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철강시대를 여는 Arcelor Mittal
락시미 미탈이 26세의 나이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철강회사를 세웠을 때 회사의 생산능력은 年 6만톤에 불과했습니다. M&A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거래를 처음으로 체결한 것은 미탈이 39세가 되던 1989년,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국영 제철사인 이스콧을 사들인 해입니다. 공장가동률이 30%에 불과하고, 매일 100만 달러씩 적자를 내는 부실회사였습니다. 미탈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현재 그의 제철소는 전세계 60개국 이상에 퍼져 있습니다. 32만 명의 종업원이 쉼 없이 생산하는 철강제품은 1억1,000만 톤, 매출액은 886억 달러에 달합니다. 전세계 모든 철강업체들이 미탈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합니다.
‘해가 지지 않는 강철 제국’ 아르셀로 미탈 그룹의 창립자 락시미 미탈 회장은 철강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핵심에도 그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락시미 미탈 회장은 여전히 허기져 있습니다. 2004년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 인터내셔널 스틸 그룹(ISG)을 인수해 연간 생산량 7,000만 톤의 세계 최대 철강회사가 됐을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6년에는 1위(Mittal) 업체가 비슷한 덩치의 동종업계 2위(Arcelor)를 집어 삼키는 인수를 단행,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사들여 몸집을 불리는 인수합병(M&A)의 고전 문법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미탈 회장은 생산능력이 현재 아르셀로 미탈 그룹의 두 배는 되야 포만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탈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르셀로 미탈은 2015년까지 연간 철강생산능력을 2억 톤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세계 2위인 신일본제철(3,370만 톤)과 3위 JFE(3,202만 톤), 4위 POSCO(3,120만 톤)을 모두 집어삼켜야 충족되는 목표입니다. 2007년에도 멕시코 최대 철강업체인 시카르차를 인수했고, 미국 3위 제철사인 AK스틸 인수를 추진 중입니다.
북미와 유럽 대륙의 철을 죄다 삼킨 미탈 회장은 이제 ‘동방정책’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앞으로 철강산업의 성장을 주도할 지역은 아시아’라고 강조합니다. 실제 벨기에의 국제철강연구소는 중국의 철강시장이 2008년 전세계 소비의 35%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나머지 주요 철강업체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르셀로 미탈의 뒤를 잇는 철강사인 신일본제철과 JFE, POSCO, 바오산 강철 모두가 미탈 회장의 동방정착 기착지인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M&A시장이 미탈 회장의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 번 문 먹이는 결코 놓지 않는 락시미 미탈의 진돗개 같은 성격도 주요 철강사들을 떨게 합니다. ‘유럽의 왕관’이라는 평을 듣던 아르셀로를 인수할 당시 미탈은 유럽 각국은 물론 시민들까지 나서 반발하는 데도 불구하고 6개월간 인수전을 벌여 기어이 ‘왕관’을 벗겨냈습니다. 카자흐스탄 철강 공장을 인수할 때는 불법의혹을 사기도 했습니다.
주요 철강업체들의 상황이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있는 점은 ‘철강 빅딜’ 가능성에 더욱 힘을 싣습니다. 일본에서 외국기업이 현금이 아닌 주식교환을 통해 기업을 매수할 수 있는 삼각합병이 허용됨에 따라 신일본제철은 그동안 성을 방어해주던 해자를 메워야 합니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POSCO의 성곽도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철강산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정해 외국자본비율이 50%가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800여 개의 철강사가 난립한 진형은 각개격파 당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먹히지 않기 위해’ 주요 철강업체들도 M&A 방어책 마련에 부산합니다. 철강사들의 생존전략은 ‘연대’입니다. 아르셀로의 합병으로 얼떨결에 2위 명패를 받아든 신일본제철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제휴관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우방인 POSCO와는 물론 잠재적 주적인 아르셀로 미탈과도 제휴관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POSCO는 신일본제철과 세아제강, 우리은행에 이어 동국제강, 현대중공업 등과 백기사협정을 맺고 아르셀로 미탈의 적대적 M&A 시도에 대항할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 또한 정부 주도로 철강사 통폐합 작업에 분주합니다. 중국 최대이자 세계 5위 철강사인 바오산 강철을 세계 3위권으로 키우는 것을 비롯, 난립한 철강사를 연간 생산량 5,000만 톤 규모의 철강회사 5~6개로 재정비한다는 복안입니다.
이처럼 철강업계의 M&A가 활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상위 5개 제철업체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20%, 3대 업체가 전체 시장의 78%를 장악하고 있는 철광석 시장이나 5대 기업이 전체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과는 격차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전통적으로 철강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취약하고, 수요업체들과의 가격협상에서 밀리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전세계에 공장을 거느린 아르셀로 미탈은 모든 구매주문을 유럽 본사가 취합해 한 번에 대량 주문을 냄으로써 원자재 구입 비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인도 업체들이 M&A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과 2000년대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국영기업이었던 철강회사들을 민영화하면서 매물이 대량 출회한 것도 M&A 경쟁을 격화시킨 요인입니다.
철강업계의 새로운 큰 손으로 부상한 인도 업체들의 존재감은 특히 두드러집니다. 최근에는 세계 56위에 불과한 인도 타타스틸이 8위 업체인 영국의 코러스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타타스틸은 이 밖에도 싱가포르의 냇스틸(Natsteel)과 태국의 밀레니엄(Milenium), 베트남의 SSE스틸, 비노(Vinau) 스틸 등의 지분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아르셀로 미탈 못지 않은 식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 등 철강소비업체들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형 철강업체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도 철강업계의 M&A가 활발해진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거대화 일색으로 진행되는 철강업계의 M&A에 반기를 드는 조류도 감지됩니다. 중형(700만~1,000만 톤) 규모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크기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르셀로 미탈과 코러스 등 초대형 철강사들의 수익성에 세계 평균보다 낮다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연간 철강생산량이 1,100만 톤에 불과한 세계 20위권 업체인 대만 차이나스틸이 세계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을 근거로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내놓는 이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철강사라 하더라도 먹혀버리면 끝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잡아먹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상대가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제철소를 짓지 않고 29차례의 M&A를 통해 회사규모를 140여 배나 불린 락시미 미탈 회장이라는 점입니다.
M&A 바람은 철강의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회사, 나아가 비철금속 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르셀로 미탈이라는 확실한 주연이 존재하는 철강업계와는 달리 원자재 및 비철업계의 인수전은 절대 강자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2007년 세계 3위 광산업체 리오 틴토가 세계 2위의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칸을 매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알칸을 두고 인수경쟁을 벌였던 세계 1위 광산업체 BHP 빌리톤의 리오 틴토 인수 시도, 브라질 CVRD의 세계 4위 광산업체 엑스트라타 인수시도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들 업계의 M&A 경쟁이 이처럼 혼전 양상을 띄는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원자재 가격이 수직 상승하면서 자금력이 풍부해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회사든 경쟁업체를 인수할 여력을 가지다보니 예전 같으면 ‘터무니 없다’는 반응을 보일 루머조차 설득력을 얻는다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