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에 대한 설레임만큼이나 부푼 배를 안고 이를 쑤시며 식당을 나서는데 엠티비일행들이 단체로 지나가길래 인사하면서 다가선다.
좋은 코스나 기타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 였으나...
잠깐의 대화로 그들은 강원도 강릉에서 왔으며 산악코스는 접해보지 못하고 해안라이딩만 했다는것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3박4일일정을 마치고 귀가를 준비중이었고 살펴가시라고 즐거운 라이딩하시라고 인삿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특이 사항은... 복장만 아니었으면 떼강도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인상착이었다.
지금 그들은 단체로 은행에 들어가려 한다. 내기를 해도 좋은데... 은행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면서 무의식중에 버턴위로 손이 갈것이라는 것이다.
세화해수욕장에 도착.
오는 길은 '지금 제주도는 비수기다'라고 알려주려는듯 한산한 도로와 드문 인적으로 약간의 공허함을 풍기고 있었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워 한층 무거움을 더한다.
하지만 이는 곧 자전거의... 아웃토반... 흐뭇...
간단한 잔차정비와 복장을 갖추고 모두 모여 화이팅을 외친다.




"끼야~옷.... 출발이닷!"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발사~
신바람타고 해안을 따라 달리는 행님들 뒤를 빨리 약기운이 퍼지기 바라며 차로 따른다.
익숙한 풍경에 곧장 작은 감상에 젖는다.
나는 제주도 여행을 3번 했다.
학창시절에 친구와 함께 제주도 라이딩을 했고 성인이 된후엔 고독과 함께 짧은 라이딩을 하고 후에 여친과 함께 라이딩을 했다.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혹은 이웃과 함께...
여행은 '그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해도 좋지만 사실은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여행은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색하는 행위일 터이다.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 중에서 -
나는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모퉁이를 돌때마다 추억은 빼꼼 고개를 내민다.
회상은 주사 약발도 무시하는 감기기운과 해야할일(사진촬영)때문에 오래 이어지지 못하나...
흩뿌려놓은 추억과 그리움들이 항구에서 부터 반겨주고 밥을 먹고 나온후에도 자전거를 탈때도 제주도를 떠나기까지 줄곧 나를 기억해주었다.
그러나 열이 자꾸 오르면서 좋은 기분을 망친다.
'아~찌뿌둥해ㅠㅠ'
한기가 스며든다. 으슬으슬... 안조아, 안조아,
컨디션 좋은 행님들은 펄 펄 난다.
어느듯 성산에 도착하고 윈드스토퍼 하나씩 벗어낸다.


간단히 기념촬영을 마치는 동안에 양도 행님이 혼자 말키우는데까지 갔다가 오면서 말이 들이받을까봐 더 못가겠더라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되돌아 온다.
살다살다 말이 들이받는다는 소리는 첨들어 본다.
말이 들이 받으면... 그러면... 소는 머하고...
성산일출봉의 해거름이 길게 드리워지는것을 보며 갈길을 재촉한다.
당초 계획은 '코지'에 들렀다 가는것인데 내륙방향으로 길을 잘못들면서 지나치게 된다.
뒷따르다 옆에 붙으면서 해안도로로 가자고 고함을 지른다.
아니나 다를까 무시한다.
굳이 해안 절경이 없더라도 이 맑은 바다와 깨끗한 바람만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하는듯...
매번 느끼는것이지만 제주도는 자전거 도로가 퍽 잘되있다는것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도로는 차선과 완전히 분리된 잔차 전용도로가 있어 더욱 쾌적한 라이딩을 즐길수 있게 되있다.
해안도로 또한 적은 차량통행량으로 라이딩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거침없던 3시간 남짓의 질주는 땅거미에 발목을 잡힌다.

템즈강의 땅거미-그림쇼(화가이름)-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객관적으론 정해진 이미지이나 각자의 색깔로 자신만의 주파수로 교감을 한다는것이다. 소시쩍 감성을 깨우거나, 기억속에 묻혀있던 노랫가락이 생각난다거나, 때론 슬프거나 기쁘거나 ... 혹은 감동하거나...
고즈넉한 느낌이 좋았던 이그림을 보고 나는 첫눈에 반했다.
물론 지금 보이는 제주도 한마을의 선창이 그림과 같다는것이 아니다. 아니 완전히 딴판이다. 하지만 그위에 살짝 오버렙되면서 내가 좋아 하는 느낌을 찾아낸다.
이 그림 역시 실제 자연의 색상은 아니다. 화가만의 색깔로 찾아낸 느낌을 캠바스에 옮긴것이다.
중학교때 '언덕'이라는 시를 읽으며 내내 생각났던 고즈넉함이 좋았고 지금도 그런 느낌들을 무척 좋아한다.
언 덕 -김광규-
심심할 때면 날 저무는 언덕에 올라
어두워 오는 하늘을 향해 나발을 불었다.
발 밑에는 자욱한 안개 속에
학교의 지붕이 내려다 보이고,
동네 앞에 서 있는 고목 위엔
저녁 까치들이 짖고 있었다.
저녁 별이 하나 둘 늘어 갈 때면
우리들은 나발을 어깨에 메고
휘파람 불며 언덕을 내려왔다.
등 뒤엔 컴컴한 떡갈나무 수풀에 바람이 울고,
길가에 싹트는 어린 풀들이 밤이슬에 젖어 있었다.
이럴때는 혼자 있으면 좋은데...
감상에 젖어 있으면 남자들 세계에서는...
'청승맞고로 뭐하네' 라던지
'궁상 떨고 자빠졌네' 라고 한다.
서서 오줌누는데 익숙한 나 또한 그런 털미는 안잡힌다.
속으로 삭히고 몰래 음미한다.-_-
어둠을 뚫고 남제주에 도착, 무턱대고 호텔을 잡는다.
배타고 올때 네발행님이 몇군데 전화로 알아보던데... 하루 10만원 어쩌고 하는 내용을 얼핏들은것같다.
아마 그 호텔은 금테 둘러나보다.
여기는 단돈 3만에 운동장이구만...

호텔은 바다와 100미터정도 떨어진곳이었고...
그 주변에 척 보기만 해도 5천만 개 정도의 음식점이 즐비했다.
일일히 세어보니 열댓개다.
역시... 눈이 좀 안좋다. 쿨럭...-_-
저녁 메뉴는 갈치회다.
약기운에 입이 쓰다. 감기기운에 밥맛도 없다. 저녁이고 나발이고 얼른 들어가 좀 누웠으면 좋겠구만...
정말 먹기 싫은데 배를 채우고 약을 먹어야하니 어쩔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밥도 아니고 무슨 회는...
먹는게 싫다.
먹어본적은 없지만 갈치회가 싫다.
... ...
그랬는데...
... ...
막상 회가 올려지자...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곧장 기운의 덩어리는 임맥을 뚫고 독맥을 지나 다시 단전으로 이런다.
연이어 상단전이 열리고 중단전에 기운이 충만해지니...
이것은 바로 선인(도인)들이 꿈에 그리던 소주천!
오직일념-잡념이 제거된 진기로서 일체의 바깥소리나 풍경, 사념등을 떨쳐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않은 마음으로써 심과 기가 하나되는 것-으로 이루어 낼수 있는 높은경지인 것인데 생전 먹지도 보지도 못한 음식을 보자마자 소주천을 이루다니 도대체....
그 맛에 대해서 털컥 겁이 났다.
일단, 아침에 먹은 김치찌개와 점심때 먹은 고등어조림은 개주고...

[글내용과는 무관하나 이개가 부럽다.-_-;;;]
긴장한 마음은 젓가락 끝에서 파르르 떨리더니 꿀꺽하고 삼키는 마른 침에 약간 진정이 된다.
한점을 간장에 찍어 조심스럽게 혀위에 올려놓는다.
입안 가득 향기가 퍼지길래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살짝 한번 씹는 순간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랄랄랄 랄랄랄랄 랄 랄랄랄랄 랄~랄랄...'
헉, 이것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아닌가...
수초의 은혜와 바다의 강인함이 하모니를 이루어 어금니 사이에서 오케스트라를 찬란히 연주하는 것이었다.
시름을 잃고 울려퍼지는 '환희의 송가'를 듣는다...
이윽코 감았던 눈을 뜨자 나는 맑은 하늘 아래 오백만가지 꽃이 끝이 없이 펼쳐진 곳에 홀로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갈치회 한점은 나를 무릉도원으로 보낸것이다.
장담하건데 이런 음식은 다신 없을것이다.
아, 갈치회에 무슨 향기가 있느냐고 따지면 나는 당당히 이렇게 말할것이다.

"어차피 뻥인데...머..."-_-

[밥나오면서 남은것을 옮겨담은 후에 찍음]
어느듯 하루가 저문다.
감기에는 잘먹는게 약이라고... 어제 아주 잘먹었고 약도 잘챙겨먹었고 주사도 맞았기때문에 하루밤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완전... 불땡이닷.(화르륵 화르륵...) 완전 죽겠다.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어제 그 의사샘은 허 준 이 아니라 허 빵 이었다.
오늘 라이딩은 모두 같이 타야 되는데 현제 컨디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민족 고유의 만병통치대법으로 병을 다스리기로 하여 냉큼 조치를 취한다.
'게..게보린' 두알... 쿨럭-_-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