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빈틈을 가장 잘 파고드는 정은주 학우님.^^ '오솔길'을 인용하면서 약간 무리한 점이 없지 않았는데 역시 바로...ㅋ 그런데 지금 쓰려는 글은 '오솔길'의 '오솔'과 '오솔하다'의 '오솔'이 같은 거냐 다른 거냐를 가지고 씨름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어원이 모두에게 흥미로운 관심사이긴 하지만 저도 추측뿐, 문헌에서도 못 밝힌 걸 제가 밝힐 재주는 없고요. 여기선 유일형태소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오솔길'의 '오솔'을 '외獨'+'솔細'로 분석한 어원학자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솔하다'가 있었네요. 몰랐어요.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이 사전에 버젓이 오른 '오솔하다'를 몰랐을까요? 아마도 같은 어원으로 판정하기엔 문헌 자료가 충분치 않았을지 모릅니다. 즉, '오솔길'의 '오솔'과 '오솔하다'의 '오솔'이 같은 말이라는 확증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당히 연관이 있어 보이긴 한데, '오솔하다'의 존재를 언급도 안 하고 문법서에서 유일형태소의 간판으로 '오솔'을 소개하는 건 세심치 못한 일인지 아님 둘이 상관이 없다는 반증인지... 아리송.
물론 '오솔'의 정체가 '외獨(명사 또는 어근)'+'솔細(형용사 어간)'로 밝혀졌다고 해서 '오솔길'을 세 형태소(오+솔+길) 또는 네 형태소(오+솔+ㄹ+길)로 분석하는 건 지나친 통시적 접근입니다. 이미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이미 '오솔'을 몇 개의 단위로 인식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지붕'은 '집+웅'의 결합이고 '도랑'은 '돌+앙'의 결합인데, 보통 현대국어에서 '지붕'은 파생어로 보아 '웅'을 접미사로 인정하지만 '도랑'은 단일어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공시적으로 단일어인 것과 어원적으로 분석 가능한 것은 다릅니다. 즉 단일어로 간주된 것들도 어원적으로 더 쪼갤 수 있다는 건데, 이런 점에서 우리가 형태소 분석을 할 때 통시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접근을 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범주에선 그 경계짓기가 힘든 것이니까요. 형태소 분석이 '손가락'과 '아버지'처럼 명확하기만 하지 않으니까요.
다시 유일형태소로 돌아와서, 그럼 유일형태소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유일형태소라 불리는 것들은 오로지 '한 단어'의 요소로만 존재한다는 공통점 말고는 어찌 보면 이질적인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일 수 있습니다. 유일형태소인 어근들의 정체가 관형사형일지 명사일지 어간일지 그 형태적 기원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일형태소의 '유일성'을 공시적인 유일성과 통시적인 유일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공시적인 유일성은 어떤 형태소가 지금 홀로 쓰이지도 못하고 오로지 하나의 형태소와만 어울려 단어를 형성하는 특징일 것입니다. 통시적인 유일성은 공시적인 유일성을 전제로 역사적으로도 그 유일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좀 과장하면 모든 유일형태소들은 통시적으로 문헌에서 다른 쓰임이 발견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유일형태소는 어느 시기엔 유일형태소가 아니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유일형태소는 '아직' 유일형태소일 뿐이고 '유일'이란 말은 그 가치가 떨어지고 맙니다.
유일형태소의 정의와 기준, 통시적인 관찰의 범위는 물론, 한국어에서 유일형태소란 용어 자체가 적절한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느 책에선 유일형태소를 쓰지 않고 크게 '불규칙적 어근'의 범위에 넣기도 한답니다. 다음을 보여드리면 아마 더 놀라실지도. '착하다'의 '착'과 '착실하다'의 '착'은 관련이 있어보이지 않나요? '아름답다'와 '아리땁다'가 공통의 '아름(아래아)에서 파생된 말이랍니다.
영어의 예를 들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영어의 유일형태소 중 'cranberry'의 'cran-'이 있는데, 글쎄 시중에 'cranapple'이란 이름의 주스가 판매되었답니다. 그래서 berry와도 결합하고 'apple과도 결합하게 된 'cran-'은 어찌 보면 더 이상 유일형태소가 아닐 것 같지만 이런 정황까지 설명하면서도 유일형태소에 넣습니다. 용어의 번역이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유일형태소는 unique morpheme을 번역한 술어인데 unique가 '유일함'뿐 아니라 '독특함'의 뜻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첫댓글 재밌게 읽었어요~ 역쉬~!
역쉬2~ㅋㅋ 공시적, 통시적 접근에 따라 달라지겠네요. 외+ 솔 이라는 의견도 솔깃합니다.(저도 그래서 '외길'이란 예도 들었던 것이구요.) 한편으론 어쩌면 '올+솔'은 아닐까 하고 상상도 했었지요.(상상이 심하죠?ㅋㅋ) 기어이 갖다 붙이자면 '올이 손(좁은) 길'이 되겠지요. ('ㄹ'탈락은 다른 경우도 가능했으니..)하지만 아시다시피 제 수준이 공시적인지, 통시적인지 알고 그런 대단한(?) 접근을 하려고 덤빈 게 아니라 어떤 단어를 봤을 때 번쩍~ 스치는 단순, 무식한 느낌만으로 들이댄 것이라..@@ 역시나 쥔장님의 논리정연한 정리가 없으면 저는 언제나 오.리.무.중. 상태입니다.ㅎㅎ 음...하다'와 '아름답다'에 대한 정보도 솔깃~^^
음...저도 학자들이 사전에 버젓이 오른 '오솔하다'를 연구자들이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싶어서 그게 가장 이상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제가 봐도 이상한데 학자들이 그걸 몰라서 연구를 안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죠. 상관없다고 결론이 났다면 과연 그 이유가 뭐였을까요? 저도 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영어 예문 설명은 저에겐 소귀에 경읽기, 해석 불능...쿨럭~
저는 별로 안 궁금한데...ㅋ 이유는 확증이 없다는 거겠죠? 몰라서 연구를 안 한 게 아니라 연구를 했는데 같은 거라는 답을 못 내린 거겠죠. 즉, 같은 거라는 답을 내릴 만큼 자료가 충분치 못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원학자의 글에는 있지만 교과서엔 굳이 실리지 않은 거구요.
네...그런 경우가 많겠지요? 맨날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엉뚱한 곳에 관심이 가서 벽에 꽝~하고 부딪히는지...ㅠㅠ 상상은 늘 즐겁습니다. 그 끝이 허무할 뿐~ㅋㅋ
자고 일어났더니 파장 분위기네..ㅋㅋ
떨이요,떨이~~^^
일단 의심해 보라, 은주씨는 학문하는 자세가 되어 있네요. 자극이 와요.
학문도 아니고 맨날 허무맹랑한 상상만 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