수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뽑아 편집한 것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乙支文德),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고려의 김부식(金富軾), 이규보(李奎報) 등과 조선의 정도전(鄭道傳), 권근(權近) 등을 포함한 수백 명의 작품을 망라하였다. 우리 선인들의 뛰어난 문학 작품을 문체별로 모은 거질(巨帙)로, 특히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불교 사상의 영향과 사회 경제적 변동을 담은 귀중한 문헌들이 실려 있어 자료 가치가 높다.
동사강목(東史綱目)
안정복(安鼎福, 1712~1791) 간행 1977, 조선 후기의 실학자 순암(順菴) 안정복의 역사서이다. 『동사강목(東史綱目)』은 주지되다시피 영, 정조(英正祖)대의 실학적(實學的) 역사저술(歷史著述)의 대표적인 것이며, 그의 또 다른 역사저술인 『열조통기(列朝通紀)』와 더불어 그가 동국사(東國史)를 재구성(再構成)하려던 역사의식(歷史意識)을 표현한 것이었다.
만기요람(萬機要覽)
서영보(徐榮輔, 1759~1818) 등 간행 1971, 조선 순조(純祖) 8년(1808년)경에 시임(時任) 호조 판서(戶曹判書) 서영보(徐榮輔)와 부제학(副提學) 심상규(沈象奎)가 비국유사당상(備局有司堂上)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받들어 찬진(撰進)한 것이다. 당시의 국가 재정, 경제와 군사, 군정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백사집(白沙集)
이항복(李恒福, 1556~1618) 간행 1998,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문집이다. 잡저에 밀물과 썰물에 대한 관찰 내용을 정리한 『해담(海淡)』, 정여립의 모반을 기록한 『기축옥사』, 임진왜란 전후 기록인 『임진변초사(壬辰變初事)』, 『난후제장공적(亂後諸將功蹟)』등이 수록되어 있다.
백호전서(白湖全書)
윤휴(尹鑴, 1617~1680) 간행 1995, 조선 후기 문신 백호(白湖) 윤휴(尹鐫)의 문집이다. 전통적인 학설을 고수하기보다는 독창적인 견해를 개척하였고, 예송(禮訟) 논쟁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던 저자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통제사이충무공유사』와 『제장전(諸將傳)』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운 장수들에 대한 전기로서 임진왜란 연구에 참고할 만하다.
산림경제(山林經濟)
홍만선(洪萬選, 1643~1715) 간행 1982, 조선 중기 문신 홍만선(洪萬選)의 찬이다. 당쟁(黨爭)이 절정기에 달하고 있던 숙종조(肅宗朝)에 40세의 나이로 벼슬길에 나선 저자는 당시의 어지러운 세태를 보면서 벼슬에 뜻을 버리고 산림(山林)에 은둔하려는 생각을 품었고, 이러한 생각이 그로 하여금 본 『산림경제』를 만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내용도 산림(山林)에서의 생활에 따르는 제반 사항이 망라되어 있다. 말하자면 농촌 생활에 필요한 가정보감(家庭寶鑑)인 셈이다.
삼봉집(三峯集)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간행 1977,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성리학자인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문집이다. 조선 왕조 개창에 사상적으로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호방하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의식과 애국 애민의 충정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조선 왕조 건국이념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상촌집(象村集)
신흠(申欽, 1566~1628) 간행 1990, 조선 중기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문집(文集)이다. 한문 사대가의 한 사람인 저자의 시문의 정수(精髓)와 도학 전성기에 체득한 광범위한 성리학적 체계와 다양한 사상이 담겨 있다. 그의 문학, 학술, 사상, 도덕, 공업뿐만 아니라 선조, 인조 연간의 정치, 외교, 군사 및 사상을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허균(許筠, 1569~1618) 간행 1982, 조선 중기 문신 양천(陽川) 허균(許筠)의 시문집이다. 작성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1613년(광해군 5) 봄이나 그 전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허균의 일생 중에서 가장 불우했던 시기이다. 그가 칩거하면서 그동안 저술한 시와 산문들을 모아 시부(詩部)ㆍ부부(賦部)ㆍ문부(文部)ㆍ설부(說部) 등 4부로 나누어 정리한 초고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이익(李瀷, 1681~1763) 간행 1976,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쓴 책이다. 『사설』은 자잘한 논설이라는 뜻으로서 겸사로 붙인 이름이다.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門)』,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으로 분류하고, 생각나고 의심나는 점을 그때그때 적어둔 형식을 취했다.
수당집(修堂集)
이남규(李南珪, 1855~1907) 간행 1997, 조선 말기의 의사(義士) 이남규(李南珪)의 문집이다. 구한말 어지럽던 시대 상황에 대한 현실 고발과 우국충정을 읊은 것, 백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생활상을 고발한 것, 왜적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변란을 당해 분한을 씻고 싸우겠다는 의지 등을 담고 있어 조선 말 우국지사들의 의병 활동과 우국충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순암집(順菴集)
안정복(安鼎福, 1712~1791) 간행 1996, 조선 후기의 실학자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의 문집이다. 천주교의 전래와 천주교 사상에 대한 비판 내용을 포함해 토지, 국방, 향촌의 사회상 등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어, 그의 사상뿐 아니라 사회 경제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신독재전서(愼獨齋全書)
김집(金集, 1574~1656) 간행 1999, 조선 중기의 학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집(文集)이다. 신독재는 사계의 예학을 계승하고 체계화하여 조선 예학의 수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이후의 혼란스런 정치 사회를 바로잡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산림(山林)이었다. 이 책은 17세기 조선의 정치사와 사상사 및 예생활사를 바르게 살피는 데 매우 긴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이행(李荇, 연대 미상) 간행 1969, 중종 25년(1530) 중종의 명에 의해 이행(李荇), 윤은보(尹殷輔), 신공제(申公濟) 등이 펴낸 관찬 지리서이다. 지방 사회의 모든 면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 서적으로, 조선 전기의 지리, 정치, 경제, 역사, 행정, 군사, 사회, 민속, 예술, 인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방 문화를 살리는 자료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아계유고(鵝溪遺稿)
이산해(李山海, 1538~1609) 간행 1998, 조선 선조 때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문집이다. 효종 10년(1659)에 간행되었고, 책머리에 죽피옹(竹皮翁)이라는 자호로 쓴 서문이 있다. 선조(宣祖) 때의 문장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만큼 많은 시문(詩文)을 남겼으나 불행히도 대부분 병화(兵火)에 소실되었고, 현전하는 것은 거의 임진란이 발발하고 평해에 부처(付處)된 이후에 지어진 작품들이다.
양촌집(陽村集)
권근(權近, 1352~1409) 간행 1979, 고려 말 조선 초 학자,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문집이다. 문장이 경술(經術)에 근본하고 백가(百家)를 참고하여 문채가 뛰어나 문학사에서도 가치가 높으며,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향토 문화 연구 자료나 지방 향교 발달 과정을 살피는 데도 좋은 자료이다.
여헌집(旅軒集)
장현광(張顯光, 1554~1637) 간행 1996, 조선 중기 학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시문집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학문적 경향과 특징을 알 수 있는 논저로서, 유학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이긍익(李肯翊, 1736~1806) 간행 1966, 조선 후기의 학자 연려실(燃藜室) 이긍익(李肯翊)이 지은 조선 시대 야사 총서(野史叢書)이다. 400여 가지에 달하는 야사에서 자료를 수집, 분류하고 원문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조선 태조(太祖) 이래 각 왕대(王代)의 중요한 사건을 기사본말체 방식으로 편찬하되, 자기의 견해나 비평을 가하지 않고 여러 사서에서 관계 기사를 뽑아 기입하면서 일일이 출처를 밝혔다.
연행록선집(燕行錄選集)
김창업(金昌業, 1749~1807) 등 간행 1976, 조선 시대 청(淸) 나라에 사신 간 사람이 돌아오면 사무적인 실무를 맡던 서장관이 행사의 임무를 마치고 조정에 제출하는 보고서인 등록(謄錄)과 사행에 참가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기록한 글들을 총칭하여 '연행록'이라고 한다. 본 『연행록선집』에는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계산기정(薊山紀程), 동환봉사(東還封事), 몽경당일사(夢經堂日史),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부연일기(赴燕日記), 심전고(心田稿),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 연도기행(燕途紀行), 연원직지(燕轅直指), 연행기(燕行紀), 연행기사(燕行記事), 연행록(燕行錄) 3편, 연행일기(燕行日記), 조경일록(朝京日錄), 조천기(朝天記),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 등 20편이 실려 있다. 당시 외교 상황과 청대의 명유(名儒)들과의 교유 모습, 청나라 문물을 접하는 태도, 대청관(對淸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이의현(李宜顯, 1669~1745) 간행 1976,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이 숙종(肅宗) 46년(1720)에 동지사 겸 정조성절진하정사(冬至使兼正朝聖節進賀正使)로서 부사(副使) 이교악(李喬岳), 서장관(書狀官) 조영세(趙榮世)와 함께 청(淸) 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온 것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사은사(謝恩使)로서 부사(副使) 조최수(趙最壽), 서장관 이귀휴(李龜休)와 함께 북경에 다녀온 일을 기록한 『임자연행잡지』가 부록으로 있다.
계산기정(薊山紀程)
서장보(徐長輔, 1767~?) 간행 1976,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장계(長溪) 서장보(徐長輔)가 동지사 서장관이 되어 정사(正使) 민태혁(閔台爀)을 따라 연경(燕京)에 갔을 때의 사행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서장관이었던 서장보의 친구로 영조 51년(1775) 생인 자가 성서(聖瑞), 호(號)가 동화(東華)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서장관 수행원의 한 사람으로 동지사의 사행을 따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노정에서의 견문과 감회를 적은 445수의 한시를 일기체로 편차하였다.
몽경당일사(夢經堂日史)
서경순(徐慶淳, 1804~미상) 간행 1976, 조선 철종 6년(1855) 연행 사신의 종사관으로 수행했던 해관생(海觀生) 서경순(徐慶淳)이 왕복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이다. 청의 발달된 문물과 문화, 특히 이용후생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맹목적으로 찬미하지는 않았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 관계에서 형식적인 조공 관계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책이다.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서유문(徐有聞, 1762~1822) 간행 1976, 정조 22년(1798) 서유문(徐有聞)이 청(淸) 나라 사행(使行)의 정사(正使) 이조원(李祖源)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다 돌아오기까지의 경과, 견문, 감상 등을 한글로 적은 기행문이다. 상당 부분이 간접 경험들이긴 하나 풍부한 내용과 충분한 고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에서 사행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두드러진다. 또 우리말로 기록되어 정서가 정감 어리게 표현되어 있어 이채롭고, 고어투의 문장과 몇몇 표음 문자로 기록된 만주어 등은 국어사 연구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될 만하다.
부연일기(赴燕日記)
저자미상 미상, 간행 1976, 순조 28년(1828) 진하 겸 사은사행(進賀兼謝恩使行)의 의관 및 비장으로 수행한 저자 미상의 연행(燕行) 기록이다. 이 책은 청나라 사회를 다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중복되지 않게 노정기(路程記), 왕환일기(往還日記), 역람제처(歷覽諸處), 주견제사(主見諸事), 회자국서(回刺國書), 일급(日給) 등 6개 제목으로 조리 정연하게 기술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심전고(心田稿)
박사호(朴思浩, 연대 미상) 간행 1976, 조선 순조 때 심전(心田) 박사호(朴思浩)가 쓴 사행 일기이다. 순조 28(1828) 당시 강원 감영의 비장(裨將)이었던 지은이가 사은 겸 동지사(謝恩兼冬至使)를 따라 청(淸) 나라에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내용을 기록한 일기이다. 조선 사신의 수행원 자격으로 중국에 가서, 명망 있는 이들과 지기가 되어 학문을 토론하고 시문과 서찰을 주고받은 일 등은 당시의 한중 문화 교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
유득공(柳得恭, 1749~1807) 간행 1976, 조선 후기 학자 영재(冷齋) 유득공(柳得恭)이 순조 1년(1801) 주자서(朱子書)의 좋은 판본을 구해 오라는 명을 받고 사은사 일행에 합류하여 중국에 체류하며 적은 사행 기록이다. 처음에는 『연대록(燕臺錄)』이라 이름 붙었다가 끝에는 『연대재유록』이라 하였는데, 처음 연경에 가서의 기록인 『난양록』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일기, 견문 등을 위주로 한 일반 사행록과는 달리 중국 학자들과 사회, 사상 등에 관한 문답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연도기행(燕途紀行)
이요(李
연원직지(燕轅直指)
김경선(金景善, 1788~1853) 간행 1976, 조선 후기 학자 김경선(金景善)이 순조 32년(1832) 동지사 겸 사은사 서경보(徐耕輔)의 서장관으로 청(淸) 나라에 다녀와, 그해 6월 말부터 이듬해 4월 초까지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조선 말기의 대청(對淸) 관계와 서양의 신문물에 대한 의식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자료이다.
연행기(燕行紀)
서호수(徐浩修, 1736~1799) 간행 1976, 조선 후기 학자 양직(養直) 서호수(徐浩修)가 정조 14년(1790) 건륭 황제(乾隆皇帝)의 만수절(萬壽節)에, 사은 부사(謝恩副使)로 청(淸) 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사행 기록이다. 만주 복제(滿洲服制)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 각국 조공(朝貢)의 내역, 대만(臺灣)의 풍물과 각 지역과 관련한 고사, 만수절의 장엄하고 호화스러운 축하 의식 절차와 광경, 몽고, 안남의 사절들에 대한 기록, 국자감(國子監) 안에 있는 석고(石鼓)에 대한 내력과 석고문(石鼓文) 전문을 싣고 있는 점이 특색 있다.
연행기사(燕行記事)
이갑(李岬, 1737~1795) 간행 1976, 조선 후기 문신 이갑(李岬)이 정조 1년(1777) 사행에 부사로 뽑힌 날부터 복명(復命)할 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일기체로 엮은 기록이다. 크게 일기, 문견잡기,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 국역서에서는 기행문의 성격이 적은 시를 번역에서 제외하였다. 저자가 부사의 신분으로 직접 체험한 일들을 꼼꼼히 기록한 것이라 신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연관성 있게 엮어져 있어 연행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연행록(燕行錄)
김정중(金正中, 연대 미상) 간행 1976, 조선 정조 15년(1791)에 동지 겸 사은 사행에, 벼슬 없이 선비로 따라간 자재암(自在庵) 김정중(金正中)이 쓴 사행 기록이다. 도리(道里), 장관(壯觀), 기관(奇觀), 고적을 나열하고, 풍속, 음식, 건축, 물산(物産), 인물 등에 관하여 모아 실었으며, 그 끝에 연경팔경(燕京八景)의 명칭과 사신의 이름을 실었다.
연행록(燕行錄)
최덕중(崔德中, 연대 미상) 간행 1976, 이 책은 숙종 38년(1712) 청나라에 파견된 사은 부사 윤지인(尹趾仁)을 수행한 군관(軍官) 최덕중(崔德中)이 그해 음력 11월 1일부터 다음해 3월 30일까지 보고 겪은 사실을 기록한 일기체의 저술이다. 사절이 연경에 입성(入城)하는 예식, 우리나라에서 청나라 황제와 예부(禮部)에 공문을 올리는 절차, 황제를 알현하는 의식과 황제의 우리 사절에 대한 예우, 방물과 세폐를 청국 관청에 납부하는 절차, 중국 예부에서 사절을 위로하는 연회, 황제가 조선 국왕과 사절 일행에게 물품을 상사(賞賜)하는 의식 등 필자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충실하게 기록하여 강희제 당시의 청나라 풍속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연행일기(燕行日記)
김창업(金昌業, 1658~1721) 간행 1976, 조선 숙종 38년(1712)부터 이듬해 3월 30일까지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이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인 노가재(老稼齋) 김창집(金昌集)의 군관으로 청(淸) 나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쓴 일기다. 표지는 『노가재연행록』으로 되어 있다. 『열하일기』나 이후 북학파에 속하는 신진 학자들의 연행록들이 학문적인 정열에서 쓴 중국 탐구서들이라면, 본서는 뛰어난 문장가의 눈으로 보고 그린 흥미진진한 유람 기록이라고 하겠다.
조경일록(朝京日錄)
김육(金堉, 1580~1653) 간행 1976, 조선 중기의 문신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동지사 서장관인 이만영(李晩榮)을 따라 1636년(인조14) 6월 15일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6월 2일 돌아올 때까지 1년 동안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사행 일기이다. 명나라 사행을 가는 길에 육로가 차단되어 해로로 갔고, 명나라 황제를 직접 만날 수가 없었으며, 명나라 조정 관리들은 뇌물만 탐냈다는 등 멸망 직전의 명나라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무방비 상태로 곤란을 겪었던 조선의 실정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대명 관계를 알아보는 데에 좋은 사료가 된다.
조천기(朝天記)
허봉(許篈, 1551~1588) 간행 1976, 허균(許筠)의 형이며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오빠인 조선 명종, 선조 때의 문신 하곡(荷谷) 허봉(許篈)이 선조 7년(1574)에 성절사(聖節使) 박희립(朴希立)의 서장관으로 사행(使行)한 기록이다. 보고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관계 기사나 인물을 밝혀 정확성을 더했다.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
홍익한(洪翼漢, 1586~1637) 간행 1976, 조선 중기 문신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이 성절 겸 동지사의 서장관에 임명되었다가, 앞서 가던 주청사 서장관이 병이 나 다시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이임되어 명(明) 나라에 다녀오면서 지은 일기이다. 수로를 이용한 항해라 해안 지방의 이색적인 생활 풍속과 경물(景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 명, 청 대립의 국제적 영향으로 사행의 목적이었던 왕위 개정의 인준이 어려웠던 점 등은 당시 외교 실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표해록(漂海錄)
최부(崔溥, 1454~1504) 간행 1976,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 금남(錦南) 최부(崔溥)가 성종 18년(1487)에 제주 추쇄경차관(濟州推刷敬差官)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1488) 1월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 절강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에 표류해 도착하여, 반년 만인 6월에야 귀국하여 왕명에 의해 지어 올린 표류기이다. 중국인들의 습성과 지역 차이, 인심과 옷 여밈새, 취미에 대해서까지도 풍부하게 다루고 있어, 문학적 가치와 함께 그 무렵의 미답지(未踏地) 관찰 기록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열하일기(熱河日記)
박지원(朴趾源, 1737~1805) 간행 1966,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정조 4년(1780)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으로 청(淸) 고종(高宗)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하여 중국에 들어가 여행하고, 돌아와 그곳 문인들과의 교유 및 문물 제도를 접한 결과를 기록한 작품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이규경(李圭景, 1788~미상) 간행 1977, 조선 후기의 실학자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이 백과사전식으로 찬술한 책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및 여러 외방(外方)의 고금사물(古今事物)에 대해 망라하고 있다. 천문(天文), 역법(曆法), 수리(數理), 역사, 지리, 경제, 문학, 문자, 금석(金石), 서학(西學), 도교, 불교, 서화(書畵), 의약, 복식, 병학(兵學), 양전(量田), 광물(鑛物) 등을 놓고 의심이 가는 것이나 고증(考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변증하였는데, 그 항목 수가 1,400여 항에 달한다.
완당집(阮堂集)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간행 1986, 조선 후기 실학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문집이다. 1934년 현손 김익환(金翊煥)이 만향재(晩香齋)간행의 『완당집』에 『완당척독(阮堂尺牘)』, 『담연재시집』과 기타 유문(遺文)을 합쳐 편집, 간행하였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파의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학문 자세를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우서(迂書)
유수원(柳壽垣, 1694~1756) 간행 1981, 조선 중기 유학자 농암(聾菴) 유수원(柳壽垣 1694~1756)의 저서 중 하나이다. 18세기 조선왕조의 부국안민책(富國安民策)에 초점을 맞춘 사회개혁론을 대담하고도 체계 있게 기술한 하나의 논저이다. 시대상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나아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참신하고도 전진적인 개혁안을 총괄적(總括的)으로 체계 있게 제시하고 있는 드물게 보는 저서라는 점에서 우선 그 사료적 가치가 주어질 수 있다.
익재집(益齋集)
이제현(李齊賢, 1287~1367) 간행 1970, 고려 시대의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문집이다. 당대의 명문장가로, 외교 문서에도 뛰어났고, 성리학을 수용,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저자의 문학적 역량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인정(人政)
최한기(崔漢綺, 1803~1877) 간행 1980, 조선 후기 실학자 혜강(惠剛) 최한기(崔漢綺)가 철종 11년(1860)에 완성한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이다. 사람을 쓰는 데 있어 신분이라는 계급적 차별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정당하게 측정하는 것을 다룬 측인문(測人門), 교육을 통하여 가르치는 교인문(敎人門), 가르친 사람들 가운데 우수한 사람을 뽑는 선인문(選人門), 국가 경영을 맡기는 용인문(用人門)으로 나뉘어져 있다.
잠곡유고(潛谷遺稿)
김육(金堉, 1580~1658) 간행 1998,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실학자인 잠곡(潛谷) 김육(金堉)의 문집이다. 손자 김석주(金錫冑)가 증보, 재편한 중간본(重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경제 정책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것이 대부분으로, 대동법의 실시, 새로운 역법의 시행, 수레의 사용, 수차(水車)를 이용한 관개법, 용전(用錢) 등을 건의하고 있다. 17세기 사회사와 경제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있는 책이다.
점필재집(佔畢齋集)
김종직(金宗直, 1431~1492) 간행 1996, 조선 초기 문신이며 학자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시문집이다. 시 작품의 소재로 역사적 장소나 유적, 풍속 등을 취하고 있어 지방사와 지방 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김건서(金健瑞, 1743~미상) 간행 1997, 조선 후기 일본, 여진, 대마도(對馬島), 유구(琉球) 등과의 외교 관계를 적은 책이다. 순조 2년(1802) 김건서(金健瑞), 이은효(李恩孝), 임서무(林瑞茂) 등이 엮어 펴냈다. 『울릉도의 죽도 변정전말』은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영토 분쟁을 정리해 두고 있어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계되는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
춘정집(春亭集)
변계량(卞季良, 1369~1430) 간행 1998,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문집이다. 초간본은 세종 때 영남 감영(嶺南監營)에서 판각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거의 유실되어 순조 25년(1825) 병암서원(屛巖書院)에서 중간하였다. 이번 국역본에서는 중간본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한 시문은 물론, 그 밖에 누락된 글까지 원문을 모두 각 권말에 수록하였다.
택당집(澤堂集)
이식(李植, 1584~1647) 간행 1996, 조선 중기의 문신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문집이다. 그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상촌(象村) 신흠(申欽), 계곡(谿谷) 장유(張維)와 함께 조선 중기의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경전의 사상과 정주(程朱)의 성리학에 심취한 택당의 문장은 이러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전아(典雅)하고도 간결한 문체로 형성되었다. 그의 문풍(文風)은 고문의 정통이라고 일컬을 수 있어 문장을 공부하는 데 모범이 될 만하며, 문집에 실린 내용은 한문학사 뿐만 아니라 한국 유학사, 한국 정치사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학봉전집(鶴峯全集)
김성일(金誠一, 1538~1593) 간행 1998, 조선 중기 학자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문집이다. 문집(文集), 속집(續集) 및 문집 부록(文集附錄), 그리고 일고(逸稿) 및 일고부록(逸稿附錄)의 다섯 편으로 나누었다. 이 책은 도산연원(陶山淵源) 관계와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해행총재(海行摠載)
미상, 간행 1974,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일본을 왕래한 여러 통신사나 포로, 표류자들의 기행문을 모은 책이다. 서문, 발문은 없고 28책의 저자별 저술이 실려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에 걸친 우리나라 대일(對日) 외교와 당시 형편을 살필 수 있어 동양사 연구와 동양 외교사를 연구하는 데에 귀한 자료이다.
간양록(看羊錄)
강항(姜沆, 1567~1618) 간행 1974, 임진왜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었던 시북(市北) 강항(姜沆)의 기록을 엮은 책이다. 일본에 잡혀간 포로들의 참상을 적고 그때 느낀 점을 한시로 적기도 했으며, 전란에 대비할 국내 정책까지도 기록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자료다.
계미동사일기(癸未東槎日記)
미상(未詳) 미상간행 1974, 인조 21년(1643)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간 정사(正使) 윤순지(尹順之), 부사(副使) 조경(趙絅), 종사관(從事官) 신유(申濡) 등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쓴 사행(使行) 일기이다. 조리 있고 간결하게 적힌 이 작품은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일본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이다.
금계일기(錦溪日記)
노인(魯認, 1566~1622) 간행 1974, 조선 선조 때의 의병 금계(錦溪) 노인(魯認)의 일기이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탈출하여 명나라로 도피한 뒤 귀국할 때까지 일본과 중국 풍물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일본 내부 사정과 잡혀간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기 위한 좋은 자료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풍속, 제도 등과 조선에 대한 중국인의 관념과 대우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사록(東槎錄)
강홍중(姜弘重, 1577~1642) 간행 1974, 조선 중기의 문신 도촌(道村) 강홍중(姜弘重)이 통신 부사(通信副使)로 일본에 다녀와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사행일록(使行日錄)이다. 이 사행은 강호막부(江戶幕府)의 삼대 장군(三代將軍) 가광(家光)이 관백(關白)에 취임할 때에 회답 사행(回答使行)으로 일본에 건너가 하례(賀禮)를 하고 국교를 더욱 굳게 맺어 수백 년 동안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당시 일본의 풍토, 민속과 명승, 고적, 그리고 정치, 직제(職制)와 성첩, 요새(要塞) 등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다루었다. 특히 임란왜란 후 외교 관계에 있어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
동사록(東槎錄)
황호(黃
동사록(東槎錄)
조경(趙絅, 1586~1669) 간행 1974, 조선 중기의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이 인조 21년(1643) 통신 부사로 일본에 갔다 오면서 도중에 지은 시문(詩文)들을 엮은 것이다. 여행 중의 생생한 체험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아 흥미로운 자료이다.
동사록(東槎錄)
홍우재(洪禹載, 미상) 간행 1974, 조선 후기 왜어 역관 홍우재(洪禹載)가 숙종 8년(1682)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일본에 다녀오면서 여정과 사행 임무 수행 과정 및 견문을 기록해 놓은 통신사 일기다. 역관으로서 사신을 대신하여 왜인과 실무 교섭을 직접 담당하였던 관계로, 그가 기록해 놓은 본서의 내용은 당시의 조, 일 간의 외교 관계 및 통상 관계를 살피는 데 훌륭한 자료이다. 다른 문사의 일본 기행문이 대개 시문 중심인 데 비해 본서는 실무적인 면에 있어서 풍부한 내용을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사록(東槎錄)
유상필(柳相弼, 1782~미상) 간행 1974, 순조 11년(1811)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이교(金履喬) 일행에 관한 사행 기록이다.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수신사(修信使)가 파견될 때까지 우리의 마지막 공식 일본 사행이라 할 수 있는 점에서 대일 관계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동사만록(東槎漫錄)
박대양(朴戴陽, 미상~미상) 간행 1974, 조선 말기 박대양(朴戴陽)이 일본에 다녀와서 기록한 사행 일록(使行日錄)으로, 고종 21년(1884) 11월부터 22년 2월까지의 기록이다. 이 사행은 갑신정변의 뒷수습을 위해 파견되었는데, 그 임무는 정치범 체포와 인도, 조선 생도의 소환, 울릉도 목재 대금의 지불 요구였다. 한말(韓末)의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당시 일본이 얼마나 개화에 열중하였는지, 학교, 군대의 훈련, 무기의 생산, 정비, 각종 기계의 도입, 제작 광경, 기타 새로운 문화와 물질 문명에 열광하며 부강에 진력하는 모습을 알 수 있다. 또 세계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우리나라 수구파들의 완고한 시국관과 세계 정세의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동사상일록(東槎上日錄)
오윤겸(吳允謙, 1559~1636) 간행 1974, 조선 중기 문신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이 정사년(1617, 광해군9)에 임진왜란 당시 잡혀간 우리나라 남녀를 쇄환(刷還)하는 문제로 상사(上使)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가서 겪은 일을 적은 사행 기록이다.
동사일기(東槎日記)
임수간(任守幹, 1665~1721) 간행 1974, 조선 숙종 때의 문신 임수간(任守幹)이 숙종 37년(1711)에 통신 부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사행 일록(使行日錄)이다. 1711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개월간의 기록을 건(乾), 곤(坤)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이 책은 음률, 상수(象數), 병법, 지리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었다. 또 체제도 일기에 소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며, 일기와 중요 기록을 구분하고 일부 기록은 원래 지은 자를 명기하여 혼란이 없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동사일록(東槎日錄)
김지남(金指南, 1654~미상) 간행 1974, 숙종 7년(1681)에 일본에서는 원가강(源家綱)의 뒤를 이어 강길(綱吉)이 새로 관백(關白)의 자리에 서자, 통신사를 보내주기를 청해 왔다. 이 책은 이듬해인 숙종 8년(1682)에 정사 윤지완(尹趾完), 부사 이언강(李彦綱), 종사관 박경후(朴慶後)를 삼사(三使)로 정하여 사신 갔을 때의 일을 광천(廣川) 김지남(金指南, 1654(효종5)~?)이 적은 사행 기록이다.
문견별록(聞見別錄)
남용익(南龍翼, 1628~1692) 간행 1974, 조선 중기 문신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이 먼 섬나라로 봉명(奉命)하고 갔을 때에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면서 그 지방의 사적들을 주워 모아 왕이 예람(睿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은 책이다. 왜황대서(倭皇代序), 관백차서(關白次序), 대마도주세계(對馬島主世系), 관제(官制), 주계(州界), 도리(道里), 산천(山川), 풍속(風俗), 병량(兵糧), 인물 등 10가지 조목으로 나누어 엮었다.
병자일본일기(丙子日本日記)
임광(任絖, 1579~1644) 간행 1974, 이 글은 조선 인조(仁祖) 14년(1636), 즉 병자년에 통신사로서 일본에 갔다 온 연담(蓮潭) 임광(任絖)이, 부산을 떠나 일본의 강호(江戶)까지 간 경로와 강호에서 부산까지 돌아오는 길의 사정을 그날그날 적은 일기문이다.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
조명채(曺命采, 1700~1763) 간행 1974, 조선 후기의 문신 난재(蘭齋) 조명채(曺命采)가 영조 24년(1748) 2월부터 윤7월까지 7개월간 종사관(從事官)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쓴 사행 일록(使行日錄)이다. 건(乾), 곤(坤) 2권으로 나누었는데, 건은 2월부터 5월까지의 일기이고, 곤은 나머지 윤7월까지의 일기와, 왜경(倭京), 강호(江戶), 대마도(對馬島), 총론(總論)으로 나누어 일본의 분주(分州), 병제(兵制), 가사(家舍), 음식, 인품 등을 실은 『문견총록(聞見總錄)』으로 구성되었다.
부상록(扶桑錄)
이경직(李景稷, 1577~1640) 간행 1974, 조선 중기 문신 석문(石門) 이경직이 광해군 9년(1617) 7월 4일, 부산에서 일본으로 출발하기 3일 전부터 시작해서 같은 해 10월 18일 대마도에서 부산항에 귀환하기까지 104일 동안 종사관으로 다녀오면서 겪었던 일을 기록한 사행 일록(使行日錄)이다. 일기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기에는 포로들의 생활과 그들을 데려오는 데 얽힌 사연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부록에는 일본의 지리, 물산, 인정, 풍속, 의복, 음식, 가옥, 관제 등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부상록(扶桑錄)
남용익(南龍翼, 1628~1692) 간행 1974, 조선 중기 문신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이 종사관으로 효종 6년(1655)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사행록이다. 일본 지명 고유의 발음을 한글로 기록하였고 일본 사행 기록을 종합하여 풍토와 인정 등을 빼어난 문장으로 기록한 자료이다.
사상록(槎上錄)
김세렴(金世濂, 1593~1646) 간행 1974, 조선 중기의 문신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이 1636년(인조14) 통신 부사로 일본에 갔을 때 지은 시집이다. 한양을 출발하여 조령(鳥嶺), 경주, 부산 등지를 지나면서 읊은 기행시, 일행과의 화답시와 증여시, 일본의 명승지와 사찰을 돌아보며 지은 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산천, 민물(民物), 풍속, 제도를 잘 표현하여 사행시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화기략(使和記略)
박영효(朴泳孝, 1861~1939) 간행 1974, 고종(高宗) 19년(1882) 6월에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난 후, 우리나라에서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파견했던 박영효(朴泳孝)의 사행 일록이다. 2년 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주도한 개화당(開化黨)의 김옥균(金玉均)과 서광범(徐光範)이 수행하였고, 그 반대파인 수구당의 거두 민영익(閔泳翊)도 수행하고 있었으니, 이때 이들 눈에 비친 일본의 개화 모습과 사회 발전상이 국내 정치 변혁에 많은 자극을 주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 정치 외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일동기유(日東記游)
김기수(金綺秀, 1832~미상) 간행 1974, 고종 13년(1876) 창산(蒼山) 김기수(金綺秀)가 수신사로 일본에 건너가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발전된 일본의 문물을 보고 돌아와 이듬해 곡산 군수로 있으면서 정리한 책이다. 저자가 수신사로서 외국에 갔던 사명과,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상태를 세밀하게 기록한 사료이므로, 근세 한, 일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명치유신 직후의 일본의 정세를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
황신(黃愼, 1560~1617) 간행 미상, 임진왜란 때 저자가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을 왕복하였을 당시의 일을 한문으로 적었다. 즉 1596년(선조 29) 전란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소강상태를 유지하며 강화회담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황신이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적진에 다녀온 다음, 다시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교섭한 상황 및 그곳 산천과 풍속의 견문(見聞)을 기록한 것이다.
일본행록(日本行錄)
송희경(宋希慶, 1376~1446) 간행 1974, 세종(世宗) 2년(1420)에 송희경이 일본에 회례사(回禮使)로 갔을 때의 견문과 경험을 시 형식을 빌려 쓴 기록이다. 출발에서부터 돌아와 복명을 마칠 때까지 경과한 연로의 정대누관(亭臺樓觀)과 이역(異域)의 산천, 풍물, 인정, 풍속, 정치 제도, 그리고 자신이 겪은 모든 일과 심경을 총망라하였는데, 절구(絶句)와 사율(四律)을 모두 합하여 227편이나 된다.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국교 관계, 그리고 일본의 제도, 문물, 풍속, 습관 등의 사료적인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어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일사집략(日槎集略)
이헌영(李憲永, 1837~1910) 간행 1974, 조선 고종 18년(1881)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소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이었던 이헌영(李憲永)이 자기가 맡은 분야의 실정을 조사한 결과와 기타 문견을 기록하여 보고한 글들이다. 당시 일본의 실정을 널리 자세하게 조사하여 기록한 자료이다.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신숙주(申叔舟, 1417~1475) 간행 1974,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는 조선조 성종 2년(1471)에 보한재(保寒齋) 신숙주(申叔舟)가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왕명(王命)에 의하여 찬진(撰進)한 해동제국(海東諸國)에 관한 기록이다. 한, 일의 역사적 관계에 여러 차례 변천이 있고, 또 조빙 응접(朝聘應接)의 규정에도 변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정비되어 있어 교린 관계의 선규(先規)로서 오랫동안 참고 되었던 문헌이다.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강호 시대(江戶時代)의 한일 관계 연구 자료로 삼았으며, 그 유포 범위도 매우 넓었다.
해사록(海槎錄)
김성일(金誠一, 1538~1593) 간행 1974, 조선 중기 문인 학봉(鶴峯) 김성일이 조선 선조 23년(1590) 통신 부사로 일본에 다녀와 기록한 사행록이다. 조선 사대부가 일본을 바라보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해사록(海槎錄)
경섬(慶暹, 1562~1620) 간행 1974, 선조 40년(1607) 1월부터 7월까지 통신 부사 삼휴자(三休子) 경섬(慶暹)이 일본을 다녀온 후 느낀 것을 기록한 사행 일록(使行日錄)이다. 쇄환에 어려움이 많아 강제 쇄환의 방법까지도 모색하였으나 쇄환인의 일부만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해사록(海槎錄)
김세렴(金世濂, 1593~1646) 간행 1974,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명(東溟) 김세렴(金世廉,1593(선조26)~1646(인조24)) 1636 년(인조14) 8월 11일 임광(任)과 함께 통신 부사로 서울을 출발하여 이듬해 3월 9일 서울에 와서 인조를 인견할 때까지 6개월 동안 쓴 기행 일기이다. 사신 일행의 명단과 2면에 걸친 개략적인 일본 지도가 판각(板刻)되어 있다. 인조 연간의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행한 일본과의 외교 관계 기록으로, 당시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해사록(海槎錄)
신유(申濡, 1610~1665) 간행 1974, 조선 중기 문신 죽당(竹堂) 신유(申濡)가 인조(仁祖) 21년(1643) 2월에 조정에서 통신사를 일본에 보낼 때 정사(正使) 윤순지(尹順之), 부사(副使) 조경(趙絅)과 함께 종사관(從事官)으로 가서 겪은 일을 적은 책이다. 저자가 당시에 시문(詩文)으로 이름을 드날렸던 만큼 일본 기행에 관한 빼어난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해사일기(海槎日記)
조엄(趙曮, 1719~1777) 간행 1974, 조선 영조 때 문신 영호(永湖) 조엄(趙曮)이 통신 정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사행 기록이다. 일공, 사행 명단 및 노정기의 군령이나 열선도(列船圖), 배의 방위를 표시한 행로 방위는 다른 사행록에서는 보기 어려운 자료이다.
해상록(海上錄)
정희득(鄭希得, 1575~1640) 간행 미상, 조선 중기의 문인 월봉 정희득(鄭希得)의 저서로 정유재란으로 정희득이 일인들에게 포로가 되어 3년간의 억류생활을 하면서 기록한 일기와 시(詩)이다. 1597년 8월 13일부터 1599년 7월 28일까지의 기록이다. 상권에는 정유재란 당시의 전황과 일본인들의 간교함, 그리고 일본의 병력과 지리 등을 소상히 적고 있다. 하권에는 자작시 400여편을 포함하여 총 530여편의 시가 실려있다.
해유록(海游錄)
신유한(申維翰, 1681~미상) 간행 1974, 조선 숙종 때의 문인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이 숙종 45년(1719)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일을 기록한 사행 일록이다. 문견잡록은 일본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것으로, 풍속에 관한 것이 많으나 인물평과 일본의 주자학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출처 : 茶守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