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왕후(貞聖王后, 1692년~1757년)는 영조(英祖)의 정비(正妃)이며 정식시호는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貞聖王后) 서씨(徐氏)이다.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徐宗悌)와 잠성부부인(岑城府夫人)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애
1704년, 연잉군(延仍君)과 혼인하여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으로 책봉되었고 1721년,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자 세제빈(世弟嬪)이 되었으며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왕세제인 영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영빈 이씨의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친자식처럼 대하였다. 그러나 남편인 영조가 장수한 탓에 60대에 이르러서도 대비가 되지 못하다가 1757년, 창덕궁 관리각(觀理閣)에서 66살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 내에 위치한 홍릉이다.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으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정조는 당시 왕대비였던 영조의 계비(繼妃)인 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으며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옆자리가 비워진 능으로 남아있다.
1740년, 혜경(惠敬)이라는 존호가 올려진 뒤 생전에 장신(莊愼), 강선(康宣) 등의 존호가 올려졌고 승하 이후인 1772년에는 공익(恭翼)의 존호가 추상되었으며 인휘(仁徽), 소헌(昭獻)이 다시금 추상되어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의 존호를 가지게 되었고 1778년, 단목장화(端穆章和)의 존호가 추가되었다.
사극 최가 "동이"의 아들인영조에 대하여
사극 동이의 아들인영조(英祖, 1694년 ~ 1776년)는 조선의 제21대 임금(재위, 1724년~1776년)이다. 휘는 금(昑),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 사후 시호는 영종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英宗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이며 이후 묘호가 영종에서 영조로 바뀌고 존호를 더하여 정식 시호는 영조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배명수통경력홍휴중화융도숙장창훈정문선무희경현효대왕(英祖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配命垂統景曆洪休中和隆道肅莊彰勳正文宣武熙敬顯孝大王)이다. 청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장순왕(莊順王)이다. 숙종(肅宗)의 차남이자 서장자이며, 경종의 배다른 아우이다. 화경숙빈 최씨(和敬淑嬪 崔氏)의 소생으로, 왕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왕후(貞聖王后)와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貞純王后)이다.
첫댓글 조선의 역사가 남의집 얘기가 아니였군요...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입니다.